‘신공항 백지화’로 피본 사람들

큰소리 떵떵 치더니…쥐 죽은 듯 조용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신공항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번 결정을 두고 정부가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해공항 확장 카드로 일단락됐지만 정치권과 밀양-가덕도에 이해관계를 둔 지자체 장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신공항 입지 용역을 수행해온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과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밝혔다. 장 마리슈발리에 ADPi 수석엔지니어는 “기존에 나와 있던 옵션 2개를 비교한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단계를 밟았다”며 “여러 단계 검증을 거쳐 부산 가덕도, 경남 밀양, 김해공항 확장 등 3개 후보지로 최종 압축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웃고 있는 지도부
울고 있는 지역의원

정부 발표를 두고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가 미래를 최우선 고려해 얻은 최선의 결론인 만큼 이를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논의 끝에 김해 신공항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수용 입장임을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는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예상되는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여러 걱정을 더는 일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새누리당도 정부, 청와대와 혼연일체가 돼서 성공적인 신공항 건설의 준비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부의 발표에 반색을 표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를 제외한 정치권에서는 신공항 백지화 발표를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PK(부산·경남)의 가덕도, TK(대구·경북)의 밀양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고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유 의원은 신공항 대책 중진간담회에 참석해 “결론이 내려진 만큼 지역 간 갈등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도 “김해공항에 대해 영남권 허브공항으로 쓰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정부 스스로 이야기해 왔다. 이제 와서 갑자기 (김해공항이) 최선이라고 하니 부산은 물론 대구도 주민들이 납득을 못한다”고 정부 측의 분명한 해명을 요구했다.
 

유 의원과 마찬가지로 대구지역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더민주 김부겸 의원은 백지화 결정에 대해 “또 한 번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21일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입장발표를 통해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2000만 남부권 국민들의 경제 활성화 꿈이 또 한 번 꺾였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밀양신공항 유치에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9일에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신공항이 밀양에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해공항 확장 결정…밀양·가덕도 대혼란
여야 지도부 긍정적…지역 의원들 “큰일”

지난 7일에는 밀양 유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에 대구지역 의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밀양신공항 유치는 대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예전부터 여기(남부권신공항 추진위)에서 자문을 했다”며 “부산은 현재 영남권 신공항 추진을 무위로 돌린 뒤 가덕도에 민자를 유치하려는 것 같은데, 신공한 유치 경쟁의 정치 쟁점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해 경쟁지역인 가덕도 추진을 맹비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번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신공항은 유일한 남부권 경제 회생의 활로로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시민사회와 함께 향후 대책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더민주에서는 김부겸 의원 뿐 아니라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도 난감한 상황이다. 문 전 대표는 줄곧 가덕도신공항 유치를 주장해왔다.

지난 9일 문 전 대표는 더민주 부산시당 관계자 등 100명과 함께 가덕신공항 건설 예정지를 방문해 “신공항은 안전하고, 소음피해 없이 24시간 운영가능 하며, 필요한 경우 언제든 추가 확장이 가능한 곳, 나아가 해상운송, 육상운송과 함께 복합적 물류효과를 낼 수 있는 곳에 건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4·13총선에서 부산지역 내 5명의 의원이 당선될 경우 가덕도 유치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내놓은 현재 문 전 대표는 네팔에 있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가 귀국해서 신공항 문제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야권의 대권주자인 그가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한 쪽에 치우친 입장을 취할 경우 자칫 표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측 관계자는 “문 전 대표는 지금 섣불리 입장을 발표하는 것보다 진행되는 상황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직 건 시장
“믿기 힘든 결정”

이처럼 영남권에 지지기반을 둔 여야 대권주자들이 신공항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경제 파급효과 때문이다. 신공항 후보지였던 밀양의 경우 신공항 건설 시 약 18만∼26만 명의 일자리, 12조∼17조 원대 생산 유발효과가 예상된다는 대구경북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가덕도 신공항 역시 15만 명대의 일자리, 11조 원대 생산 유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5~10조에 달하는 신공항 건설비용은 100% 중앙정부가 지원한다. 10여년에 달하는 건설기간동안 일자리 창출, 물류비용 절감, 관광객 증가를 비롯한 지역 브랜드 가치 상승 까지 생각하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사업인 것이다.

이처럼 경제 효과를 유발하는 신공항 유치전에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장들도 줄 초상 분위기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가덕도신공항 후보지를 찾아 “가덕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당시 서 시장은 무소속 오거돈 후보와 박빙의 경쟁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조건부 시장직 포기’ 발언은 승부수로 통했다. 서 시장은 개표 결과 불과 1.6% 차이로 오 후보를 이기고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선거 이후 2년여 동안 그는 신공항 유치와 관련해 ‘가덕도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시장직을 내놓을 것이냐’는 질문에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발언을 이어왔다.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서 시장은 강한 유감을 표했다. 서 시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결정은 360만 부산시민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4반세기 시민 염원을 철저하게 외면한 오로지 수도권의 편협한 논리에 의한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저와 부산시민은 김해공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신공항 논의에서 어떻게 또 다시 김해공항 확장 방안이 결정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치적 결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서 시장은 가덕도 유치에 실패한 만큼 향후 거취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서 시장의 거취에 대해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자체 발전을 위해 강단 있는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신뢰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의원은 “서 시장이 부산시민들에게 어떻게 본인의 사퇴입장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김해공항도 부산”이라며 “꼭 가덕도가 아니라고 해서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면 올바른 부산시장의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서병수 시장과 함께 가덕도 유치를 주장했던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도 부산시장 지키기에 나섰다. 김 의원은 서 시장이 시장직을 두고 성급하게 결론내기 보다는 신중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에 더민주 안민석 의원은 “정치인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책임들을지지 않으니까 국민들로부터 정치가 불신을 받는 것 아니겠느냐”며 서 시장을 압박했다.

시장직 건 부산시장 거취 주목
TK 쪽도 민심 부글…누가 총대?


밀양 신공항을 지지했던 권영진 대구시장도 신공항 백지화로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 서 시장과 같이 시장직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권 시장도 신공항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권 시장은 지난 21일 신공항 백지화가 결정된 당일 대구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결정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거꾸로 돌린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유감을 넘어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늘어나는 항공수요를 김해공항 확장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된 사안에 대해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밀양 신공항 유치에 힘을 쏟은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쓴 소리를 냈다.
 

김 도지사는 “정부의 이번 발표는 황폐화된 지방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신공항을 염원해 온 대구경북 시·도민의 꿈을 무너뜨렸다.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대구시 등 영남권 4개 시·도의 여론을 모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 도지사는 신공항 건설이 밀양,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김해공항 확장 결정은 사실상 백지화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에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정부의 이번 결정을 대체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홍 지사는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인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결정이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생각한다”며 정부의 결정 수용 의사를 밝혔다.

홍 지사는 “신공항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돼 정부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냈을 것”이라며 “공항 문제는 국가의 백년대계이므로 경남도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 가덕도 유치에 시장직을 건 서병수 부산시장과 달리 신공항을 경남에 유치해야 한다는 공약은 내세우지 않았다. 23일에는 “또 다시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신공항 사기를 획책한다면 이번에는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뿔난 의원들
재추진 결의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등의 거점을 둔 의원들도 단단히 뿔이 났다. 더민주 부산지역 의원 5명은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결의했다. 당내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신공항 용역조사에서 안전성 항목이 제외된 점 등에 대한 진상규명에 나설 방침을 세웠다.

더민주 부산지역 출신인 김영춘·박재호·최인호·전재수·김해영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해공항 확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2011년 가덕도신공항이 무산된 것에 이은 이번 발표는 대단히 유감스럽고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들은 “김해공항이 확장된다 하더라도 소음 등 문제로 24시간 운항이 불가하다”며 정부의 이번 결정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가덕신공항유치추진위원장인 최인호 의원은 “용역 과정에서 나타난 것에 따르면 장애물 문제가 독립적 평가항목에서 빠진 점이 항공법에 위배된다”며 “장애물 문제가 국토부의 방침과 어긋나는 게 드러났는데도 용역업체에 지침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리당국의 직무유기 부분을 진상조사단 활동을 통해 밝힌다는 방침이다.

특히 “서병수 부산시장이 독자적으로 가덕도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는 점은 우리의 뜻과 동일하다”며 “부산시가 구체적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 한다면 우리도 힘을 모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덕도 신공항의 재추진을 위해 새누리당과의 연대까지도 고려한 모습이다.

새누리 부산시당은 김해공항 확장안에 아쉬움을 표했다. 부산시당은 지난 22일 “가덕신공항이 아니라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돼 아쉬움이 남는다”며 “김해공항을 확장해 현재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항공수요를 소화하고, 향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가덕신공항 건설을 계속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자택일 딜레마
환영 못받은 결과

김해공항 확장안을 두고 정치평론가는 “밀양이든 가덕도건 어느 한 곳을 선택하는 순간, 탈락한 곳의 극심한 반발이 있고 더군다나 임기 말에 있어서 굉장히 국정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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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