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잡는' 신학기 고가 아이템 총정리

100만원도 성에 안차…이제 200만원대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등골브레이커’. 부모님의 등골을 휘게 하다못해 부러뜨릴 만큼 비싼 상품을 일컫는 신조어다. 일부 품목에 한정되던 상품의 종류도 다양하게 늘고 있다. 부모들의 한숨소리도 같이 늘어가는 모양새다.

등골브레이커는 2000년대 후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등골브레이커의 원조는 고가의 패딩이다. 4년전인 2011년 청소년들 사이에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지 못하면 또래 무리에 끼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조르는 아이들
버티는 부모들

문제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같은 노스페이스 패딩이라도 모델에 따라 25만원에서 70만원까지 다양했다. 학생들 입장에서 저렴한 모델을 살 수 없었다. 학생들이 패딩 모델별로 계급을 나눠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25만원에 팔리던 노스페이스 눕시2는 이른바 ‘찌질이’라는 계급을 부여해 조롱거리로 삼았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학생들은 부모에게 고가의 모델을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들은 70만원의 패딩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자녀들의 기를 죽이기 싫어서, 또는 자녀의 성화에 못 이겨 고가의 모델을 사줬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3년 학생들의 관심이 좀 더 비싼 브랜드 패딩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등골브레이커들의 눈에 꽂힌 브랜드는 ‘캐나다 구스’, ‘몽클레르’였다. 학생들은 이들 브랜드의 앞글자를 따다가 ‘캐몽’이라 불렀다. 가격은 사회 초년생 월급을 웃돌았다. 모델별로 100만원에서 시작해 200만원이 넘는 상품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등골브레이커 리스트 한단계 업그레이드
한달 워급 탈탈 털면 고작 학용품 구입

등골브레이커들을 중심으로 아웃도어 패딩 시장이 성장하면서 다른 브랜드 패딩에도 거품이 꼈다. 당시 블랙야크, K2 등의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고가 패딩 정책을 내세웠다. 비싸면 잘팔리는 기현상에 시장은 매년 전년대비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비약적인 성장은 고스란히 부모들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시민단체가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노스페이스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YMCA는 학생들 사이에 비뚤어진 계급의식을 부추기고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의류를 판매한 혐의로(공정거래법 위반) 노스페이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YMCA가 당시 노스페이스와 콜럼비아 등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5개사가 판매하는 기능성 아웃도어 제품 23종에 대해 외국 현지 공식 쇼핑몰과 국내 공식 쇼핑몰 상의 사격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판매가격이 최고 89%나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 패딩 열풍은 엉뚱하게(?) 마무리됐다. 고가의 패딩을 입는 사람 자체가 등골브레이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13년을 기점으로 고가 패딩 열풍이 가라앉았다. 이에 따라 시장의 성장도 멈췄다. 실제 지난 11월 롯데·신세계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이상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은 11월 아웃도어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9.3% 줄었고, 신세계백화점은 아웃도어 매출이 9.1% 하락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11월 아웃도어 매출이 전년보다 2.7%로 하락했다.

청소년이 벌써
비싼 화장품


그러나 등골브레이커들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 갔을 뿐 부모의 부담이 줄지는 않았다. 실제 고가 패딩열풍이 주춤했던 2013년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고가 화장품을 갖기 위해 부모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 때 화장을 하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기성세대와 자신을 꾸미기 위해 화장을 하는 자녀 사이에 생기는 갈등이었다.

학생들은 고가의 브랜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다고 생각했다. 화장품의 브랜드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사례까지 생겼다. 수입 명품 브랜드를 사용하면 요정을 뜻하는 ‘엘프’, 국내 고급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면 ‘휴먼’, 국내 저가 브랜드를 하면 ‘오크’로 부르는 것이다. 삐뚤어진 계급론은 어린 청소년으로 하여금 고가 화장품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수입 명품 화장품의 가격은 10만원이 넘는 제품들이 많다. 따라서 같은 브랜드의 화장품 라인을 모두 구매하면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자전거 열풍이 불어 부모에게 부담을 줬다. 발단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자전거를 타는 이른바 ‘떼빙’이었다.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에게 공공자전거는 성에 차지 않았다. 반면, 로드 자전거는 가격이 비쌌다. 저렴한 입문용 자전거의 경우도 50만원이 넘기 일쑤였다. 고가의 자전거의 경우는 500만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은 또래 사이에서 돋보이려고 본인이 등골브레이커가 됐다.

안 사주면
절도하기도

고가의 자전거를 구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 않은 것. 실제 자전거를 사달라고 부모를 조르는 경우는 물론 자전거를 훔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자전거 절도 건수는 올 1월 972건에서 3월 1030건으로 1000건을 돌파했으며 올 6월에는 2467건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자전거 절도만 8000건을 웃돌고 있다. 문제는 전체 절도의 상당 부분이 청소년 절도라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자전거 절도 피의자의 약 80%가 10대 청소년이었다.

고가의 이어폰이나 헤드폰도 등골브레이커의 관심 품목이다. 주로 연예인들이 착용하고 나온 제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고가의 브랜드 가운데 30~50만원선의 모델들은 흔하다. 또래에서 돋보이고 싶은 경우 백만원을 웃도는 이어폰까지 구매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음악프로그램에서 많은 가수들이 사용한다는 소문이 난 이어폰의 경우 123만원에 달한다.

결국 시민단체 YMCA는 대형기획사의 굿즈 마케팅에 제동을 걸었다. 신종원 YMCA시민중계실장은 “일부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상품 가격은 스타성이 지닌 가치를 인정한다 해도 너무 비싸다”면서 “시장지배적사업자의 남용금지 중 상품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겨울이 무서운 패딩 가격
자전거·이어폰 수백만원

이들은 기획사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상품 가격을 멋대로 높게 매기고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인 제재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통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독점적 지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급변하는 시장에서 점유율이 독점적 지위를 판단할 결정적 근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용품도 등골브레이커로 꼽히는 제품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31일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컨슈머리서치가 외국계 학용품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산 초등학생용 란도셀 가방의 최고가는 69만8000원이었다. 이 브랜드의 가장 저렴한 책가방도 가격이 34만원이다. 벨기에 브랜드인 키플링 가방도 비싼 것은 31만8000원에 달했다. 제일 저렴한 가방도 15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패딩부터 학용품까지 등골브레이커 제품들이 상징소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등골브레이커는 상품의 종류만 바뀔 뿐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행에 민감
내년에 또…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등골브레이커 등의 소비성향을 상징소비로 판단하면서 “상징소비는 지속적인 소비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타인과의 차별화, 후광효과, 청소년의 신소비 문화가 원인이라면 상징소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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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