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기업 덮친 사정폭풍 내막

대기업 탈탈 털어 정치인 싹 잡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20대 총선 이후 검찰의 사정바람이 매섭다. 먼저 대형 건설사 4곳과 부영그룹이 검찰의 타깃이 됐다. 올해 박근혜정부가 4년차를 맞이한 가운데 앞으로 검찰의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19일 검찰은 ‘철도공사 입찰담합’과 관련해 대형 건설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이준식)는 지난 19일 평창올림픽을 위한 원주∼강릉간 철도공사에 참여한 한진중공업과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KCC건설 등 건설업체 4곳에 검사와 수사관 등 60여명을 보내 동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내사 끝내고…
기업 수사선상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지 않았다”며 “검찰이 인지수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SK건설 담합 사건 이후 다양한 인지수사를 펼쳐왔고 이번 수사도 그런 활동의 연장”이라며 “검찰이 기계적으로 수사의뢰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지수사도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는 검찰이 대기업 수사에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건설사 4곳의 압수수색을 통해 회계장부, 입찰관련 서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고 이를 분석해 혐의를 입증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은 전 구간 길이가 58.8km에 달하고 사업비는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철도시설공단은 2013년 초에 발주한 강원도 원주∼강릉 간 철도공사에서 4개 건설사가 입찰을 담합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철도시설공단 등에 따르면 4개 건설사가 제출한 입찰금액 사유서는 내용이 서로 완전히 일치했다. 또 각 공구별로 1개 건설사씩 낙찰받을 수 있도록 입찰금액을 저가로 써내는 방법으로 담합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각사가 발주처에 제출한 입찰사유서의 설명 부분과 글자 크기, 띄어쓰기 등 금액을 제외한 문서내용·양식이 완벽하게 일치해 철도공단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입찰금액 사유서를 4개 업체가 제출했는데 내용과 양식이 모두 동일했고 입찰 담합을 의심할만한 투자 패턴이 나타났다”면서 “계약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계약 체결 여부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계약심의위원회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건설사들과 소송이 벌어져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을 염두해 계약을 체결키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해당 건설사 임원을 불러 담합 여부에 관해 물었지만 모두 부인했다”면서 “발주처 입장에서는 조사권이 없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공정위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거 끝났다” 칼 빼든 검찰
심상찮은 칼날…비리 정조준

입찰금액 사유서라는 것이 수십 쪽에 달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한두 쪽 정도 간단한 내용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서로 참고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A건설사는 “사유서를 낼 때 건설사들끼리 서로 어떻게 냈는지 물어보고 대충 맞춰서 낸 것이지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문제는 부당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인데 글자와 내용이 좀 같다고 담합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철도공단 측은 “그런 것을 관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담합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번 입찰담합 건이 사실로 밝혀져 수천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받게 되면 실적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수년전 벌어진 담합 건이다. 수출 외에 내수로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이 바로 건설업”이라며 “고용이라는 관점에서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과징금 폭탄을 거두고 규제개혁에 정부가 앞장서는 등 업계 살리기에 동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20대 총선이 끝난 뒤 검찰발 기업 사정이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는 2005년 한국가스공사가 삼척·평택·통영 LNG저장탱크 건설공사 시공사로 선정한 대림산업,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등 3개 컨소시엄에 대해 입찰담합 혐의를 확인하고 13개 건설사에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는 상반기 중 전원회의를 열어 위법성 여부와 제재 수준을 결정할 계획이다.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 자정결의대회에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밝힌 삼진아웃제, CEO 무한책임 등을 이행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민간임대주택 1위에 올라있는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은 수십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세무당국의 조사에서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앞으로 이 회장과 부영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국세청은 부영주택이 법인세 수십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발견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서울청 조사4국을 파견해 부영주택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21일 특수1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재계 잔뜩 긴장
사업 차질 예상

특수부에 배당한 배경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공정거래조세조사부에 배당하지 않은 것은 해당 부서의 사건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라며 “우선은 고발사건 위주로 살펴볼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정당국이 부영과 관련한 비리첩보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정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국세청의 고발 전에 이미 부영과 관련한 비리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1000억원대 세금부과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뿐 아니라 부영주택의 외국 송금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은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별도로 세무조사 결과 부영주택 등이 캄보디아에 송금한 자금의 흐름에 수상한 점을 적발해 부영 측에 수백억원대의 추징금을 통보할 방침이다. 이에 부영 측은 “일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그간 세금을 충실히 내왔으며 고의적으로 탈세한 일은 없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충분히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도 올해 초 전직 부영그룹 직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2·3차례 불러 조사하는 등 자체적으로 수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국세청 조사내용과 함께 차명계좌를 통한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국민주택 사업과정에서 부당하게 세금을 감면 받았다는 의혹 등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그룹은 1983년 3월 설립돼 임대주택 사업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현재 이 회장의 부영에 대한 지분은 93%이상을 차지한다. 부영은 올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진단지정 결과 자산 총액이 20조4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21위에 올라 있으며, 부영그룹은 호텔업과 레저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오투리조트를 매입했고 임대사업을 위해 서소문 삼성생명 본관 건물도 함께 사들였다. 경남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가운데, 마산 해양신도시 복합개발 시행자로도 참여해 지방까지 전방위로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진행 중인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 해외에서 활발하게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온 이 회장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에도 아프리카 르완다까지 직접 건너가 디지털 피아노와 칠판 등을 기증하는 등 친선활동과 교육지원사업을 벌여왔다.


부영그룹은 이번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추진 중인 대형사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며 검찰에서 아직 우리 쪽에 따로 통보한 내용은 없다”며 “그동안 고의적으로 탈세한 일은 없다”고 했다.

부영 비자금 추적
건설사 담합 도마

수사선상에 오른 부영은 임대아파트 분양 때 1조6000억원대 폭리를 취했다는 이유로 줄 소송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법과 청주지법, 부산고법 등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부영과 계열사 부영주택, 동광주택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 중이다.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가격을 높게 책정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 분쟁의 이유다.

공공임대아파트 분양가를 둘러싼 분쟁은 임대주택 분양 전환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에 의해 불거졌다. 문제는 건축비는 ‘상한 가격을 국토부가 고시한 표준건축비로 한다’고만 언급돼 있을 뿐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임대아파트 사업자들은 관행대로 표준건축비를 건축비로 계산해 분양전환가를 정해 법 테두리 안에서 가장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금액을 적용했다.

대법원은 2011년 LH와 임대주택 입주민 간 소송에서 분양 전환가격의 건설원가는 표준건축비가 아닌 ‘택지비와 건축비의 합’이라고 보고 입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임대아파트 사업자들 대상으로 한 줄 소송이 이어졌다. 부영도 전국적으로 소송을 당했다.
 

부영 측은 공기업으로써 분양 전환가격을 정하는 LH와 달리 민간 사업자인 부영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잇달아 패소했다. 지난해 7월 청주 상당구 금천동 부영1단지와 부영5단지 아파트 주민 500여명이 낸 소송에서 “부영은 주민 1인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일부 소송에서만 부영이 승소했을 뿐이다.


검찰의 칼끝은 줄기세포 업체 STC라이프도 겨냥했다. 검찰은 줄기세포 업체 STC라이프의 이계호 회장(57)의 수십억대 조세포탈·혐의도 포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세무당국은 이 회장의 10억원대 조세포탈 정황을 잡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이 법인자금을 유용한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초로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활용한 화장품을 제조, 판매해 주목받던 STC라이프는 코스닥 상장 20여년 만인 지난 2011년 상장폐지됐다.

이 회장은 2004년 1500억원대 다단계 사기를 벌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모 종합일간지 회장이 STC라이프 전환사채 60억원을 인수한다는 미공개 정보를 입수한 뒤 지인 명의로 주식 4만9000여주를 산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2014년 만능 줄기세포를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에 성공하는 등 재기를 시도했지만 이번에 다시 검찰에 비리가 포착된 것이다.

진짜 타깃은…
정계 검은고리?

검찰의 연이은 기업 사정 수사에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각종 수사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선 총선이 끝난 만큼 물밑에서 진행됐던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에 뜬 ‘재벌 저격수’

노회찬, 채이배…대기업 긴장

재계는 제20대 국회에서 활동하게 될 ‘재계 저승사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4선에 성공했다. 박 의원은 당내 재별개혁특별위원회를 이끌며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등을 문제 삼아왔다.

야권의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정의당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각각 3선에 성공했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강성기조를 보여온 공인회계사 출신 국민의당 채이배 당선자의 활약도 지켜볼만 하다.

재계 개혁파 대거 입성

채 당선자는 “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라며 “19대 국회 연장선상에서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려 한다”고 예고했다. ‘대기업 갑질’에 목소리를 높였던 ‘을지로위원회’의 우원식 의원도 3선에 성공해 재계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서영교 당선자도 지난해 8월 ‘대기업 복합쇼핑몰 규제법’을 발의하는 등 재벌 규제 강화에 앞장선 인물로 꼽힌다. 이밖에 박범계·원혜영·이언주 등 19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상당수가 이번 총선에 대거 당선된 점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여당 내 재계저격수’로 불리는 이혜훈 의원의 국회입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특별범죄가중처벌법과 기업지배관련법 을 강조해 왔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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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