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재인 지역구 물려받은' 배재정 의원

"문재인은 큰정치로, 배재정은 세심함으로 보답할 것"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연합 배재정 의원이 사실상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주목받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배 의원의 당선 여부는 ‘문재인 책임론’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어 민감한 문제다. 때문에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배 의원을 예결위에 추가 포함시키는 등 ‘배재정 힘 실어주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졸지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배 의원을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4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지역위원장직에서 최종적으로 사퇴했다. 새정치연합은 대신 배재정 의원을 사상구지역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비례대표인 배 의원은 문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사상구에 사무실을 내고 내년 총선을 준비해왔다. 사실상 문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셈이다.

내년 총선에서 배 의원의 당선 여부는 ‘문재인 책임론’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어 민감한 문제다. 배 의원은 졸지에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됐다. 주변에선 좀 더 쉬운 지역에 출마하라고 조언했지만 배 의원은 단호했다. 고향 부산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지역구로 떠오른 사상구에 출마하는 배 의원을 미리 만나봤다. 다음은 배 의원과의 일문일답.

-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사상구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문 대표의 권유 때문인가?
▲ 문 대표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다. 부산 사상구는 제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어렸을 땐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다. 때문에 사상구에서는 좋은 기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이 더 많다. 어른이 되어서는 사상구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정치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사상구에 자꾸 눈길이 갔다. 사상구를 발전시켜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표도 저와 사상구의 인연을 이미 알고 있었고, 틈틈이 고향을 위해 일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 만약 문 대표가 사상구에 그대로 출마했다면 문 대표와 경선까지 불사할 생각이었나? 원래 관심을 뒀던 지역구는 따로 없나?
▲ 19대 비례대표로 국회에서 일하게 된 뒤 주변에선 ‘빨리 차기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잡아야 한다’는 권유가 많았다. 저는 그때마다 ‘부산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왜 굳이 어려운 곳에 출마하려 하느냐며 깜짝 놀랐다. 사상구에 꼭 출마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내년 총선에 나간다면 오직 부산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사상구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던 것은 맞다. 문 대표가 만약 사상구에서 저와 경선을 했다면 꽤 고전했을 거다.(웃음) 

- 문 대표는 대선 당시에는 지역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의원직 사퇴를 거부했다. 때문에 문 대표의 불출마 선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여론도 있다. 지역구 표심에도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 문 대표는 앞으로 정치를 하는 동안 자신을 처음으로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사상구 주민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문 대표는 당대표를 맡고 있어 워낙 바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챙기려고 노력했다.

지역을 돌면서 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데, 시민들도 문 대표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여러 사정으로 아직 실행되지 않은 공약은 곧 저의 총선공약으로 계승될 것이고, 저 또한 ‘배재정표’ 공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문재인은 큰 정치로, 배재정은 세심함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보답할 것이다.
 


- 사상구는 원래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다. 새정치연합 소속 문 대표가 당선되면서 사상구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 가장 먼저 지역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다. 사상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절반에 가까운 구의원이 새정치연합 소속 정치인들로 교체됐다. 현재 구의회 의장과 부의장도 새정치연합 소속이다. 일당 독점에서 벗어나 정치권력에 변화가 생기니 새정치연합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정치인들도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 하게 됐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내년 총선 슬로건도 ‘사상이 변하면, 부산이 바뀐다’이다.

"주민들은 문재인 불출마 이해할 것"
"일당 독점 끝내야 부산이 변해"

- 하지만 구청장 선거와 연이어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사상구에서 참패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각에선 문 대표가 지역구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문 대표가 지역구 관리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상구는 오랫동안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다. 그것을 뛰어넘기에는 새정치연합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더 열심히 지역에서 뛰면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사상구에 출마하려는 새누리당 후보들은 거물급 인사들이 많다. 그에 비해 초선 비례대표인 배 의원은 정치적 무게감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 정치를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당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전직 국회의원들이 지금까지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저는 비록 초선이지만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하며 중앙정치를 배웠고, 지난 1년여 동안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저는 사상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열정이 있다.

- 국회 입성 후 그동안 어떤 성과를 얻어냈는지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한다면?
▲ 의정 전반기는 언론ㆍ문화 분야 등 제 ‘전공’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했다. 언론자유 신장, 서울과 지역의 문화격차를 줄이기 위한 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후반기인 지금은 교육 분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최소한 교육환경은 평등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상구의 학교를 일일이 방문하고 있다. 성과도 꽤 있다. 또, 사상구는 공단지역이기 때문에 부산에서도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비와 시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 사상구 주민들이 내년 총선에서 또 한 번 새정치연합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 시민들은 변화를 갈망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변화는 큰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주거ㆍ교육환경, 쉼터 등 모든 것이 일상생활과 연결돼 있다. 저는 사상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사상구를 이야기 할 때 ‘고토 수복’이라고 표현한다. 시민이 주인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권력 독점에 목표를 두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저는 ‘삶이 있는, 쉼이 있는 사상’을 꿈꾼다. 저와 새정치연합의 목표다.

- 마지막으로 사상구의 지역현안은 무엇이고 당선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알려 달라.
▲ 첫 번째로 사상구의 상당 지역을 1970년대에 지어진 공단이 차지하고 있다. 많이 낙후되어 있어 도시재생이 절실하다. 원주민이 떠나지 않도록 오히려 일자리를 찾아 사상구로 인구가 유입되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두 번째로 사상구는 사하구에 이어 이주민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을 통합 지원해 주는 센터 건립도 절실하다.


의원실 차원에서 연구용역을 마쳤고,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사상구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주기 위해 떠나는 부모들이 많다. 혁신학교 유치로 지역 교육환경에 일대 변화를 주겠다. 이미 내년도에 초등학교 1곳이 혁신학교로 지정됐고, 중학교 1곳도 예비혁신학교로 지정된 상태다.


<mi737@ilyosisa.co.kr>
 


[배재정 의원 프로필]

▲ 부산일보 기자
▲ 제19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민주당 대변인
▲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