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LIG 손보 인수로 M&A 모범사례 제시

[일요시사=경제2팀] 김해웅 기자 = 한국 시장에서 M&A 라는 용어가 지금처럼 보편화된 경제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도 기업들의 명암과 실적과 희비가 극명히 갈렸던 IMF 구제금융 기간을 거치면서 M&A 는 서서히 필요성과 당위성을 갖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절 부실기업이 넘쳐났고 덩치를 키우고자 하는 기업들의 욕심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무질서한 시장을 재편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커져갔다. 이러한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M&A 는 서서히 대한민국 기업경영의 핵심전략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에 ‘최고거래’라는 기준을 책정하기는 쉽지 않다. ‘최고거래’에서 비롯되는 만족이라는 것의 속성이 상대적이고 계량화 하기 힘든 주관성을 띠기 때문이다. ‘거래(deal)’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한 쪽을 만족시키면 다른쪽에서 불만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zero-sum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손해보험업계 BIG5 중 하나인 LIG 손해보험과 성공적인 계약을 마무리한 KB금융그룹의 M&A 전략은 가격경쟁만이 전부였던 종전의 M&A 관행에서 탈피, 이해관계자들 모두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M&A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전4기의 근성, 잇단 M&A 실패 종지부

KB금융은 종전까지 참여 혹은 추진했던 주요 M&A에서 연이어 고배를 든 바 있으며 이러한 이력은 M&A 잔혹사로 회자되고 있었다. 실제로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 2012년 ING생명 및 2013년 우리투자증권 등의 인수에서 연이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외부에서는 KB금융의 지배구조 및 이사회의 성향 등과 결부해 KB금융의 M&A 능력 부재를 거론하기도 했으나, 이는 M&A 시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는 KB금융 경영진과 이사회의 투자 방침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KB금융의 M&A 기조는 보수적 관점에서의 안정적 접근이 아닌 주주 관점에서의 합리적 선택 및 이에 기반한 적정 수준에서의 인수 성사로 현재의 증권업 시황과 생명보험업의 수익성 등을 감안해 시장의 흐름과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비은행 부문 강화의 목표도 주주가치 제고 및 그룹의 장기적 성장이라는 대원칙에 반해 추진할 수는 없으며,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위해 시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증권업 및 생명보험업 강화를 검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토 결과 제반 부수 조건 등으로 인해 그룹의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 존재함에 따라 KB금융은 성패와 무관하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LIG손해보험 인수는 KB금융의 원칙과 시장 환경이 일치함에 따라 KB금융의 역량을 충분히 발현한 성공적 M&A 사례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손해보험업의 매력도와 비은행 부문 강화의 목표가 합치됨에 따라 KB금융 경영진과 이사회는 본 거래가 주주 가치 제고에 공헌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외부 억측과 달리 KB금융 경영진과 이사회는 거래 초기부터 합심해 본 거래를 일관되게 추진했고 그 결과 당초 계획한 적정 수준의 인수에 성공했다.


비은행 계열 강화라는 오랜 숙원 단칼에 해소
매각자-매수자 win-win, 모범 보여준 성공 케이스

KB금융은 본 거래를 통해 현재까지의 불합리한 오명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M&A는 인수 자체가 성공의 관건이 아니며 적정한 수준에서의 인수 여부가 성공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KB금융은 본 거래의 성공에 기반해 비은행 부문 강화의 목표에 부합하는 적정 매물이 출현할 경우 주주가치 제고의 관점에서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거래는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가 윈윈(win-win)한 모범적 M&A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데, 통상 M&A 거래는 거래 쌍방 간의 과도한 힘겨루기로 인해 zero-sum game으로 평가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LIG손보 인수는 양자 간 상호 존중과 LIG손해보험의 가치 제고라는 원칙 하에 모든 절차가 원만히 진행되었으며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이득이 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사회적 책임도 완수

매각주주들은 가업으로 영위한 LIG손해보험을 적격 인수자인 KB금융에게 양도함으로써, 존경 받는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게 됐다.

LIG손해보험은 경쟁사 대비 RBC 비율이 낮으며, 예정되어 있는 자본 관련 규제 강화로 인해 단 시일 내 자본 확충이 긴요한 상황이었고, 매각주주들의 제반 여건상 당해 자본 확충의 진행이 곤란했던 반면, KB금융은 충분한 자금 여력에 기반해 인수 후 추가 투자 의사를 피력했다.

향후 자본 확충에 가장 높은 열의를 표한 KB금융에게 보유 지분을 매각해 회사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함으로써 재벌가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했다는 평가다.

또, 국내 최고 금융지주사인 KB금융에게 경영권을 이전함으로써 매각 이후 회사의 성장과 임직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한 것은 물론, KB금융의 금융 분야 내 전문성과 경영 노하우가 LIG손해보험에 이식되며 KB금융의 자회사들과 전방위적 협업 체계가 구축될 경우 재도약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아울러 KB금융이 기존에 손해보험업을 운영하고 있지 않음에 따라 LIG손해보험 임직원의 역량이 기존과 같이 적극 활용되는 부분에 대해 매각주주들은 주목하고 있다.

KB금융은 이번 거래를 통해 비은행 부문 강화 및 수익 보완 효과를 달성했다.

LIG손해보험 인수 시, 총자산 및 당기순이익 기준 2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룹 내 비은행 부문을 단번에 3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확대 가능케 했고, 경기 방어적 성격을 지닌 손해보험업에 진출함으로써, 금리 변화에 민감한 그룹 내 수익 구조를 일시에 보완했다.

또, 손해보험업 진출과 동시에 업계 내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물론, 주요 5개사에 의한 과점 체제가 형성된 국내 손해보험업계 특성을 감안 시, 선도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적시에 활용하기도 했다.


업종 다각화 차원의 단순 진출이 아닌,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거래를 성공적으로 종료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KB금융의 포용문화, LIG 손보 노조 마음까지 움직여
LIG 손보, KB금융의 우산속에서 제2의 중흥 기대

KB금융의 노사 상생 문화는 과거 M&A 사례에서 주효하게 작용했다.

국민은행, 주택은행, 장기신용은행, 대동은행 및 동남은행 등의 합병 사례와 한누리살로먼증권(現 KB투자증권) 및 우리파이낸셜(現 KB캐피탈) 인수 사례 등에서 기존 고용 관계 및 노사 합의의 승계를 제일의 원칙으로 준수했으며, 특히 공정한 인사관리, 성과 및 능력 중심의 인사정책을 구현해 조직간 화학적 결합을 단기간 내 성공적으로 달성한 바 있다.

KB금융의 노사 문화는 '인화'를 중시하는 LIG손해보험의 노사 문화와 유사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KB금융은 직원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HR철학 하에 임직원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사내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LIG손해보험의 노조는 일견 '강성'으로 평가되나 실질은 적극적 의견의 개진과 이의 조화를 통해 '인화'의 달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양사 간 노사 문화의 동질성은 상호 융합을 통한 발전적 계승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LIG손해보험이 KB금융 내로 조기 안착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될 전망이다.

지난 인수전에서 KB금융은 LIG손해보험 노조가 선호한 유일한 투자자이며 이에 따라 노조의 적극적 협조 하에 성숙한 노사 문화 정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KB금융은 인수 후 구조조정 및 이에 따른 인력감축을 계획하고 있지 않으며 LIG손해보험 임직원의 탁월한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며, LIG손해보험 노조도 인수 이후 KB금융과의 결합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KB금융도 인수 직후부터 LIG손해보험 임직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계획이며, KB금융의 금융전업가로서의 브랜드 가치는 LIG손해보험 임직원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금융은 금융권 내에서의 경쟁력 있는 임금 수준 및 복리후생제도를 지속 확보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계획이다.


LIG 손보, KB금융그룹 우산 아래서 옛 영광 재현 기대

과거 LIG손해보험은 업계 내 선도 업체로서의 뛰어난 경영 실적을 시현한 바 있으나 제반 여건으로 인해 현재 업계 4위로 순위 하락한 상황이다.

국내 손해보험업의 높은 성장성에도 불구, LIG손해보험의 성장 가능성은 시장에서 저평가 되어 왔으며 이는 경쟁사 대비 저가인 주가에도 반영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본 건 매각 발표 전 2013년 11월 18일 기준, 삼성, 동부, 현대의 장부가 대비 주가 배수는 1.18 ~ 1.24배에 형성된 반면, LIG손해보험은 0.93배로 경쟁사 수치를 현저히 하회하고 있다.

KB금융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함에 따라 향후 LIG손해보험의 가시적 경영 개선 효과가 기대되는데, KB금융은 KB생명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보험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금융업 전반에 대해 지난 인수전의 여타 경쟁자를 압도하는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KB금융의 효율적 자본 관리 기법 및 금융업 전문성을 이식해 안정적 경영 환경 위에서 LIG손해보험의 결집된 내부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다.

LIG손해보험이 KB금융의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경우, 고객 기반 및 사업 영역의 지속적 확대를 통한 비약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며, KB금융그룹의 브랜드를 적극 활용해 LIG손해보험의 브랜드 가치 제고함으로써 영업 전개 및 자본 시장 대응 과정상의 효율성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KB자산운용, KB카드, KB생명 등의 기타 KB금융그룹 자회사와의 협업 체계 구축을 통해 신상품의 개발과 신규 사업 영역으로의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KB금융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업계 1위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체질의 강화에 주력할 예정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이며 자생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그룹 내 계열사별 책임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LIG손해보험 또한 보험업에 특화된 전문 경영인의 책임 하에 일관된 사업 전략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할 수 있도록 경영 환경 조성에 힘쓸 예정이다.


금융산업 전체 관점에서 최적의 선택
정부, 금융전업사 육성 주요 과제로 선정

지난 3월25일, 금융위원회(위원장 신제윤)는 금융전업사 육성 TF의 구성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정부 차원의 금융전업사 지원 의사를 피력했다.

향후 국가 경제의 발전을 견인할 산업으로 금융업을 지목, 금융전업사의 전문성 구비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구상중이다.

국내 선도적 지위의 금융전업사인 KB금융의 LIG손해보험 인수는 상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응하는 주요 사례에 해당되며, KB금융은 종전의 개인과 기업의 자산 관리 기능에 더해 LIG손해보험과 KB생명을 연계 시 고객의 잠재적 부채까지 종합적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 금융그룹으로서의 전문성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며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개발, 제공함으로써 창조 경제 융성에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물론, 국내 금융전업사의 해외 진출과 관련한 기폭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의 해외 진출 전략과 관련해 기 구축되어 있는 LIG손해보험의 해외 영업망 및 보험업 관련 노하우를 당해 전략의 주요 축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국내 선도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을 모색하는 KB금융의 전략은 여타 금융전업사들의 글로벌 전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KB금융은 비은행 부문의 확대를 통해 종합 금융전업사로서의 도약 달성을 계획하고 있으며, 은행계 금융지주회사로 안주하지 않고 비은행 부문의 비중을 지속 확대해 나감으로써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갖춘 금융전업가로 도약을 꿈꾸겠다는 전략이다.

LIG손해보험 인수는 이를 위한 시금석이며 KB금융은 급변하는 국내 금융산업 환경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견인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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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