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살인' 층간소음법 보니…

‘삭막한 이웃’ 더 싸움 나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층간소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됐다.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을 줄이고 화해나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층간 소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은 것이다. 실효성은 지켜봐야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이웃 간 고소·고발이 남발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근본적인 대안이 부재한 무책임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순한 이웃 간의 갈등이라고 여겼던 층간소음이 범죄로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웃 간 말다툼을 넘어 살인과 방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층간소음 갈등 사례는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결과 지난해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건수는 총 1271건으로 하루 평균 3~4건이었다. 층간소음 분쟁조정 신청은 2008년 11건, 2009년 9건, 2010년 18건, 2011년 21건, 2012년 16건, 지난해 29건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부 층간소음 민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민원은 2012년 7021건, 2013년 1만5455건이다. 

불신의 씨앗
층간소음전쟁
 
층간소음의 원인으로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73%로 가장 많았고, 망치질 소리 4.5%, 가구 옮기는 소리 2.6%, 가전제품 소리 2.3%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전체 가구 중 65% 이상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통상 주택 바닥을 콩자갈로 시공해 방음이 비교적 잘 됐지만, 최근에는 단가가 낮은 벽식구조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소음발생 문제가 더 커졌다고 한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을 빚어오던 윗층 거주자의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한 박모(48·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월 13일 오전 8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왜 시끄럽게 하느냐”면서 A(8)군의 얼굴 등을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A군은 이날 등교하기 위해 나섰다가 박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이같은 폭행을 당한 뒤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열린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피의자에게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약식기소 대신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이 발생했다. 피해자 허모(45)씨는 이날 집 안에 혼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아무 의심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키 큰 청년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아랫집 아들 김모(24)씨였다. 김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허씨에게 “좀 조용히 다니라”며 허씨가 시끄럽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실랑이가 벌어졌고 김씨는 뒤로 돌아서 미리 준비해온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허씨는 가까스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으나 열여덟 바늘을 꿰매야 하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허씨 주장에 따르면 이 다툼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김씨네 집이 아래층으로 이사를 온 지 한 달 후부터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윗집 방과 거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해 아들 공부에 지장을 받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씨는 2010년 3월부터 이 아파트에 살면서 소음으로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김씨네 집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더군다나 허씨는 혼자였다. 허씨는 계속 “내가 혼자 살고 있고, 거의 대부분 생활을 거실에서 하기 때문에 소음이 날 리가 없다”며 김씨네를 이해시켰다.
 
이후 두 집은 서로 조심하기로 약속했고, 평소보다 조심히 생활했다. 집 안에서 발꿈치를 들고 생활했고 혹시나 소리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허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소음이 안 나도록 노력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조심조심했지만 소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허씨와 김씨 양측은 결국 관리소장과 함께 소음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허씨는 계속해서 “소음의 원인은 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관리소장도 소음의 원인이 꼭 바로 윗집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서로 이해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소음의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 윗집에 사는 이웃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신경쇠약 증세가 있었다.


칼부림·방화 등
심각해지는 범죄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수년간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던 윗집 현관문 앞에 불을 지른 장모(34)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1월11일 오전 4시24분쯤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평소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심했던 위층 A(36·여)씨 자택 현관문 앞 유모차에 불을 붙여 현관문을 태우는 등 145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에서 깼던 A씨가 불이 타오르는 소리 등을 듣고 관리사무소와 112에 신고,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장씨 외에 범행 전후에 이동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수사해왔다.
 
화해·조정이 우선 구체적인 기준 마련
실효성 논란…고소고발 남발 현상 우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는 2008년 9월 위층으로 이사온 이모(36·여)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잦은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장씨는 술에 취해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의 자녀는 3∼10살 4명으로 최근 소음이 부쩍 심했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집에는 어린 자녀 4명과 이씨의 남편까지 총 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을 지를 개연성은 인정하지만 당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어떻게 불 질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거나 “빠른 사건 마무리를 위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고 싶다” 등 모호한 답변을 반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담배를 피우던 장씨로부터 범행 의심 물품인 라이터를 압수하고, CCTV 분석과 관리사무소장 등의 참고인 진술, 거짓말 탐지기 분석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9일에 일어난 사건은 더 끔찍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세입자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살해한 70대 노인 임모(73)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임씨는 자신의 다가구주택 1층에 세들어 사는 A씨 부부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이들 부부가 집 안 작은방에 샌드백을 설치해 운동하는 소리가 2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들렸기 때문.
 
결국 이 부부는 샌드백을 치웠지만 임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 나가라고 요구했고 A씨 부부는 전세금부터 먼저 받겠다며 집을 비우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임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휘발유 등을 구비해 방화 계획을 세웠다. 
 

5월 A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또 다시 말다툼을 벌인 임씨는 A씨가 “집주인이면 다냐. 이 XX야”라고 욕설한 것에 분개해 집에 있던 도끼로 A씨와 그의 부인의 팔을 가격했다.
 
이 부부는 황급히 집 안으로 도망쳤으나 도끼로 부부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임씨는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폈다. 당시 집 안에서 놀고 있던 부부의 20대 딸과 남자친구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숨지고 말았다.
 
1심 재판부는 “층간소음이라는 사소한 분쟁 때문에 흉기를 휘두른 것도 모자라 주거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불을 질러 무고한 2명이 생명을 빼앗겼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즉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범행 전에 휘발유와 라이터를 구입해 범행을 준비한 점, 도끼로 피해자들을 위협하고, 이들이 안방으로 피신하자 거실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두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갈등 없앤다지만…
원천적 해결? 글쎄∼
 

이처럼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소음·진동관리법’과 ‘주택법’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위임사항을 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 공동부령을 마련하고 지난 11일부터 5월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하는 공동부령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과도한 생활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의 기준을 제시하여 입주자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건전한 공동체 생활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번 제정안의 적용대상은 공동주택으로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이 해당된다. 층간소음의 구체적인 범위는 아이들이 뛰는 동작, 문·창을 닫거나 두드리는 소음, 헬스기구, 골프연습기 등의 운동기구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 벽, 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직접 충격 소음과 TV, 피아노 등의 악기에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하고 욕실 등에서 발생하는 급배수 소음은 제외된다. 이는 건설 시에 소음성능이 결정되므로, 입주자의 의지에 따라 소음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해결하도록 권고 수준
"건축법규 손보는 게 먼저" 지적
 
규칙은 1분 등가소음도(Leq) 주간 43dB, 야간 38dB, 최고소음도(Lmax) 주간 57dB, 야간 52dB로 기준치를 설정했다. 1분 등가소음도는 1분 동안 발생한 변동소음을 정상소음의 에너지로 등가해 얻으며, 최고소음도는 충격음이 최대로 발생한 소음을 측정하여 얻는다. 이는 지난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연구용역)을 거쳐 완공된 3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실제 충격음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설정했다.
 
이번에 제정하는 층간소음기준은 입주자가 실내에서 보통으로 걷거나 일상생활 행위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기준이며 지속적으로 층간소음을 일으켜 이웃에 피해를 주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측정기준도 1분 이상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층간소음기준은 소음에 따른 분쟁발생 시 당사자간이나 아파트관리기구 등에서 화해를 위한 기준으로 이웃 간 조심 하도록 하고자하는 기준이다. 분쟁 발생시 1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한다. 층간소음 기준의 최고소음도 기준을 3번 이상 초과하면 기준을 넘긴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당사자간 화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공적기구에서 화해·조정기준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의 관리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상담을 통해 지원하기 위하여 주택관리공단에 위탁하여 ‘우리家 함께 행복지원센터’를 지난 8일 개소해 새로이 만들어 층간소음 상담도 함께 지원 층간소음 상담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1661-2642)’를 2012년 3월부터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2013년 9월 5대광역시로, 올해 5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과 관련한 상담, 현장진단 및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웃 간 갈등조정을 위해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6월 이래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환경분쟁을 조정 및 중재해 온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법적 층간소음기준이 발효됨에 따라 이웃사이서비스를 통해 해결이 어려운 층간소음 관련 분쟁을 중심으로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을 추진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은 ‘행복한 생활공간 조성’이라는 국정과제의 구현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국토부·환경부가 협업하여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도 양 부처가 협력하여 층간소음 예방 및 해결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근본적인
대안부재
 
국토부·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층간소음 수준에 대한 법적기준이 없어 이웃 간 갈등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라며 층간소음기준이 마련되면 “이웃 간 갈등 해결 및 국민불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되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은 2014년 5월1일까지 입법예고되고, 세부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와 환경부가 제시한 층간소음 기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오히려 소음기준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조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실시공으로 원천적 책임이 큰 건설사 편을 들어주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새로 제시한 기준이 법적 기준으로 확정되면 5dB이 완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소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상 정부가 층간소음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주자가 아닌 시공사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과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주의 소음관리 방식?
직접피해 없어도 이웃 주민 위해 신고
 
호주에는 경찰보다 더 무서운 ‘네이버 워치(Neighbor Watch)’가 있다. 네이버 워치는 이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해도 나서서 신고하는 호주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령 밤늦도록 파티를 하거나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판단되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마을 주민을 위해 신고한다. 주어진 자유 안에서 자신들이 정한 규을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하는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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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