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전도유망한 한의사로 포장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뒤 사기결혼한 전과 14범이 덜미를 잡혔다. 범인은 한의사인 친동생의 이름을 빌려 한의사 행세를 하면서 처가에 수억 원의 돈을 뜯는 등 사기행각을 벌였다. 파렴치한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신한 아내에게 낙태를 종용하고 말리는 장모를 폭행하는 패륜도 서슴지 않았다. 범인의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가 난 아내의 결혼비용 반환 청구소송으로 그의 사기행각은 낱낱이 드러났다. 꼬리에 꼬리를 문 거짓말로 이어진 사기극의 전말을 들여다보자.
“내 남편은 이름도 직업도 모두 짝퉁”
결혼을 위해 이름까지 바꾸며 한의사 행세를 한 사기극의 주인공은 37세의 노모씨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특정한 직업이 없던 노씨는 지난 해 7월 친동생의 이름과 똑같이 개명을 했다. 서울의 S대학 한의학과에 다니는 동생을 자신이라 속이고 한의사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씩 드러나는 실체
당시 노씨의 동생은 졸업반이었고 한의사자격증까지 취득한 상태였다. 4년제 대학 중퇴 학력을 가진 노씨는 동생의 자격증에 자신의 사진을 넣는 방식으로 자격증을 위조했다.
그 뒤 노씨는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물론 자신의 직업을 한의사로 속인 채로. 이곳에서 노씨는 지난해 10월 전문직에 종사하던 김모(30)씨를 만나게 된다. 노씨에게 호감을 가졌던 김씨는 결혼을 전제로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그해 12월에 결혼을 했다.
김씨는 노씨의 학력과 직업 등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식장에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수성가를 했다’는 칭찬으로 가득한 주례자의 말은 더욱 노씨를 믿음직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노씨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아들의 거짓말을 모른 체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일등신랑감의 본색은 결혼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노씨는 결혼 직후인 올 1월, 병원을 개원해야한다는 명목으로 처가에 돈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처가로부터 뜯어낸 돈은 자그마치 2억6천여만원. 경찰조사결과 이 돈 중 일부는 진짜 한의사인 동생의 한방병원 개원에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나머지 돈으로는 오피스텔을 구입했고 일부는 유흥비로 탕진하기도 했다.
외박도 잦았다. 처가살이를 하던 노씨는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밖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다.
또 노씨는 혼인신고를 하자는 김씨의 요청도 완강히 거부했다.
노씨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 재산이 많은데 혼인신고를 하면 지원금을 받는 데 지장이 생기고 친척들과 소송중이라서 불리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혼인신고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사인 친동생 이름으로 바꾸고 사기 결혼해
패륜행각으로 이혼소송하다 사기극 낱낱이 노출
임신상태였던 김씨는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는 노씨가 미심쩍었지만 그때까지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노씨는 점점 변해갔다. 임신한 부인을 고속도로 중간에 내팽게치고 폭력과 욕설을 일삼는 등의 행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씨는 “아이를 낳으면 산에 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며 아이를 지울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노씨의 패악을 멈추게 한 것은 함께 살던 장모였다. 자신의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위를 보다 못한 장모가 “집을 나가라”며 노씨의 멱살을 잡았던 것. 이에 노씨는 장모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패륜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본 김씨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장모에게까지 폭행을 가하는 남편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것. 결국 김씨는 이혼을 결심했고 변호사를 선임해 5천만원의 정신피해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과정에서 변호사는 노씨가 동생 이름으로 개명했고 가짜 한의사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밝혀냈다. 남편에게 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던 김씨는 자신이 사기결혼의 희생양이었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지난 7월 노씨를 사기혐의로 다시 고발했다.
그리고 김씨는 몇 가지 증거자료를 경찰서에 제출했다. 그것은 노씨가 한의사와 의사가운을 입은 모습, 결혼식 등에서 유명 연예인과 찍은 사진, 여성들의 나체사진 등 노씨가 가지고 있던 미심쩍은 사진 10여 장이다.
미심쩍은 사진 수두룩
특히 유명 연예인 이모씨에게 병원 홍보대사를 해달라고 속이고 의사복장을 한 상태에서 간호사와 함께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연예인은 결국 돈을 받지 못하고 계약을 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 측은 현재 노씨 가족 3명과 결혼식 사회자 및 주례자 등 5명을 고소한 상태다. 경찰은 김씨가 고소한 주례자와 사회자 등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고 노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연예인들 가운데 노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노씨의 사기행각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지난 15일 노씨에 대해 사기, 혼인빙자간음, 사문서위조 및 행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