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살인' 층간소음법 보니…

‘삭막한 이웃’ 더 싸움 나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층간소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됐다.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을 줄이고 화해나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층간 소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은 것이다. 실효성은 지켜봐야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이웃 간 고소·고발이 남발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근본적인 대안이 부재한 무책임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순한 이웃 간의 갈등이라고 여겼던 층간소음이 범죄로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웃 간 말다툼을 넘어 살인과 방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층간소음 갈등 사례는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결과 지난해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건수는 총 1271건으로 하루 평균 3~4건이었다. 층간소음 분쟁조정 신청은 2008년 11건, 2009년 9건, 2010년 18건, 2011년 21건, 2012년 16건, 지난해 29건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부 층간소음 민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민원은 2012년 7021건, 2013년 1만5455건이다. 

불신의 씨앗
층간소음전쟁
 
층간소음의 원인으로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73%로 가장 많았고, 망치질 소리 4.5%, 가구 옮기는 소리 2.6%, 가전제품 소리 2.3%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전체 가구 중 65% 이상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통상 주택 바닥을 콩자갈로 시공해 방음이 비교적 잘 됐지만, 최근에는 단가가 낮은 벽식구조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소음발생 문제가 더 커졌다고 한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을 빚어오던 윗층 거주자의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한 박모(48·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월 13일 오전 8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왜 시끄럽게 하느냐”면서 A(8)군의 얼굴 등을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A군은 이날 등교하기 위해 나섰다가 박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이같은 폭행을 당한 뒤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열린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피의자에게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약식기소 대신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이 발생했다. 피해자 허모(45)씨는 이날 집 안에 혼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아무 의심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키 큰 청년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아랫집 아들 김모(24)씨였다. 김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허씨에게 “좀 조용히 다니라”며 허씨가 시끄럽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실랑이가 벌어졌고 김씨는 뒤로 돌아서 미리 준비해온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허씨는 가까스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으나 열여덟 바늘을 꿰매야 하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허씨 주장에 따르면 이 다툼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김씨네 집이 아래층으로 이사를 온 지 한 달 후부터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윗집 방과 거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해 아들 공부에 지장을 받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씨는 2010년 3월부터 이 아파트에 살면서 소음으로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김씨네 집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더군다나 허씨는 혼자였다. 허씨는 계속 “내가 혼자 살고 있고, 거의 대부분 생활을 거실에서 하기 때문에 소음이 날 리가 없다”며 김씨네를 이해시켰다.
 
이후 두 집은 서로 조심하기로 약속했고, 평소보다 조심히 생활했다. 집 안에서 발꿈치를 들고 생활했고 혹시나 소리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허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소음이 안 나도록 노력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조심조심했지만 소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허씨와 김씨 양측은 결국 관리소장과 함께 소음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허씨는 계속해서 “소음의 원인은 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관리소장도 소음의 원인이 꼭 바로 윗집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서로 이해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소음의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 윗집에 사는 이웃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신경쇠약 증세가 있었다.

칼부림·방화 등
심각해지는 범죄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수년간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던 윗집 현관문 앞에 불을 지른 장모(34)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1월11일 오전 4시24분쯤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평소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심했던 위층 A(36·여)씨 자택 현관문 앞 유모차에 불을 붙여 현관문을 태우는 등 145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에서 깼던 A씨가 불이 타오르는 소리 등을 듣고 관리사무소와 112에 신고,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장씨 외에 범행 전후에 이동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수사해왔다.
 
화해·조정이 우선 구체적인 기준 마련
실효성 논란…고소고발 남발 현상 우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는 2008년 9월 위층으로 이사온 이모(36·여)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잦은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장씨는 술에 취해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의 자녀는 3∼10살 4명으로 최근 소음이 부쩍 심했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집에는 어린 자녀 4명과 이씨의 남편까지 총 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을 지를 개연성은 인정하지만 당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어떻게 불 질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거나 “빠른 사건 마무리를 위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고 싶다” 등 모호한 답변을 반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담배를 피우던 장씨로부터 범행 의심 물품인 라이터를 압수하고, CCTV 분석과 관리사무소장 등의 참고인 진술, 거짓말 탐지기 분석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9일에 일어난 사건은 더 끔찍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세입자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살해한 70대 노인 임모(73)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임씨는 자신의 다가구주택 1층에 세들어 사는 A씨 부부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이들 부부가 집 안 작은방에 샌드백을 설치해 운동하는 소리가 2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들렸기 때문.
 
결국 이 부부는 샌드백을 치웠지만 임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 나가라고 요구했고 A씨 부부는 전세금부터 먼저 받겠다며 집을 비우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임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휘발유 등을 구비해 방화 계획을 세웠다. 
 
5월 A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또 다시 말다툼을 벌인 임씨는 A씨가 “집주인이면 다냐. 이 XX야”라고 욕설한 것에 분개해 집에 있던 도끼로 A씨와 그의 부인의 팔을 가격했다.
 
이 부부는 황급히 집 안으로 도망쳤으나 도끼로 부부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임씨는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폈다. 당시 집 안에서 놀고 있던 부부의 20대 딸과 남자친구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숨지고 말았다.
 
1심 재판부는 “층간소음이라는 사소한 분쟁 때문에 흉기를 휘두른 것도 모자라 주거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불을 질러 무고한 2명이 생명을 빼앗겼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즉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범행 전에 휘발유와 라이터를 구입해 범행을 준비한 점, 도끼로 피해자들을 위협하고, 이들이 안방으로 피신하자 거실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두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갈등 없앤다지만…
원천적 해결? 글쎄∼
 
이처럼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소음·진동관리법’과 ‘주택법’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위임사항을 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 공동부령을 마련하고 지난 11일부터 5월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하는 공동부령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과도한 생활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의 기준을 제시하여 입주자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건전한 공동체 생활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번 제정안의 적용대상은 공동주택으로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이 해당된다. 층간소음의 구체적인 범위는 아이들이 뛰는 동작, 문·창을 닫거나 두드리는 소음, 헬스기구, 골프연습기 등의 운동기구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 벽, 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직접 충격 소음과 TV, 피아노 등의 악기에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하고 욕실 등에서 발생하는 급배수 소음은 제외된다. 이는 건설 시에 소음성능이 결정되므로, 입주자의 의지에 따라 소음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해결하도록 권고 수준
"건축법규 손보는 게 먼저" 지적
 
규칙은 1분 등가소음도(Leq) 주간 43dB, 야간 38dB, 최고소음도(Lmax) 주간 57dB, 야간 52dB로 기준치를 설정했다. 1분 등가소음도는 1분 동안 발생한 변동소음을 정상소음의 에너지로 등가해 얻으며, 최고소음도는 충격음이 최대로 발생한 소음을 측정하여 얻는다. 이는 지난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연구용역)을 거쳐 완공된 3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실제 충격음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설정했다.
 
이번에 제정하는 층간소음기준은 입주자가 실내에서 보통으로 걷거나 일상생활 행위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기준이며 지속적으로 층간소음을 일으켜 이웃에 피해를 주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측정기준도 1분 이상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층간소음기준은 소음에 따른 분쟁발생 시 당사자간이나 아파트관리기구 등에서 화해를 위한 기준으로 이웃 간 조심 하도록 하고자하는 기준이다. 분쟁 발생시 1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한다. 층간소음 기준의 최고소음도 기준을 3번 이상 초과하면 기준을 넘긴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당사자간 화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공적기구에서 화해·조정기준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의 관리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상담을 통해 지원하기 위하여 주택관리공단에 위탁하여 ‘우리家 함께 행복지원센터’를 지난 8일 개소해 새로이 만들어 층간소음 상담도 함께 지원 층간소음 상담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1661-2642)’를 2012년 3월부터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2013년 9월 5대광역시로, 올해 5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과 관련한 상담, 현장진단 및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웃 간 갈등조정을 위해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6월 이래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환경분쟁을 조정 및 중재해 온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법적 층간소음기준이 발효됨에 따라 이웃사이서비스를 통해 해결이 어려운 층간소음 관련 분쟁을 중심으로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을 추진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은 ‘행복한 생활공간 조성’이라는 국정과제의 구현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국토부·환경부가 협업하여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도 양 부처가 협력하여 층간소음 예방 및 해결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근본적인
대안부재
 
국토부·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층간소음 수준에 대한 법적기준이 없어 이웃 간 갈등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라며 층간소음기준이 마련되면 “이웃 간 갈등 해결 및 국민불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되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은 2014년 5월1일까지 입법예고되고, 세부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와 환경부가 제시한 층간소음 기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오히려 소음기준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조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실시공으로 원천적 책임이 큰 건설사 편을 들어주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새로 제시한 기준이 법적 기준으로 확정되면 5dB이 완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소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상 정부가 층간소음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주자가 아닌 시공사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과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주의 소음관리 방식?
직접피해 없어도 이웃 주민 위해 신고
 
호주에는 경찰보다 더 무서운 ‘네이버 워치(Neighbor Watch)’가 있다. 네이버 워치는 이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해도 나서서 신고하는 호주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령 밤늦도록 파티를 하거나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판단되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마을 주민을 위해 신고한다. 주어진 자유 안에서 자신들이 정한 규을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하는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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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