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살인' 층간소음법 보니…

‘삭막한 이웃’ 더 싸움 나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층간소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됐다.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을 줄이고 화해나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층간 소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은 것이다. 실효성은 지켜봐야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이웃 간 고소·고발이 남발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근본적인 대안이 부재한 무책임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순한 이웃 간의 갈등이라고 여겼던 층간소음이 범죄로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웃 간 말다툼을 넘어 살인과 방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층간소음 갈등 사례는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결과 지난해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건수는 총 1271건으로 하루 평균 3~4건이었다. 층간소음 분쟁조정 신청은 2008년 11건, 2009년 9건, 2010년 18건, 2011년 21건, 2012년 16건, 지난해 29건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부 층간소음 민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민원은 2012년 7021건, 2013년 1만5455건이다. 

불신의 씨앗
층간소음전쟁
 
층간소음의 원인으로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73%로 가장 많았고, 망치질 소리 4.5%, 가구 옮기는 소리 2.6%, 가전제품 소리 2.3%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전체 가구 중 65% 이상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통상 주택 바닥을 콩자갈로 시공해 방음이 비교적 잘 됐지만, 최근에는 단가가 낮은 벽식구조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소음발생 문제가 더 커졌다고 한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을 빚어오던 윗층 거주자의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한 박모(48·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월 13일 오전 8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왜 시끄럽게 하느냐”면서 A(8)군의 얼굴 등을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A군은 이날 등교하기 위해 나섰다가 박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이같은 폭행을 당한 뒤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열린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피의자에게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약식기소 대신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이 발생했다. 피해자 허모(45)씨는 이날 집 안에 혼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아무 의심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키 큰 청년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아랫집 아들 김모(24)씨였다. 김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허씨에게 “좀 조용히 다니라”며 허씨가 시끄럽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실랑이가 벌어졌고 김씨는 뒤로 돌아서 미리 준비해온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허씨는 가까스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으나 열여덟 바늘을 꿰매야 하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허씨 주장에 따르면 이 다툼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김씨네 집이 아래층으로 이사를 온 지 한 달 후부터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윗집 방과 거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해 아들 공부에 지장을 받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씨는 2010년 3월부터 이 아파트에 살면서 소음으로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김씨네 집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더군다나 허씨는 혼자였다. 허씨는 계속 “내가 혼자 살고 있고, 거의 대부분 생활을 거실에서 하기 때문에 소음이 날 리가 없다”며 김씨네를 이해시켰다.
 
이후 두 집은 서로 조심하기로 약속했고, 평소보다 조심히 생활했다. 집 안에서 발꿈치를 들고 생활했고 혹시나 소리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허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소음이 안 나도록 노력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조심조심했지만 소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허씨와 김씨 양측은 결국 관리소장과 함께 소음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허씨는 계속해서 “소음의 원인은 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관리소장도 소음의 원인이 꼭 바로 윗집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서로 이해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소음의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 윗집에 사는 이웃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신경쇠약 증세가 있었다.


칼부림·방화 등
심각해지는 범죄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수년간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던 윗집 현관문 앞에 불을 지른 장모(34)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1월11일 오전 4시24분쯤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평소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심했던 위층 A(36·여)씨 자택 현관문 앞 유모차에 불을 붙여 현관문을 태우는 등 145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에서 깼던 A씨가 불이 타오르는 소리 등을 듣고 관리사무소와 112에 신고,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장씨 외에 범행 전후에 이동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수사해왔다.
 
화해·조정이 우선 구체적인 기준 마련
실효성 논란…고소고발 남발 현상 우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는 2008년 9월 위층으로 이사온 이모(36·여)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잦은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장씨는 술에 취해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의 자녀는 3∼10살 4명으로 최근 소음이 부쩍 심했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집에는 어린 자녀 4명과 이씨의 남편까지 총 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을 지를 개연성은 인정하지만 당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어떻게 불 질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거나 “빠른 사건 마무리를 위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고 싶다” 등 모호한 답변을 반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담배를 피우던 장씨로부터 범행 의심 물품인 라이터를 압수하고, CCTV 분석과 관리사무소장 등의 참고인 진술, 거짓말 탐지기 분석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9일에 일어난 사건은 더 끔찍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세입자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살해한 70대 노인 임모(73)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임씨는 자신의 다가구주택 1층에 세들어 사는 A씨 부부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이들 부부가 집 안 작은방에 샌드백을 설치해 운동하는 소리가 2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들렸기 때문.
 
결국 이 부부는 샌드백을 치웠지만 임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 나가라고 요구했고 A씨 부부는 전세금부터 먼저 받겠다며 집을 비우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임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휘발유 등을 구비해 방화 계획을 세웠다. 
 

5월 A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또 다시 말다툼을 벌인 임씨는 A씨가 “집주인이면 다냐. 이 XX야”라고 욕설한 것에 분개해 집에 있던 도끼로 A씨와 그의 부인의 팔을 가격했다.
 
이 부부는 황급히 집 안으로 도망쳤으나 도끼로 부부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임씨는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폈다. 당시 집 안에서 놀고 있던 부부의 20대 딸과 남자친구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숨지고 말았다.
 
1심 재판부는 “층간소음이라는 사소한 분쟁 때문에 흉기를 휘두른 것도 모자라 주거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불을 질러 무고한 2명이 생명을 빼앗겼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즉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범행 전에 휘발유와 라이터를 구입해 범행을 준비한 점, 도끼로 피해자들을 위협하고, 이들이 안방으로 피신하자 거실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두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갈등 없앤다지만…
원천적 해결? 글쎄∼
 

이처럼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소음·진동관리법’과 ‘주택법’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위임사항을 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 공동부령을 마련하고 지난 11일부터 5월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하는 공동부령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과도한 생활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의 기준을 제시하여 입주자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건전한 공동체 생활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번 제정안의 적용대상은 공동주택으로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이 해당된다. 층간소음의 구체적인 범위는 아이들이 뛰는 동작, 문·창을 닫거나 두드리는 소음, 헬스기구, 골프연습기 등의 운동기구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 벽, 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직접 충격 소음과 TV, 피아노 등의 악기에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하고 욕실 등에서 발생하는 급배수 소음은 제외된다. 이는 건설 시에 소음성능이 결정되므로, 입주자의 의지에 따라 소음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해결하도록 권고 수준
"건축법규 손보는 게 먼저" 지적
 
규칙은 1분 등가소음도(Leq) 주간 43dB, 야간 38dB, 최고소음도(Lmax) 주간 57dB, 야간 52dB로 기준치를 설정했다. 1분 등가소음도는 1분 동안 발생한 변동소음을 정상소음의 에너지로 등가해 얻으며, 최고소음도는 충격음이 최대로 발생한 소음을 측정하여 얻는다. 이는 지난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연구용역)을 거쳐 완공된 3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실제 충격음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설정했다.
 
이번에 제정하는 층간소음기준은 입주자가 실내에서 보통으로 걷거나 일상생활 행위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기준이며 지속적으로 층간소음을 일으켜 이웃에 피해를 주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측정기준도 1분 이상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층간소음기준은 소음에 따른 분쟁발생 시 당사자간이나 아파트관리기구 등에서 화해를 위한 기준으로 이웃 간 조심 하도록 하고자하는 기준이다. 분쟁 발생시 1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한다. 층간소음 기준의 최고소음도 기준을 3번 이상 초과하면 기준을 넘긴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당사자간 화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공적기구에서 화해·조정기준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의 관리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상담을 통해 지원하기 위하여 주택관리공단에 위탁하여 ‘우리家 함께 행복지원센터’를 지난 8일 개소해 새로이 만들어 층간소음 상담도 함께 지원 층간소음 상담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1661-2642)’를 2012년 3월부터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2013년 9월 5대광역시로, 올해 5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과 관련한 상담, 현장진단 및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웃 간 갈등조정을 위해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6월 이래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환경분쟁을 조정 및 중재해 온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법적 층간소음기준이 발효됨에 따라 이웃사이서비스를 통해 해결이 어려운 층간소음 관련 분쟁을 중심으로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을 추진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은 ‘행복한 생활공간 조성’이라는 국정과제의 구현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국토부·환경부가 협업하여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도 양 부처가 협력하여 층간소음 예방 및 해결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근본적인
대안부재
 
국토부·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층간소음 수준에 대한 법적기준이 없어 이웃 간 갈등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라며 층간소음기준이 마련되면 “이웃 간 갈등 해결 및 국민불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되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은 2014년 5월1일까지 입법예고되고, 세부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와 환경부가 제시한 층간소음 기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오히려 소음기준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조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실시공으로 원천적 책임이 큰 건설사 편을 들어주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새로 제시한 기준이 법적 기준으로 확정되면 5dB이 완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소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상 정부가 층간소음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주자가 아닌 시공사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과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주의 소음관리 방식?
직접피해 없어도 이웃 주민 위해 신고
 
호주에는 경찰보다 더 무서운 ‘네이버 워치(Neighbor Watch)’가 있다. 네이버 워치는 이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해도 나서서 신고하는 호주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령 밤늦도록 파티를 하거나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판단되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마을 주민을 위해 신고한다. 주어진 자유 안에서 자신들이 정한 규을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하는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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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