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 1조 카지노 유치전

잭팟 주인공은…베팅경쟁 ‘후끈’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정부가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카지노 리조트 신규 사업자 2곳을 올해 연말에 새로 허가하기로 했다. 대기업들은 50년 만에 카지노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개발에 적어도 수조 원이 들어갈 정도로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이 드는데도, 수십 개가 넘는 사업자들이 모여 들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카지노 사업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정부가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짓겠다는 신규 사업자 2곳 정도를 추가 선정하려 하자 관련업체 34곳이 뛰어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 복합리조트 사업자 추가 선정을 위한 콘셉트 제안요청(RFC)을 지난달 30일까지 모집한 결과, 국내외 34개사가 접수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사업제안서 제출
연말 사업자 선정
 
인천지역에서만 15곳 안팎이다. 지난해 사전허가를 받아 내년 초 착공 예정인 리포&시저스가 있는 영종도 미단시티에는 중국의 GGAM(Global Game Asset Management) 랑룬캐피탈과 신화련 부동산, 홍콩의 임페리얼 퍼시픽 인터내셔널 홀딩스, 주대복 엔터프라이즈 그룹(CTF), 싱가포르 오디아 등 5곳이다. 바로 옆 영종하늘도시에도 캄보디아에서 카지노 독점권을 갖고 있는 나가코프와 아시아컬쳐컴플렉스(ACC), 인천 송도에 주소를 둔 선 시티 리조트 등 3곳이 신청했다.
 
인천공항 국제업무지역(IBC-II)에는 미국 카지노기업인 모헤간 선(Mohegan Sun), 한국관광공사 산하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이 한 게임회사와 함께 신청했고, 인천공항에서 슈퍼카(F1경기)를 추진하려던 영국의 웨인그로브사 등 3곳이다. 또 무의도에는 필리핀의 쏠레어 코리아와 임광그랜드개발(LK), 용유도는 오션뷰 등이다.
  

미단시티에 신청한 홍콩 CTF는 인천항만공사가 추진하는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복합지원용지(골든하버)에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고 중복 신청했다. 이 밖에도 롯데와 싱가포르 산토사 섬에서 리조트월드를 운영하는 겐팅사가 부산 북항에 오픈카지노(내국인 출입)를 조건으로 신청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경기 화성에 송산그린시티를 신청했다.
 
문체부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34개사가 제출한 제안 요청서를 평가한 뒤 8월 말쯤 복합리조트 개발 대상 지역과 시설요건 기준 등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고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간 수십조 원을 벌어들이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나 마카오 복합리조트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외국인 전용 카지노 리조트의 신규 사업자는 올 연말 확정될 예정이다.
 
외국인 전용 신규사업자 2곳 새로 허가
면세점 이어 또 다른 ‘황금거위’ 평가
 
아직 RFC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공모에서 부산을 제외하고는 인천의 경쟁자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RFC 공모 참가 업체 절반에 달하는 15개 업체(중복 포함)가 인천을 대상으로 RFC를 제출한 만큼 정부가 복합리조트 집적화 등을 고려해 인천에 복합리조트를 몰아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올해 초 투자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설이 포함된 복합리조트 2곳을 국내 대기업들도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 1월18일 기획재정부와 문체부, 국토부, 금융위, 관세청, 중기청 등 6개 부처는 이런 내용을 담은 ‘투자활성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복합리조트는 카지노와 호텔·컨벤션센터·쇼핑몰 등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 레저공간으로, 싱가포르의 대성공 후 세계 관광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인천 영종도와 제주도 등지에서 복합리조트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영종도에선 국내 최대 카지노업체인 파라다이스시티가 지난해 11월 첫 삽을 떴다. 중국·미국 합작사인 리포앤시저스(LOCZ)와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도 각각 2018년, 2020년 개장을 목표로 복합리조트 건설을 추진 중이다. 또 제주도에서는 싱가포르의 겐팅싱가포르와 중국 란딩그룹의 합작사인 란딩제주개발이 서귀포 일대 신화역사공원에 2017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복합리조트 추가 유치에 나선 것은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 사전 브리핑을 통해 “삼성이나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도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을 국내 대기업에도 개방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나, 카지노 사업이 갖고 있는 도박 산업 이미지 탓에 일부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기 감지된다.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싱가포르 선례
너도나도 도전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코오롱그룹이 처음으로 카지노 사업에 도전한다. 지난달 29일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계열사인 코오롱글로벌이 지난 4월 개장한 강원도 춘천시 라비에벨컨트리클럽(CC)과 부속 토지를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로 조성하는 계획안을 이달 말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라비에벨CC는 전체 부지 면적이 484만㎡에 달하고 클럽하우스 등 모든 건물을 전통 한옥으로 건설했다. 코오롱 측은 이 곳에 골프장 36홀과 카지노를 포함한 리조트, 상가·문화시설 등을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코오롱그룹은 이곳에 리조트가 개발되면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부산 씨글라우드 호텔, 천안 우정힐스CC 등 기존 레저 계열사들과의 시너지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코오롱그룹은 화학소재·패션(코오롱인더스트리), 건설·유통·환경(코오롱글로벌,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제약·바이오(코오롱생명과학, 티슈진, 코오롱제약) 등 굵직한 사업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최근 업황이 악화되자 신사업을 통한 상황 돌파에 나서면서 2009년 이후 5년간 업종 수를 18개 추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카지노 사업 진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롯데그룹은 말레이시아의 세계적 카지노기업 겐팅그룹과 손잡고 부산 북항에 카지노를 포함한 대규모 복합리조트 건설을 추진한다. 지난 1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자산개발·롯데호텔·롯데건설 등 세 회사로 구성된 롯데컨소시엄은 문체부가 주도하는 신규 복합리조트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개략적인 개발방향을 담은 콘셉트공모제안서(RFC)를 지난달 30일 제출했다.

롯데·코오롱에 신세계·부영도 검토
신규 카지노 조성 기대 반 우려 반
 
롯데가 제시한 카지노리조트 부지는 부산 북항재개발지구다. 투자금액이 최소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비롯해 수상레저, 호텔, 면세점 등 각종 관광 및 쇼핑시설로 복합리조트를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부산 북항이 레저시설이 들어서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산항만청은 북항을 대형 크루즈 네 대가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세계 4대 미항이다. 부산이 본거지인 롯데가 부산의 지역 발전까지 고려해 북항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직접 카지노 사업을 운영한 적은 없지만 롯데호텔 등에 카지노를 유치할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0년대 국내 카지노업체가 부도났을 때도 롯데가 잠재적인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롯데와 손잡은 겐팅그룹은 세계적인 카지노 운영 업체다. 화교 자본에 의해 1965년 말레이시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영국, 바하마, 미국 등에서 카지노가 포함된 리조트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자산 규모가 300억달러(약 33조5700억원)를 넘는다. 국내에서는 지난 1월부터 제주 서귀포시 하얏트호텔 내에 카지노 사업장인 겐팅 제주를 운영하고 있다.
 
“불황에 외화벌이” 
        vs 

“한탕주의 조장”
 
한국수자원공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조성 사업이 추진되다 중단된 경기 화성시 송산그린시티를 신청했다. 지난 2일 한국수자원공사는 경기도·화성시와 송산그린시티에 국제테마파크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3자는 부지 공급과 공공기관 참여를 위한 협의, 국제테마파크 조성에 필요한 인허가 업무에 대한 협력, 기업 유치 공동 마케팅 및 정보 교환 협조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 사업의 주 내용은 화성시 남양읍 신외리 일대에 수자원공사가 간척 사업 등을 통해 조성한 부지인 송산그린시티 동쪽 420만㎡ 부지에 국제 수준의 테마파크를 조성이다.
 
수협중앙회는 노량진수산시장에 외국인 전용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을 추진한다. 수협은 지난달 30일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신규 복합리조트 개발 콘셉트 제안공모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부지 4만8233㎡를 활용해 한강-여의도-노량진수산시장-복합리조트로 이어지는 관광루트를 개척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완료돼 수산시장이 이전하면 지금의 수산시장부지에 리조트를 건설할 구상을 갖고 있다.
 
이밖에 지자체도 나서고 있다. 경상남도는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신청했다.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웅동·남산·웅천지구 285만㎡에 폭스테마파크, 6성급 호텔, 카지노, 컨벤션, 마리나, 아웃렛, 콘도미니엄, 골프장(18홀) 등을 짓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성장산업 맞지만

부작용 대비해야
 
전남 여수의 여수경도관광레저도 여수경도해양관광단지에 신청했다. 여수경도 복합카지노 리조트개발 사업에는 3개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신한금융투자와 국제자산신탁이 재무적 투자자로 나서고 일성건설과 중국 국도건설그룹이 건설적 투자자로, 희림종합건축사무소와 알투코리아부동산자문, 회계법인 나무 등이 기술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정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성장 산업으로 키우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복합 카지노가 도박 중독자를 양산하거나 국제적인 범죄 자금의 세탁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아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크루즈선상카지노 내국인 출입 논란
2025년까지 강원랜드만 OK?
 
현재 국내 17개 카지노 가운데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곳은 강원랜드 단 1곳이다. 관광진흥법 제28조 카지노사업자의 준수사항 중 1항 4호는 ‘내국인을 입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강원랜드의 설립 근거가 된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11조에 ‘관광진흥법 적용의 특례’를 둬 내국인 출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이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외국 크루즈선 등 외국 카지노에서 게임을 해도 일정선을 넘으면 상습도박 등 혐의로 형사처벌 되지만 강원랜드는 합법적인 도박으로 인정해 준다. 
 
대법원은 2004년 “국가 정책적 견지에서 도박죄의 보호 법익보다 좀 더 높은 국가 이익을 위해 예외적으로 내국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에 따라 카지노에 출입하는 것은 법령에 의한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결했다. 
 
예컨대 개그맨 황기순, 방송인 주병진, 가수 신정환씨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처벌을 받았지만, 강원랜드에 드나들었다가 처벌받은 연예인은 없다. 이처럼 ‘내국인 출입’이라는 강력한 이점을 가진 강원랜드의 작년 매출액은 1조4900억원을 기록했다. 
 
강원 폐광지역은 당연히 독점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고, 크루즈선 등 신규 카지노 진출자는 내국인 출입 허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구도다. 해수부는 2012년 2월 최초의 국적 크루즈선 ‘클럽하모니호’가 1년을 못 채우고 폐업하자 선상 카지노를 설치하지 못해 외국 크루즈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크루즈 선박 전체 매출에서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50%에 이른다. 해수부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크루즈 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며 선상카지노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고 다음달 시행되는 ‘크루즈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해당 조항을 명시했다.
 
문체부는 처음부터 일정 규모 이상 선박에 선사의 자금력이 충분하며 내국인 출입을 통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허가를 내줄 것이라고 밝혔고 해수부도 법 제정 과정에서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우려가 나오자 외국인 전용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취임한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내국인 출입’ 카드를 공개적으로 꺼내 들었고 외국 크루즈선과 대등한 경영여건 조성을 위해 내국인 카지노 출입 허용이 필요하다는 선사 등 업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유치를 추진 중인 지자체 등도 해수부가 촉발한 논란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정부는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국 2곳에 카지노 복합리조트 사업권을 내준다는 방침을 세우고 연내 사업자를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복합리조트 유치에 성공하려면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 허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강원 정가와 폐광지역 주민들은 “선상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 허용은 복합리조트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이 경우 폐광지역 경제는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효력이 만료되는 2025년까지 강원랜드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독점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돼 있다며 빗장이 풀리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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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