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비화 조짐 '정치권 데스노트' 소문과 진실

여의도 살벌한 피바람 몰아친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치권이 떨고 있다. 최근 검찰이 관피아 수사와 관련 다각도로 첩보를 수집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칼날은 결국 정계를 향할 것이 분명해서다. 앞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헌금으로 의심되는 뒷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며 수사망에 올랐고, 김형식(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의원은 수천억원대 자산가인 송모씨를 살인교사한 혐의와 함께 이른바 ‘철피아’ 사건에 연루되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사정당국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포함된 이른바 ‘정치권 X파일’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권력형 게이트에 여의도 정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의 최대 화두는 7·30 재보선이다.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민심의 향배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코너에 몰린 박근혜정부는 ‘인사 참극’으로 구겨진 체면을 사정 드라이브로 돌파하고 있다. 핵심 타깃은 명확하다. 바로 관료사회 밖에 있는 의회 권력이다. 

사정 드라이브
정치권 겨눴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정부는 ‘관피아 척결’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이에 발맞춰 검찰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게이트 정황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내사 없이 진행된 수사는 번번이 벽에 막혔고 관련자들은 몸을 사리면서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성과 없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정부다. 
 
하지만 관피아 수사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사건이 검·경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사주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사정당국 입장에서 이 사건은 가뭄 끝에 단비였다. 
 

지난 7일 검찰은 김 의원의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더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이 운을 띄운 인력 보강은 김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정치권 로비 의혹 규명에 있었다. 
 
검찰은 현재 강력 전담 부장검사와 평검사 3명을 투입해 피해자 송모(67)씨가 생전에 작성한 이른바 ‘뇌물리스트’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매일기록부’라고 적힌 이 장부는 A4용지 크기의 공책 1권 분량으로 지난 1991년 말부터 송씨가 만난 사람의 이름과 지출 내역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YT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억원대 재력가로 알려진 송씨는 생전 김 의원을 통해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 금액은 최소 억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검찰은 이 돈이 실제로 해당 정치인에게 건네졌는지를 확인 중이다. 
 
그리고 송씨의 로비 의혹은 앞서 밝힌 매일기록부에 비밀이 담겨 있다. 송씨는 금품을 전달하면서 돈을 준 시간과 장소, 최종 로비 대상까지 꼼꼼히 작성한 것으로 검찰은 전했다. 무엇보다 김 의원에게 건네진 5억2000만원 중 일부 금액에는 해당 정치인의 이름이 병행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송씨가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고,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의원이 전달책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것이다. 
 
‘펑펑’ 터지는 로비장부에
떨고 있는 유력 정치인들
 
검찰에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자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장부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 및 공무원들의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경찰 한 고위 관계자는 “철도 비리와 관련된 사안이 (장부에) 포함돼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철도 관련 업체인 AVT사가 김 의원의 측근인 팽모씨에게 13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팽씨는 김 의원으로부터 재력가 송씨를 살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실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AVT사는 과거 팽씨의 아내에게 1300만원을 송금했다. 경찰은 이 돈이 결국 김 의원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AVT사의 회사돈 3000만원이 김 의원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도 확보했다. 김 의원 측은 이 돈이 모두 빌린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유력 정치인
이름 나온다
 
이제 관심은 두 가지로 쏠린다. 유력 정치인이 실제로 대가성이 있는 금품을 수뢰했는지 여부와 김 의원이 금품을 전달했다면 어떤 정치인이 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김형식 리스트’가 존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김 의원이 한 사람에게만 로비를 하진 않았을 것이란 추론이다.
 
때문에 김 의원이 입을 연다면 현역 국회의원의 목줄이 위태로울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대형 게이트로 번질 여지가 있어 그의 출신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다. 
 
특히 정치인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로 지목되는 공천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상납구조가 드러날지도 관심이다. 공천을 받기 위해 위로는 중앙당에 로비를 하고, 아래로는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제공받는 상납구조가 실재할 개연성이 농후한 까닭이다. 이래저래 김 의원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박상은 스캔들’의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불법 정치자금 수뢰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최근 운전기사인 김모씨의 폭로로 궁지에 몰렸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돈가방째로 검찰에 들고 갔던 3000만원 외에도 수천만원이 더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인천지방검찰청 해운비리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검사)은 박 의원의 운전기사인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말 모두 2차례에 걸쳐 각각 현금 3500만원과 2000만원을 박 의원의 차 안에서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당시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으며, 현금 다발이 찍힌 사진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 해운·항만업계의 비리 근절을 목표로 했던 이번 수사는 어느덧 박 의원의 개인 비리 규명으로 수사의 중심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시사저널> 등은 박 의원의 비리 의혹이 담긴 일명 ‘X파일’이 실재하며 이 파일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소위 ‘박상은 X파일’로 불리는 이 문서는 박 의원과 지역 기업 간의 유착 사례와 불법 정치자금 의혹 등 10여가지가 사례별로 정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9일 한 검찰 관계자는 “해운비리와 관련된 정·관계 로비 의혹은 운항관리자들이 연루된 비리를 수사한 뒤 마지막에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개인 비리 의혹은 우선 수사대상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통상 정·관계 비리 수사는 지검급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며,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발굴이 핵심이다. 그렇지만 관피아 수사로 벌린 일이 많은 상황에서 김 의원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여력은 없다는 설명이다.
 
특별수사팀은 지난 두 달 동안 해양수산부 출신인 이인수 전 해운조합 이사장과 김상철 안전본부장을 재판에 넘겼고, 인천항 선주들과 유착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해경 경정과 해운조합 사업본부장 등을 구속했다. 사실상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와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박 의원까지 구속한다면 자칫 공소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못 잡는 검찰?
안 잡는 검찰?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먼저 ‘쪼개기 후원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천지역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일 검찰은 대형 제강사 D사의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했다. D사는 박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동구 소재로 박 의원에게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업체들 중 하나로 지목된 곳이다. 검찰은 현재 D사가 회사 자금을 소액으로 쪼갠 뒤 직원들 명의로 박 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경위를 파악 중이다. 
 
[김형식 리스트] 야당 정치인 거론
[권영모 리스트] 여당 실세들 구설
[박상은 리스트] 정재계 유착 회자
 

정치권을 겨냥한 로비에서 ‘쪼개기 후원금’은 단골 소재다. 사법당국의 추적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비리의 중심에 있는 AVT사 대표 이모씨는 김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7년과 2010년 국회의원 두 명에게 각각 정치후원금을 냈다. 2007년 2월에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했고, 2010년 3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였던 A의원(전직)에게 후원금 한도액인 500만원을 냈다. 그런데 같은 날 A의원은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으로부터도 500만원을 후원받았다. 권 전 대변인은 AVT사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철피아 비리로 구속된 첫 번째 정치인이다. 
 
그런데 권 전 대변인과 A의원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다. 즉 권 전 대변인이 AVT사를 대신해 A의원에게 정치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는 AVT사가 전달책 권 전 대변인을 통해 국회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는 정황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철도부품 제조업체로부터 납품 관련 로비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권 전 대변인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권 전 대변인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사업과 관련해 AVT사로부터 비자금 명목으로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권 전 대변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수천만원을 대신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2년여 전부터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과 만나 설이나 추석, 연말마다 납품·수주 등에 관한 청탁성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한 가지 뼈아픈 대목은 중요 인물인 김 전 이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것에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를 보면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정계 진출 유혹에 끌린)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내용이 있다. 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당사자가 정치권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남긴 셈이다. 
 
일각에선 권 전 대변인이 김 전 이사장에게 공천을 미끼로 정치권 로비를 부탁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권 전 대변인은 김 전 이사장에게 수상한 3000만원을 전달한 바 있다. 또 권 전 대변인은 AVT사의 고문을 지낸 전력이 있다. 사실상 로비가 주 업무였던 것으로 보이며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배달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달콤한 유혹
결국은 파국
 
검찰은 AVT사 관계자로부터 “권 전 대변인이 여당 실세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이씨와 김 전 이사장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형식·박상은 리스트’처럼 이른바 ‘권영모 리스트’가 실재하는 셈이다. 더구나 ‘권영모 리스트’는 그 정황이 앞선 ‘김형식 리스트’보다 더욱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전·현역 국회의원이 망라된 각종 ‘로비 리스트’에 여의도는 폭풍전야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이버사령부 ‘정치글 작성’ 파문
사실로 드러난 ‘국풍’ 의혹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관련 댓글 작업에 관여한 의혹을 받은 연제욱(소장)·옥도경(준장) 전 사이버사령관이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6일 “지난 달 중순께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군 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조사본부가 이들 전직 사이버사령관을 형사 입건한 것은 요원들에 대한 지휘 감독을 소홀히 하고 정치글 작성과정에 역할을 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제욱·옥도경 입건
대선 댓글 관여 혐의
 
연제욱 소장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관여 의혹을 받아 지난 4월 육군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됐다. 옥도경 준장은 연 소장에 이어 2012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이후 연 소장과 같은 시기에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정책연수를 받고 있다.
 
앞서 조사본부는 지난해 12월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심리전단 요원들이 작성한 ‘정치관련 글’이 1만5000여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한 ‘정치글’이 2100여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추가 수사 과정에서 정치관련 글이 3만여건, 정치글도 6000여건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간수사 당시보다 2∼3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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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