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인도 모르는 불법 동물화장터 실태

그린벨트서 불타는 강아지 사체 '헉~'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어느덧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애완동물 시장이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애완동물이 하나의 가족으로 인식되면서 동물장묘업도 성행 중이다. 현재 동물화장터는 전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몇몇 화장터가 정식허가를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은밀하게 영업을 이어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물화장터를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봤다.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는 ‘펫팸(Pet과 Family의 합성어)족’이 늘면서 자연스레 관련 업계가 춤추고 있다. 펫팸족은 애완동물 장례까지 치른다. 애완동물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수시로 들러 애완동물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된 것이다. 

24시간 가동
불법 화장터
 
그런데 동물보호법에 위반되는 불법 동물화장터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래서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A동물화장터를 찾았다. 불법으로 알려진 A동물화장터는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변엔 온통 인쇄공장뿐이었다. 주변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색 간판을 내걸고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A동물화장터 사무실은 가정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넓은 거실에 있던 한 직원이 물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동물화장에 대한 상담을 요청하자 이 직원은 가장 먼저 애완동물의 몸무게를 물어봤다. 그는 “아이(애완동물)가 5kg 이하면 15만원”이라며 “1kg 초과 시 1만원이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이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추모실에 도착했다. 내부는 엄숙했다. 숨진 애완동물을 눕힐 관과 함께 여러 동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직원은 “이곳에서 엄숙하게 추모식이 진행된다”며 “주인의 종교에 따라 예식은 조금씩 다르다”며 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추모실을 나와 화장터로 이동했다. 화장터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직원에 따르면 화장은 10분 내로 끝난다. 즉 애완동물 장례식은 방문과 동시에 20∼30분 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A동물화장터 직원은 “365일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면 바로 연락을 달라”며 “픽업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A동물화장터 직원의 설명을 들은 뒤 시내로 향했다. 시민들은 A동물화장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동물화장터의 존재 자체에 놀란 표정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아직은 생소한 애완동물서비스인 것이다. 그런데 A동물화장터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들어가 동물장묘업으로 정식 등록된 업체를 확인한 결과 A동물화장터는 정식으로 등록이 되지 않은 업체였다. 정식 등록 업체는 (주)동물사랑 대구러브펫(대구시 달서구), (주)위디안(경기도 김포시), 페트나라(경기도 김포시), 월드펫(경기도 김포시), 굿바이펫(충북 제천시), 에이지펫(충남 천안시), 예산 위드엔젤(충남 예산군), 러브펫(경기도 광주시), 아롱이천국(경기도 광주) 등이었다.

위반사항 적발
영업 막진 못해
 
그러나 이 자료만으로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건 무리였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9개의 장묘업체 외에 다른 동물장묘업체의 불법성은 해당 지자체에 문의해야 한다”고 했다. 사이트에는 등록이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해당 지자체인 고양시청 관계자에게 A동물화장터 불법성 여부를 문의한 결과 불법이 맞았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A동물화장터는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업체가 맞다”며 “동물보호법 위반사항이 있어 경찰과 합동 단속을 벌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관련 민원이 빗발쳐 경찰과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A동물화장터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불법이 맞지만 영업행위 자체를 막을 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B동물화장터도 불법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 관계자는 “거모동에 있는 애견화장터 건물은 그린벨트 지역에 지어졌기 때문에 불법이 맞다”며 민원을 받아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고발 외에 추가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B동물화장터는 불법으로 고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애완동물도 가족…동물장묘업 성행
무허가 화장터 전국 곳곳서 운영중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C동물화장터도 마찬가지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식으로 허가를 받기 위해 등록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 반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로 밤에 몰래 영업을 했었다”며 “동물보호법위반으로 고발된 상태”라고 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D동물화장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동물전용 장례식장, 화장장, 납골시설 등 동물장묘업체 또한 등록신청서에 시설과 인력면세 등을 첨부해 관할 시·군·구에 등록해야 영업을 할 수 있다. 또한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사항도 법으로 정해져 있다. 동물장묘업 등록제는 2008년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나날이 증가하는 애완동물의 시체를 인도적·위생적으로 처리해 환경오염 및 공중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전국에는 270여개의 동물장묘업체가 있다. 이들 업체는 보통 사체 크기에 따라 최소 15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요금을 받고 장례절차를 대행해준다. 모든 절차는 사람의 장례식과 똑같이 진행된다. 사체 운구부터 입관식, 매장 혹은 화장까지가 그렇다.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경우 장례전용 리무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수많은 업체 중 정식으로 인허가를 받은 업체는 매우 적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물장묘업체로 정식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도시계획, 주거지역, 상수원, 장사법률, 건축법 등 다양한 인허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정식 업체로 동물장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애완동물시장 확대에 따라 이러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동시에 혐오하기도 한다. 일종의 님비(NIMBY: 지역 이기주의)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동물화장터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집 주변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걸 좋아할 주민은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애완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한다. 아무 데나 묻으면 벌금형에 처해진다. 동물병원에서 사망할 경우엔 1kg당 1만원을 내면 의료폐기물로 분류해 소각해준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물장묘서비스를 택한다. 그러나 동물장묘업 시장은 기반이 약하다. 아직 체계를 잡지 못한 것이다. 

까다로운 절차
인허가 딜레마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3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동물보호법 대상인 개의 숫자는 약 127마리다. 이 중에서 약 43만마리가 등록된 상태이며 해마다 12∼13만마리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다른 동물을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동물관리사, 장례지도사 등 애완동물 관련 직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 동물 케어서비스 업체가 고양시 동물보호축제에 참여한 시민 1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4.7%가 동물 장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장묘업체는 턱 없이 부족하다. 의료폐기물로 처리되는 극히 일부 동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물들이 가정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져 버려지거나 인근 뒷산에 암매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려동물의 숫자와 매년 폐사되는 적지 않은 수의 반려동물을 고려하면 반려동물 사체처리 문제는 공공위생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반려동물 사체처리 제도는 현실과 많은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애완동물을 위한 공공장묘시설을 설치·운동하고 국가가 필요한 경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도 나온다.
 
고발해도 버젓이 배짱영업
“인허가 받기 어렵다” 호소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공설 동물장묘업체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기존의 민간시설과 영역이 겹치고 기득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기득권 침해가 문제가 된다면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해 사설장례장과 공공장례장의 업무 범위를 구분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국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특히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유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2003년부터 2013년 사이 90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집계된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1억5000만마리다. 애완동물을 기르려면 국가에 등록해야 하지만 등록 없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우도 있어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판매액은 900억위안으로 한화 14조6979억원에 달한다.
 
중국의 애완동물 장례 서비스 가격은 100위안에서 1500위안까지 다양하다. 지난 2008년 1월1일 죽은 애완동물의 사체를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며, 관련 사항 위반 시 법적 조치를 내리는 동물방역법이 실시됐지만 베이징 창핑, 따싱 등 교외지역에 애완동물 전용 묘지가 생기고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중국에서 매년 처리해야 하는 애완동물 사체는 약 1000만 마리 이상이다. 환경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중국 정부는 해외의 애완동물 사체 처리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고려한
제도 보완 필요
 
프랑스의 경우,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 60%는 정원에 묻거나 직접 장례를 치루지만 나머지 40%는 정부가 계약을 맺은 동물화장터에서 처리해 여기에 쓰이는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했다. 처음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한 해 수백만 마리를 화장하는 데 프랑스 정부는 부담을 느꼈다. 결국 지난 2005년, 프랑스 정부는 법을 개정해 반려동물 화장에 20만원가량을 부담하도록 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사설장례장을 이용하고 일반 시민들은 낮은 가격의 공공장례장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반려동물 사체를 ‘생활폐기물’로 처리할 경우 일본처럼 반려동물을 사체에 일정 수수료를 징수하고 동물사체소각로에서 별도로 소각하는 방안도 있다. 애완동물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경보호와 동물복지 차원에서 반려동물장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전용 채널 ‘도그TV’ 등장 
 
인터넷TV(IPTV)와 케이블TV에 개들이 볼 수 있는 ‘도그TV’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존 케이블 TV들에 이어 통신 3사들도 다음달까지 모두 IPTV를 통해 도그TV 서비스를 시작한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말 도그TV 서비스를 시작해 20일 만에 가입자 2400명을 넘어섰다. KT는 다음달 1일, LG유플러스도 다음달 말에 각각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케이블TV는 올 2월부터 일찍 뛰어들었다. CJ헬로비전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4월에 태광 티브로드, 7월 울산중앙방송, 지난달 현대 HCN과 대구 푸른방송이 각각 도그TV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제주방송도 시험방송 중이다. 이처럼 UT업체들과 케이블TV업체들이 도그TV를 서비스하는 이유는 부가 수익 때문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애완견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가 늘면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견주가 집을 비울 때 혼자 남는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틀어주는 용도로 많이 이용된다”고 말했다.
 
한편, 도그TV는 개의 심리상태를 치료할 목적으로 지난 2009년 이스라엘 PTV미디어가 과학자와 동물 행동 심리학자, 애견전문가 등과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다. 본격적인 TV방송은 2012년 2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돼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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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