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대기업 이색사업 백태

불황이라…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내 대기업들은 저마다 주력사업을 갖고 있다. 계열사의 성격도 이를 따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부 기업은 주력 사업과 별도로 이색사업을 벌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무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다소 쌩뚱 맞은 신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하이트진로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서영이앤티가 올해 들어 주력 영위업종인 술 사업과 전혀 무관한 키즈사업에 발을 들였다. 술과 아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뒷말이 무성하다. 하이트진로그룹은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피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 비중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마이너스 실적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해 급감한 매출을 만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아리송한 계열사
같은 식구 맞나?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영이앤티는 지난 4월 이사회를 열고 캐릭터 사업과 키즈카페 및 테마타크 운영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하는 ‘딸기가 좋아’를 인수했다. 현재 지점을 10여개로 늘리는 등 키즈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서영이앤티는 생맥주를 시원하게 만드는 냉각기계와 호프집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캔 모양의 생맥주통, 생맥주를 따르는 생맥주 밸브 등 생맥주 관련 기자재의 제조·판매가 주력사업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줄곧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유산균 발효유 전문업체로 야쿠르트, 우유, 음료 등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한국야쿠르트는 로봇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관절 수술로봇 ‘로보닥’을 내년까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한국야쿠르트는 2011년 500억원을 투자해 인공관절 수술로봇을 보유하고 있는 코스닥 상장업체 큐렉소를 인수했다. 당시 한국야쿠르트는 큐렉소 유상증자에 300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200억원을 투자하면서 헬스케어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큐렉소의 로보닥 제작과 연구는 미국 내 자회사인 씽크써지컬(Think Surgical, Inc/이하TSI)가 맡고 있으며 본사는 국내 영업을 포함해 총괄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수술분야는 인공관절 치환술로 무릎(슬관절)과 엉덩이(고관절) 뼈가 대상이다. 현재 큐렉소는 고관절 치환술에대해서는 FDA 승인을 받았으며 슬관절 치환술은 임상을 통해 내년께 FDA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기존 구형 로보닥은 유럽 인증을 통해 독일과 국내, 일본에 공급되고 있다.
 
 
로보닥을 이용해 인공관절 수술을 진행하면 뼈를 깎는 과정에서 정확도가 높아져 기존 수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술오차와 재수술률을 낮추며 수술 후 예후가 좋다. 망가진 연골을 인공관절로 대체하기 위해 잘라내는 과정에서 의사들은 톱을 사용하지만 로봇은 밀링(milling) 방식으로 깎아 정확하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일부 전문의들은 임상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야쿠르트는 큐렉소를 인수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함께 국내 생산 체계도 갖췄다. 이전에는 전량을 미국에서 생산했지만 현대중공업이 로봇본체와 제어기 등 핵심장치 국내 양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뚜렷한 성장세가 보이지 않았다. 2007년 FDA 승인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에 나섰지만 판매량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맥주회사가 키즈사업
음료회사가 로봇사업
 
문제는 20억원을 투자해 장비를 구입하고도 수익을 더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보건당국이 수술로봇에 드는 추가비용을 인정하지 않아 의사 손으로 수술을 했을 때와 같은 비용을 받는다.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건당 평균 1000만원의 수술비를 환자로부터 받는 ‘다빈치’와는 다른 점이다. 다빈치는 2005년 허가받아 유통되기 시작한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의 복강경 수술로봇이다. 전세계적으로 1200여대 가까이 보급됐다. 한국야쿠르트의 로봇사업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큐렉소는 핵심 자회사인 TSI에 640억원 규모의 대규모 자금을 수혈했다. 한국야쿠르트는 2011년 큐렉소 인수 이후 로보닥사업에 1500억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며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큐렉소의 최대주주는 36.98%를 가진 한국야쿠르트이며, 큐렉소는 TSI 지분 48.61%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구조 상으로는 TSI는 큐렉소의 자회사이지만 실제 수술로봇사업은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의 TSI에서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야쿠르트의 수술로봇사업은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큐렉소는 2011년 71억원, 2012년 142억원, 2013년 13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대부분 로봇사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TSI는 올 상반기에 3억3000만원의 매출과 8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상반기 말 기준 자본총계는 10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적자가 계속되자 로봇 관련 사업 외에도 한국야쿠르트와 팔도에 발효유 원재료를 공급하는 무역업을 영위하고 있는 매출액의 약 90%가 무역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수술 로봇분야의 초기 시장 개척에 있어 대규모 적자는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황 악화…
때 기다린다?
 
담배 및 인삼에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는 민영기업인 KT&G는 2011년 소망화장품을 인수했다. 같은 해 자회사 KGC라이프앤진은 프리미엄 한방 화장품 ‘동인비’를 론칭하며 화장품 사업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13년에는 ‘오늘(onl)’이라는 브랜드숍 시장에 내놨으나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 들어 4월과 6월에만 신촌점과 명동 1호점을 정리했다. 대표 상관에서 매장을 철수한 것은 부진을 방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달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소망화장품은 KT&G가 인수한 지난 2011년 이후 실적흐름이 더 악화됐다. 올해 상반기 42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13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26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은 26억원 규모였지만 간신히 손실을 면했다. 이 같은 실적 흐름은 KT&G가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던 시점과 비교했을 때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2011년 매출규모는 1198억원으로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은 두 배 이상 큰 52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도 11억원으로 수익성 측면에서도 현재보다는 나은 수준이었다.
 
주력업과 동떨어진 신사업 왜?
도전장 냈지만…깊어지는 한숨

 
KT&G는 소망화장품을 인수하며 사업확장을 꾀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신사업인 화장품사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중이며 브랜드 구축 실패로 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아직 인수 효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하지만 KT&G가 인수 이후 소망화장품에 대한 뚜렷한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망화장품을 인수한 지난 2011년 말부터 최근까지 KT&G가 크고 작은 악재에 시달려 내부 상황을 수습하기도 바쁜 탓이다. 주력사업인 담배와 홍삼사업이 부진을 겪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CEO 재임 논란에 이어 배임 혐의까지 잡음이 많았다.
 
국내 페인트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KCC는 최근 화장품용 실리콘 사업에 뛰어들었다. KCC는 이를 위해 영국의 실리콘 업체 바질돈(Basildon)을 인수했다. 이어 ‘KCC뷰티’라는 브랜드까지 선보이는 등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KCC가 만드는 화장품용 실리콘은 ‘순수한 실리콘’ 성분으로 구성된 크로스폴리머 블랜드 제품에서부터 주름과 모공 개선, 피지 흡수 등 특수효과를 내는 크로스폴리머 파우더 제품군까지 다양하다. 이들 제품은 모든 화장품에 들어간다. 샴푸, 로션, 에센스, 페이스파우더, 립스틱, 선크림 등. KCC측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유니레버 등 국내외 유수 화장품 업체들에 납품하며 연간 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연결고리 희미
성과도 마찬가지
 

국내 3위권 페인트 업체인 삼화페인트공업도 주력인 페인트 사업 외에 IT솔루션 관련 서비스업에 도전장을 내밀어 관심을 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의 기획부터 개발, 구축, 운영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서비스산업은 삼성SDS, LG, CNS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러한 시장에서 삼화페인트는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등 첨단 IT시장이다. 이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가 증대됨에 따라 시장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페인트 전문업체들이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페인트 업계는 수년째 업체별 시장점유율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 특별한 반전이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야만 실적이 오른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 전문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영창뮤직을 인수했다. 그러나 영창악기는 4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모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회사를 운영하는 차입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영창뮤직은 지난해 117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4년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침체의 영향과 더불어 영창뮤직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진출 법인의 실적도 최근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 없으면
살아남지 못해
 
수년간의 적자로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하자 영창뮤직은 모기업에 SOS를 날려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영창개발을 인수한 뒤 2012년 50억원대 유상증자로 긴급 자금을 수혈한 뒤 2년 연속 75억원대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문제는 실적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창뮤직은 실적 개선을 위해 유통망 확대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쉬운 상황은 아니다. 영창뮤직은 지난 3년간 64억원의 이자 비용을 지출했다.
 

이처럼 일부 대기업들은 주력 사업과 별도로 다양한 분야에 신사업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형국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기업 신사업 주의보
‘7가지 바이러스’ 보니…
 
지난달 21일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신사업 성공을 막는 7가지 바이러스’보고서에서 “지난 4∼5년간 거의 모든 대기업이 녹색사업을 위시한 정부의 신성장 동력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으나 중도에 사업을 접거나 유보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사업 발굴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장애물로 ‘레밍스 바이러스’와 ‘집단사고 바이러스’를 들었다.
 
레밍스는 북유럽에 서식하는 나그네 쥐로, 개체 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레밍스 바이러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신사업분야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오류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집단사고 바이러스는 조직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의견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을 채택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기획 단계에서는 성공을 확신해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자기확증 바이러스, “오늘은 잃었으니 내일은 따겠지”라는 기대감에 여러 사업을 벌이는 갬블러 바이러스, 정교한 사업모델과 마케팅 전략이 없어도 성능과 품질만 좋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좋은 쥐덫’ 바이러스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지적됐다.
 
사업성이 없는데도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아깝거나 주위의 비난이 두려워 제때 중단하지 못하는 ‘흰 코끼리’(처치 곤란한 물건) 바이러스와 시장 상황이 변했는데도 계획대로만 밀고 나가는 돈키호테 바이러스가 실행 단계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제시됐다. 예컨대 웅진과 STX그룹의 몰락은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신사업을 밀어붙이다가 그룹이 감당할 수 있는 관리 범위와 역량을 넘어선 데서 비롯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