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D-6개월> 위기의 효자종목들

금메달 확신하다 큰 코 다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지구인의 축제 올림픽이 오는 8월5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국가 중심의 강력한 엘리트스포츠 정책으로 세계 속의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러한 영광의 중심에는 ‘효자종목’이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6개월여 앞둔 현재 우리나라의 메달밭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2000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유망주 발굴의 미진함과 확실한 메달권 선수들의 은퇴 이밖에 부상, 약물파동, 폭행파문 등으로 10위권 수성에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국대 간판스타들
영광 재연 가능?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따내며 수영의 불모지로 불렸던 우리나라에 첫 영광을 안겼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박태환은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인 2014년 9월,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의 선수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국제수영연맹의 징계는 오는 3월2일 끝나지만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의하면 박태환은 3년간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상황이다. 체육회는 규정 개정을 검토 중이고 국민생활체육회와 체육단체 통합 작업이 끝나는 3월 이후에야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참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비단, 세계정상급 선수의 문제는 박태환 뿐만이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지난해 12월31일 후배 유망주 황우만 선수를 폭행해 선수 자격정지 10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로써 오는 8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역도계에서 현역으로 선수생활은 불가능하다. 사재혁은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77kg 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우리나라에 깜짝 금메달을 선물했다.

 

그 다음 올림픽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팔꿈치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투혼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올해 리우올림픽에서는 체급을 올려 금빛 사냥에 나섰지만 후배를 폭행하며 모든 꿈이 사라지고 말았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이자 상징인 스포츠로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시드니 올림픽 3개의 금메달을 시작으로 아테네올림픽 2개, 베이징올림픽 4개로 3개대회 연속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에 그치면서 종주국으로써의 자존심을 구겼다. 런던올림픽에서 기대보다 성적이 안 나온 이유 중 하나는 종주국 한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에 메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남녀 2체급씩만 출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런던올림픽에서는 8개의 금메달이 8개국에 골고루 돌아갈 만큼 세계 태권도의 평준화도 한 몫 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올림픽 랭킹에 따른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면서 한 나라에서 최대 8체급 모두 출전할 수 있게 룰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5체급에 선수들을 내보내게 됐다. 런던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 할 수 있는 발판은 충분히 마련된 모습이다.

리우올림픽 4회 연속 종합 10위권 목표
“메달 텃밭 예전 같지 않다” 수성 적신호


레슬링의 경우도 전통적 강세종목으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 역사를 레슬링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첫 레슬링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까지 매 대회 금메달 1개 이상을 획득했다.

심권호에서 정지현으로 이어지는 금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골드에 수모를 당하면서 부침을 겪었다. 힘들고 배고픈 운동이라는 인식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에 2013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우리나라 레슬링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정식종목 채택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퇴출의 위기를 넘겼다. 2012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김현우 선수가 남자 그레꼬로만형 66kg급에서 눈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김 선수는 여러 위기 속에서 체급을 올려 2체급 올림픽 우승을 노리고 있다. 심권호 선수의 영광을 재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수영·역도·체조
‘설마’ 위태위태

역도의 경우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대한민국 역도의 간판스타 장미란이 은퇴하면서 여자 역도에서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남자는 간판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선수가 후배를 폭행해 선수생활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출전권 최대 10장을 모두 손에 넣었지만 최근 극심한 침체에 빠져 리우올림픽에서는 7장의 출전권을 얻는 데 그쳤다.

한국역도는 세대교체에 실패해 메달 획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다. 윤석천 한국 역도대표팀 감독은 “리우올림픽에서 최상의 성적을 내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신예를 키워야하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며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부터 한국의 효자 노릇을 했다. 이후 런던올림픽까지 금메달 6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선사하며 배드민턴 강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배드민턴은 지난 올림픽서 가장 큰 굴욕을 맛봤다. 여자복식은 4강전에서 강한 상대를 피하기 위해 ‘져주기 논란’이 일면서 실격당했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토마스 군드 세계배드민턴연맹 사무총장은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에 연루된 8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다”며 “이들은 전날 경기에서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네트에 꽂거나 일부러 스매싱을 멀리 보내는 불성실한 경기를 펼쳐 모두 실격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이들 선수가 경기에 이기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그런 방식의 행동은 분명히 스포츠에 대한 모욕이자 해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져주기 파문과 함께 이용대-정재성 복식조의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리우올림픽에서는 이용대-유연성 조가 금빛 사냥에 나선다. 지난해 5월부터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런던에서 동메달 하나에 그치고 승부조작 파문이라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며 “리우에서 명예회복을 하려고 대표팀 모두가 남다른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탁구종목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금메달 3개, 은매달 3개, 동메달 12개를 거뒀다. 중국이 24개의 금메달을 거둔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중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거뒀다는 점에서 우리의 탁구는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개인단식의 유남규와 여자 복식 양영자-현정화에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이 남자 단식 금메달을 국민에게 안겼다.

하지만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녀 단체 동메달 1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 단체전이 은메달에 그쳐 금맥이 끊긴 상황이다. 올림픽서 중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규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지름 38mm 공에서 40mm 공으로 변경하고 21점이던 세트 점수를 11점으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문수 대표팀 총감독은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은 견제 대상이었다”며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 한국만의 거친 탁구가 사라졌다”며 “올림픽을 분기점으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체조의 경우 우리나라 간판스타 양학선의 금 사냥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양학선은 한국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 체조 종목에 도전한 지 50여년만의 일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었다. 당시 양학선은 ‘비닐하우스 집’에서 자라면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사람들은 양학선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믿고 봐도 되나
더이상 효자 없다

양학선은 ‘양1’이라고 불리는 신기술을 개발해 국제체조연맹 채점 규정집에 가장 높은 점수인 난도 7.4에 해당하는 기술로 이름을 올렸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1년 도쿄세계체조선수권 금메달을 따면서 파죽지세를 이어나가 런던에서도 금 사냥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학선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이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고 결국 은메달에 그치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실패했다.

이후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연기 도중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면서 결국 자존심 회복에도 실패했다. 양학선은 당장 태극마크를 달지는 않지만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양학선은 지난해 광주유니버시아드 당시 “다음에는 경기에 나가 실수로 금메달을 못 따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유망주 발굴 미진…주축 선수는 은퇴
부상, 약물 등 파문으로 험난한 여정

우리나라의 독주를 막기 위해 세계양궁연맹은 런던올림픽부터 총점을 보는 기록제 대신 세트점수로 승부를 가리는 세트제 방식으로 본선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트제 방식에도 불구하고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한국의 종합순위 5위를 견인했다.

문형철 대표팀 총감독은 “올림픽 때마다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전 종목 석권”이라며 “이는 모든 양궁인들의 꿈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상황은 나빠졌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전 종목 석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궁은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통과해야 리우에 갈 수 있는 만큼 금빛 물결을 향한 선수들의 화살이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유도의 경우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일본, 프랑스에 이어 가장 많은 11개의 금메달을 수확해 유도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1988년도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금맥이 2000년도에 끊기면서 유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이원희가 금메달을 따면서 금 사냥의 신호탄을 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민호가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면서 한국유도의 자존심을 지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송대남, 김재범이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유도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73kg급의 안창림과 90kg급 곽동한이 금 사냥에 나선다.

서정복 유도대표팀 총감독은 언론을 통해 “그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가 최고 성적이었지만, 리우에서는 금메달 3개 이상에 도전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열심히 준비해서 리우올림픽에서 최고의 무대를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올 3월 출범 예정인 통합체육회 정회원 단체 자격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가 통합해 출범하게 되는 통합체육회는 57개 정회원 단체와 15개 준회원 단체, 11개 인정 단체, 13개 등록 단체로 구성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통합체육회의 회원종목 단체들에 대해 종목 경쟁성과 저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등급을 조정·분류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이를 재평가해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2년 뒤 재평가 과정에서 정회원 단체가 되려면 17개 시도종목 단체 가운데 최소한 6개 시도종목 단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동호인들이 주로 하는 생활체육은 시군구 단위로 구성하기 수월하지만 동호인들이 많지 않은 엘리트 체육의 경우 하부조직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대한체육회 소속 일부 가맹단체들의 주장이다.

혹시…
양궁·태권도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 규정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존 대한체육회 규정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이것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 종목단체가 준회원단체로 강등되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구성 시 올림픽 종목 단체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어긋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정회원 단체나 준회원 단체나 모두 통합체육회 구성원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동계 종목은 지금…김연아 없는 평창 ‘희망 보인다’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의 실력을 뽐내며 빙상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반면에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루지 등 썰매 종목은 메달권과 거리를 두며 국민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선수들이 60여명에 불과할 정도의 ‘썰매 불모지’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 선수는 IBSF 2015∼2016 월드컵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 5개 대회 연속 메달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세계 랭킹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2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메달이 예상된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봅슬레이에 원윤종-서영우는 지난 23일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우승해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꾸준
봅슬레이·컬링 메달 진입 기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었다.

이용 국가대표팀 감독은 “원윤종의 드라이빙 실력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세계 여러 코치들도 봅슬레이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한국이 처음인 것 같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남자컬링이 첫 출전한 유럽투어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빠르게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컬링 남자·여자, 혼성 종목까지 총 3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컬링은 2년 안에 세계 정상권과 격차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컬링연맹 관계자는 “올해 4월에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세계남자컬링선수권대회와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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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