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돈으로 본' 재벌가 도박왕 블랙리스트

억소리 나는 판대기…하룻밤 수억 베팅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인이 대거 포함된 도박판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됐다. 연루된 기업인은 12명, 판돈은 5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서민들은 평생 구경하기 힘든 돈이 하루밤새 도박 판돈으로 왔다 갔다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꽤나 맥이 풀리는 모양새다. 과거에도 재벌가는 어마어마한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여 서민들을 분노케 했다. 과거 회장님들이 판돈으로 얼마나 탕진했는지 확인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가 해외 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긴 기업인은 모두 12명이다. 이들이 사용한 도박판돈 규모는 드러난 것만 525억원에 이른다. 

기업인들이 거대 판돈을 걸고 원정 도박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한 네티즌은 “서민들은 평생 모아도 구경할 수 없는 돈을 해외서 물 쓰듯 썼다”며 “기업활동은 국내에서 하고 돈은 해외에서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재벌가들의 도박 사랑(?)은 연혁이 깊다. 1977년 7월에는 대한그룹의 창업주 설경동의 차남 설원철이 대규모 도박판을 벌여 물의를 일으켰다. 설원철(당시 40)씨 등 6명은 상습도박을 벌이고 도박장을 직접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서울 중구 충무로2가에 있는 L관광호텔에서 하룻밤 새 1000여만원이 넘는 판돈을 놓고 포커판을 벌였다. 모두 열 두번에 걸쳐 오고간 판돈 총액은 2억8000만원에 달해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자장면 값이 2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루밤새 오고간 판돈이 대략 75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검찰은 도박판 현장에 급습해 미화 5199달러, 엔화 2만2500엔, 한화 110만원 등 361만2000원의 판돈을 회수했다.

검찰 원정도박 기업인 수사 마무리
해외 들고간 도박자금에 ‘입이 쩍’


설원철씨는 이후 대한그룹의 경영권에서 멀어지는 모습이었다. 대한그룹은 현재 대한전선,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이 주요 계열사가 있다. 

그러나 창업주 설경동 회장은 장남 설원식 전 회장에게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물려주고 바로 3남에게 대한전선을 줬으며 4남인 설원봉 회장에게 대한제당을 물려줬다. 설원철 씨는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고문직을 맡기는 했으나 기업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본 적이 없어 당시 도박파문으로 창업주의 눈 밖에 난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1992년에는 여성 기업인이 100억원대 도박판에 기웃거리다 검찰의 수사망에 덜미를 잡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춘자 한국광학 대표는 87년부터 강남일대서 벌어진 100억원 규모의 도박판에 발을 담군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이 대표를 비롯해 도박에 빠진 도박꾼들은 하루 평균 300만∼1800만원의 판돈을 걸고 마작도박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2세 오종섭 동양백화점 전 부회장도 도박판에 거액을 베팅해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았다. 그는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한국인마케팅 최모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55만달러를 빌려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그를 구속기소했으나,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도박 규모도 문제였지만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지만 이후 경영난이 시작되면서 한화갤러리아에 팔렸다. 동양백화점 한때 최대주주였던 오 전 부회장은 2011년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햇다.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대표는 1997년 20만달러의 도박자금을 해외로 밀반출 한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다 지난 2002년 구속됐다. 김 회장은 마카오 등지에서 수억원의 도박을 벌이며 외화를 반출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7∼20여 차례 마카오호텔 카지노 등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 판돈은 크지 않았지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IMF 등으로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때라 국민적 분노는 컸다. 김 대표는 5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하고 같은 해 12월 위조 여권을 사용해 해외에서 도피행각을 이어오다 덜미를 잡혔다.

장소·성별불문 
나이·시대불문

범삼성가에서도 도박 파문이 있었다. 주인공은 창업주 이병철 차남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다. 1975년 이창희 전 회장(당시 43)은 장택용 진로 부사장, 김국남 범진전기 대표 등 6명의 기업인들과 도박을 벌인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당시 하루밤새 오간돈은 500만원이 넘었으며 총 판돈은 1억2000만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관들이 당시 현장을 급습했을 때 회수한 돈은 1000만원 규모. 이들은 김 대표 집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모여 약 23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회장 입장에서는 1966년 사카린 사건으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고 난 이후 10년 만의 기소였다. 당시 후계구도에서 밀리고 있던 이창희 전 회장에게 도박사건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눈에 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삼성가 계열사를 물려받지 못하고 1987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재계에서는 장남 이맹희 CJ명예회장과 함께 ‘불운한 삼성가 황태자’로 분류한다.

1978년 김창원 거화회장도 원정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했다. 그가 날린 도박자금은 23만달러 규모였다. 당시 외화유출에 대해 정부 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시절이라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 

서울지검이 김 회장을 구속기소한 혐의는 외국환관리법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외화유출) 이었다. 해외로 빼돌린 외화규모는 38만달러 수준으로 전해진다.

당시 거화그룹은 1970년대까지 재계 3위 자리를 굳혔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도박으로 회사는 경영난에 빠지며 신진학원을 제외한 주요 계열사를 다른 기업에 빼앗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 한 것은 김 회장의 아들도 도박으로 구설에 올랐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그의 아들 김용식 신진 학원 이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수십억원의 도박자금을 탕진한 혐의를 받았다. 김 이사장이 2009년 5월부터 날린 도박자금은 263만달러 수준이다. 

검찰은 아버지의 전력(?)을 근거로 외화 밀반출 혐의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70년대부터 재계 타짜들 보니…
후계자 탕진으로 기업 사라져


한보그룹의 왕자님도 거액의 도박판 스캔들이 있다. 1997년 한보그룹 정태수 당시 총회장의 차남인 상아제약 회장 정원근(당시 35)씨는 1996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으로 거액을 날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당했다. 서울지검 외사부(유성수 부장검사)에 따르면 30만달러의 자금을 빌려 카지노 도박을 했다. 

당시 외국환관리법에 따르면 1만달러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정 회장은 이를 어겼다.

특히, 정 전 회장이 도박을 했을 무렵은 한보그룹이 경영난에 빠질 무렵이어서 비난의 강도는 거셌다.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은 1997년 15억원의 자금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된다. 이후 지급 보증을 섰던 한보계열사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지면서 한보그룹은 공중분해 된다. 

한보그룹 부도 원인을 정원근 회장의 개인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라는 평가지만 오너일가의 고삐풀린 경영 마인드를 방증했다는 견해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정태수 전 총회장은 1997년 5월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려 50년 전인 1966년에 하루 판돈 2000만원이 넘는 고액이 오고간 도박판도 있었다. 당시 인천올림포스호텔 유화열 회장을 비롯해 전락원 구왕건설사 대표 등 3명이 대규모 카드 도박 혐의로 구속된 것. 유 회장 일행은 호텔 등을 전전하며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유 회장은 카지노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은 사위 함양섭 회계계장이 손님으로 가장해 딜러가 보관중인 게임용 칩을 현금으로 바꿔 수입금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90년부터 3년 동안 세금 14억3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모두 정신없던
IMF 때도 도박

1997년 당시 북악파크호텔 구판서 회장의 4남 구상회(당시 37)씨가 100만달러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구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에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악파크호텔은 70~80년 북악을 대표하는 호텔이었으나 1990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접어들며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로운 도박왕 후보는?

앞서 검찰은 올해 4월부터 기업인 연루 도박사건 수사에 착수해 문식 켄오스해운 대표(56),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0), 목사를 자칭하며 요양원을 운영한 박모 씨(54), 폐기물처리업체 대표 임모 씨(53) 등을 재판에 넘겼다. 정 대표는 100억원대의 도박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문 대표는 50억원에 가까운 돈을 탕진한 혐의다. 임씨는 회삿돈 42억원을 횡령해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금융투자업체 P사 대표 조모(44)씨, 경비대표업체 한모(65)씨 등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렸다. 박순석 회장은 13억원 가량의 도박판을 벌였으며, 장 회장은 86억원 도박판을 벌였다. 조 대표는 최소 20억원대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으며, 한모씨는 35억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다. <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