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영화 <연평해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남북관계를 의식해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홀대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김대중평화센터에서는 반박 보도자료까지 내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날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중 남북 함정 사이에 일어났던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이 무서운 돌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연평해전>은 개봉 2주 만에 35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터미네이터5>까지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한편 영화가 흥행돌풍을 이어나가면서 난데없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대통령이 당시 남북관계를 의식해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홀대했다는 것이 주된 비판의 이유다. 논란이 커지자 김대중평화센터는 반박 보도자료까지 내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김대중평화센터 김한수 기획실장을 통해 영화 <연평해전>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들어봤다.
- 영화 <연평해전>의 개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영화는 봤나?
▲ 아직 영화는 못 봤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내용은 알고 있다.
- 영화에는 김 전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 다음날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 그 당시 월드컵 폐막식과 함께 한일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가 없는 일정이었다. 당시 대통령이 일정을 취소했다면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의 안보위기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 예정대로 출국을 하신 것이다. 결코 장병들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 그렇지만 아군 전사자까지 발생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 주최국이었다. 주최국의 대통령이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이 지켜보는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후폭풍이 엄청났을 것이다. 주최국임에도 대통령이 폐막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안보가 불안한 나라에 누가 투자하려고 하겠나? IMF 이후 겨우 국가경제를 회생시켜가고 있던 시점에 국제사회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는 없었다.
- 김대중평화센터는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자 즉각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응했다고 했다.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김대중정부는 사건 발생 후 4시간35분 만에 NSC를 열어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 당시 김대중정부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다만 전체적인 것은 NSC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NSC를 열기 전 각 부처마다 관련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소집이 늦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사건 발생 후 즉각 군에 확전을 막고 냉정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주문했다. 또 북한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난성명을 냈고 공개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보장을 요구했다.
영화 <연평해전> 돌풍, 김대중 책임론 대두
"사실관계 왜곡 심각…일방적 주장일 뿐"
- 제2연평해전 이후 군에서는 김대중정부의 ‘적이 도발해도 먼저 사격하지 말라’는 무리한 교전수칙 때문에 아군 피해가 컸다는 주장이 나왔다.
▲ 제1연평해전 때도 이 교전규칙에 따라 전투를 벌였지만 대승을 거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제2연평해전에서 아군의 피해가 컸던 것은 ‘작전 실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당시 우리 경비정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북한 함정에 다가갔다. 원래는 함정을 호위할 초계함이 같이 기동을 해야 되는데 초계함은 1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너무 안일한 대응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작전 실패 때문에 아군의 피해가 컸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 영화를 보면 북한의 이상징후를 포착한 통신감청이 있었지만 군 수뇌부가 묵살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 사실이 아니다.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특보가 낸 <피스메이커>라는 책을 보면 그런 보고도 없었고, 유엔사에서도 그런 첩보는 없었다고 했다. 일부 군 관계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한미연합사령관도 연평해전 이후 “도발 징후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정부에 공식 통보했다.
- 김대중평화센터에서는 북한이 “이 사건은 우발적인 사고였다.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이 계획된 도발을 하고서도 우발적 사고였다고 변명한 것은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제2연평해전 이전까지는 어떤 군사적 충돌이 있어도 북한이 우리 정부에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일이 없었다. 북한이 전통문을 보내 공개 사과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우리가 봤을 때는 당시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것들은 인식이 다른 것 같다. 북한으로서는 최대한 사과한 것이다.
- 김 전 대통령이 전사자들의 영결식에 불참한 것도 논란거리다.
▲ 김 전 대통령은 연평해전 이후 사망 장병들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부상자를 위로하기 위해 병원을 직접 찾았다. 또한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했다. 결코 장병들을 외면한 것이 아니다.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의 관례 때문이었다. 당포함사건(1967년 1월)이 발생했던 박정희정부 때와 강릉무장공비사건(1996년 9월)이 발생한 김영삼정부 시절에도 대통령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에는 총리들도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김 전 대통령은 특별히 총리를 영결식장에 보내 조문하도록 했다.
- 하지만 이후 천안함 침몰사건 희생자 영결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참석했다. 꼭 과거의 관례를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나?
▲ 당시 우리는 보훈처의 자문을 받아 참석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대통령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 잭 프리처드 전 한반도평화회담 미국특사는 저서 <실패한 외교>에서 해군 장병 6명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오직 햇볕정책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했다.
▲ 그 분의 일방적인 견해일 뿐이다. 우리는 외교적인 판단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확전을 막고 북한의 사과를 받아냈다.
- 일각에선 영화 <연평해전>에 너무 과도한 상영관이 배정돼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 아직 그런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의심은 되지만 대응할 계획은 없다.
<mi737@ilyosisa.co.kr>
[박한수 실장 프로필]
▲ 새시대 새정치 연합청년회(연청) 홍보국장
▲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