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대권 포기 선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대권 잠룡? 이제는 '지역일꾼'이라 불러주세요"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별명은 '리틀 노무현'이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뚝심 하나로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해 온 모습이 노 전 대통령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김 전 지사는 지난 7·30재보선에서도 정치적 고향을 떠나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경기도 김포에 출마해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값을 톡톡히 했다. 비록 낙선하고 말았지만 <일요시사>가 만나 본 김 전 지사는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저를 낳아준 곳은 경남이지만 정치적으로 저를 키워줄 곳은 김포입니다. 평생 김포에서 정치를 하겠습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선거기간 김포 시민들과 했던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7·30재보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도 김포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며 김포 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일 김포 지역 도보순례에 나선 김 전 지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재보선에 출마했지만 김포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번 도보순례도 이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로 김포시를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했다.

김 전 지사는 재보선 낙선 이후 좌절하기는커녕 김포시민들이 43%나 자신을 지지해주신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고 밝혔다.

동네 이장부터 출발해 군수를 거쳐 장관과 경남도지사까지….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살아온 김 전 지사는 지금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점에 서있었다. <일요시사>가 김 전 지사의 김포 도보순례에 동행해 그간 쌓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전 지사와의 일문일답.

- 많은 분들이 김 전 지사님의 근황을 궁금해 합니다. 재보선 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 김포 금쌀축제라든지, 김포 아줌마축제 등 각종 김포 지역문화행사들을 찾아다니며 김포 시민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지난 7·30재보선에서 김포에 출마하긴 했지만 김포의 역사성이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로 낙선 이후 김포시민들과의 스킨십을 확대하고 김포시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이번 도보순례를 기획한 것도 같은 이유인지요?
▲ 그렇습니다. 저는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포시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김포의 현장들을 직접 확인하고, 김포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할 필요성을 느껴 이번 도보순례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지난 재보선에서 대권주자급 거물로 분류되는 김 전 지사께서 정치신인에게 패하는 이변이 연출됐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니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 기본적으로 저 개인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에서 공천이 확정되고 제가 김포에 온지 20여일 정도 밖에 안 된 시점에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김포시민들의 신뢰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야권에서 유력한 주자라고 하더라도 ‘김포시와 무슨 연관관계가 있느냐’란 측면에서 보면 김포시민들이 저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선거에서 무려 43%의 김포시민들이 저를 지지해주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보선 낙선은 내 탓, 지도부 원망 안 해"
"김포 전역 도보순례하며 질책 겸허히 듣겠다"


- 일각에선 지난 재보선 패배의 원인을 김 전 지사님의 잘못 보다는 공천 잡음 등 당 지도부의 실책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억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설사 객관적인 정세나 조건이 불리했다고 하더라도 저나 손학규 후보 정도면 그런 불리한 조건을 뛰어넘어 승리했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 김 전 지사님과 함께 재보선에 출마했던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경우는 낙선 이후 정계은퇴까지 선언했는데 손 전 고문의 행보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우리 정치권에서 손 전 고문처럼 풍부한 정치적 경력과 리더십을 가진 분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손 전 고문의 정계은퇴는 상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손 전 고문께서 비록 정계은퇴를 선언하셨지만 다가오는 2017년 대선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다시 정권을 획득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선거가 끝난 이후 김포시민들과 직접 만나보니 현재 김포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가요?
▲ 김포시는 지난 98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이후 수도권에서도 가장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김포시가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다보니 지역주민들께서는 ‘교통문제’와 ‘교육문제’를 가장 많이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현직에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보고 싱크탱크 역할을 할 ‘김포미래발전연구원’ 설립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 현재 김포시장과 김포시의원 절반이 새정치연합 소속입니다. 제가 새정치연합의 김포시 당협위원장을 맡게 되면 이분들과 힘을 모아 교통문제와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 전 지사께서는 2016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십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에 대선이 있어 김 전 지사님이 대선에 출마하게 되면 보궐선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 차기 대선 출마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 출마해 ‘대선은 아무나 도전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대선을 준비할 만한 처지도 안 됩니다. 저는 일단 차기 총선에서 김포시민들을 대표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포시의 주요 현안들을 챙기고 제가 국회에 가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또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지난 대선이 끝난 후 1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하셨습니다. 독일 유학에서 어떤 성과를 얻으셨습니까? 향후 정치권에 복귀하신 후 국내 정치에 반영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입니까?
▲ 저는 한국 정치가 롤모델로 삼아야 할 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고 바로 독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 가보니 우리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 배워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특히 정권이 바뀌더라도 좋은 정책들은 승계해서 마무리 해주는 정책 승계 문화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야를 뛰어넘어 연대하는 모습 등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반드시 배워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이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정치의 힘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지금 전반에 걸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독일의 사례를 잘 도입해 적용하면 우리나라가 일류 국가로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 전 지사님과 비슷한 시기에 손 전 고문께서도 독일 유학을 하셨습니다. 독일에서 서로 만남은 자주 가지셨는지요?
▲ 당시 독일 베를린에 손 전 고문 뿐만 아니라 김황식 전 총리와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등도 거주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손 전 고문과 김 전 총리는 바로 제 옆방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자주 식사도 함께 하고 독일 정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독일 정치에서 배운 점들을 한국 정치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힘을 모으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계십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갈등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가 높아진 원인으로는 ‘대기업의 횡포’ ‘비정규직 차별’ ‘영호남 대립’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승자독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갈등을 녹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나라의 단순 다수 소선구제와 비교해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민심이 있는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되는, 국민들의 주권이 가장 잘 반영되는 제도입니다.

- 보수진영에선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해 ‘이석기와 같은 인물들이 걸러지지 않고 대거 국회로 진입할 수 있다’며 우려하기도 합니다.
▲ 저는 설사 한국 사회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국회에 진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바깥에서 더욱 과격해지고, 극단적으로는 테러조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런 세력들도 국회라는 민의의 장에 녹여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현안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틀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을 끝장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한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 정동영, 정대철 상임고문 등 외곽에서 ‘신당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분들도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선 신당 창당 후 원내진입을 수월하게하기 위해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 두 고문께서 워낙 우리 당이 지리멸렬하고 있으니까 걱정을 많이 하시다보니 여러 가지 모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도 무조건 신당을 창당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제가 있을 것입니다. 당을 혁신시키고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혁신하지 못하고 계파 담합 같은 것들이 계속 이어지면 우리 당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 그럴 바에는 신당을 창당하자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아직 신당 창당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도 않는데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예단입니다.

"독일 유학에서 우리 정치가 가야할 길 목격"
"정치가 발전해야 일류국가 진입 가능"

- 신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도 지금 우리 당을 걱정해서 새로운 모색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움직임들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60년의 정통을 가진 정당이고 10년 동안 국정 운영을 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당이 지금 비록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혁신하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희망도 없다면 결단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당 비대위에 기대를 걸고 그들이 당을 변화 시킬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재보선 패배 이후에도 새정치연합이 좀처럼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내놓고 있는 개혁안들이 새누리당의 개혁안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파격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요?
▲ 우리가 내놓는 개혁안이 새누리당보다 조금 더 신중하긴 한 것 같습니다. 타이밍도 한 박자씩 늦긴 합니다. 저도 우려하고 있지만 당에서 명망이 높은 원혜영 의원께서 혁신위원장을 맡으셨기 때문에 잘해나가실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혁신위가 좀 더 개혁적인 안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저도 꾸준히 조언 하고 돕겠습니다.

- 지금 정치권이 개헌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개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운용되고 있느냐에 대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헌법을 바꿔야 한다면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공화국인가 하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개헌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권력구조 개편에만 국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권력구조 변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불공정한 시장이 어떻게 개선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개헌은 앞으로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합니다. 개헌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풀기보다는 정파를 배제하고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김포시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펼칠 예정이십니까?
▲ 저는 군수도 하고, 도지사도 하고, 장관도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원외에 있지만 지역 현안들을 꾸준히 챙기면서 그 당시 형성한 인적 자원들과 경험들을 잘 활용해 김포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 만약 차기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하게 된다면 어찌됐든 당의 중진으로서 김포시 발전을 위해 힘쓰고 김포시민들에게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로 발전하는 <일요시사>가 되길 바랍니다. 저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대담/김포=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김두관 전 경남지사 프로필>

▲ 남해 고현면 이어리 이장
▲ 제38, 39대 남해군 군수
▲ 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
▲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 제34대 경상남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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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