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D-6개월> 위기의 효자종목들

금메달 확신하다 큰 코 다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지구인의 축제 올림픽이 오는 8월5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국가 중심의 강력한 엘리트스포츠 정책으로 세계 속의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러한 영광의 중심에는 ‘효자종목’이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6개월여 앞둔 현재 우리나라의 메달밭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2000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망주 발굴의 미진함과 확실한 메달권 선수들의 은퇴 이밖에 부상, 약물파동, 폭행파문 등으로 10위권 수성에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국대 간판스타들
영광 재연 가능?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따내며 수영의 불모지로 불렸던 우리나라에 첫 영광을 안겼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박태환은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인 2014년 9월,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의 선수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국제수영연맹의 징계는 오는 3월2일 끝나지만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의하면 박태환은 3년간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상황이다. 체육회는 규정 개정을 검토 중이고 국민생활체육회와 체육단체 통합 작업이 끝나는 3월 이후에야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참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비단, 세계정상급 선수의 문제는 박태환 뿐만이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지난해 12월31일 후배 유망주 황우만 선수를 폭행해 선수 자격정지 10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로써 오는 8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역도계에서 현역으로 선수생활은 불가능하다. 사재혁은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77kg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우리나라에 깜짝 금메달을 선물했다.

 

그 다음 올림픽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팔꿈치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투혼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올해 리우올림픽에서는 체급을 올려 금빛 사냥에 나섰지만 후배를 폭행하며 모든 꿈이 사라지고 말았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이자 상징인 스포츠로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시드니 올림픽 3개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아테네올림픽 2개, 베이징올림픽 4개로 3개대회 연속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에 그치면서 종주국으로써의 자존심을 구겼다. 런던올림픽에서 기대보다 성적이 안 나온 이유 중 하나는 종주국 한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에 메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남녀 2체급씩만 출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런던올림픽에서는 8개의 금메달이 8개국에 골고루 돌아갈 만큼 세계 태권도의 평준화도 한 몫 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올림픽 랭킹에 따른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면서 한 나라에서 최대 8체급 모두 출전할 수 있게 룰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5체급에 선수들을 내보내게 됐다. 런던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 할 수 있는 발판은 충분히 마련된 모습이다.

리우올림픽 4회 연속 종합 10위권 목표
“메달 텃밭 예전 같지 않다” 수성 적신호


레슬링의 경우도 전통적 강세종목으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 역사를 레슬링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첫 레슬링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까지 매 대회 금메달 1개 이상을 획득했다.

심권호에서 정지현으로 이어지는 금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골드에 수모를 당하면서 부침을 겪었다. 힘들고 배고픈 운동이라는 인식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에 2013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우리나라 레슬링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정식종목 채택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퇴출의 위기를 넘겼다. 2012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김현우 선수가 남자 그레꼬로만형 66kg급에서 눈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김 선수는 여러 위기 속에서 체급을 올려 2체급 올림픽 우승을 노리고 있다. 심권호 선수의 영광을 재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영·역도·체조
‘설마’ 위태위태

역도의 경우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대한민국 역도의 간판스타 장미란이 은퇴하면서 여자 역도에서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남자는 간판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선수가 후배를 폭행해 선수생활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출전권 최대 10장을 모두 손에 넣었지만 최근 극심한 침체에 빠져 리우올림픽에서는 7장의 출전권을 얻는 데 그쳤다.

한국역도는 세대교체에 실패해 메달 획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윤석천 한국 역도대표팀 감독은 “리우올림픽에서 최상의 성적을 내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신예를 키워야하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며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부터 한국의 효자 노릇을 했다. 이후 런던올림픽까지 금메달 6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선사하며 배드민턴 강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배드민턴은 지난 올림픽서 가장 큰 굴욕을 맛봤다. 여자복식은 4강전에서 강한 상대를 피하기 위해 ‘져주기 논란’이 일면서 실격당했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토마스 군드 세계배드민턴연맹 사무총장은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에 연루된 8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다”며 “이들은 전날 경기에서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네트에 꽂거나 일부러 스매싱을 멀리 보내는 불성실한 경기를 펼쳐 모두 실격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이들 선수가 경기에 이기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그런 방식의 행동은 분명히 스포츠에 대한 모욕이자 해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져주기 파문과 함께 이용대-정재성 복식조의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리우올림픽에서는 이용대-유연성 조가 금빛 사냥에 나선다. 지난해 5월부터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런던에서 동메달 하나에 그치고 승부조작 파문이라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며 “리우에서 명예회복을 하려고 대표팀 모두가 남다른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탁구종목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금메달 3개, 은매달 3개, 동메달 12개를 거뒀다. 중국이 24개의 금메달을 거둔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중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거뒀다는 점에서 우리의 탁구는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개인단식의 유남규와 여자 복식 양영자-현정화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이 남자 단식 금메달을 국민에게 안겼다.

하지만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녀 단체 동메달 1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 단체전이 은메달에 그쳐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올림픽서 중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규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지름 38mm 공에서 40mm 공으로 변경하고 21점이던 세트 점수를 11점으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문수 대표팀 총감독은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은 견제 대상이었다”며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 한국만의 거친 탁구가 사라졌다”며 “올림픽을 분기점으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체조의 경우 우리나라 간판스타 양학선의 금 사냥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양학선은 한국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 체조 종목에 도전한 지 50여년만의 일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었다. 당시 양학선은 ‘비닐하우스 집’에서 자라면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사람들은 양학선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믿고 봐도 되나
더이상 효자 없다

양학선은 ‘양1’이라고 불리는 신기술을 개발해 국제체조연맹 채점 규정집에 가장 높은 점수인 난도 7.4에 해당하는 기술로 이름을 올렸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1년 도쿄세계체조선수권 금메달을 따면서 파죽지세를 이어나가 런던에서도 금 사냥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학선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이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고 결국 은메달에 그치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실패했다.

이후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연기 도중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면서 결국 자존심 회복에도 실패했다. 양학선은 당장 태극마크를 달지는 않지만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양학선은 지난해 광주유니버시아드 당시 “다음에는 경기에 나가 실수로 금메달을 못 따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유망주 발굴 미진…주축 선수는 은퇴
부상, 약물 등 파문으로 험난한 여정

우리나라의 독주를 막기 위해 세계양궁연맹은 런던올림픽부터 총점을 보는 기록제 대신 세트점수로 승부를 가리는 세트제 방식으로 본선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트제 방식에도 불구하고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한국의 종합순위 5위를 견인했다.

문형철 대표팀 총감독은 “올림픽 때마다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전 종목 석권”이라며 “이는 모든 양궁인들의 꿈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상황은 나빠졌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전 종목 석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궁은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통과해야 리우에 갈 수 있는 만큼 금빛 물결을 향한 선수들의 화살이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유도의 경우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일본, 프랑스에 이어 가장 많은 11개의 금메달을 수확해 유도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1988년도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금맥이 2000년도에 끊기면서 유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이원희가 금메달을 따면서 금 사냥의 신호탄을 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민호가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면서 한국유도의 자존심을 지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송대남, 김재범이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유도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73kg급의 안창림과 90kg급 곽동한이 금 사냥에 나선다.

서정복 유도대표팀 총감독은 언론을 통해 “그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가 최고 성적이었지만, 리우에서는 금메달 3개 이상에 도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열심히 준비해서 리우올림픽에서 최고의 무대를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올 3월 출범 예정인 통합체육회 정회원 단체 자격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가 통합해 출범하게 되는 통합체육회는 57개 정회원 단체와 15개 준회원 단체, 11개 인정 단체, 13개 등록 단체로 구성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통합체육회의 회원종목 단체들에 대해 종목 경쟁성과 저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조정·분류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이를 재평가해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2년 뒤 재평가 과정에서 정회원 단체가 되려면 17개 시도종목 단체 가운데 최소한 6개 시도종목 단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동호인들이 주로 하는 생활체육은 시군구 단위로 구성하기 수월하지만 동호인들이 많지 않은 엘리트 체육의 경우 하부조직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대한체육회 소속 일부 가맹단체들의 주장이다.

혹시…
양궁·태권도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 규정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존 대한체육회 규정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이것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 종목단체가 준회원단체로 강등되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구성 시 올림픽 종목 단체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어긋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정회원 단체나 준회원 단체나 모두 통합체육회 구성원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동계 종목은 지금…김연아 없는 평창 ‘희망 보인다’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의 실력을 뽐내며 빙상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에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루지 등 썰매 종목은 메달권과 거리를 두며 국민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선수들이 60여명에 불과할 정도의 ‘썰매 불모지’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 선수는 IBSF 2015∼2016 월드컵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 5개 대회 연속 메달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세계 랭킹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2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메달이 예상된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봅슬레이에 원윤종-서영우는 지난 23일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우승해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꾸준
봅슬레이·컬링 메달 진입 기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다.

이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원윤종의 드라이빙 실력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세계 여러 코치들도 봅슬레이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한국이 처음인 것 같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남자컬링이 첫 출전한 유럽투어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빠르게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컬링 남자·여자, 혼성 종목까지 총 3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컬링은 2년 안에 세계 정상권과 격차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컬링연맹 관계자는 “올해 4월에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세계남자컬링선수권대회와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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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