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로 본 대한민국 기생 이야기

기녀는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영화 <해어화>가 개봉하면서 기생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다. 음주가무뿐아니라 시·문예에 능통한 기생은 조선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생의 삶이 현재에도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가치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해어화>는 지난 13일 개봉했다.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주연의 <해어화>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으로 기생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당나라 현종이 비빈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해어지화(解語之花)’에서 비롯됐다.

시·문예 능통
작부와는 달라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로 규정할 수 있다. 기생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사회의 무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사제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면서 기생과 비슷한 신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태섭 동국대 교수의 <성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기생이라는 직종은 신라 24대 진흥왕 때 여자 무당이 유녀(遊女)가 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반면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성호 이익 선생은 기생이고려시대 생겼다고 본다. 고려 초에 팔관회와 연등회 등의 행사에 필요한 여성을 공급하기 위해 고려여약이 제정됐는데 이 고려여악이 기생의 원조라고 기생 연구가들은 주장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생을 일종의 제도로 정착시켜 국가가 직접 기생들을 관리, 감독했다. 특히 ‘기생’의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따르면 기생은 관기로써, 관가에 등록된 기생만이 기생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생은 교양 있는 지식인들로 노래, 춤, 악기, 서화에 능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장악원에 들어가 몇 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교육은 일정 나이가 지나거나 출산 등의 이유로 은퇴한 퇴기들이 주로 맡았다. 기생은 대개 소녀 시절부터 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성년식을 치러 본격적인 기생의 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기생은 보통 정년이 50세로, 20세가 넘어도 활동하는 기생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20대 중반만 되면 ‘노기’로 취급받았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법적 신분으로는 양민이었지만, 직업의 특성상 생활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향유했고 사회적으로는 천민으로 대우받았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는 황진이를 들 수 있다. 황진이는 중종 6년(1511)에 태어나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추정된다. 황진이는 19세기 풍속화를 그린 화가 신윤복에 의해 ‘풍속화 기생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 무녀서 비롯됐다?
고려 행사에 공급된 여성이 원조?

기생은 조선시대에서 남성과 공식적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기생 출신인 황진이는 규방출신의 감동이나 어우동과 달리 음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었다. 시와 음악에 능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다.조선 말기에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 중 일패 기생은 관에 소속된 관기로 양반기생으로 불렸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 노래, 춤을 하는 기생으로 예의범절 수준이 높고 남편이 있었기에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등이 일패 기생을 대표한다. 이패 기생은 관아나 재상집에 출입했고 암암리에 몸을 파는 밀매음을 하기도 했다. 삼패 기생은 몸을 파는 유녀를 뜻했다.

조선시대부터 천한 백성으로 분류돼 독특한 신분구조를 형성했던 기생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사노비제가 폐지돼 외형적으로는 신분해체에 따른 천민을 면하지만 여전히 신분상의 차별을 극복하지는 못했것으로 알려진다.


1900년대 초 신문이나 잡지기사, 총독부의 공식문건 등에 나타난 기생에 대한 명명과 분류를 살펴보면 기존 여악의 일원인 관기가 중심축이었던 기생 집단이 창기 또는 매춘부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까지 예악을 담당하고 사대부의 여흥을 주도한 기생은 신분해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전통 가무악을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식민지 공창정책 하의 창기와 비슷하게 통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또한 기생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상품화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팔도에서 꼽힌 향기(鄕妓)들 중 평양기생이 가장 많았는데 평양기생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기업(妓業)을 차리기도 했다. 이런 향기와 관기 출신들이 모여 1909년 처음으로 만든 기생조합이 한성기생조합소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설립된 조선장악전습소의 학감 하규일이 만든 기생조합은 다동조합이다. 다동 조합은 훗날 조선권번으로 개칭된다.

이 시대에 권번을 빼고는 기생을 논하기 어렵다. <한겨레음악대사전>에 따르면 권번은 직업적인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들이 적을 두고 활동하던 기생조합이다. 당시 기생의 직업은 조선총독부 허가제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은 권번에 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교육과정의 기생을 관장하고,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관리감독함은 물론이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도 관리했다.

권번에 들어오는 여성들은 남들의 추천을 받아오는 이가 제일 많았고, 일부는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권번에서 예의범절과 노래와 춤을 배우고 지체높은 양반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치려 했던 여성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권번 명기는 서도기생과 남도기생으로 나뉜다. 남도 출신은 멋을 잘내기로 소문났고, 서도기생은 애교가 많기로 유명했다. 기생의 학습과목은 시조, 가곡, 검무, 가야금, 거문고, 양금, 한문, 시문, 사군자, 일어 ,독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전국구 명월관
구한말부터 유명

조선 후기에 평양에서 이름을 떨친 기생중에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있다. 장연홍은 1911년 평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가정형편으로 인해 14세 때 평양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됐다. 기생이 된 장연홍은 수려한 외모와 춤, 노래, 모델 활동 등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후 상해로 유학을 떠난 뒤의 행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1930년대에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이 서울로 상경해 각각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활동했다.

현매홍은 시조, 가곡, 가사에 능했고 김옥엽은 궁중무용과 서도잡가, 경기잡가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23년 일제 강점기 강명화 자살 사건은 당대를 떠들썩하게했다. 강명화와 그녀의 연인 장병천이 집안의 결혼 반대에 부딪쳐 자살한 사건이다. 장병천과 함께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강명화는 1923년 6월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강명화의 시신은 경성부로 옮겨져 명월관과 여타 기생들의 애도 속에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실성한 장병천은 단식에 돌입했고, 강명화와 함께 살던 집인 경성부 중구 종로방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같은 해 10월 자살했다.

이 사건은 전국 각처로 퍼져나갔고 일본, 중국에까지 소문이 확산됐다. 사후 1924년 하야가와 일본인 영화감독은 종로구 집, 경성부의 명월관, 강명화의 고향 마을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기생 문명옥을 캐스팅해 영화 <비련의 곡>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화제가 돼 많은 관객이 몰렸고 1925년에는 익명의 작가에 의해 <강명화의 죽음>이란 소설로 탄생하게 됐다.

신현구 중앙대 교수의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에 따르면 초창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기생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월화의 맹세’라는 영화에 출연한 이월화는 여장 배우가 아닌 여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최초의 배우였다. 또한 기생 출신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여배우계를 주름잡았다.

신 교수는 언론을 통해 “당시 기생들은 당당한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예술사와 문화사회사 등을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였다”면서 “그 무렵 기생은 한쪽에서 보면 봉건적인 유물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 대우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최고는 황진이
최고 미녀는 장연홍


명월관은 1900년대 기생들이 활약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명월관은 청풍명월에서 따온 이름으로 명사들을 초청해 대접한 요릿집이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개업해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궁중 나인이 담근 술을 팔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융희 3년(1909)에 관기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지방과 궁중의 각종 기생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월관은 많은 기생 중에서도 어전에 나가 춤과 노래를 불렀던 궁중기생이나 인물, 성품 및 재주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이 모여들어 일류 사교장이 됐다.

1910년대 초반에는 조선 왕조의 왕족들, 대한제국의 고관, 친일파들이 이곳을 찾았다. 1910년 후반에는 망국대부의 자제들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주로 명월관 찾았는데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울분을 여기에서 푼 것으로 알려진다.

1920년대 초반에는 일본 유학생들과 상해의 애국지사들이 찾았다. 또한 1919년 3·1운동은 기생들이 사회를 보는 눈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기생인 사상기생이 생겨나게 됐다.

이들은 1919년 3월19일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10일 뒤에는 수원 권번 기생 30여명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김향화는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기도했다. 192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론인과 문인들이 명월관을 찾았다.

이때 기생들은 일본 유학을 가거나 근대식 학업으로 신여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기생폐업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사업가들이 주로 찾았는데 이때부터는 서화와 기예를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워 조신하게 행동하던 명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1940년대 후반은 미군들이 주로 찾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기생과 명월관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중·일 기생
3국의 다른 인식

송지성·김세이 한양대 교수의 <한·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게이샤는 일본에서 1688∼1704년경에 생긴 제도다. 게이샤는 유녀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 두 종류로 나뉜다.

이들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일본 전통예술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에 게이샤는 남자였지만 18세기 들어 여자로 바뀌었고, 소녀들은 사춘기에 이르기 전에 예능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이샤는 ‘아름다운 사람’ ‘예술로 사는 사람’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음악, 서예, 다도, 시, 대화 그리고 샤미센이라 부르는 세 종류의 악기 연주를 익힌다.

전문적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5년의 수련과정을 거치며 견습 게이샤는 마이코라고 부른다. 게이샤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떠올리는 흰 화장과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 차림은 마이코의 모습이다. 완전한 게이샤는 단순한 색상의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특별한 때에만 하얗게 칠한다. 근대에 와서 계이샤는예능 기량과 관계없이 성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이 되었고 술자리에 나가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기생은 서비스 유형과 방식, 기생업의 경영관리 등에서 다원화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모가 뛰어나고 가무만 제공하는 예기, 몸을 파는 것을 주로 업으로 하는 색기, 가무와 여색, 성적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기녀로 나누어진다. 또한 중국의 많은 기생들이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고대 대부분 시대의 시, 사의 정수는 모두 기녀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ㆍ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국의 성별에 따른 기생에 대한 관점은 상이하다. 우리나라 남성은 기생을 유희의 대상, 창기로 본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각 예술가와 점유,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여성에게는 우리나라의 경우 시기, 질투,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은 예술가로 봤다는 분석이다.

현대판 기생집
강남 요정 영업

1970∼1980년대 정·재계 인사들의 비밀회합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요정은 현대식 유흥주점이 늘면서 쇠퇴를 거듭했다. 현재는 강남 역삼동 등에 소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요정은 한 사람 당 35만∼40만원 가량을 받고 식사와 함께 3∼4시간의 유흥을 제공한다.

20∼30여종의 코스 요리가 제공돼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춤과 노래, 가야금 연주 등을 선보이는 이른바 현대판 기생이다. 이들의 성접대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업소는 한옥 등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기도 한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영화 단골소재 기생 영화는?

2007년 개봉한 <황진이>는 송혜교, 유지태 주연의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양반가의 딸로 자란 진이(송혜교)가 출생이 밝혀지자 ‘기생’의 신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사대부조차 동경하는 최고의 연인이 된 ‘진이’ 곁에 있던 놈이(유지태)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2002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도 기생이 등장한다. 18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장승업이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에게 매료되는 내용를 다루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또한 일본 기생 게이샤를 다룬 영화다. 1929년 일본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게이샤가 되는 내용을 다룬다. 이어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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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