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재계 사정 막전막후

검찰 캐비닛에 불량 기업들 ‘빼곡’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검찰의 대규모 비리 사정이 본격화되면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자금 등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내막에는 경기 불황에 따른 투자압박용이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재계를 바짝 긴장하게 하는 정부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


검찰의 기업 사정이 포스코건설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해 역외탈세, 자원개발 비리 혐의 등 사정 칼날이 그룹 전체로 번지는 형국이다. 포스코건설에 이어 SK건설, 신세계, 롯데 금호아시아나, 동부그룹, 동아원이 검찰 수사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동국제강도 비자금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 덮친 칼바람
어디까지 털리나
 
SK건설의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 담합의혹이 과징금 선에서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지만 검찰은 이례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는 지난 17일 새만금 방수제 공사입찰 담합혐의로 SK건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2009년 12월, 한국농어촌공사는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를 공고했다. SK건설을 비롯한 12개 건설사가 응찰에 참여했다. 그러나 SK건설은 다른 경쟁사들과 짜고 들러리 업체를 세우는 방식으로 1038억원 규모 ‘동진 3공구’ 공사를 따냈다. 이를 감지한 공정거래위원회는 SK건설에 22억원 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공정위 심의위원회 의결서를 검토한 검찰은 SK건설에 대한 기소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2013년 개정된 ‘공정위는 검찰총장의 고발요청이 있으면 반드시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발동,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신세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최근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그룹 총수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신세계는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물품 거래 대신 현금화해 총수일가 계좌에 일부 입금, 비자금 목적으로 법인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계열사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60억∼70억원 상당의 수표의 향방을 쫓고 있다. 이 중 30억원 가량이 총수일가로 흘러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나머지 30억∼40억원의 용처도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은 해당 계좌를 통한 자금 거래 내역을 추적하면서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행위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김영기)는 2011∼2012년 롯데쇼핑 본사에서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등 사업본부로 사용처가 명확치 않은 수십억원대 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쇼핑이 직원의 계좌를 거쳐 현금화한 후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칼 빼든 사정당국…대기업 노심초사
돌연 전방위 수사에 숨은 노림수는?
 
검찰은 이를 위해 롯데쇼핑 임직원들의 계좌내역을 추적하는 한편 예산담당 실무 직원 5명을 소환해 자금의 이동 경위와 사용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이사의 개인적 비리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벌인 바 있다.
   
동부그룹에도 먹구름이 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계열사들로부터 수백억원을 횡령한 정황을 잡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관련 자료를 토대로 비자금으로 조성된 금액 중 상당액이 김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과 딸 김주원씨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자금의 흐름을 쫓고 있다.
 

이와 함께 김 회장의 동서인 윤대근 동부CNI 회장이 10억원 안팎의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사로 인해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으로 알려진 동아원도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서울 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박찬호 부장검사)는 동아원 자사주 매각과 관련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브로커 김모씨를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동아원은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의 장인 이희상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일회성? 기획설?
다음 타깃은…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 김씨는 2010∼2011년 동아원이 자사주를 성공적으로 매각하도록 돕기 위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아원은 지난 2013년 검찰의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의 대대적인 비자금 추적 조사 때 비자금 유입처로 의심돼 수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중 275억원을 부담하기로 한 바 있다. 검찰은 김씨와 함께 고발된 동아원 관련자 등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그룹 내 자금 흐름을 추적해 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으로부터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도 당한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이 미국법인을 통해 약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미국으로 빼돌리고 그중 일부를 도박에 사용한 정황도 포착해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장 회장이 현지 납품업체로부터 이 회사 미국법인 계좌로 약 1000만 달러를 받은 뒤 그중 수십억원을 손실 처리하고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장 회장이 미국의 여러 도박장에서 거액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하면서 여러 차례 돈을 따 총 50억원 가량의 도박 수익을 얻었다는 자료를 미국 금융·수사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장 회장에게 횡령 혐의와 함께 해외 재산도피 및 외화 밀반출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부터 동국제강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고 조사 자료를 최근 검찰에 넘겼다. 관세청도 국내외에서 장 회장 관련 자료를 입수해 상당 부분 조사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국세청, 관세청 조사 결과와 그동안 내사해 온 내용을 정리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동국제강이 당진제철소 건립 과정에서 건설비를 과다 계상했다는 의혹, 부산에서 진행한 사업 과정에서 홍콩법인에 보낸 거액의 회사자금의 용처를 둘러싼 의혹 등도 살펴볼 방침이다.
 
사정당국의 몰아치기식 수사 배경에는 금융정보분석원의 자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검찰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금융정보분석원을 주목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을 이용한 범죄자금 이동을 막고 외화 불법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금융권은 2000만원 이상 현금을 넣거나 뺄 경우 거래자의 신원과 거래금액 등을 전산으로 금융정보분석원에 자동 보고해야 한다. 불법 재산이라고 의심되는 뭉칫돈 거래가 있을 때에도 정보가 제공된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검찰, 경찰, 국세청, 선거관리위원회, 금융위, 국민안전처 등 7개 법 집행기관이 요건에 맞춰 요청할 때 자료를 제공한다. 그간 논란이 됐던 비자금 사건 대부분이 금융정보분석원 자료에서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2013년 CJ그룹 비자금 수사가 대표적이다. 사실 지금 거론되는 대기업 비리는 금융정보분석원이 1∼2년 전에 발견해 검찰에 넘겼으나 묵혀져 온 것들이다. 재계는 금융정보분석원 자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혀 있을까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될 수 있었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며 “국방 분야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인 부정부패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사회에 만연된 이런(부정부패)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를 살려냈다 하더라도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12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것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투자 위한 채찍?
고용 위한 매질?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쓴소리를 두고 재계에서는 전방위 고강도 사정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재계가 지난해부터 미묘한 갈등을 빚었던 ‘사내 유보금’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그동안 재계에 투자를 적극 요청했다. 하지만 재계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내유보금을 풀지 않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분석기관인 CEO스코어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0대 그룹의 83개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총 537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6개월 전인 1분기의 508조7000억원에 비해 5.7% 증가한 규모다. 이 기간 유보율도 1679.1%에서 1733.6%로 54.5%포인트 상승했다.
 
기업들의 현금성자산 증가는 내수부진에 따른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상승에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국내 총설비투자는 2010년까지 상승세를 기록했으나 2010년 이후 4년째 120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2013년 설비투자액은 전년보다 5조원 감소했다.
 
 
이처럼 투자가 줄어들고 사내유보금이 증가하자 배당 등을 통해 주주에게 환원해 경기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하여 정부는 국민의 소득확대를 통해 경기회복을 이루는 순환구조를 구축한다는 명분 하에 배당 확대 정책을 펼쳤다. 기업이 자금을 쌓아두고만 있을 경우 자금 순환이 되지 않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배당확대 정책은 정부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총수일가와 외국인 투자자만 배당소득을 누리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정책목표와 어긋났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말 안 들으니 때릴 수밖에…길들이기?
기업이 두들겨 맞으면 경기 살아나나?
 
기업이 금고를 굳게 닫자 내수경기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사내유보금 과세 방안을 꺼내든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 차원에서 기업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인센티브 등 여러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 투자재원 확보 차원이라는 명분이었다.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재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의 거센 반발에 사내유보금 과세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재계의 엇박자는 근로자 임금 인상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올해 임금을 동결한 삼성전자가 그렇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SDS,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이 줄줄이 임금동결에 동참했다. 삼성SDI의 경우 1% 내외로 임금을 올렸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동결이나 마찬가지다.
 
삼성의 임금동결에 힘입은 재계는 임금동결을 이어갔다. SK이노베이션은 노조 투표를 통해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S-OIL도 올해 연봉계약서에 동결로 서명했다. 이처럼 재계는 내수진작을 강조한 정부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최경환 부총리는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며 “대기업의 임금인상이 당장 어렵다면 협력업체에 적정 대가 지급 등을 통해 자금이 중소 협력업체에 흘러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임금은 한 번 올리면 잘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는 기업부문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동반돼야 한다”고 정부에 역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재계 밀당
내수경기 물음표
 
최근 정부는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1%대로 낮췄다. 내수진작을 이끌겠다는 심산이지만 재계는 고요하다. 종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재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적 고려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 없이 대대적인 사정 칼날을 들이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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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