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지만 EG 회장의 계열사 노조 간부인 양우권씨가 지난 10일 박 회장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이다. 그는 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양씨와 함께 10년 가까이 투쟁해온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김정기 부장의 입을 빌려 그의 한 맺힌 사연을 공개한다.
박지만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EG그룹 계열사 EG테크의 유일한 노조원인 양우권씨가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박 회장을 지목해 “당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사람이었다”며 “당신은 기업가로서의 최소한의 갖추어야 할 기본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양씨는 또 박 회장에게 “권력 옆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제발 당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진정 인간다운, 기업가다운 경영인이 되어 달라. 내가 하늘에서 두 눈 부릅뜨고 내려다 보겠다”고 썼다.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일요시사>는 양씨와 함께 10년 가까이 투쟁 해온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김정기 부장의 입을 빌려 그 한 맺힌 사연을 공개한다.
“말도 섞지 마라”
양씨는 지난 1998년 EG테크에 입사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산화철 폐기물 포장 업무를 했다. 악몽은 지난 2006년 금속노조 EG테크지회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회사 측은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노조에서 탈퇴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고 회사 측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결국에는 양씨 혼자 노조에 남게 됐다.
김정기 부장의 증언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하청회사에는 원청회사에서 일을 잘 안 맡기려고 하고, 일을 맡기더라도 여러 가지 패널티가 존재한다고 한다. 때문에 회사 측에서는 노조를 없애려 혈안이 됐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양씨만 탈퇴하면 노조는 없어지는 것이니 회사 측에서 얼마나 양씨를 괴롭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 측은 양씨를 월 임금이 약 40만원이나 감소되는 직무로 보직을 변경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대기발령을 시키는 등 노골적으로 양씨를 탄압했다. 툭하면 흡연이나 근무 중 수면, 태도 불손 등의 이유로 감봉 처분 등의 징계를 주기도 했다. 양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항의했지만 일부 사측 인사들의 추측성 진술만으로 회사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물론 회사 측의 달콤한 회유도 있었다. 회사 측은 만약 양씨가 노조를 탈퇴할 경우 임금 손실분 및 감액된 성과금을 보상하고 원직 복직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양씨는 사측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했다.
이에 대해 김정기 부장은 “양씨가 불의를 용납 못하는 성격이었다. 회사 내에서 부조리한 것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 것들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노조에 남은 것”이라며 “낙하산 인사들이 고위직으로 임명된 후 직원들 복리후생에는 관심도 없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했다. 하청 근로자 임금 수준이 원청 근로자 임금의 40% 수준밖에 되질 않는다. 노조가 없으면 이런 부조리한 것들을 어떻게 바꾸겠나?”라고 말했다.
양씨의 나홀로 투쟁이 길어지면서 사측의 탄압도 더 잔인해졌다. 김 부장은 “사측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양씨가 우울증, 강박증 등의 정신적 질병을 앓았다. 원래 굉장히 활발한 사람이었는데 약물 치료까지 받고 후유증으로 말도 어눌해졌다. 손 떨림 증상도 심했다. 어느 날은 두통이 너무 심해 조퇴를 요청했는데 사측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는데 사측은 양씨에게 근무지 이탈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고 말했다.
EG 계열사 노조간부 스스로 목숨 끊어
공개 왕따…유서로 노골적 괴롭힘 밝혀
게다가 사측은 양씨에게 정직 처분을 내려놓고는 정직 기간에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양씨를 해고 시켰다. 이후 양씨는 회사와 법적 다툼을 벌인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복직했다. 사측이 온갖 치사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양씨를 압박한 것이다.
양씨는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사내 하청은 기본임금이 박하다. 원래 하청은 추가 근무를 하면서 수당을 챙겨야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데 사측은 양씨를 추가 근무를 할 수 없는 부서로 옮겨버렸다. 김 부장은 “아이들 학비도 내야하는데 양씨의 급여는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양씨의 부인이 부업을 하고 모친의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이직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제철소 내에서 동종 업계에 재취업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을 하려면 50이 넘은 나이에 전혀 새로운 직종의 직업을 알아봐야 했다. 양씨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버티며 투쟁하던 양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사내 왕따'였다. 김 부장은 “양씨가 죽음에 이른 결정적인 이유는 왕따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려움을 내게 자주 토로했다. 원래 무척 성격이 밝아 주변에 사람이 많았는데 회사에서 아예 양씨를 격리 시켰다”며 “양씨와 친했던 사람들에게 양씨와 아는 척도 하지 말고 밥도 같지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양씨가 있는 자리에서도 대놓고 수차례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양씨와 친했던 직원들이 사측의 지시를 무시하고 양씨와 말이라도 한마디 나누면 사측은 그 직원들을 따로 불러 협박을 했다.
양씨가 부당해고 재판 끝에 복직된 후에는 수개월간 별다른 일도 주지 않고 하루 종일 사무실 구석 책상에 앉아있게 했다. 사측은 그 모습을 CCTV를 통해 감시했다. 양씨에게 노트북 한 대가 지급됐지만 인터넷조차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양씨는 그런 굴욕을 견디며 수개월을 버텼다.
그러다 지난 5월1일 사무실 촬영 보안위반이라는 명목으로 또 다시 정직 2개월 처분을 받는다. 당시 양씨는 사측의 부당한 탄압을 알리고자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 한 대뿐인 자신의 책상을 촬영해 언론사에 보냈는데 사측은 이를 ‘촬영 보안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징계를 내린 것이었다. 결국 양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병원도 못가게 막아”
하지만 박지만 회장 측은 박 회장은 EG그룹의 회장이고 양씨가 속해있던 EG테크의 대표이사는 따로 있다며 양씨가 박 회장을 지목해 비난하고 자살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은 “EG테크 대표이사는 형식적인 자리고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EG그룹이 노조를 탄압한 것은 기본적으로 박 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양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박 회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요시사>는 EG테크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해봤으나 EG테크 측은 끝내 답변을 거부했다.
<기사 속 기사> 박지만 사업 발자취
박지만 EG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이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제37기로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한 동시 방공포병과 소위로 임관했으며, 재직 중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의무복무만을 마치고 86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어머니를 잃고 육사 생도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박 회장은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뒤 한동안 마약 등에 손을 대며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도움을 받아 EG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었다.
EG그룹은 1987년 삼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며, 포항제철의 그늘 아래 알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냉연강판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의 독점권을 부여받은 삼양산업은 2차 가공을 통해 모니터 부품 등에 필수적인 산화철을 만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EG는 세계 고급 산화철 시장에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5%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며 세계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EG는 2013년 연결기준 매출 1230억원에 영업이익 63억4986만원, 당기순익 47억4938만원을 기록했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