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히트브랜드 제조기' 손혜원 새정치연합 홍보위원장

"새정치연합을 히트브랜드로 만들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 달라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지난 7월 취임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이다. 손 위원장은 취임 후 2주 만에 셀프디스 캠페인이란 독특한 아이디어로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참이슬부터 트롬, 힐스테이트까지 ‘히트브랜드 제조기’로 유명한 손 위원장이 이번엔 새정치연합을 히트브랜드로 탈바꿈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조동원 전 홍보본부장을 영입한 후 새누리당은 선거마다 연전연승했다.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당대표로 취임하자마자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2의 조동원’ 찾기에 골몰했다.

그런 문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인사가 바로 손혜원 홍보위원장이다. 손 위원장은 참이슬부터 트롬, 힐스테이트 등을 만든 히트브랜드 제조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손 위원장이 취임 후 2주 만에 실시한 셀프디스 캠페인은 관련기사만 수백 개가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비록 셀프디스가 아닌 자화자찬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선거마다 연전연패하며 활력을 잃은 새정치연합에 무플이 아니라 악플이라도 나오고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과연 손 위원장은 새정치연합을 히트브랜드로 탈바꿈 시킬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손 위원장을 만나봤다. 다음은 손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손 위원장께서는 ‘트롬’ ‘참이슬’과 같은 걸출한 브랜드를 만든 홍보분야의 스타다. 새정치연합 홍보위원장 자리를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 홍보위원장 자리를 제의 받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멋있는 야당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새정치연합이 멋있는 야당이 된다면 우리 국민 전체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저는 새정치연합을 히트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손 위원장과 종종 비교되는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의 경우에는 지금도 경기도 홍보위원장으로 일하며 아예 정치권에 입문한 모양새다. 손 위원장께서도 정치에 대한 생각이 있나?
▲ 정치에 관한 욕심은 전혀 없다. 일단은 내년 총선까지 새정치연합을 책임지는 것이 목표다. 차기 대선까지 일할 수도 있지만 아예 정치에 입문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 새정치연합이 그동안 선거마다 연전연패했는데 홍보 문제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나?
▲ 홍보 문제가 없진 않았겠으나, 홍보 문제만으로 졌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홍보는 맨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 새정치연합 홍보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고쳐주고 싶은 것은?
▲ 고칠 것이 너무 많다. 하지만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제가 회사에 있을 때는 브랜드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6개월 이상 일을 했다. 게다가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까 현수막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너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도 당이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은 안다. 총선을 바라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는 중이다.

- 일각에선 새정치연합이 손 위원장을 영입한 것에 대해 당의 내부 혁신은 지지부진한데 껍데기만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 제가 하는 일이 껍데기만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오래 가려면 절대로 껍데기만 바꿔서는 안 된다. 속을 뜯어 고쳐서 체질을 개선하고 근육을 늘리는 일을 해야 된다. 여기서는 제가 그 역할까지 할 수 없어 답답한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역꾸역 해가고 있다.

- 새정치연합 홍보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제품이 안 좋으면 안 팔린다. 한 달 동안 내부에서 지켜본 새정치연합은 어땠나? 희망이 보이던가?
▲ 밖에서 새정치연합을 볼 땐 당내 갈등도 심각하고, 새정치연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차가워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당에 들어와 보니 국회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이 매우 뛰어났다. 나는 거기서 굉장히 큰 희망을 봤다. 그런 분들에게 초점을 맞춰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 새누리당 조동원 전 홍보기획본부장의 대항마 격으로 영입됐다. 아무래도 조 전 본부장과 계속 비교될 수밖에 없다. 조 전 본부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 사실 조 전 본부장과 비교되는 것이 너무 지겹다. 언론들이 라이벌구도를 만들어서 자꾸 비교를 한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과 그분이 하는 일은 너무 다르다. 비교 자체가 어렵고 제가 그분을 평가할 수도 없다.
 

- 정치권에선 조 전 본부장을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꼽는데 벤치마킹할 부분은 없나?
▲ 전혀 없다. 성공적인 사례라고 평가되는 것은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이겼으니까 결과적으로 성공사례라고 하는 것이다. 홍보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그분이 그렇게 감동적인 홍보를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홍보 자체에는 그렇게 벤치마킹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

"현재 당명으로는 총선 전쟁 치러봐야 실패"
"홍보 성공 위해서는 당 경쟁력부터 키워야"


- 손 위원장의 활동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셀프 디스 캠페인이다. 그런데 과연 셀프 디스인지 자화자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다.
▲ 사실 자화자찬이 맞다. 셀프 디스의 목표는 자기반성을 하면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 셀프 디스는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판할수록 더 큰 호응을 얻는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의 셀프 디스를 지켜보면 자신을 진짜 비판할 용기가 없거나, 국민들이 왜 자신들을 비판하는지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사람들은 자꾸 자극적인 것만 원하는데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셀프 디스는 가십거리나 유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단점을 나열하는 것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제가 이런 단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자화자찬으로 느끼신 것 같다.

셀프 디스는 제가 튀려고 생각해낸 것도 아니고, 우리 당의 모든 사람들을 무릎 꿇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분들도 셀프 디스로 이름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용득 최고위원 같은 경우도 셀프 디스 덕분에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 저는 우리 당 130명 의원들에 대한 셀프 디스를 전부 다 할 계획이다.

- 손 위원장께서 주도해 만든 새정치연합 홍보 현수막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정말 나쁜 짓’이라고 비판하던데.
▲ 현수막에 “아버지 봉급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라며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비판하는 내용을 실었다. 새누리당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애매모호하게 대중을 호도하는 부분들이 있다. 나이 많은 분들의 임금을 깎아서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사기다.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노동개혁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짧고 간결한 문구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지적한 것이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홍보캠페인은 또 무엇이 있나?
▲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끝도 없이 많은 홍보캠페인을 이어 나갈 것이다.

- 최근 새정치연합이 당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홍보위원장이신만큼 당명 변경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텐데 당명을 변경함에 있어서 기본원칙이 있다면?
▲ 사실 제가 당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별 권한이 없다. 옆에서 조언하는 역할 정도를 할 것 같다. 아직 어떤 원칙도 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명은 분명히 짧아질 것이다. 지난번 당명을 변경할 때는 ‘민주’라는 단어를 넣느냐 빼느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새로운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를 넣을지 안 넣을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2000년 이후 새정치연합이 당명을 7번이나 바꿨다. 홍보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제품명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제품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는 일 아닌가?
▲ 사실 우리 당이 이름을 그렇게 자주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놀랐다. 제품명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당연히 안 좋다. 하지만 현재 당명은 너무 많은 분들이 문제가 있다고 하시니까 바꾸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현재 당명으로는 총선이라는 전쟁을 치룰 수 없다는 결론이다.

- 당명 변경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너무 빨리하면 총선까지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고, 너무 늦게 하면 당명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못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제품명을 바꿀 때는 무조건 소비자 중심이다.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서 결정해야 한다. 또 경쟁자의 동향도 중요하다. 아직까지 선거를 치러본 적이 없어 언제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도 민심을 주시하며 당명 변경 시기를 결정할 것이다.

- 최근 박지원 의원이 손 위원장을 ‘문빠’(문재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라고 해서 논란이 됐다. 박 의원이 왜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보나?
▲ 본인이 좋은 뜻에서 말한 것이라고 하시니 저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그 문제는 덮었다. 자꾸 우리 당내에 친노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친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분하고 누가 그렇게 친한지. 저는 우리 당에 무슨 계파가 있고 라인이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심만 살피기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 박지원 의원이 언급한 손 위원장의 7000만원짜리 손목시계도 화제가 됐다. 일반 서민들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 반면 조동원 전 위원장은 백팩 메고 버스·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볼 수도 있다. 당의 홍보를 총괄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으신 만큼 본인부터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가?
▲ 그분은 원래 재산이 별로 없다. 저는 그런 퍼포먼스에 관심이 없다. 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되는데 사람들이 자꾸 제 손가락만 보려고 한다. 제가 주목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꾸 언론들이 저한테 관심을 가지셔서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제가 SNS에 쓰는 글까지 매일 기사화가 되더라. 이제 인터뷰도 더 이상 안 할 거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제가 우리 당 국회의원들에게 말했다. 언론들이 이렇게 기사거리에 목말라 하는데 여러분도 기사화 될 수 있고 화제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이제 우리 당 국회의원들의 행보에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제품 경쟁력이 없으면 망한다. 마찬가지로 새정치연합을 좋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손 위원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새정치연합 소속 정치인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 우리 당에 들어와서 보니까 이분법적 생각이 너무 심했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식이다. 여당이 주장하는 것이라도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고, 아니라면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도저도 아니다. 나는 정말 멋있는 야당을 만들고 싶다. 우리 당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주시면 그걸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좋은 이미지로 만드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다.

 

<mi737@ilyosisa.co.kr>


[손혜원 위원장 프로필]

▲ 현대양행 기획실 디자이너
▲ 열매나눔재단 이사
▲ 서울디자인센터 이사
▲ 크로스포인트 대표
▲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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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