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⑨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

"정치권이 변해야 기업·사회도 변합니다"

[일요시사=정치팀]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계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김영진(68) 전 농림부 장관이다.

김영진 전 장관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체국 사환에서 시작해 5선 국회의원,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하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는 시련을 겪은 김 전 장관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이우정, 박영숙, 임채정 등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지낸 뒤에는 참여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완공을 눈앞에 둔 새만금사업 중단을 결정한 사법부의 판단에 항의해 장관직을 맡은 지 5개월도 채 안돼 스스로 사퇴했지만, 야인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지난한 법정투쟁을 벌여 결국 새만금사업을 정상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18대 총선에서 당선(광주 서구을)되며 5년 만에 원내에 5선 의원으로 복귀한 그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장을 맡아 재임 중 5·18을 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19대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의 희생자로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현재 원내에 있을 때 못지않게 다방면의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 정치가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요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정치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에 <일요시사>에서는 지난 8일 김 전 장관을 만나 그의 삶과 정치권의 현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 19대 총선 공천에서 낙천한 이후 당시 낙천한 현역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셨습니다. 주변에선 무소속 출마를 권유한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후회가 없으신지요?
▲ 19대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김선동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 곡성군, 이정희 대표가 출마하기로 한 서울 관악을, 그리고 제 지역구였던 광주 서구을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자연스레 민주당 간판으로 19대 총선에 나설 수 없게 됐습니다.

당시 지역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을 유네스코기록물로 등재한 제가 이대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며 무소속 출마를 권유했지만, 신익희·조병옥·장면·김대중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이어온 저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 당시 민주당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당 최다선 중진의원 3인 중 유일하게 당에 남았는데, 보상 같은 것은 있었는지요?
▲ 그런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당에서도 (보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정치를 일구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난 3월16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발기인대회에 고문으로 참여했습니다.

- 당이 김 전 장관님께 해준 것 없이 희생만 강요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운하지는 않으십니까?
▲ 지난 총선을 앞두고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모셨던 최측근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전 의원 등도 모두 당을 나갔습니다. 저까지 나가게 되면 60여년을 이어온 당의 정통성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쪼개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도 저는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 민주당에 남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총선에서도 탈당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 결국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끝으로 다시 정치적으로 야인이 됐습니다.
▲ 2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감하고 원외로 첫발을 내딛을 때 저도 사람인지라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섭섭함도 있었고 때로는 개탄스럽기도 했지요.

그러다 여태까지 제가 국민들께 받았던 사랑에 비해 나눔은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한 센터인 (사)해돋는마을에 전화를 걸어 돕고 싶다고 했고, 현재는 해돋는마을의 이사장으로 노숙인, 독거노인 등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정치권에 있을 때보다 더 삶의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어려운 분들의 아픔과 고난을 보며 안에 있을 때(국회의원 재직)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TV를 보면 살인, 성폭행 등 끔찍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며 사회가 각박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사랑의 온도가 아직 높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만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사랑의 온기가 아랫목을 넘어 윗목까지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갑'들이 '을'의 고통을 눈여겨보고 더불어 사는 모습을 갖춰 나가야합니다.
 

- 지난 2003년 7월 참여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은 지 5개월도 채 안돼 법원의 새만금사업 중단 판결에 항의해 장관직을 사퇴하셨습니다. 당시 상황과 심경이 궁금합니다.
▲ 저는 시골 우체국 사환 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학비를 벌어 강진농업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면소재지에서도 손꼽히는 빈농의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농촌, 농업, 농민의 현실과 삶을 절감하고 자랐지요.

그래서 30대 초반에 농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어쩌다보니 4선 의원을 거쳐 농림부 장관에 부름을 받았을 때 가슴이 벅찼고, 사명감과 소명의식도 나름 대단했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정부에서 시작해 15년간 이미 공정이 90% 이상 진척된 새만금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도 그때의 정치적 결단을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 당시 서·남해안에 새로운 간척사업을 진행한다고 했다면 저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무리단계에서 카운트다운만 남은 거대 국책사업을 30대 젊은 법관이 현장검증도 없이 중단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대통령에게 '이건 아닙니다'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주무장관으로 제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직을 사퇴했습니다. 그리고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5년간 대법원까지 판결을 끌고 간 끝에 결국 승소해 새만금은 살아났습니다.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갑'이 먼저 '을'과 더불어 살도록 노력해야"
"글로벌시대, 한·중·일 협력 강화 시급한 현안"

- 한·일 기독의원연맹의 창설자 겸 상임대표로 현재도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는 과격한 우경화 행보를 보이며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는 모양새입니다.
▲ 한·중·일 협력 강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현안입니다. 전 세계인구 70억명 중 아시아에 절반인 35억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규모를 감안하면 글로벌 사회에서 아시아의 발언권과 목소리는 높아야 하지만 현실은 미국과 EU(유럽연합)가 결탁해 지구촌의 지분과 이익을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청산을 둘러싼 담이 높고 패인 골이 깊기 때문인데, 한·중·일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아시아는 지구촌에서 계속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덮고 무조건 보듬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 일본의 우경화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잘못됐고, 분노할 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국민들은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치적으로 닫힌 한·일관계를 풀기는 어렵지만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으로는 얼마든지 가까워질 여지가 있고 이 부분들에서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일본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한·일 관계도 치유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색된 한·일관계, 문화·종교·사회적으로 풀어야"
"4·19혁명, 2년 내 유네스코기록유산 등재할 것"

- 지난 2011년 5·18민주화운동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 추진위원장을 맡아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 등재를 성사시킨데 이어 지난해 10월부터는 4·19혁명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는지요?
▲ 한국 근현대사에서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은 3대 민족·민주·평화 운동입니다. 5·18은 이미 등재가 됐고, 다음 차례로 4·19혁명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4·19혁명 유네스코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이사장을 맡아 등재를 위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종 등재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여야의 극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작금의 정치권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정치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무척 부끄럽습니다.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돼 이합집산하고, 다툼이 심화된 현재의 정치권은 달라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와 진보세력이 현실을 잘 진단하고 열린 보수와 겸손한 개혁으로 처방전을 내렸으면 합니다. 국회가 변화면 재계도 변하고, 사화, 문화 등 여러 분야도 달라질 것입니다.

-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한 조언도 한마디 해주시지요.
▲ 박근혜정부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승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관련한 심적 부담은 많이 안고 출범했습니다. 때문에 과거 정권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떨쳐버리려는 노력과 분산된 국론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탕평인사가 아닌 특정인사만 기용하며 인사에도 지속적으로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도 개선해야 합니다. 이제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만큼 아직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심기일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 성공한 대통령이 됐으면 합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 밖(원외)에 나와 보니 실사구시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진작 국민들이 뭘 보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아쉬워하는지 살폈어야 했는데 부족한 면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밖에서 쓴 영약을 먹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 20대 총선을 준비할 예정인데, 원내 교두보를 확보해 지금 하고 있는 각종 봉사활동, 해외동포 법적 지위 향상 등의 활동을 더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김영진 전 장관 프로필>


▲ 5선 국회의원, 제53대 농림부 장관
▲ 광주대학교 석좌교수
▲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 상임대표
▲ (사)국제사랑재단 대표회장
▲ (사)해돋는마을 이사장
▲ (사)5·18광주 UN/유네스크 등재 및 아카이브센터 이사장
▲ (사)4·19혁명 UN/유네스코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 이사장
▲ UN/유네스코 아·태 교육의원연맹 의장
▲ 한·일 기독의원연맹 창설자 상임대표
▲ 세계기독의원연맹 창설초대회장
▲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부총회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