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⑩대한민국 헌정회 목요상 회장

"정치가 국민 걱정해야 되는데 국민이 정치 걱정"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치 원로의 충고 한 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빛줄기처럼 반갑다. 길을 잃은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가 준비한 정치 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이번 호에서는 대한민국 헌정회 목요상 회장을 만나봤다.

대한민국 헌정회는 제헌국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정사 66년을 장식해온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국가원로단체다. 이런 헌정회를 이끌고 있는 목요상 회장은 판사 출신으로 서슬 퍼렇던 박정희정권 시절 '오적시와 다리지 사건'에서 소신 판결을 내린 일로 판사직에서 쫓겨나 운명처럼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목 회장은 이후 한나라당 원내총무와 국회운영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거쳐 4선 의원을 지냈다. 올해로 팔순을 맞이한 목 회장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정치현안들에 대해 여전히 소신 있고 강단 있는 목소리를 냈다. 다음은 목요상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의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그동안 헌정회는 어떤 활동을 펼쳐왔는지요?
▲ 아시다시피 우리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입니다. 헌정회 회원 중에는 대통령을 지내신 분,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 장관을 지내신 분, 국회의장을 비롯해 각 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내신 귀중한 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모두 우리나라 민주화와 산업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분들입니다. 국정전반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정회는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귀중한 자산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고견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부나 각계단체에 전달도 하고 세미나도 자주 엽니다. 이외에도 헌정회의 위상제고와 회원들의 복지증진, 친목도모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며 정작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정쟁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야 모두 당리당략에 너무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각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내에서 여러 의견이 분출되면 그 의견들을 하나로 수렴해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이곳저곳에 분출되니 여야가 충돌하고 정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현재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들을 걱정해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정쟁을 막기 위해선 우선 국회선진화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치기 통과와 폭력국회를 지양하자는 의미에서 선진화법을 만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지금 식물국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익 차원에서 원자력 방호방재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해도 결국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여야를 떠나 민생 법안들을 잘 챙겨야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 한때 민주당에 몸담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국회가 민생과제를 하나도 해결 못하고 정쟁만 일삼다 보니까 구태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새정치를 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새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신당의 출현을 굉장히 반긴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양당이 합당한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니까 새정치가 아니라 구태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새민련에) 큰 실망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을 합니다.

대통령 잘 하고 있지만 관료들은 '낙제점'
새정치 기대했지만 구태 답습 "실망했다"

-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권에 입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을 구태로 규정하며 비판하기도 했는데 원로정치인으로서 섭섭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안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는 참신한 인물이었기에 정말 구태를 청산하고 새정치를 만들어 내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국민들이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구태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구태를 뺨치는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안 대표 본인도 냉철하게 자기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요.
▲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로 보낼 때는 국민들 잘살게 해 주고, 바른 정치를 해달라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을 의식해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가를 엄격히 따져봐야 합니다. 해서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정말 저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신뢰를 얻게 됩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 3월 임시 국회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많은 국회의원들이 외유로 빠져나가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국민들로부터 국회가 불신을 받고, 비판을 받는 원인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 정치쇄신 논의가 나올 때마다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옵니다.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의 성격부터 엄격히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연금이 아닙니다. 과거 이 나라의 산업화,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정치원로들에 대한 보훈적 차원의 최소한의 품위유지비입니다. 우리 회원들은 모두 국가발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퇴직한 후에는 노쇄하여 기력이 떨어져서 일도 못하고, 소득도 전혀 없고 건강은 점점 더 나빠져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파도 병원에도 제대로 못 가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외국에서도 의원연금이나 국비로 퇴직한 의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유지비를 지급하고 있는 국가가 많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헌정회 회원들에 대한 예우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어려운 전직 의원을 돕는 것은 동의하지만 지원금 지급 내역을 보면 18억의 자산을 가진 전직 의원도 120만원의 지원금을 똑같이 수급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 헌정회원들이 가진 재산이라는 게 대부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유일합니다. 가진 돈이 많은 게 아니고 젊었을 때 마련한 아파트 한 채가 고작입니다. 아파트 시세가 오르는 바람에 자산가치도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바람에 아파트를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세를 놓으려고 해도 잘 안 나갑니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시가가 9억원 이상의 경우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입니다. 수입도 없고 팔려고 해도 안 팔리는데 그런 분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굶어죽으란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지원금 지급 규정에 보면 소득이 일정액 이상 있는 사람은 지급대상에서 제외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과 균형을 맞춘 것입니다.

- 회장님께서는 박정희정권에서 판사를 역임하며 공안사건에 대해 소신 판결을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십니다. 서슬 퍼렇던 당시 소신 판결을 내리는 데 두려움은 없으셨는지요?
▲ 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당시 오적시와 다리지 사건을 맡게 됐는데 과연 정부를 비판하고 고위직을 비판한 것이 반공법에 저촉되는 일을 한 것이냐를 소신껏 판단했을 뿐입니다. 김지하씨가 관련된 오적시 사건의 경우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자며 정부를 비판한 것이지 김일성이나 북한정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리지 사건도 아무리 검토를 해봐도 쿠데타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때려 부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독재를 타도하자는 것이었는데 북한을 찬양하거나 김일성을 찬양한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신껏 판결을 했던 것입니다.

- 지금은 쉽게 말씀하시지만 서슬 퍼렇던 당시에는 외압이 엄청났다고 들었습니다.
▲ 당시에는 중앙정보부 직원이 법원에 상주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이 사람들이 수시로 내 방에 와가지고 고위층에서 관심 있는 사건이라는 둥, 잘못 처리하면 신상에 안 좋을지도 모른다는 둥 은근슬쩍 저를 굉장히 협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협에 굴복을 해서 죄가 아닌 것을 유죄라고 판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판결을 한 후에는 분명히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몸조심을 엄청 했습니다. 평소 술을 좋아했는데 싸구려 술이라도 절대 남에게 얻어먹지 않고 차라리 혼자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당시 판결을 문제 삼아 판사직에서 쫓겨났고 서울지역에선 변호사도 못하게 해서 초임지였던 대구로 가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201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간첩증거조작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근 발생한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 사실 사건내용을 소상히 알지 못합니다. 수사기록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우성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간첩활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입장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은 북한에서 탈북한 북한 주민이 아닙니다. 북한에 살고 있었던 중국 국적의 화교입니다. 그 사람은 탈북자를 가장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금을 불법으로 타내는 등 부정적인 행위를 했고, 서울시청에 들어간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봅니다.

자신의 친여동생이 오빠를 간첩이라고 말할 정도로 뭔가 수상한 행동을 했던 것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사건의 본질은 유우성이라는 사람이 간첩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본말이 전도되어 가지고 간첩으로 몰기 위해서 국정원이나 이런 데서 증거를 조작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초점이 쏠려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간첩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문서조작한 사건만 가지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우성씨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지요?
▲ 물론 문서를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유우성씨가 간첩이냐 아니냐부터 가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부분을 우선 가리고 나서 간첩이 아니라면 왜 이런 조작을 했느냐를 따지고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남재준 사퇴요구는 너무 과도한 주장"
"정쟁 멈추고 민생법안부터 처리해야"

- 야권에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고 여권 일각에서도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십니까?
▲ 저는 야당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남 원장이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한다면 마땅히 물러나야 합니다. 형사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남 원장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하직원이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안보의 총책을 맡고 있는 사람을 그런 유우성이라는 작은 사람에 대한 문서조작 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한다면 이 나라의 안보문제는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이 남 원장이 물러날 정도의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 최근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통과의 최종 길목을 막아서고 월권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과거 법사위원장을 지내신 바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국회 법사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체계정리와 자구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 야당 시절에 법사위원장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법사위가 여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사위는 너무 당리당략에 치우쳐서 월권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민생 현안 법안들을 쳐 박아 놓고 상정도 안하고 심의도 안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서 요구하는 법안들은 아예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정해진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 해야지 이것은 맞는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평가해 주신다면?
▲ 저는 박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지금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상회하고 있는데 역대 대통령 중에 집권 2년차 지지율이 60%를 상회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지지를 받고 있느냐 살펴보면 외교적으로는 정상회의 등을 통해 국위를 드높였고 우리나라의 존재감도 분명히 각인을 시켰습니다.

대북 관계에서도 원칙을 지켜나가면서도 나름대로 실리를 챙기는 성과를 냈습니다. 대표적으로 개성공단 문제도 원칙을 정해놓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내치에 있어서도 규제개혁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저는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원칙을 정해서 정책을 제시했으면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는데 거기에 부응하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정치권이 선거열풍에 휘말려 민생을 외면할까 걱정입니다. 국민들께서는 이번에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올바른 일꾼을 뽑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8대 국회에서 쇠망치를 들고 회의장의 문을 부수거나 본회의장 의장석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회의장 분위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이, 또 이석기와 같은 인물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정말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려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올바른 일꾼을 뽑아주셔야 합니다. 정치권도 서로 협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목요상 회장 프로필]

▲ 서울고등법원 판사
▲ 제11,12,15,16대 국회의원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법사위원장
▲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 목요상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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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