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마지막 황손’ 이석

“어떤 사람이 될까? 지금도 고민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승광재(承光齋)는 고종의 연호인 ‘광무를 이어간다’는 뜻의 이름으로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손자이자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문화재단 총재가 사는 곳이다. 한때 국민가요로 불린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지금은 승광재에 자리를 잡고 황실문화재단의 초대 총재로 대학의 역사 문화 교수로 해설사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스러진 대한제국 황실 종친 이석 총재. 이 총재는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의 아들이다. 왕자로 태어난 그의 일생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다. 궁에서 쫓겨나 식당을 열었고, 절집을 떠돌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기거 중인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를 만나 근황과 남은 포부를 들었다.

비운의 왕자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부모의 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의친왕께서는 당시 62세, 어머니께서는 창덕궁 전화 교환원이었습니다.”

딸 부잣집의 장녀였던 그의 어머니는 피부가 하얗고 선한 외모의 단아한 여성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간 궁에서 의친왕의 눈에 들어 1941년 왕자 이 총재가 태어나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을 만평정도의 규모와 십여 채의 한옥 공간이 있는 사동궁에서 보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에게 첫 시련은 6·25 전쟁이었다.


“제가 9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님은 저희가족들을 데리고 부산의 포교원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전쟁 후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다 1955년 8월15일 의친왕이 임종한다. 무더운 여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동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의친왕의 임종 후 가족의 생활은 어렵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고달픈 인생의 서막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후 저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안해본 일이 없는 그는 타고난 목소리가 좋았다. 사회도 보고 음악다방에서 DJ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하게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작은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곤 하면 어머니께서는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 저를 안타까워하셨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큰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다. “‘나라가 망하더니 왕손이 광대가 되었구나’하시며 땅을 치며 통곡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는 차라리 젊은 몸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월남 파병에 자원입대 했다. 월남 파병중 부상을 입은 그는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과 스트레스로 그가 고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활고 때문에 가수로 활동
처지 비관해 극단적 선택도


“동생들과 저는 힘든 날을 보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에게 한 작곡가가 찾아오게 되는데 월남에서 있었던 부대 이름을 따 ‘비둘기 집’ 이라는 노래를 들고와 그에게 가수가 되기를 권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한번쯤 들어본 곡일 것이다. 하지만 가수 이석으로서의 삶도 오래가진 못했다. ‘외로운 조약돌’, ‘두마음’ 등 노래가 나왔지만 외로움과 힘든 부분을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1979년 10·26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칠궁에서 살았습니다.”

사적 제149호인 칠궁은 조선 왕의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청와대 인근인 이곳에 살고 있던 이석 황손을 헌병대를 동원해 내쫓았다. 조선왕실 재산환수나 품위유지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그 해 12월9일 그는 “다시는 이 나라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잔디깍기, 수영장청소, 술상자 나르기, 이삿짐 나르기 등 힘겨움에 잠시 고국도 잊고 살았다.

“1989년 이방자 숙모와 덕혜고모님께서 낙선재에서 돌아가시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고보니 고국에 대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신이 들었습니다.”
 

고국의 대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온 그였지만, 미국이나 고국이나 힘든 삶은 여전했다. 빈곤한 생활이 이어지자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약을 먹고 도봉산 절벽에 매달린 적도 있다고 했다.

“어느 찜질방에 머무르면서 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대문에 부딪혀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는 찜질방에서 자신을 알아본 한 주간지 기자의 만류에 자살을 포기했다. 그 기자는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이 찜질방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일간지·잡지·외신 할 것 없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화제가 되곤 했다. 이를 계기로 전주와의 인연이 생겼다. 한 지인이 주선해 2003년 8월 전주의 한 식당에서 강연을 했다.

이후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이 한옥 600채가 들어서는 대규모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그에게 150평짜리 한옥을 지어줬다. 고종황제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승광재(承光齋)라 이름 짓고 2004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당시 62세였는데 따뜻한 전주시민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으로 정을 붙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13년간의 생활 동안 어려운 상황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현재 전주시민의 과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건강하게 지내는 동안 어떻게 보탬이 되는 황손으로 살까,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까? 늘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인연 눈길


이 총재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별명에 맞게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화도 많다. 

“모든 걸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기억에 남는 몇 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강인에 보이지만 진실성이 있고 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첫인상을 설명했다. “‘황성옛터’를 불러드렸는데 늘 쓰고 다니시던 검정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흐르니까 슬그머니 훔치시며 노래를 들으셨습니다. 강인함 속에서 잔잔한 고향 같은 분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이 총재가 살고 있는 전주에 내려온 적이 있다. 행사 후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황손께서는 무엇이 소원입니까?”하고 물었다. 이 총재는 서울 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인 태조 이성계 할아버지의 어진을 전주의 경기전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고, 2008년 10월23일 어진 봉안행렬이 전주에 내려오게 됐다.

“약속을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래전 만나왔던 친숙함이 배여 있어서 아주 편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내비췄다.

평범한 삶


“박근혜 대통령은 더 조심스럽습니다만 대통령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항상 측은지심입니다. 아마도 그 옛날 제가 부모님을 잃고 살았을 때의 기억이 작용한 거겠지요.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정국(靖國)을 마무리 해 주실 거라 믿고 먼 발치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여러번 뵈었기 때문에 직접 담소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경제문제, 국제적 관계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 부친 의친왕은?

의친왕은 1877년생으로 순종황제보다 세 살 많다. 62세에 이석을 낳았다. 의친왕은 1900년대 초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을 5년 간 다녔다고 한다.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기차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 안둥[安東: 현 랴오닝성 단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친왕이 자택에서 사라지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다시 국내로 송환됐다.

그의 망명실패로 국내 항일 조직이었던 대동단 조직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27년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排日)정신을 지켰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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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