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풍산그룹 오너일가의 국적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주인공은 회장의 부인과 아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람'이었다가 갑자기 '미국사람'이 됐다. 왜일까. 풍산은 국가 수주산업인 '방산'이 주력사업. 더구나 풍산 회장은 남다른 애국심으로 평소 '나라사랑'이 각별하다는 점에서 의문을 더한다. 여기에 아들의 병역 문제까지 입방아에 올랐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부인 노혜경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성곤·성왜씨다. 이들 중 노씨와 성곤씨 '모자’'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분 증여 과정에서 확인됐다.
회장은 '나라사랑'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류 회장은 최근 풍산홀딩스 주식 1.11%(8만6800주)를 노씨와 아들 성곤씨, 딸 성왜씨에게 증여했다. 노씨에겐 0.46%(3만6000주), 성곤·성왜씨에겐 각각 0.32%(2만5400주)가 돌아갔다. 류 회장이 가족들에게 증여한 주식 가치는 노씨 33억2088만원, 두 자녀 48억186만원 등 총 81억2274만원에 이른다.
노씨와 두 자녀가 보유한 풍산홀딩스 주식은 각각 3.36%(26만2872주), 1.98%(15만5400주)로 늘어났다. 기존 35.98%(281만9296주)를 소유했던 류 회장의 지분은 34.87%(273만2496주)로 낮아졌다. 풍산그룹의 지주사 격인 풍산홀딩스는 류 회장 일가가 42.42%(332만3670주)를 갖고 있다.
이번 증여는 여러모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류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가족들에게 증여한 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전엔 돈으로 해결(?)했었다. 류 회장은 부인과 두 자녀가 지분을 매입할 때마다 현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선을 잡는 대목은 노씨와 성곤씨의 국적이다. 두 사람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적법상 미국인이 됐다. 풍산홀딩스는 증여 내용과 함께 두 사람의 국적이 미국으로 변경, 이름도 영문으로 '헬렌 노(Helen Lho)' '로이스 류(Royce Ryu)'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그러면서 "Helen Lho, Royce Ryu는 기존보고서의 노혜경, 류성곤과 동일인"이라고 설명했다.
류 회장은 '은둔 경영자'로 불릴 만큼 외부 노출을 꺼려한다. 가족 관계 등 사생활은 더욱 베일에 싸여 있다. 언론에서도 그의 가족 얘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다른 오너 및 경영자들과 대조적이다. 그룹 측은 "류 회장이 나서기를 싫어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일까. 풍산일가는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류 회장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이후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서 '미국통'으로 유명하다. 미 정관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에 머문다고 한다. 노신영 전 총리의 딸 노씨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명문 스탠퍼드 법대 출신이다. 성곤·성왜씨도 현재 미국에서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증여 과정서 미국국적 취득 확인
유교 가풍 심한 집안이 왜? 의문 증폭
방산업체인데…외아들 병역 문제 뒷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풍산 모자의 국적 변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이라 그렇다.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대손으로, 안동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고 류찬우 창업주는 사명도 본관(풍산 류씨)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류 창업주는 생전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더욱이 풍산은 정부를 등에 업고 주로 국고로 '금고'를 채우고 있어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1968년 설립된 풍산은 1970년 한국 조폐공사로부터 주화용 소전(동전으로 가공하기 전의 액면가가 새겨져 있지 않은 동전) 제조업체로 지정된 이후 급성장했다.
풍산은 각종 탄약 등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이기도 하다. 대공포, 박격포, 전차포, 함포, 항공탄 등 육·해·공군이 사용하는 탄약을 조립해 납품한다.
같은 맥락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점도 있다. 바로 성곤씨의 병역 문제다. 일부에선 성곤씨의 병역과 관련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적 변경 시기가 논란이다. 성곤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람'이었다가 갑자기 '미국사람'이 됐다.
풍산홀딩스가 지난 3월 공시한 2013년도 사업보고서까지 주주명에 '류성곤'으로 표기됐다. 국적도 한국으로 기재됐다.
그는 풍산홀딩스가 공시를 시작한 1998년부터 지분을 소유해왔다. 그러다 5월 주식변동신고서와 분기보고서엔 이름과 국적이 바뀌었다. 올해 들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방증이다.
성곤씨는 올해 21세(1993년생)다. 한국 남자라면 군에 입대할 나이다. 미국 시민권자는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한 국내 국적법에 따라 한국 국적이 자동 소멸된다. 영주권자는 한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다. 이중국적자의 경우 현행 국적법상 22세 이전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가족은 '미국사람'
류 회장은 평소 '나라사랑'이 각별하다. 그래서 때론 회사를 내팽개치고 나랏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애국심이 남다른 류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한국 국적을 버렸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풍산일가-박근혜 기막힌 인연
재벌가문과 고위 권력층간 혼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세 확장을 꾀하는 기업인으로선 더 바랄 나위 없는 통혼이 아닐 수 없다. 최고 통치권자와 사돈을 맺은 재벌가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과 사돈을 맺은 첫 재벌가문은 풍산그룹(당시 풍산금속)이다. 풍산그룹 오너일가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가문과 1982년 인연을 맺었다. 고 류찬우 창업자의 장남 류청씨와 박 전 대통령의 둘째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근령씨가 결혼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들은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해 결국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령씨는 2008년 14세 연하인 신동욱 선경일보 사장과 재혼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