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로 본 대한민국 기생 이야기

기녀는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영화 <해어화>가 개봉하면서 기생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다. 음주가무뿐아니라 시·문예에 능통한 기생은 조선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생의 삶이 현재에도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가치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해어화>는 지난 13일 개봉했다.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주연의 <해어화>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으로 기생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당나라 현종이 비빈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해어지화(解語之花)’에서 비롯됐다.

시·문예 능통
작부와는 달라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로 규정할 수 있다. 기생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사회의 무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사제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면서 기생과 비슷한 신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태섭 동국대 교수의 <성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기생이라는 직종은 신라 24대 진흥왕 때 여자 무당이 유녀(遊女)가 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반면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성호 이익 선생은 기생이고려시대 생겼다고 본다. 고려 초에 팔관회와 연등회 등의 행사에 필요한 여성을 공급하기 위해 고려여약이 제정됐는데 이 고려여악이 기생의 원조라고 기생 연구가들은 주장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생을 일종의 제도로 정착시켜 국가가 직접 기생들을 관리, 감독했다. 특히 ‘기생’의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따르면 기생은 관기로써, 관가에 등록된 기생만이 기생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생은 교양 있는 지식인들로 노래, 춤, 악기, 서화에 능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장악원에 들어가 몇 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교육은 일정 나이가 지나거나 출산 등의 이유로 은퇴한 퇴기들이 주로 맡았다. 기생은 대개 소녀 시절부터 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성년식을 치러 본격적인 기생의 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기생은 보통 정년이 50세로, 20세가 넘어도 활동하는 기생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20대 중반만 되면 ‘노기’로 취급받았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법적 신분으로는 양민이었지만, 직업의 특성상 생활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향유했고 사회적으로는 천민으로 대우받았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는 황진이를 들 수 있다. 황진이는 중종 6년(1511)에 태어나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추정된다. 황진이는 19세기 풍속화를 그린 화가 신윤복에 의해 ‘풍속화 기생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 무녀서 비롯됐다?
고려 행사에 공급된 여성이 원조?

기생은 조선시대에서 남성과 공식적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기생 출신인 황진이는 규방출신의 감동이나 어우동과 달리 음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었다. 시와 음악에 능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다.조선 말기에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 중 일패 기생은 관에 소속된 관기로 양반기생으로 불렸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 노래, 춤을 하는 기생으로 예의범절 수준이 높고 남편이 있었기에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등이 일패 기생을 대표한다. 이패 기생은 관아나 재상집에 출입했고 암암리에 몸을 파는 밀매음을 하기도 했다. 삼패 기생은 몸을 파는 유녀를 뜻했다.

조선시대부터 천한 백성으로 분류돼 독특한 신분구조를 형성했던 기생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사노비제가 폐지돼 외형적으로는 신분해체에 따른 천민을 면하지만 여전히 신분상의 차별을 극복하지는 못했것으로 알려진다.


1900년대 초 신문이나 잡지기사, 총독부의 공식문건 등에 나타난 기생에 대한 명명과 분류를 살펴보면 기존 여악의 일원인 관기가 중심축이었던 기생 집단이 창기 또는 매춘부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까지 예악을 담당하고 사대부의 여흥을 주도한 기생은 신분해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전통 가무악을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식민지 공창정책 하의 창기와 비슷하게 통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또한 기생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상품화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팔도에서 꼽힌 향기(鄕妓)들 중 평양기생이 가장 많았는데 평양기생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기업(妓業)을 차리기도 했다. 이런 향기와 관기 출신들이 모여 1909년 처음으로 만든 기생조합이 한성기생조합소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설립된 조선장악전습소의 학감 하규일이 만든 기생조합은 다동조합이다. 다동 조합은 훗날 조선권번으로 개칭된다.

이 시대에 권번을 빼고는 기생을 논하기 어렵다. <한겨레음악대사전>에 따르면 권번은 직업적인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들이 적을 두고 활동하던 기생조합이다. 당시 기생의 직업은 조선총독부 허가제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은 권번에 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교육과정의 기생을 관장하고,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관리감독함은 물론이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도 관리했다.

권번에 들어오는 여성들은 남들의 추천을 받아오는 이가 제일 많았고, 일부는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권번에서 예의범절과 노래와 춤을 배우고 지체높은 양반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치려 했던 여성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권번 명기는 서도기생과 남도기생으로 나뉜다. 남도 출신은 멋을 잘내기로 소문났고, 서도기생은 애교가 많기로 유명했다. 기생의 학습과목은 시조, 가곡, 검무, 가야금, 거문고, 양금, 한문, 시문, 사군자, 일어 ,독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전국구 명월관
구한말부터 유명

조선 후기에 평양에서 이름을 떨친 기생중에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있다. 장연홍은 1911년 평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가정형편으로 인해 14세 때 평양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됐다. 기생이 된 장연홍은 수려한 외모와 춤, 노래, 모델 활동 등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후 상해로 유학을 떠난 뒤의 행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1930년대에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이 서울로 상경해 각각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활동했다.

현매홍은 시조, 가곡, 가사에 능했고 김옥엽은 궁중무용과 서도잡가, 경기잡가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23년 일제 강점기 강명화 자살 사건은 당대를 떠들썩하게했다. 강명화와 그녀의 연인 장병천이 집안의 결혼 반대에 부딪쳐 자살한 사건이다. 장병천과 함께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강명화는 1923년 6월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강명화의 시신은 경성부로 옮겨져 명월관과 여타 기생들의 애도 속에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실성한 장병천은 단식에 돌입했고, 강명화와 함께 살던 집인 경성부 중구 종로방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같은 해 10월 자살했다.

이 사건은 전국 각처로 퍼져나갔고 일본, 중국에까지 소문이 확산됐다. 사후 1924년 하야가와 일본인 영화감독은 종로구 집, 경성부의 명월관, 강명화의 고향 마을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기생 문명옥을 캐스팅해 영화 <비련의 곡>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화제가 돼 많은 관객이 몰렸고 1925년에는 익명의 작가에 의해 <강명화의 죽음>이란 소설로 탄생하게 됐다.

신현구 중앙대 교수의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에 따르면 초창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기생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월화의 맹세’라는 영화에 출연한 이월화는 여장 배우가 아닌 여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최초의 배우였다. 또한 기생 출신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여배우계를 주름잡았다.

신 교수는 언론을 통해 “당시 기생들은 당당한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예술사와 문화사회사 등을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였다”면서 “그 무렵 기생은 한쪽에서 보면 봉건적인 유물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 대우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최고는 황진이
최고 미녀는 장연홍


명월관은 1900년대 기생들이 활약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명월관은 청풍명월에서 따온 이름으로 명사들을 초청해 대접한 요릿집이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개업해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궁중 나인이 담근 술을 팔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융희 3년(1909)에 관기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지방과 궁중의 각종 기생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월관은 많은 기생 중에서도 어전에 나가 춤과 노래를 불렀던 궁중기생이나 인물, 성품 및 재주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이 모여들어 일류 사교장이 됐다.

1910년대 초반에는 조선 왕조의 왕족들, 대한제국의 고관, 친일파들이 이곳을 찾았다. 1910년 후반에는 망국대부의 자제들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주로 명월관 찾았는데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울분을 여기에서 푼 것으로 알려진다.

1920년대 초반에는 일본 유학생들과 상해의 애국지사들이 찾았다. 또한 1919년 3·1운동은 기생들이 사회를 보는 눈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기생인 사상기생이 생겨나게 됐다.

이들은 1919년 3월19일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10일 뒤에는 수원 권번 기생 30여명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김향화는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기도했다. 192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론인과 문인들이 명월관을 찾았다.

이때 기생들은 일본 유학을 가거나 근대식 학업으로 신여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기생폐업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사업가들이 주로 찾았는데 이때부터는 서화와 기예를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워 조신하게 행동하던 명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1940년대 후반은 미군들이 주로 찾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기생과 명월관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중·일 기생
3국의 다른 인식

송지성·김세이 한양대 교수의 <한·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게이샤는 일본에서 1688∼1704년경에 생긴 제도다. 게이샤는 유녀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 두 종류로 나뉜다.

이들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일본 전통예술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에 게이샤는 남자였지만 18세기 들어 여자로 바뀌었고, 소녀들은 사춘기에 이르기 전에 예능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이샤는 ‘아름다운 사람’ ‘예술로 사는 사람’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음악, 서예, 다도, 시, 대화 그리고 샤미센이라 부르는 세 종류의 악기 연주를 익힌다.

전문적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5년의 수련과정을 거치며 견습 게이샤는 마이코라고 부른다. 게이샤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떠올리는 흰 화장과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 차림은 마이코의 모습이다. 완전한 게이샤는 단순한 색상의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특별한 때에만 하얗게 칠한다. 근대에 와서 계이샤는예능 기량과 관계없이 성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이 되었고 술자리에 나가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기생은 서비스 유형과 방식, 기생업의 경영관리 등에서 다원화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모가 뛰어나고 가무만 제공하는 예기, 몸을 파는 것을 주로 업으로 하는 색기, 가무와 여색, 성적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기녀로 나누어진다. 또한 중국의 많은 기생들이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고대 대부분 시대의 시, 사의 정수는 모두 기녀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ㆍ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국의 성별에 따른 기생에 대한 관점은 상이하다. 우리나라 남성은 기생을 유희의 대상, 창기로 본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각 예술가와 점유,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여성에게는 우리나라의 경우 시기, 질투,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은 예술가로 봤다는 분석이다.

현대판 기생집
강남 요정 영업

1970∼1980년대 정·재계 인사들의 비밀회합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요정은 현대식 유흥주점이 늘면서 쇠퇴를 거듭했다. 현재는 강남 역삼동 등에 소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요정은 한 사람 당 35만∼40만원 가량을 받고 식사와 함께 3∼4시간의 유흥을 제공한다.

20∼30여종의 코스 요리가 제공돼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춤과 노래, 가야금 연주 등을 선보이는 이른바 현대판 기생이다. 이들의 성접대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업소는 한옥 등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기도 한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영화 단골소재 기생 영화는?

2007년 개봉한 <황진이>는 송혜교, 유지태 주연의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양반가의 딸로 자란 진이(송혜교)가 출생이 밝혀지자 ‘기생’의 신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사대부조차 동경하는 최고의 연인이 된 ‘진이’ 곁에 있던 놈이(유지태)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2002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도 기생이 등장한다. 18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장승업이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에게 매료되는 내용를 다루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또한 일본 기생 게이샤를 다룬 영화다. 1929년 일본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게이샤가 되는 내용을 다룬다. 이어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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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