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모여사는' 수도권 차이나타운 지도

툭하면 칼부림 “낮 길도 무섭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장기 없는 토막시신 살인사건’ 피의자가 중국동포 박춘봉으로 밝혀지면서 중국동포(조선족)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은 추가 범죄를 우려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분위기에 중국동포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서로 눈치를 보며 불편한 공존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2년 전, 잔혹한 살인을 저질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원춘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일지역에서 끔찍한 사건이 재발해 지역주민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장기 없는 토막시신 살인사건’ 피의자는 오원춘과 마찬가지로 중국동포였다. ‘제노포비아(xeno phobia:외국인혐오증)’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또 중국동포 짓?
불신 넘어 혐오
 
최근 들어 중국동포에 의한 강력범죄가 증가하면서 중국동포 밀집지역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는 형국이다. 조선족은 동포가 아니라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도 난무하고 있다. 강력범죄 발생 시 자동적으로 조선족을 떠올리는 것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애꿏은 중국동포들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동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있는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서울 가리봉동과 대림동, 경기 수원과 안산 등에서 집단거주하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대표적인 안식처인 가리봉은 서울 최대의 차이나타운으로 꼽힌다. 음식부터 놀이까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가리봉 연변거리는 마치 섬과 같다. 인근 가산동만 해도 각종 쇼핑몰과 고층 건물이 빽빽하지만 가리봉동은 오래된 3∼4층 건물들만 즐비하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일명 ‘벌집촌’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외벽 일부가 허물어진 건 기본, 우중충한 동네 분위기는 수십 년 째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가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 지역보다 월등히 싼 임대료 때문이다. 보통 월 15만∼20만원 선으로 서울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중국동포들의 문화거리인 연변거리에는 노래방이 즐비하다.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연변거리 끝까지 들어선 노래방만 총 25곳에 달한다. 중국어 간판이 내걸린 PC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국동포들은 PC방에서 인터넷전화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리봉동에 중국동포들이 몰리기 시작한 시점은 80년대 후반이다. 당시 산업구조조정으로 인해 구로공단 내 많은 업체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가리봉동에 남아 있던 벌집 등에 극빈층이 유입됐다. 이후 90년대 말부터 조선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조선족 밀집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지금과 같은 낮은 임대료였다. 기존에 형성되었던 건설관련 일용직 인력시장과 교통 요건도 한몫했다.

70만 중국동포
“당혹스럽다”
 
‘가리봉’ 명칭의 유래는 주위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마을이 되었다는 설, 어원이 ‘고을’과 같은 의미인 ‘갈’ 또는 ‘가리’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가리’는 갈라졌다는 뜻으로 구로구의 전체적인 땅 모양이 바지가랑이처럼 갈라진 것과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리봉동은 조선 말기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가리산리였다. 이후 가리봉리로 바뀌었고 63년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가리봉동의 ‘가’와 독산동의 ‘산’을 따서 가산동이 됐다. 75년 가산동은 다시 가리봉동과 독산동으로 나뉘었고, 80년 구로구 신설로 편입됐다. 가리봉동의 북쪽과 동쪽은 구로동과 접해 있고, 서쪽과 남쪽은 남부순환로를 경계로 금천구 가산동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가리봉동은 ‘한강의 기적’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60만평 규모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국내 공업단지 제1호였다. 70∼80년대까지는 그랬다. 이후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섬유나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을 주로 생산하다 보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가리가 빠졌다. 결국 구로공단은 해체됐고 원주민들은 하나둘 가리봉을 떠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선족들이 들어오면서 ‘연변타운’을 형성했다. 
 
오원춘·박춘봉 잇단 잔혹살인 공포
중국동포 두려움 확산…불편한 공존
 
그리고 2002년, 정부는 자진 신고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6개월∼1년의 출국준비 기간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조선족들은 본격적으로 가리봉동에 몰리기 시작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것이다. 늘어난 조선족 때문에 원주민과의 마찰도 이따금씩 일어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가리봉동 일대에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10년 넘게 방치된 가리봉동을 다문화 동네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리봉동 주민의 1/3 정도는 조선족이다. 재생사업은 가리봉동을 5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중국동포시장과 연변거리는 시설 현대화를 통해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가리봉동이 과거 구로공단과 함께 세월을 겪은 전통 차이나타운이라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일자리를 잃은 조선족이 새롭게 모여드는 신흥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한국계 중국인과 중국인의 숫자는 영등포구가 3만7106명으로 구로구 2만9132명보다 약 1만명가량 더 많다. 이에 따라 중국은행인 ‘중국공상은행’이 서울 중구의 본점 외에 대림지점을 따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대림동 연변거리 주거지역 역시 벌집촌이 형성돼 있다. 다만 교통이 더 편리해 임대료는 좀 더 비싼 편이다. 직접계약이 일반적인 가리봉과 달리 대림동은 임대차 계약도 중개업소를 통해 이뤄진다. 대림동 연변거리는 ‘만남의 광장’으로 통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5만명 이상의 중국동포가 모여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중국동포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안정적인 생활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류 연장과 영주권 획득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출입국 해결사를 강조하는 문구를 내건 여행사만 50여곳에 달한다.
가리봉과 대림동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수원역 인근과 고등동, 매교동, 교동 일대 등도 차이나타운으로 통한다.
 
타 지역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4000여명의 중국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경기 시흥과 안산의 경우 외국인 공단이 형성돼 있어 중국동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 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불법 체류자촌’까지 생겼을 정도다. 때문에 불법체류자 관련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십년 지킨
그들의 터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 시흥과 안산의 경우 각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중되는 반면, 가리봉과 대림동, 수원 등은 오로지 중국동포들이 밀집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수원의 경우 저렴한 집값 때문에 중국동포들이 우선 이곳에서 정착한 이후 가리봉, 대림동 등 서울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알려진다. 
 
익히 알려진 중국동포 밀집지역 외에도 새로이 부상하는 지역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동포나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가리봉동이나 대림동 등에나 있을 법한 풍경들이 최근 들어 일부 대학 캠퍼스 주변에 스며든 것이다. 이는 ‘미니차이나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 인근에는 ‘다중 자창차오차이(가정식 볶음요리)’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동포와 중국인을 위한 전문 밥집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 인근에는 중국어 간판이 내걸린 노래방이 인기다. 일반 노래방에는 중국노래가 업데이트 돼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이곳에는 최신곡이 자주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많은 중국동포와 중국인 등 유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것이다.
 
가리봉, 대림동, 신길동…
‘메카’ 우범지역 인식 확대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장기체류 외국인은 136만7135명으로 외국인 등록자는 108만7512명이고 국내 거소를 신고한 외국 국적 동포는 27만9623명이다. 이 가운데 중국 국적은 74만5640으로 집계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경찰청에서 입수한 ‘2014년도 국정감사자료(2008년 이후 외국인범죄 현황)’을 보면 2008년 7월을 기준으로 외국인 범죄는 총 16만1389건이었다. 연도별 범죄건수는 지난 2008년 2만623건에서 2012년 2만4379건, 지난해 2만663건, 올해 1만6922건(7월 기준)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외국인들의 강력범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7년간 발생한 지역별 범죄건수는 서울이 5만1832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5만1332건, 경남 9100건, 인천 8976건, 부산 6915건 등의 순이었다. 국적별로는 중국동포가 9만3503명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1만2780명, 미국 1만226명, 태국 6179명, 필리핀 2771명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전체 범죄 중 5대 강력범죄(성폭력·살인·폭행·강도·절도) 비중이 꽤 높다는 점이다. 이 기간 국내 외국인의 5대 강력범죄 건수는 총 6만1512건으로 전체 범죄건수(16만6922건)에 견줘 38%나 차지했다. 특히 서울 구로와 영등포, 경기 안산단원, 시흥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은 이같은 외국인 범죄 쏠림현상이 심각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범죄는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잔혹한 수법의 외국인 범죄가 우리사회에 충격을 안겨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태도는 지양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범죄 대기 기소율은 외국인과 내국인 간 별 차이가 없다. 체류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 범죄 건수는 늘었지만 오히려 지난해 범죄율은 오히려 지난해에 전년보다 0.2% 낮았다.

배척하는 태도
지양해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내국인 범죄율(전체 인구 대비 범죄건수)은 약 1.97%인 데 비해 외국인은 그보다 낮은 약 0.8%에 그친다. 또한 합법체류자는 1.88%, 불법체류자는 1.13%의 범죄율을 보였다. “불법체류자가 범죄를 일으킨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통계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보면 실제로 외국인 범죄의 심각성은 다소 과장돼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동포에 대한 편향적인 언론보도로 인해 굳어진 선입견이 혐오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동포들이 밀집한 지역에 가거가 그들을 만나보면 우리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다문화 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로 인해 우리사회 전체로 퍼질 수 있는 ‘조선족 포비아(공포증)’나 혐오감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KKK단(미국의 인종차별주의 극우비밀조직)’이나 일본의 혐한단체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인난’ 비상 걸린 연변
“전부 한국으로 떠난다”
 
중국 내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에서 한국 등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서비스업계가 심각한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15일 현지 매체인 <연변일보>에 따르면 연변 주에서는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이나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로 대거 진출한 데다 연변에 남은 이들도 힘든 직종을 꺼려 종업원을 구하지 못하는 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연변 주 정부 소재지인 옌지시의 경우 당국이 올해 2014년 7∼9월 시내 인력 수급 상황을 조사한 결과 서비스업 구직자 수는 2273명이지만 구인수요는 37895명으로 1.5배가 많았다. 특히 음식점 종업원, 판매원, 청소원은 구직자 수가 구인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변 주에서는 중·장년층의 외지 유출로 조선족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난뿐만 아니라 가족 해체와 젊은이들의 과소비, 사회 부적응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연변 주에서는 지난해 총 1만9500쌍이 혼인신고를 하고 7800쌍이 이혼수속을 마쳐 연간 이혼율이 40%나 됐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도 부부 한쪽이 오랜 외지생활을 하면서 생긴 불화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지 매체들은 외국에 나간 부모가 연변에 혼자 남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에 중국 대졸자 평균 초임보다 많은 매월 3000∼4000위안(54만∼72만원)을 보내다 보니 과소비와 취업 기피 풍조가 만연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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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20%대 지지율로 고전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에선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국면 전환용’이라고 꼬집었다. 개발 성공률 20%에 5000억원이 넘는 시추 비용을 베팅한 윤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서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희 시즌2 사업성 논란 동해 인근 석유·가스 도출 지역을 표기한 대형 스크린까지 동원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발표한 석유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극명한 평가가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쯤 윤곽이 나올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했던 안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53조원으로,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의 가치가 약 2260조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해당 소식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윤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대해 “확률이나 가능성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기대를 갖고 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고 첫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 기관이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과정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반면 야권은 ‘지지율 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석유·가스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물리탐사만으로는 정확한 매장량을 추정할 수 없고, 상업성을 확보한 ‘확인 매장량’ 규모가 실제 얼마나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 약 7년서 10년이 소요된다”고 꼬집었다. 조국혁신당의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윤 대통령은 보고를 듣자마자 바닥 수준인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보였느냐”고 지격했다. ‘1호 영업사원’ 대통령 그림은? 2260조원 잭팟? 관심 끌기용? 앞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10 총선 이후 지금까지 ‘20~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지난달 10일 발표한 ‘취임 2주년’ 지지율서도 24%를 기록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국민의힘의 윤상현 의원 등도 지난달 7일 진행된 ‘정부 2주년 평가’ 세미나를 통해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기조를 대통령이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남은 3년이 달렸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 성적은 더 비참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내부의 위기감이 상승한 분위기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함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서 ‘동해 석유’ 카드는 국민 여론을 반전시킬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오는 6~7일 공휴일 관계로 한국갤럽과 NBS(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용산에선 지지율을 만회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의 말대로 용산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 당까지 같이 타격을 입게 된다. 당정 모두 한숨을 돌린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박정희정부 때에도 시추를 착수했던 곳이다. 그러나 1975년 당시 시추공서 흘러나온 시커먼 액체가 ‘원유’라는 명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석유 발견 해프닝’으로 끝났다. 일각에선 ‘석유 매장’ 기대감이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석유의 실제 매장량을 알기 위해선 최소 5개(1개당 1000억원 소요)의 시추공을 뚫어봐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놓고 결과물이 없다면 국민적 반감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6년 1월 기자회견서 “포항서 석유가 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드러났다. 장밋빛 미래? 국면 전환용?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지난 3일 <시사인>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인’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포항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며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유전과 가스가 매장된 게 사실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박정희 시즌2’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이렇게 바닥을 친 적은 없다”며 “오죽 급했으면 포항에 유전 가능성을 (윤 대통령이) 얘기했겠나”라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이날 <조갑제닷컴>에 “윤석열의 포항 앞바다 유전 가능성 발표와 박정희의 포항 석유 대소동이 겹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전 대표는 당시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하며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 등의 기사를 통해 포항에 원유가 매장돼있더라도 극소수이거나 경제성이 없다고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조 전 대표는 글에서 “박정희는 정유를 원유로 오인, 포항서 양질의 석유가 나왔다고 발표했다”며 “윤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 대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는 걸 보고 1976년의 일이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전 발견은 물리탐사가 아니라 시추로 확인되는 것인데 물리탐사에만 의존해 꿈 같은 발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실패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표는 이튿날인 4일에도 글을 올려 “140억배럴 초대형 유전 발견이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무리가 행해질 것이고 윤 대통령의 지도력은 희화화될 가능성이 대유전 발견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항 영일만 일대는 약 반세기 전 경제성이 낮다고 포기한 지역인데,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 것은 탐사기술 개발의 진전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현재로선 추정만 있을 뿐, 시추로 확인된 것은 아닌 만큼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서 물리탐사 자료의 심층분석을 수행한 ‘액트지오’(Act-Geo) 사에 대해서도 누리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액트지오 텍사스에 위치한 에너지 컨설턴트 회사로 엑손모빌, 토탈 등 주요 석유기업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명시돼있다. 액트지오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지도를 보면 이들이 의뢰를 수행한 지역 중 한국의 동해 부분이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액트지오는 빅터 아브레우(Victor Abreu) 박사가 설립한 ‘아브레우 컨설팅’이 그 모체다. ‘액트지오’ 무슨 회사? 액트지오의 설립자 빅터 아브레우 박사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서 탐사팀의 리더로 근무하며 남미 가이아나 지역의 리자-1 유정 외에도 카스피해, 가나 지역서 석유탐사를 주도했다. 또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라이스대학교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국제퇴적학회의(IAS) 의장과 퇴적지질학회(SEPM) 회장 등 지질학 관련 학술 단체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방한한 아브레우 박사는 윤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다는 발표가 나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동해안 심해 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브레우 박사가 당시 대표로 있던 분석업체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을 맡겼다. 액트지오는 자체분석을 거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석유공사에 전달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는 지난 4일 국내 매체와 인터뷰서 “(액트지오는)이 분야의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브레우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서 <연합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서 “한국의 SNS 등에서 액트지오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아브레우 대표는 “우리는 이 업계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며 “고객사로 엑손모빌, 토탈과 같은 거대 기업과 아파치, 헤스, CNOOC(중국해양석유), 포스코, YPF(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기업), 플러스페트롤, 툴로우 등 성공적인 기업들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액트지오에 대해 “전 세계 심해 저류층 탐사에 특화된 ‘니치’(niche·틈새 시장) 회사”라며 “전통적인 컨설팅 회사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의 사업전략은 작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건물을 소유하거나 여러명의 부사장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서 일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액트지오가 주로 심해의 석유 구조 존재를 확인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일을 수행한다. 핵심 분야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업 방식에 대해 “능력을 갖춘 석유 관련 지구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이 있는데, 여러 국가를 원격으로 연결해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도 침 흘린 영일만 또 천공 그림자가 보인다 윤 대통령이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을 깜짝 발표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당 원내대책회의서 “(어제)예정에도 없는 일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브리핑을 했다”며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발표 뒤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고 주장한 유튜브 영상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천공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에 올라온 영상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라는 제목의 영상 강연서 “우리는 산유국이 안 될 것 같냐. 앞으로 (산유국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며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도 주장했다. 천공은 “(과거에는)거기 손댈 수 있는 만큼의 기술도 없었고 척도도 안 됐고, 지금은 그런 척도가 다 일어나”라며 “대한민국 밑에는 아주 보물 덩어리로 대한민국은 이 한반도는, 인류서 최고 보물이 여기 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석유 개발 발표에 지난 4일 오전 석유·가스개발과 관련된 종목들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25% 급등하며 4만8000원대에 진입했다.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 1㎞ 심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와 석유공사는 올해 말 첫 시추를 추진하며 2026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시추공을 뚫게 된다. 시추선은 이미 확보된 상태며, 첫 시추 결과는 내년 3~4월에 나올 전망이다. 이정환 전남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비유하자면 현재는 병원서 초음파 검사만 한 상황이다. 의사가 혹을 발견했는데 암인지 물혹인지는 조직검사(시추)를 해봐야 안다”며 “시추 성공률은 10%를 밑돌기도 한다. 탐사 결과가 좋게 나와도 시추는 실패할 수 있기에 성공 확률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성공 확률이)20%가 맞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면서도 “지난해 영국서 시추 계획을 승인한 게 100건이 넘는데 그 가운데 상업화까지 갈 유전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각계 반응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들은 모두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발표 조사(지난달 7∼9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의 응답률은 11.2%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다. 그후 31일 발표 조사(같은 달 28~30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의 응답률은 11.1%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