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도 못 잡는 '꼭꼭 숨은' 지하경제 현주소

세금 내면 바보?…현금박치기 탈세 '그대로'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내 양대 세입기관인 국세청과 관세청. 지하경제 양성화를 목표로 선봉에 섰다. 하지만 일부 성과에도 징세행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 돈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굵직한 대기업을 훑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 배경이다. 동시에 당국은 해외로 빠져 나가는 거액의 뭉칫돈을 추적하고 있다. 반환점을 맞은 지하경제 양성화. 성패는 역외탈세 추적에 달렸다.

27조2000억원. 박근혜정부가 집권 기간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재원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정부가 설정한 집권 1년차 목표액은 무난히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6월30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3년도 총수입 결산분석'을 참고하면 정부는 지난해 지하경제 양성화로 모두 3조1200억원(국세청 2조800억원·관세청 1조400억원)의 세금을 거뒀다. 이는 정부가 당초 목표액으로 잡은 2조7000억원보다 4200억원이 초과된 세수다.

문제는 2년차

그런데 국세청이 지난달 14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하경제 양성화로 정부가 거둬들일 세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청이 작성한 '지하경제 양성화 주요 추진 실적'에 따르면 주요 4대 지하경제 분야에 대한 국세청의 추징액은 4조6490억원이다.

항목별로는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행위(1100건)를 조사해 2조3927억원을 추징했다. 또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에 대한 조사(721건)로 5071억원을 추징했다. 이어 세법질서 훼손자 및 민생침해 탈세자에 대한 조사(760건)로 6703억원을 추징했으며, 역외탈세 추적(211건)으로 1조789억원을 추징했다.


앞서 예산정책처는 동일 항목에 대해 국세청과 다른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행위를 적발해 세금 6900억원을 거뒀다고 명시했으며,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탈루를 포착해 2100억원의 세수를 확보했다고 했다. 역외탈세 추적으로 징수한 세금도 5500억원이어서 국세청의 발표와는 2배가량 차이를 보였다.

반면 또 다른 세입기관인 관세청은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와 징수액이 비슷했다. 세무 전문지인 <조세일보>는 지난 1일 "관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1조27억원의 세수를 확보했다"며 "다국적 기업 등 고위험 기업에 대한 관세조사 확대로 5367억원, 정유사들의 과다환급 방지 등으로 2050억원, 통관단속 강화로 1562억원 등의 실적을 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관세청에 할당된 목표액이 760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130% 이상 초과 실적을 올린 셈이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왜 예산정책처와 다른 세수를 집계한 것일까. 이에 대해 국세청은 "실질 세입은 예산정책처가 작성한 보고서에 가깝다"며 "해당(국세청 작성) 문서는 조사과에서 과세한 금액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즉 4조6490억원을 개인이나 기업에 과세했을 뿐이지 실제 세입은 2조800억원에 근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계획한 2013년 목표액은 1조9800억원이었다.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인용해도 목표액은 초과 달성했다. 그렇지만 과세한 세금이 징수에 비해 적은 점이 흠이다. 아직 2조원이 넘는 돈이 지하시장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1년차 목표액 초과 달성
소송 패소·불복 환급 등 실적 거품 우려
"해외 빠져나가는 검은돈을 잡아라!"

소송 패소나 불복 환급과 같은 변수도 세무당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8~2012년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조세불복심판' 건수는 연평균 5.2%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3년 들어서 22.7%로 급증했다. 또 국세청의 과세에 불복해 조세 심판을 청구한 기업은 2013년(상반기 기준) 1376개로 2012년(1050개)보다 31% 늘었다.

동시에 국가 패소율(국세 인용률)은 2008∼2012년 연평균 27.2%에서 2013년 32.9%로 5.7%P 증가했다. 패소에 따른 불복환급액 역시 8121억원(2013년 상반기)으로 전년도의 3604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예산정책처는 징세행정에 따른 부작용을 짚은 뒤 "세무조사를 통한 세입확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인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9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목표달성이 불가능한 까닭에 정부 스스로 언급을 꺼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장 올해부터 돈 나올 구석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세청과 공조가 가능한 검찰에서 눈에 띄는 재계 수사가 없는 점도 걸린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CJ그룹을 비롯한 대기업 사정으로 활로를 뚫었던 정부다. 반면 올해에는 국세청 단독으로 식품업계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굵직한 대기업을 훑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대기업 관련 자료를 조회했다가 기록이 남아 폐기했다는 설도 있다. 이 대기업은 정권 출범 초부터 청와대와의 유착이 의심됐던 기업이다. 친정부 기업을 들여다 볼 정도로 세무당국의 실적 압박이 엄청나다는 해석이다.

국세청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인의 해외 부동산 차명 매입 사실을 파악했다는 첩보도 있었다. 미국 등에 소재한 다수의 부동산은 유명인이 소유한 모 그룹의 차명 재산으로 의심됐다. 비슷한 사례로 한 엔터테인먼트사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세탁해 그대로 부동산 투자에 이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꼬리를 무는 의혹의 종착지는 해외로 좁혀진다.

지난 5일 국세청은 외국에 10억원 이상의 금융계좌를 보유한 개인과 법인이 총 774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7905개 계좌에 모두 24조3000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해외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10억원이 넘는 개인과 법인에 대해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고 알렸다. 이중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조세회피처로 지정한 이력이 있는 국가 17곳에서 모두 3조원(924개 계좌)의 금융재산이 확인됐다.

"현금을 주세요"

앞서 국세청은 피부 미용업, 결혼 상담업, 결혼사진 및 비디오 촬영업 등 고액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에 대해 10만원 이상시 영수증을 의무 발행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은 '현금으로 하면 더 싸게 해준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만원의 현금을 지불하고 있다. 또 이들은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현금을 요구하는 여행사에 시달리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업계 관행"이라고 말을 에둘렀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으로 가장 많이 적발된 의료계(1019건·650억원) 역시 탈세의 온상으로 의심받는다. 이 중 성형외과가 가장 비중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부 금액을 할인해주거나 다른 부위까지 수술해 주는 식이다.

큼직한 대기업부터 유명 성형외과까지 돈이 몰리는 곳에는 언제나 '검은돈'이 있다. 세무당국의 갖은 노력에도 지하경제가 양성화되지 않는 건 경제범죄에 대한 국내 처벌 기준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