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토지는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허가 없는 국토 개발 및 이용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곳곳에서 행정당국의 눈을 피해 토지를 본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포착되곤 한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역시 해당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샘표식품은 최근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실적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매출 2613억5362만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4.4% 성장세를 나타냈다. 영업이익은 34.5% 신장한 123억3127만원, 순이익은 무려 98.5% 증가한 139억816만원을 기록했다.
출입구 없어질 판
업계에서는 샘표식품의 고공행진을 박진선 사장의 리더십과 연결 짓는다. 창업주인 고 박규회 회장, 2대 박승복 회장에 이어 회사를 짊어진 박 사장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인본경영’으로 후한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 상관없이 박 사장은 토지 불법전용 문제 만큼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그의 명의로 된 경기도 이천시 일대 1만9555㎡의 토지는 불법 농지 전용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장 문제가 될 법한 필지는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175-9번지(281㎡)와 174-11번지(395㎡) 일대. 175-9번지는 지목이 밭, 174-1번지는 지목이 논이다. 사실상 농경지인 셈이다. 하지만 두 곳의 필지는 지목과 동떨어진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구역에는 샘표식품 이천공장의 출입구가 조성된 상태다. 농지로 사용돼야 할 토지를 간장공장이 점유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는 농지법 34조를 위반하는 행위다. 농지법34조는 농지를 본래 용도로 사용하지 않거나 타 용도로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개발행위허가를 받아야하는 대상은 건축물의 건축, 토지의 형질 변경 시 개발행위허가를 받도록 명시한 국계법56조에도 저촉될 수 있다.
행정당국 역시 불법 전용 사실을 이미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금은 원상복구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다. 원상복구가 이뤄지면 샘표식품은 이천공장의 해당 출입구를 폐쇄하거나 면적을 축소해 제작할 수밖에 없다. 이천시는 1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샘표식품에 통보했고 오는 7월 초까지 원상복구를 완료해야 한다.
해당 토지의 실소유주가 박 사장이라는 점에서 농지법6조 위반 혐의까지 생각해봄 직하다. 현행 농지법 6조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농지 소유를 제한한다.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해당 농지의 주인인 박 사장이 이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회사 경영만으로도 바쁜 박 사장이 농사를 직접 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주영 호법면사무소 주무관은 “해당 지역은 불법 전용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곳”이라며 “이미 출입구로 이용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고 농지 소유자가 해당 지목에 맞게 직접 경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충분히 고지했다”고 밝혔다.
농사도 안 짓는데 농지는 왜?
공장 출입구로 무단 변경
박 사장 소유의 또 다른 토지인 호법면 매곡리 230번지(논, 5938㎡)와 241-8번지(밭, 1881㎡) 역시 행정당국에 의해 불법 전용이 확인된 곳이다. 호법면사무소는 230번지의 소유주에게 농지법6조에 의거해 본인의 농업경영에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발송 완료했고 241-8번지는 불법 전용에 대한 원상복구 지시를 내린 상황이다.
박 사장이 토지를 원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흔적은 다른 곳에서도 포착된다. 산지(산18-3번지, 2479㎡) 뿐만 아니라 호법면 매곡리 224번지(밭, 1769㎡)와 225번지(논, 7488㎡) 역시 명의가 박 사장으로 돼 있다. 우선 산지 불법 전용 여부가 의심되던 호법면 매곡리 산18-3번지는 공소시효를 넘기는 바람에 원상복구 명령 이상의 특별한 제재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224번지와 225번지는 직접 경영 여부가 불명확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농지법6조 위반 혐의가 다분하다. 샘표식품 측은 체험형 콩농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유치원생이나 아이들 대상으로 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이 경우 불법행위에 대한 의혹은 한층 강해진다. 해당 토지는 1000㎡ 미만이어야 하는 체험농장의 최대 규격을 초과하는데다 해석에 따라 위탁경영마저 의심되기 때문이다.
샘표식품 측은 박 사장 명의의 토지가 의도적으로 불법전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고의적인 사안이 절대 아닐 뿐더러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없는데 굳이 불법을 자행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행위가 절대 아니다”며 “해당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중이고 행정당국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박 사장이 소유한 토지 곳곳에서 드러난 불법 전용의 흔적을 의도치 않은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를 통해 박 사장이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을 얻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통상 토지 소유자가 불법으로 전용을 일삼는 건 전용에 따른 부담금과 함께 개발이익부담금이 더해지는 까닭이다. 그만큼 토지 소유주의 체감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토지의 개별 공시지가가 1㎡당 5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행정당국은 1㎡당 5만원의 전용 부담금을 매긴다. 만약 전용 허가를 받더라도 향후 전용한 토지의 가격이 오를 경우 거래 시 오른 금액의 25%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토지 소유주 상당수가 불법으로 지목을 변경하는 이유 역시 금전적 부담을 없애기 위한 포석이다. 즉, 조용히 가지고 있다가 팔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 이득을 취하더라도 행정당국에 적발되지 않는다면 농지로 이용하는 것보다 기대수익이 높다는 뜻이다.
문제는 행정당국의 미비한 대응의지가 불법전용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공소시효 7년이 지났어도 제대로 된 원상복구가 이뤄졌는지 행정당국이 앞장서 감시해야 하지만 상당수 행정당국은 이를 그냥 지나치곤 한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토지에서 불법전용을 확인하더라고 시정명령만 내릴 뿐 추가로 무거운 법적 제재를 기대하기 힘들 때가 많다.
걸려도 그만?
한 토지 전문가는 “누구든 사리사욕 차원에서 농지를 은근슬쩍 바꿨다면 불법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게 원칙”이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제재 수위가 약소하기 때문에 원상복구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생각이 팽배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