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대기업 이색사업 백태

불황이라…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내 대기업들은 저마다 주력사업을 갖고 있다. 계열사의 성격도 이를 따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부 기업은 주력 사업과 별도로 이색사업을 벌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무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다소 쌩뚱 맞은 신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하이트진로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서영이앤티가 올해 들어 주력 영위업종인 술 사업과 전혀 무관한 키즈사업에 발을 들였다. 술과 아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뒷말이 무성하다. 하이트진로그룹은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 비중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마이너스 실적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해 급감한 매출을 만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아리송한 계열사
같은 식구 맞나?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영이앤티는 지난 4월 이사회를 열고 캐릭터 사업과 키즈카페 및 테마타크 운영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하는 ‘딸기가 좋아’를 인수했다. 현재 지점을 10여개로 늘리는 등 키즈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서영이앤티는 생맥주를 시원하게 만드는 냉각기계와 호프집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캔 모양의 생맥주통, 생맥주를 따르는 생맥주 밸브 등 생맥주 관련 기자재의 제조·판매가 주력사업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줄곧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유산균 발효유 전문업체로 야쿠르트, 우유, 음료 등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한국야쿠르트는 로봇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관절 수술로봇 ‘로보닥’을 내년까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한국야쿠르트는 2011년 500억원을 투자해 인공관절 수술로봇을 보유하고 있는 코스닥 상장업체 큐렉소를 인수했다. 당시 한국야쿠르트는 큐렉소 유상증자에 300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200억원을 투자하면서 헬스케어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큐렉소의 로보닥 제작과 연구는 미국 내 자회사인 씽크써지컬(Think Surgical, Inc/이하TSI)가 맡고 있으며 본사는 국내 영업을 포함해 총괄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수술분야는 인공관절 치환술로 무릎(슬관절)과 엉덩이(고관절) 뼈가 대상이다. 현재 큐렉소는 고관절 치환술에대해서는 FDA 승인을 받았으며 슬관절 치환술은 임상을 통해 내년께 FDA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기존 구형 로보닥은 유럽 인증을 통해 독일과 국내, 일본에 공급되고 있다.
 
 
로보닥을 이용해 인공관절 수술을 진행하면 뼈를 깎는 과정에서 정확도가 높아져 기존 수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술오차와 재수술률을 낮추며 수술 후 예후가 좋다. 망가진 연골을 인공관절로 대체하기 위해 잘라내는 과정에서 의사들은 톱을 사용하지만 로봇은 밀링(milling) 방식으로 깎아 정확하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일부 전문의들은 임상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야쿠르트는 큐렉소를 인수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함께 국내 생산 체계도 갖췄다. 이전에는 전량을 미국에서 생산했지만 현대중공업이 로봇본체와 제어기 등 핵심장치 국내 양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뚜렷한 성장세가 보이지 않았다. 2007년 FDA 승인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에 나섰지만 판매량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맥주회사가 키즈사업
음료회사가 로봇사업
 
문제는 20억원을 투자해 장비를 구입하고도 수익을 더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보건당국이 수술로봇에 드는 추가비용을 인정하지 않아 의사 손으로 수술을 했을 때와 같은 비용을 받는다.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건당 평균 1000만원의 수술비를 환자로부터 받는 ‘다빈치’와는 다른 점이다. 다빈치는 2005년 허가받아 유통되기 시작한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의 복강경 수술로봇이다. 전세계적으로 1200여대 가까이 보급됐다. 한국야쿠르트의 로봇사업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큐렉소는 핵심 자회사인 TSI에 640억원 규모의 대규모 자금을 수혈했다. 한국야쿠르트는 2011년 큐렉소 인수 이후 로보닥사업에 1500억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며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큐렉소의 최대주주는 36.98%를 가진 한국야쿠르트이며, 큐렉소는 TSI 지분 48.61%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구조 상으로는 TSI는 큐렉소의 자회사이지만 실제 수술로봇사업은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의 TSI에서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야쿠르트의 수술로봇사업은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큐렉소는 2011년 71억원, 2012년 142억원, 2013년 13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대부분 로봇사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TSI는 올 상반기에 3억3000만원의 매출과 8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상반기 말 기준 자본총계는 10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적자가 계속되자 로봇 관련 사업 외에도 한국야쿠르트와 팔도에 발효유 원재료를 공급하는 무역업을 영위하고 있는 매출액의 약 90%가 무역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수술 로봇분야의 초기 시장 개척에 있어 대규모 적자는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황 악화…
때 기다린다?
 
담배 및 인삼에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는 민영기업인 KT&G는 2011년 소망화장품을 인수했다. 같은 해 자회사 KGC라이프앤진은 프리미엄 한방 화장품 ‘동인비’를 론칭하며 화장품 사업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13년에는 ‘오늘(onl)’이라는 브랜드숍 시장에 내놨으나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 들어 4월과 6월에만 신촌점과 명동 1호점을 정리했다. 대표 상관에서 매장을 철수한 것은 부진을 방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달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소망화장품은 KT&G가 인수한 지난 2011년 이후 실적흐름이 더 악화됐다. 올해 상반기 42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13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26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은 26억원 규모였지만 간신히 손실을 면했다. 이 같은 실적 흐름은 KT&G가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던 시점과 비교했을 때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2011년 매출규모는 1198억원으로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은 두 배 이상 큰 52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도 11억원으로 수익성 측면에서도 현재보다는 나은 수준이었다.
 
주력업과 동떨어진 신사업 왜?
도전장 냈지만…깊어지는 한숨

 
KT&G는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며 사업확장을 꾀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신사업인 화장품사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중이며 브랜드 구축 실패로 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아직 인수 효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하지만 KT&G가 인수 이후 소망화장품에 대한 뚜렷한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망화장품을 인수한 지난 2011년 말부터 최근까지 KT&G가 크고 작은 악재에 시달려 내부 상황을 수습하기도 바쁜 탓이다. 주력사업인 담배와 홍삼사업이 부진을 겪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CEO 재임 논란에 이어 배임 혐의까지 잡음이 많았다.
 
국내 페인트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KCC는 최근 화장품용 실리콘 사업에 뛰어들었다. KCC는 이를 위해 영국의 실리콘 업체 바질돈(Basildon)을 인수했다. 이어 ‘KCC뷰티’라는 브랜드까지 선보이는 등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KCC가 만드는 화장품용 실리콘은 ‘순수한 실리콘’ 성분으로 구성된 크로스폴리머 블랜드 제품에서부터 주름과 모공 개선, 피지 흡수 등 특수효과를 내는 크로스폴리머 파우더 제품군까지 다양하다. 이들 제품은 모든 화장품에 들어간다. 샴푸, 로션, 에센스, 페이스파우더, 립스틱, 선크림 등. KCC측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유니레버 등 국내외 유수 화장품 업체들에 납품하며 연간 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연결고리 희미
성과도 마찬가지
 

국내 3위권 페인트 업체인 삼화페인트공업도 주력인 페인트 사업 외에 IT솔루션 관련 서비스업에 도전장을 내밀어 관심을 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의 기획부터 개발, 구축, 운영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서비스산업은 삼성SDS, LG, CNS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러한 시장에서 삼화페인트는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등 첨단 IT시장이다. 이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가 증대됨에 따라 시장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페인트 전문업체들이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페인트 업계는 수년째 업체별 시장점유율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 특별한 반전이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야만 실적이 오른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 전문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영창뮤직을 인수했다. 그러나 영창악기는 4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모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회사를 운영하는 차입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영창뮤직은 지난해 117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4년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침체의 영향과 더불어 영창뮤직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진출 법인의 실적도 최근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 없으면
살아남지 못해
 
수년간의 적자로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하자 영창뮤직은 모기업에 SOS를 날려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영창개발을 인수한 뒤 2012년 50억원대 유상증자로 긴급 자금을 수혈한 뒤 2년 연속 75억원대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문제는 실적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창뮤직은 실적 개선을 위해 유통망 확대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쉬운 상황은 아니다. 영창뮤직은 지난 3년간 64억원의 이자 비용을 지출했다.
 

이처럼 일부 대기업들은 주력 사업과 별도로 다양한 분야에 신사업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형국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기업 신사업 주의보
‘7가지 바이러스’ 보니…
 
지난달 21일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신사업 성공을 막는 7가지 바이러스’보고서에서 “지난 4∼5년간 거의 모든 대기업이 녹색사업을 위시한 정부의 신성장 동력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으나 중도에 사업을 접거나 유보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사업 발굴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장애물로 ‘레밍스 바이러스’와 ‘집단사고 바이러스’를 들었다.
 
레밍스는 북유럽에 서식하는 나그네 쥐로, 개체 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레밍스 바이러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신사업분야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오류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집단사고 바이러스는 조직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의견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을 채택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기획 단계에서는 성공을 확신해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자기확증 바이러스, “오늘은 잃었으니 내일은 따겠지”라는 기대감에 여러 사업을 벌이는 갬블러 바이러스, 정교한 사업모델과 마케팅 전략이 없어도 성능과 품질만 좋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좋은 쥐덫’ 바이러스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지적됐다.
 
사업성이 없는데도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아깝거나 주위의 비난이 두려워 제때 중단하지 못하는 ‘흰 코끼리’(처치 곤란한 물건) 바이러스와 시장 상황이 변했는데도 계획대로만 밀고 나가는 돈키호테 바이러스가 실행 단계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제시됐다. 예컨대 웅진과 STX그룹의 몰락은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신사업을 밀어붙이다가 그룹이 감당할 수 있는 관리 범위와 역량을 넘어선 데서 비롯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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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20%대 지지율로 고전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에선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국면 전환용’이라고 꼬집었다. 개발 성공률 20%에 5000억원이 넘는 시추 비용을 베팅한 윤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서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희 시즌2 사업성 논란 동해 인근 석유·가스 도출 지역을 표기한 대형 스크린까지 동원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발표한 석유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극명한 평가가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쯤 윤곽이 나올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했던 안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53조원으로,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의 가치가 약 2260조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해당 소식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윤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대해 “확률이나 가능성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기대를 갖고 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고 첫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 기관이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과정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반면 야권은 ‘지지율 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석유·가스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물리탐사만으로는 정확한 매장량을 추정할 수 없고, 상업성을 확보한 ‘확인 매장량’ 규모가 실제 얼마나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 약 7년서 10년이 소요된다”고 꼬집었다. 조국혁신당의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윤 대통령은 보고를 듣자마자 바닥 수준인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보였느냐”고 지격했다. ‘1호 영업사원’ 대통령 그림은? 2260조원 잭팟? 관심 끌기용? 앞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10 총선 이후 지금까지 ‘20~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지난달 10일 발표한 ‘취임 2주년’ 지지율서도 24%를 기록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국민의힘의 윤상현 의원 등도 지난달 7일 진행된 ‘정부 2주년 평가’ 세미나를 통해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기조를 대통령이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남은 3년이 달렸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 성적은 더 비참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내부의 위기감이 상승한 분위기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함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서 ‘동해 석유’ 카드는 국민 여론을 반전시킬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오는 6~7일 공휴일 관계로 한국갤럽과 NBS(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용산에선 지지율을 만회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의 말대로 용산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 당까지 같이 타격을 입게 된다. 당정 모두 한숨을 돌린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박정희정부 때에도 시추를 착수했던 곳이다. 그러나 1975년 당시 시추공서 흘러나온 시커먼 액체가 ‘원유’라는 명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석유 발견 해프닝’으로 끝났다. 일각에선 ‘석유 매장’ 기대감이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석유의 실제 매장량을 알기 위해선 최소 5개(1개당 1000억원 소요)의 시추공을 뚫어봐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놓고 결과물이 없다면 국민적 반감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6년 1월 기자회견서 “포항서 석유가 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드러났다. 장밋빛 미래? 국면 전환용?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지난 3일 <시사인>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인’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포항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며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유전과 가스가 매장된 게 사실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박정희 시즌2’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이렇게 바닥을 친 적은 없다”며 “오죽 급했으면 포항에 유전 가능성을 (윤 대통령이) 얘기했겠나”라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이날 <조갑제닷컴>에 “윤석열의 포항 앞바다 유전 가능성 발표와 박정희의 포항 석유 대소동이 겹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전 대표는 당시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하며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 등의 기사를 통해 포항에 원유가 매장돼있더라도 극소수이거나 경제성이 없다고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조 전 대표는 글에서 “박정희는 정유를 원유로 오인, 포항서 양질의 석유가 나왔다고 발표했다”며 “윤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 대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는 걸 보고 1976년의 일이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전 발견은 물리탐사가 아니라 시추로 확인되는 것인데 물리탐사에만 의존해 꿈 같은 발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실패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표는 이튿날인 4일에도 글을 올려 “140억배럴 초대형 유전 발견이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무리가 행해질 것이고 윤 대통령의 지도력은 희화화될 가능성이 대유전 발견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항 영일만 일대는 약 반세기 전 경제성이 낮다고 포기한 지역인데,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 것은 탐사기술 개발의 진전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현재로선 추정만 있을 뿐, 시추로 확인된 것은 아닌 만큼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서 물리탐사 자료의 심층분석을 수행한 ‘액트지오’(Act-Geo) 사에 대해서도 누리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액트지오 텍사스에 위치한 에너지 컨설턴트 회사로 엑손모빌, 토탈 등 주요 석유기업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명시돼있다. 액트지오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지도를 보면 이들이 의뢰를 수행한 지역 중 한국의 동해 부분이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액트지오는 빅터 아브레우(Victor Abreu) 박사가 설립한 ‘아브레우 컨설팅’이 그 모체다. ‘액트지오’ 무슨 회사? 액트지오의 설립자 빅터 아브레우 박사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서 탐사팀의 리더로 근무하며 남미 가이아나 지역의 리자-1 유정 외에도 카스피해, 가나 지역서 석유탐사를 주도했다. 또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라이스대학교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국제퇴적학회의(IAS) 의장과 퇴적지질학회(SEPM) 회장 등 지질학 관련 학술 단체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방한한 아브레우 박사는 윤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다는 발표가 나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동해안 심해 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브레우 박사가 당시 대표로 있던 분석업체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을 맡겼다. 액트지오는 자체분석을 거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석유공사에 전달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는 지난 4일 국내 매체와 인터뷰서 “(액트지오는)이 분야의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브레우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서 <연합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서 “한국의 SNS 등에서 액트지오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아브레우 대표는 “우리는 이 업계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며 “고객사로 엑손모빌, 토탈과 같은 거대 기업과 아파치, 헤스, CNOOC(중국해양석유), 포스코, YPF(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기업), 플러스페트롤, 툴로우 등 성공적인 기업들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액트지오에 대해 “전 세계 심해 저류층 탐사에 특화된 ‘니치’(niche·틈새 시장) 회사”라며 “전통적인 컨설팅 회사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의 사업전략은 작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건물을 소유하거나 여러명의 부사장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서 일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액트지오가 주로 심해의 석유 구조 존재를 확인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일을 수행한다. 핵심 분야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업 방식에 대해 “능력을 갖춘 석유 관련 지구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이 있는데, 여러 국가를 원격으로 연결해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도 침 흘린 영일만 또 천공 그림자가 보인다 윤 대통령이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을 깜짝 발표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당 원내대책회의서 “(어제)예정에도 없는 일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브리핑을 했다”며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발표 뒤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고 주장한 유튜브 영상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천공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에 올라온 영상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라는 제목의 영상 강연서 “우리는 산유국이 안 될 것 같냐. 앞으로 (산유국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며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도 주장했다. 천공은 “(과거에는)거기 손댈 수 있는 만큼의 기술도 없었고 척도도 안 됐고, 지금은 그런 척도가 다 일어나”라며 “대한민국 밑에는 아주 보물 덩어리로 대한민국은 이 한반도는, 인류서 최고 보물이 여기 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석유 개발 발표에 지난 4일 오전 석유·가스개발과 관련된 종목들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25% 급등하며 4만8000원대에 진입했다.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 1㎞ 심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와 석유공사는 올해 말 첫 시추를 추진하며 2026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시추공을 뚫게 된다. 시추선은 이미 확보된 상태며, 첫 시추 결과는 내년 3~4월에 나올 전망이다. 이정환 전남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비유하자면 현재는 병원서 초음파 검사만 한 상황이다. 의사가 혹을 발견했는데 암인지 물혹인지는 조직검사(시추)를 해봐야 안다”며 “시추 성공률은 10%를 밑돌기도 한다. 탐사 결과가 좋게 나와도 시추는 실패할 수 있기에 성공 확률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성공 확률이)20%가 맞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면서도 “지난해 영국서 시추 계획을 승인한 게 100건이 넘는데 그 가운데 상업화까지 갈 유전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각계 반응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들은 모두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발표 조사(지난달 7∼9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의 응답률은 11.2%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다. 그후 31일 발표 조사(같은 달 28~30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의 응답률은 11.1%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