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화'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전말

7인의 10대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88년 일본 열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가출한 여고생이 청소년들에게 납치돼 갖은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숨진 것이다. 가해자들은 숨진 여고생 시신 위에 시멘트를 반죽해 붓는 잔혹함을 보였다. 7명의 무리들이 이처럼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몸에 끓는 물을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창원지검은 올해 5월 초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과 함께 범행한 이모(25)씨와 또 다른 이모(24)씨, 허모(24)씨, 또 다른 D(15·중학 중퇴)양 등은 다른 범죄로 대전지검에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극악무도 만행
시신훼손 수법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3월15일께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윤양이 김씨를 따라 가출해 부산의 한 여관에서 함께 지냈다. 김씨는 ‘조건 만남’ 대상을 물색해 윤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성매매를 강요해서 챙긴 화대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던 중 그달 29일 윤양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사실을 알게 돼 집으로 돌려보냈다. 피고인들은 윤양을 순순히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고민에 빠졌다. 윤양이 강제로 성매매 한 사실을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에 빠진 피고인들은 이튿날 윤양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윤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끝에 윤양을 발견했다. 이들은 윤양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울산의 한 모텔로 끌고 갔고 또 다시 성매매를 강요했다. 또한 윤양이 모텔 내 컴퓨터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위치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윤양을 마구 구타하기도 했다. 피고인 7명은 이때부터 윤양을 감금하고 조를 짜서 감시와 학대를 이어갔다. 
 

여중생들이 모텔로 납치한 뒤 성매매 강요
화대로 생활…‘집에 간다’하자 고문 시작
 
이씨 등 남성들은 윤양과 여학생들을 돌아가며 싸움을 시키고는 이를 관람했다. 7명 모두 폭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윤양에게 선풍기와 에프킬라 등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수법은 매우 잔인했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윤양에게 마시게 하도록 한 후 윤양이 토해내면 그것을 다시 핥아먹도록 시켰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던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좀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한 명은 윤양의 팔에 팔팔 끓는 물을 붓는 엽기적인 짓을 했다. 윤양의 몸은 화상으로 인해 온 몸 곳곳에 물집이 생겨 피부의 껍질이 벗겨졌다. 윤양의 몸은 날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됐고, 물도 삼키기 힘들었던 윤양이 힘을 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 학대의 크기는 배가 됐다. ‘앉았다 일어서기’ 100회를 시키거나 ‘구구단 외우기’ 등을 시키며 학대를 즐겼다. 괴롭히다가 지치면 돌아가면서 폭력을 퍼부었다.
 
이들 중 한 남성이 윤양에게 “죽으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고 물어보고 윤양이 답을 하면 지목된 여학생들이 보폭폭행을 했다. 이 중 한 여학생은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려치기도 했다.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윤양은 결국 4월10일 오전 0시30분, 대구의 한 모텔 인근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을 거뒀다. 쓰러져 있는 윤양을 발견한 피고인들은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윤양의 시신을 산에 묻기로 결심했다.
 
끓는 물 붓고 무차별 폭행
얼굴에 기름 붓고 불 붙여
 

다음 날 11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과수원으로 향했다. 이들 중 남성 일행 3명은 완전범죄를 강조하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죽은 윤양의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3일 후, 범행 발각을 걱정하는 남성 3명과 여학생 2명이 경남 창녕의 한 야산에 모여 시멘트를 반죽해 윤양의 시신 위에 붓고 돌멩이와 흙으로 암매장했다.
 
또한 20대 피고인 중 일부는 윤양을 매장한 후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조건만남을 빙자해 40대 남성을 모텔로 유인한 후 조건만남을 미끼로 돈을 뜯으려다 이 남성이 자신들을 ‘꽃뱀’이라 의심하며 반항하자 둔기로 내려쳐 살해했다. 현재 가해 여중생에 대한 1심 재판은 창원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행수법이 잔혹해 이들에 대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엄벌에 처할 방침”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가해 여학생 변호인 측은 “여학생 가운데 일부도 지난해 11∼12월 가해 남성 중 2명에 붙들려 조건만남을 강요받았다”면서 “가해 여학생 2명이 당한 범죄수법은 숨진 윤양이 당한 수법과 유사하다”고 주장해 재판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짜서 감금하고
감시 학대 이어가
 
지난 5일 피해자 윤양의 아버지 윤모(49)씨는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익명으로 출연해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윤씨에 따르면 3월15일 가출한 윤양은 3월29일 집에 잠시 돌아왔다. 가해자들이 윤양에게 집에 돌아가 안심시키고 다시 나오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날 윤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딸은 이미 가해자들에게 끌려간 뒤였다. 3월30일 오전 11시10분쯤 본 딸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윤씨는 “딸이 집에 왔다 가고 나서 마음이 더 불안했다. 경찰에 찾아 달라고 많이 매달렸지만 경찰도 수사 패턴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제가 들은 바로는 단순 가출로 수사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그런 상황은 단순 가출로밖에 수사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사만 제대로 됐으면 우리 딸을 좀 일찍 찾지 않았을까 한다. 경찰을 많이 원망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피고인 20대 3명에 대해 “전과가 25범으로 화려하고 악랄한 놈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윤씨는 잔혹하게 살해돼 생을 마감한 딸을 그리워하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고 있다.
 
같은 날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간은 특정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지속해서 가혹행위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 행위가 사망에 이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따라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표 소장은 이를 뒷받침하고자 1960년대 심리학자 밀그램의 일반인을 상대로 진행한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을 언급했다.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지시하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며 업무가 끝나면 4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최고 450볼트까지 고압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도 몰라보게 매장전
얼굴에 시멘트까지 뿌려 
 
표 소장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 여학생들에 관해 “훨씬 나이가 많고 사회경험이 많은 20대 남성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집단생활을 했다”며 “이번 가해자 중 20대 중반의 남성 3명을 제외한 15살 여중생 4명의 경우 피해자이면서, 또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중단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폭행에 가담한 가해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표 소장은 “살인죄 적용 자체는 성년, 미성년 구분이 없다”면서 “소년법에서 미성년자는 정상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 중 20대 남성과 10대 여학생들의 형량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1988년 일본에서 발생한 ‘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과 수법 및 잔혹성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을 준다. 당시 미야노 히로시(당시·18), 오구라 유즈루(당시·17), 미나토 노부하루(당시·16), 와타나베 야스시(당시·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고생 후루타 준코(당시·16)를 감금하고 납치해 미나토 노부하루의 자택 2층 거실서 40여일간 감금했다.

2014 한국판
콘크리트 살인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강간과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고 결국 후루타 준코는 사망했다. 이후 89년 1월5일 사망을 눈치 채고 시체 처리를 고민하던 끝에 가해자들은 사체를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의 한 매립지에 유기했다. 시신을 은폐한 뒤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매립지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같은해 3월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간·절도 등의 혐의로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가해자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돼 열도를 충격에 빠트렸다. 
 

가해자 중 주범 네 명은 형사 처분의 근거가 상당해 가정재판소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돼 형사 재판에 회부됐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이 중 리더 격인 미야노 히로시에게 징역 20년, 오구라 유즈루, 미나토 노부하루, 와타나베 야스시에게 각각 징역 5년이상 10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7년 이하에 처했다. 이후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됐고, 다음 해인 2004년 영화 <콘크리트>가 개봉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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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