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켰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혜화동 공관 행사 이용 내역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했다. 서울시 측은 <일요시사>의 정보공개 요청에도 해당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버티다가 본지가 이의신청까지 하자 결국 자료를 공개했다. 혜화동 공관에서는 그동안 어떤 행사들이 치러졌던 것일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012년 초부터 2013년 말까지 약 2년간 혜화동 공관에서 77차례나 만찬행사를 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공관 만찬을 위해 사용된 혈세는 9651만5000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행사비는 대부분 식대로 쓰였는데 한번 행사를 열 때마다 1인당 평균 3만5000원이 넘는 식사가 제공된 것이다. 박 시장이 그동안 만찬행사에 초대한 사람은 2753명이나 된다.
면죄부 준 검찰
전임 시장들도 종종 공관에서 만찬행사를 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주, 또 대규모로 만찬을 연 것은 박 시장이 처음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지자체장의 기부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7일 혜화동 공관 행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관에서 있었던 모든 행사를 ‘직무상 행위’로 인정해준 것이다. 당장 박 시장과 각을 세워왔던 보수진영에선 검찰이 박 시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편 <일요시사>는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켰던 혜화동 공관 행사내역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당초 서울시 측은 본지의 정보공개요청에 대해 검찰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자료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본지가 이의신청까지 하자 마지못해 자료를 내놨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0월 재보선을 통해 당선된 박 시장은 다음해인 2012년 3월31일 토요일에 처음 공관에서 만찬행사를 열었다. 행사목적은 총무과 직원을 격려하기 위한 간담회였다. 서울시 직원 등 38명이 참석했고 95만원이 행사비로 쓰였다. 그런데 박 시장은 4월에는 무려 9차례나 각종 간담회 명목으로 공관 만찬행사를 열었다. 3일에 한 번꼴이다.
2012년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는 3일 연속으로 만찬을 열기도 했다. 게다가 다음 달에는 행사 빈도가 더욱 잦아졌다. 박 시장은 2012년 5월 한 달간 간담회나 의견수렴 명목으로 17차례나 만찬을 열었다. 하루걸러 하루씩 거의 매일 만찬행사가 열린 셈이다.
민간자원 연계방안에 대해 정책협의를 하겠다며 관계자 100명을 초청해 대규모 만찬을 열기도 했고, 주요시정에 대한 정책협의를 하겠다며 국회의원들을 불러모아놓고 만찬을 열기도 했다. 만찬의 메뉴는 행사 때마다 달랐다. 서울시 측에 따르면 주로 출장뷔페를 불러 만찬을 했고, 때론 스테이크 종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을 땐 1인당 4만원가량의 행사비를 지출해 평소보다 비싼 메뉴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2012년 5월 이후 공관 만찬의 빈도수는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박 시장은 공관 이전을 앞둔 2013년 11월 다시 한 달간 10차례나 만찬을 개최하기도 했다.
"무혐의 처분, 선거법 기반 무너뜨린 것"
"간담회 때 식사 제공해야 할 말 하나?"
그동안 있었던 혜화동 공관 행사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됐던 행사는 2013년 10월30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였다. 이날 행사에서 박 시장은 언론인 등 145명을 모아놓고 한끼 식사에 563만원을 썼다. 두 번째로 많은 지출을 한 행사 역시 출입기자단 간담회였다. 2012년 5월31일 열렸던 해당 행사에는 언론인 등 120명이 초청됐으며 435만원이 쓰였다.
눈에 띄는 것은 박 시장이 2013년 10월30일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연 후 불과 2주 만인 11월13일에 시청 출입 언론인 26명을 따로 불러 또 한 번 만찬을 열었다는 것이다. 기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지만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연 후 불과 2주 만에 또다시 만찬을 연 것은 다소 이상한 부분이었다. 박 시장은 2012년 5월 출입기자단 간담회가 열리기 20여일 전에도 시정홍보자문정책협의 간담회라는 명목으로 역시 언론인 등 20명을 따로 불러 미리 만찬을 즐겼다.
1인당 식사비가 가장 많이 지출됐던 행사는 2013년 11월8일 열렸던 주한미국대사 초청 간담회였다. 이날 행사에는 주한미국대사 등 4명이 참석했는데 79만원이 행사비로 지출됐다. 1인당 식사비로 20만원 가까이 지출한 셈이다.
박 시장의 공관 만찬행사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공관 만찬을 직무상 행위로 보는 것은 공직선거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저도 구청장을 지내봤지만 간담회 때 식사를 제공할 수가 없다. 대부분 집무실이나 강당 등 공개된 장소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기껏해야 간단한 다과 정도가 제공된다. 법적 근거도 없이 대량의 인원을 반복적으로 불러 만찬을 연 것은 향응제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도 “물론 시장이 시민들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이지만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면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할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만찬행사를 연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이젠 전국 지자체장들이 너도나도 간담회 명목으로 만찬을 열고 혈세를 펑펑 써도 제재할 근거가 사라졌다. 어차피 자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만찬행사를 자주 열수록 선거에는 유리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만찬정치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뜻 아니겠냐”며 “이전 시장들도 호텔에서 종종 만찬행사를 열었는데 박 시장은 소박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공관에서 행사를 연 것이다. 행사 1회당 사용되는 행사비는 오히려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논란
한편 박 시장은 2014년 초 아파트형인 은평구 임시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더 이상 만찬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곧 지하 1층, 지상 2층, 대지660㎡(약 200평) 규모의 가회동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면서 박 시장의 만찬정치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해당 공관의 전세가는 28억원으로 전국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전용면적 244.66㎡) 아파트(23억원)보다 전세금이 더 비싸다. 보수진영에선 박 시장이 비싼 전세금을 주고 가회동 공관으로 옮기려는 것은 만찬정치를 계속 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가회동 공관으로의 이주 목적에 대해 국내·외 주요인사 접견 등 대외협력업무의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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