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예상대로 ‘반풍’은 매서웠다. 단 6일 동안의 일정이었지만 정치권에 숱한 이야기를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대선 정국에 군불을 지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등판 시점은 언제일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밤, 6일간의 한국 및 일본 체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반 총장은 ‘충청대망론’의 기수로 광폭행보를 보이면서 대선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매서운 ‘반풍’
반 총장은 방한 첫날인 지난달 25일 제주포럼 간담회에서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반 총장의 제주 발언을 두고 대선을 염두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충청권의 핵심 인사 김종필 전 총리를 예방하면서 대선 출마 가능성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날은 사전에도 공식 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반 총리의 김 전 총리 방문은 충청권 민심다지기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같은 날 반 총장은 고건, 노신영, 이헌재, 한승수 전 총리 등 전직 총리 4명을 포함한 각계 원로 13명과 만찬을 함께 했다. 만찬에서는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던 지난달 25일 관훈클럽 간담회를 고리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고건 전 총리는 충청대망론 등 대선 관련 얘기에 대해 “전혀 없었다. 상례적 모임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29일에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및 경북도청을 방문했는데 이를 두고 TK(대구·경북) 민심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반 총장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 목적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 방문이었다. 그는 방명록에 “류성룡 선생의 조국 사랑과 투철한 사명감을 기려 나가자”고 써 존경심을 표했다. 하지만 충청 출신인 그가 공식 회의 일정과 별도로 하회마을을 방문하면서 충청에 이어 TK 민심 껴안기에 나선 행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류성룡 선생 고택서의 오찬 때 김관용 경북지사와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 같은 여권 TK 핵심들이 총출동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당분간 방한 일정이 없는 반 총장은 당분간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제가 대통령을 한다 이런 것은 예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 현재는 맡은 소명을 성공적으로 맡다가 여러분께 성공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게 바람직한 게 아니냐”면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지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반 총장의 대권 시사 발언에 정치권의 해석은 엇갈렸다. 홍문표 새누리당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우리 당이 처한 상황으로 볼 때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혹시라도 온다면 엄청난 파워가 생기는 것이고,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야권은 “친박 기획, 반기문 주연의 새누리발 대선 드라마가 이미 시작됐다”고 비꼬았고 더민주의 한 의원은 “반 총장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친박 대선후보로 내정돼 있다”며 “킹메이커로서 당권은 최경환 의원이, 차기 대통령은 반 총장이 맡는 구도”라고 주장했다.
반 총장의 6일간의 행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반 총장 언급이 출마를 선언한 것인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본인 희망대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남은 임기를 잘 마치는 것이 나라나 개인을 위해 바람직할 일”이라고 말했다.
충청·TK 방문…대선 출마 암시
대망론 공식화 시기 놓고 저울질
이번 행보와 관련해 반 총장의 본격적인 등판 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 대권 도전 문제에 대한 질문에 “10년간 유엔사무총장을 했으니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1월1일이면 유엔 여권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그때 결심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국내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2017년 대선 '반기문 대망론'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내년 1월1일은 반 총장의 유엔사무총장 임기 종료 직후를 의미한다. 반 총장이 6일간의 방한으로 대선 레이스에 군불을 땐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등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향해 내딛는 것은 다소 늦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오는 7∼8월경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고 또한 정기국회가 개회 시점을 기준으로 새누리당 차기 당권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당 대표가 주류냐 비주류냐 여부에 따라 반 총장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정치 분석가는 "새누리당이 혁신하면 비주류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친박이 주도권을 쥐고 가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반 총장과 친박이 결합하는 시나리오는 총선 전보다 가능성이 훨씬 낮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현재 친박계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권 주자로 합의추대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의 새누리당 내 지지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박계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권 주자로 나서는 것을 환영하고, 당 대선 후보는 추대가 아닌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당헌·당규 및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출돼야 한다”며 합의추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당헌·당규에 따라 내년 19대 대선일(2017년 12월20일) 기준 6개월 전인 6월20일까지는 대선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따라서 반 총장은 내년 1월 기준으로 6개월 이내에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낙점받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반 총장의 현재 행보를 감안할 때 새누리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하지만 기존 정치와는 다른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 총장이 여·야를 비롯해 시민단체, 일반국민을 규합한 거대세력을 등에 업고 대선에 출마하는 시나리오다.
제3지대 출마론?
원희룡 지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자체의 진로가 유동적인 것처럼 대선주자들 특히 반 총장 같은 경우는 현재 경쟁력은 출발점에서 매우 강하고 그동안 묶여 있는 것은 별로 없지 않나”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넓을 수 있다"고 전망해 반 총장의 제3지대 후보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건-반기문 평행이론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가 10년전 고건 전 총리의 행보와 유사하도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둘의 공통점은 정치인이 아님에도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는것과 각각 외교 관료, 행정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 각각 충청과 호남에 지지기반을 둔 대망론과도 맞물려 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고건 총리는 대선을 3년여 앞둔 2005년 초 지지율이 3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과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각종 검증 과정에 부담을 느낀 고 전 총리는 대권 도전 포기를 선언한다. 하지만 반 총장은 아직 검증 과정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상황도 반 총장에게 는 긍정적인 요소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