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노인 '황혼알바' 백태

먹고 살 걱정에…일거리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고령화사회를 맞이하면서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인 형국이다. 이들에게 일반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마찬가지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노인들의 일자리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알바시장을 전전하는 노인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7%를 넘어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현 추세라면 우리사회는 불과 3년 후인 2017년엔 고령사회, 2026년엔 초고령사회에 이를 전망이다. 이러한 고령화 현상은 우리사회 주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황혼알바다.

“일하고 싶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알바를 하는 노인은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다. 노인을 받아주지 않는 사업장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끊임없이 알바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노인 알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주유소지만 이제는 다양한 장소에서 노인알바를 만날 수 있다.
 
장 할아버지(72)는 서울의 한 편의점 주간 알바생이다. 이른 아침 출근해 물건들을 정리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장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장을 깔끔하게 청소한다. 친절한 자세는 기본이다. 이 편의점을 처음 찾는 손님들은 조금 당황하기도 한다. 젊고 어린 알바생이 있는 여타 편의점과 달리 ‘할머니’가 계산대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이 공손해질 때가 많다고 전해진다. 장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아 사는 게 즐겁지 않았다”며 “예전처럼 일 할 수 있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돈을 떠나 일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요즘 편의점 점주들 사이에서는 노인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이유는 ‘주인의식’이다. 단순히 시간만 때우며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 
 

엄 할머니(68)도 서울의 한 페스트푸드점 알바생이다. 하는 일은 손님들이 먹고난 자리 뒷정리와 매장 청소 등으로 비교적 단순하다. 엄 할머니가 지나가는 자리는 번들번들 빛날 정도로 깔끔해진다. 그만큼 꼼꼼하다. 주변 알바생들은 근무에 성실한 엄 할머니를 보고 많은 걸 느낀다고 했다.
 
알바생 A(24)씨는 “(엄 할머니를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알바생 B씨(20)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면서 “오히려 매장 내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며 엄 할머니를 높게 평가했다.
 
20대 선호 인기 업종에 중장년층 몰려
커피전문점에 베이커리·레스토랑 지원
 
그러나 일각에서는 불편한 시선도 감지된다. 젊은 알바생들과 함께 일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는 것. 또 매장 내에서 왁자지껄 웃고 떠들 때 말조심을 하게 되고, 쓰레기를 버릴 때도 조심스럽다는 이유다. 페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 C씨는 “햄버거를 먹고 난 트레이를 할머니가 받아서 치우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면서 본인이 직접 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일 하고자하는 노인은 꾸준히 증가추세인 반면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모든 노인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노인들은 ‘바늘구멍’을 뚫은 경우다. 한때 노인들이 대거 알바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신구세대가 이제는 알바자리를 놓고도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요즘에는 6∼70대와 함께 5∼60대도 알바행렬에 동참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베이비붐 세대인 50대 은퇴자들이 쏟아지면서 자식과 함께 구직 대열에 나서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처럼 다수의 구직자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알바 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대학생들이 많이 뛰어드는 과외시장에도 고학력 퇴직자들이 대거 몰려 대학생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전해진다. 
 
 
알바 전문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이 최근 알바 구직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대들이 선호하는 인기 업종에 중·장년층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 비해 50대의 커피 전문점 지원이 11배(517건) 증가했고 베이커리 12배(435건), 패밀리 레스토랑이 11배(252건) 늘었다.
 
이 밖에 전화상담·접수·안내(10배·2637건), 매장 관리(14배·840건), 물류·창고 관리(8배·1490건) 등에도 이들의 지원이 크게 증가했다. 50대 회원 가입자 수도 두 배 가까이 늘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인 구직활동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짧아진 정년이 깔려있다.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는 경우가 흔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재취업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알바를 찾는 것이다. 이들의 인적 자본과 생산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비판도 제기된다. 사회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결국 청년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뚫는 것보다 어려운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알바전쟁을 통해 냉혹한 사회 현실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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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