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거사 치르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국민들이 도와줘야 진짜 큰일 낸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아시아인 최초로 ‘축구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과 축구와의 인연을 살펴보면서 아시아 최초의 축구대통령 탄생 가능성을 점쳐봤다.

범현대가의 자제인 정몽준 명예회장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평소 즐겨하던 권투로 유도부 친구를 때려 일주일간 학교를 자체 결석(?)한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그는 유도부 친구들의 보복을 당한 뒤에야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운동과의 인연
축구인생 시작
 
고등학교 시절 그는 특별활동으로 농구를 선택했고, 축구부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성인이 된 정 명예회장은 25세 때 전국 승마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따기도 했으며, 전국종합스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해 4위에 입상한 적도 있다. 그는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고등학교 때 축구부 감독이었던 은사를 찾을 만큼 운동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정 명예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스포츠 후원으로 이어졌다. 운동을 좋아해 1983년 초대 양궁협회회장을 역임하며 스포츠와 인연을 이어나갔다. (정 명예회장이 양궁협회와 인연을 맺은 뒤 현대는 현재까지 양궁협회에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1984년 정 회장은 실업연맹테니스 회장을 맡았다. 이때까지 그는 축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후원에는 적극적이 못한 모습이었다. 1983년 잠시 울산시 축구협회장을 맡은 것이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축구대통령’ FIFA 회장 출마 공식선언
부회장 시절 블레터 독재 대항마 역할
 
그러나 1992년 대한축구협회 차기 회장에 도전하면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축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회장직이 걸린 선거에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축구선수 출신인 김창기 부회장을 지지했다. 따라서 정 명예회장과 김창기 부회장이 맞붙는 구도가 됐다. 상황은 정 명예회장보다 김 부회장에 우세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이 마음을 바꿔 김창기 부회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정 명예회장이 1994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우중 회장이 정 명예회장 쪽으로 지지를 선회한 것을 두고 축구협회를 이끌만한 재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회장에 취임한 정 명예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취임 당시 월드컵 유치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던 정부를 설득시키기 위해 유치위원회를 주도적으로 바꿨다.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이홍구(전 국무총리)를 추대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이를 두고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밀어붙이기에 들어갔다. 결국 이홍구씨가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회장직을 맡으면서 정 명예회장은 유치위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독재 대항한
FIFA 부회장
 
정 명예회장은 그해 5월 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11표를 받아 10표와 8표를 얻은 쿠웨이트의 알 사바하와 카타르의 알 압둘라를 제치며 2002년 월드컵 개최의 발판을 만들었다. 당시 한국의 2002년 월드컵 유치 가능성을 높게 본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일본보다 월드컵 유치전에 4년가량 늦게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이 FIFA 부회장에 오르면서 월드컵 개최지 선정 투표권을 가진 FIFA 집행위원과 긴밀한 관계로 발전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지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거스 히딩크를 감독으로 영입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FIFA부회장으로서 정 명예회장은 제프 블레터 FIFA회장 독재에 대항하는 대항마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정 명예회장은 FIFA 내에서 야당으로 활동했다. 2002년 5월 블레터 회장의 재선 당시 반대편에 서며 블레터 회장과 멀어졌다. 당시 정몽준 명예회장은 2002년 당시 블레터 FIFA 회장이 부패와 부정과 경영 실수로 FIFA가 재정적이고 정치적인 위기에 처해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정 명예회장은 FIFA 회장의 무능과 권력 남용을 종식시키기 위해 하야투 아프리카 축구연맹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프리 회장은 재선에 성공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레나르트 요한손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과 ‘개혁파 진영’을 형성해 블레터 회장에 맞섰다. 하지만 정몽준 명예회장은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출마해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에게 패해 낙선해 17년동안 이어온 FIFA 부회장 자리를 내줘야 했다. 당시 블레터 회장이 정 명예회장 낙선을 위해 움직였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 명예회장의 낙선 소식은 한국 축구계에 엄청난 악재였다. 그동안 정 명예회장이 사실상 1인 축구외교를 해왔기 때문이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3차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2012년 낙선 이후 FIFA 내 모든 권한을 내려 놓게 된 정몽준 명예회장은 블레터 회장의 부정부패에 대한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2011년 발간한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살펴보면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FIFA가 기존 스폰서였던 마스터카드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비자카드와 새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블레터 회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해 FIFA의 도덕성에 흠을 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블레터 회장은 이로 인해 마스터카드로부터 소송을 당해 1억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내야 했다고 목소리를 전했다. 또한 정 명예부회장은 “2010년에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를 동시에 결정한 것은 상식과 관례에 맞지 않다”며 “집행위원회의 권한인 월드컵 개최지 결정권를 총회로 넘겼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블레터 회장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집행위원회는 회장의 독선을 막기 위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는 독립된 기구인데, 블레터는 집행위원회의 권한을 빼앗아 자신에 대한 견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쓴 수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무너진 블레터
위기 뒤 기회?
 
정 명예회장이 낙선한 사이 블레터 회장은 각종 부정부패 혐의가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회장직을 유지했다. 블레터 회장의 비리 스캔들은 연혁이 깊다. 1998년부터 끊임없이 비리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6월 블레터 회장의 측근인 FIFA 전현직 고위간부 6명은 카타르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나 미국 FBI에 의해 체포됐다. 이들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을 포함해 지난 20년간 1100억 원이 넘는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블레터 회장도 미국 수사당국의 수사 대상에 포함돼 미국 방문을 최근 4년동안 못하고 있다.
 
블레터 회장은 측근들이 체포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5선에 성공하며 회장직을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수사당국의 압박수위가 높아지면서 회장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블레터 회장이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정 명예회장의 FIFA 회장 선거 출마 명분은 더욱 뚜렷해 졌다.
 
17년동안 FIFA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부정부패의 상징이 돼버린 블레터 회장과 반목을 벌이면서 쌓아온 정 명예회장의 청렴한 이미지가 현재의 FIFA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결국 회장 선거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 회장 측은 “오는 17일 오후 6시(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차기 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고 지난 12일 밝힌 것이다. 정 회장은 이날 선언에 이어 기자회견을 진행해 FIFA 개혁에 대한 비전과 공약을 밝힐 예정이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6일 “파리가 교통이 좋고 FIFA 창립 당시 파리에서 시작한 점을 감안해 결정했다. (미셸)플라티니가 프랑스 사람이니 그런 부분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조직내 청렴이미지 정평
‘개혁 전사’ 대권 가능성↑
 
그러면서 “(FIFA회장 출마는)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며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민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신이 나서 하겠다”고 덧붙였다. 회장 선거는 내년 2월26일 실시할 예정이다. 후보자가 정해지면 FIFA에 속한 209개 회원국들이 각 1표씩을 행사해 ‘세계 축구 대통령’을 뽑는다.
 
정 명예회장은 당선 가능성에 대해 “내가 잘한다면 유력한 후보 중에 한 명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FIFA 역사가 111년이 됐는데 역대 회장 8명이 유럽계다. FIFA가 오늘 불명예스럽게 된 데에는 FIFA 사무국 책임이 크지만 유럽 축구 지도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유럽에 건강한 리더십이 있었다면 FIFA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당선을 위해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명예회장은 “유력 후보는 미셸 플라티니(유럽축구연맹 회장)와 저 아니겠느냐. 제가 잘 하면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을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당선 가능성을 물어보길래 일본이 도와주면 99%라고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일본이 도와주면 99%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레터 꼭두각시
대선가도 장애물
 
플라티니 회장은 지난달 29일 FIFA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정 회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특히, 플라티니는 친 블레터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힌다. 각종 비리로 불명예스럽게 회장직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블레터는 여전히 FIFA 내에서 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플라티니 회장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로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정 명예회장은 블레터를 ‘식인종’에 플라티니를 ‘꼭두각시’에 비유하며 혁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블레터 회장은 부모를 잡아먹은 뒤 고아가 됐다고 우는 식인종 같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탓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플라티니 UEFA 회장에게 “좋은 축구선수였을지는 몰라도 좋은 FIFA회장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플라티니가 새로운 FIFA를 상징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지 블레터의 꼭두각시일 뿐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FIFA 회장 선거에는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 브라질 축구 스타 지쿠 등도 회장직 선거 출마를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이제 세계 각국을 돌며 축구계 유력인사들을 만나 FIFA 회장으로서의 경쟁력을 어필할 계획이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J, 일본지지 요청 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회장 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일본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경쟁에서 일본의 지지를 받지 못해 막판에 밀린 아픈 기억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0년 12월 있었던 2022년 월드컵 개최 투표에서 일본은 한국이 아닌 미국을 지지하면서 희비가 엇갈린 바 있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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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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