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이병기 국정원장을 임명했다.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은 과거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됐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 신임 비서실장은 어떤 인물일까? <일요시사>가 집중해부 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병기 국정원장을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은 과거 한나라당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됐었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전임 김기춘 비서실장이 많은 논란을 일으킨 끝에 물러났기 때문에 여권 내에서도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귀를 닫았다. 여권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당 인사
국민 무시?
당초 박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수차례 연기하며 장고를 거듭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이 이어지면서 비서실장 교체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장고 끝에 이 실장을 임명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 실장은 국정원장 임명 과정에서도 야권의 거센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사다.
당장 야권에서는 이번 인사를 ‘인사 참사’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4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민감한 시점에 또 한 번 악재가 터지면서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박계가 대통령을 탈당시키려 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도입된 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불거진 권력 주변 비리 의혹, 지지도 하락에 따른 집권당의 대선 전략 차질, 여권 대선후보와의 갈등, 야권의 요구 등의 이유로 재임 기간에 당적을 버린 바 있다.
끝까지 이해 못할 박근혜식 인사
과거 차떼기 주역을 비서실장으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왜 표 떨어지는 행동만 골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청와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현명관 마사회 회장이 비서실장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지만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시간에 쫓겨 별다른 검토도 없이 이 실장을 임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이 실장은 곧바로 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 실장은 오랫동안 박 대통령에게 각종 조언을 해온 친박계 중진이다. 이 실장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노태우정부 시절 시작됐다. 노태우정부에서 5년 임기 내내 문고리 실세로 불리는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을 지낸 이 실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을 좀 돌보시라”고 조언한 것을 계기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 실장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7년 당내 경선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때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 민정당 총재보좌역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 실장은 청와대 의전수석을 거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외교부 본부대사를 지내며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제2특보로 자리를 옮긴 후 1996년부터 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내고, 2014년 6월 국가정보정원장으로 내정됐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 실장에 대해 “26년간 국가정보부에서 일해 전문성이 있고, 외교관 출신으로 국제관계와 정무감각을 두루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김영삼정부에서 해외·북한을 담당하는 안기부 2차장으로 일하면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을 기획해 성공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실장은 과거 형사처벌 전력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커 야권의 공세가 예상된다.
이 실장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대선자금’ 전달책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대선이 있던 지난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정치특보로 있으면서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후보(현 새누리당 의원) 쪽에 5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4년 5월께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당시 벌금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취하한 뒤 결국 벌금을 모두 납부했다. 문제의 5억원은 여러 기업체로부터 ‘차떼기’로 거둬들인 불법정치자금 중 일부였다. 이러한 전력 탓에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비례대표에 도전했지만 낙천했다.
장고 거듭하더니 악수로 끝난 인사
야권 ‘인사 참사’ 총공세 모드로 전환
당시는 차떼기 사건에 따른 국민적 분노에 따라 한나라당이 ‘천막 당사’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며 읍소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천막당사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이 실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실장은 지난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의 사주를 받은 재미교포 사업가 윤홍준씨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이른바 북풍사건에 연관되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북풍사건은 이 실장이 근무했던 2차장 산하 203실(해외공작실)이 주도했지만 이 실장은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본인과 관련자들의 진술로 면죄부를 받았다.
차떼기 주역
또 한 번 면죄부
이 실장은 “윤씨의 기자회견 당시 대만에 체류 중이어서 전혀 몰랐다”며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뒤늦게 윤씨가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한 12월16일 이 실장이 국내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의 실체를 몰랐다는 당시 해명에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당장 야권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잘못된 인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대변인은 이날 “인사혁신을 통해 국정운영기조를 바꾸라는 국민 요구를 거부한 불통 인사, 국민 소통과 거리가 먼 회전문 인사”라면서 “소통과 국민통합에 매진해야 할 비서실장에 현직 국정원장을 임명해서 정보정치, 공안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모색하던 박 대통령은 이로써 또 한 번 인사문제로 발목이 잡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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