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여의도 국회가 로비스트들의 전쟁터가 됐다. 경제민주화가 몇 년째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대기업들은 국회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대거 늘렸다. 국회 내에 거미줄 인맥을 자랑하는 보좌진들의 몸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고 대기업 대관팀으로 이직하는 보좌진도 부지기수다. 로비스트들의 피 튀기는 전쟁터로 전락한 국회의 현주소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가 몇 년째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회가 로비스트들의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각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국회 대관팀'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법안 문구 하나에 업계 전체의 지형과 수익률이 크게 좌우되는 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회 보좌진들은 대관팀의 스카웃 대상 1순위가 됐다. 정책적 이해도가 높고, 국회 내 인맥도 두텁기 때문이다.
보좌진 상한가
최근에는 일반 기업들뿐만 아니라 생명보험협회와 같은 곳에서도 국회의원 보좌진을 대관 업무팀으로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생명보험협회에서 의원 비서관 출신을 영입하면서 '정책위원'이란 기존에 없던 직책까지 신설하기도 했다. 각 업계에서 의원 보좌진 출신을 영입해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에서 이들의 몸값은 더욱 상종가를 치고 있다.
국회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업무는 얼핏 보면 단순하다. 이들은 평소 보좌관들을 수시로 접촉하면서 친분을 쌓는 데 공을 들인다. 일부 기업의 대관팀은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하기도 하는데, 특히 이번 19대 국회의 경우 의원이 절반가량이나 물갈이 되는 바람에 성향 파악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19대 국회의 경우 시민단체 출신의 반재벌 성향의 초선의원들이 대거 입성해 대관팀들이 무척 긴장을 했었다는 후문이다. 반재벌 성향의 의원들은 기업 대관팀에서 접촉을 하려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향이 강해 친분을 쌓기도 어렵다고 한다.
기업 대관팀은 특히 법제사법위, 기획재정위, 정무위, 환경노동위 등에 소속된 의원들을 집중 마크하고 있다. 법사위는 각종 대기업 규제 법안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곳이고, 기재위는 세제와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다. 정무위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고, 환노위는 노사관계를 다루는 만큼 중요하다.
또 요즘에는 국회 내에 있는 각종 위원회나 모임도 대관팀의 감시대상이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나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주요 감시대상이 됐다.
이들은 국회에 상주하면서 해당기업이나 업계에 불리한 법안을 국회에서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법안의 내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의된 관세법 개정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A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법안은 면세점의 운영권을 중소기업과 지방공기업 등에 의무적으로 분배하도록 되어 있었다. 법안 발의 뒤 해당업체 관계자들은 전방위 로비를 벌였고, 해당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관팀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기업의 오너들을 국정감사 등의 증인 또는 참고인 명단에서 빼내는 것이다. 빼낼 수 없다면 최소한 회장이 아닌 실무 책임자가 대신 국감장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일단 증인으로 국회에 불러나가게 되면 기업 오너들은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한다. 기업 이미지도 크게 훼손된다. 때문에 기업 오너들은 국감장에 불려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한다.
주요 법안 심사 때마다 입법로비 극성
여야 합의 뒤집히는 일도 비일비재
과거에는 국감 기간에 기업 오너들이 해외출장 계획을 미리 잡아놓고 이를 핑계로 빠져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난해 법원에서 국회에 불출석한 기업 오너들에게 대거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벌금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이를 기업 오너들에 대한 마지막 경고로 해석한 까닭이었다. 경제민주화가 부각되면서 재계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가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음을 느낀 것이다.
이제 기업의 오너들을 증인 명단에서 빼내는 것은 온전히 대관팀의 능력에 달리게 됐다. 대관팀은 기업 오너를 빼내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만약 오너가 국감장에 불러가는 날에는 대관팀 전체가 하루아침에 물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일부 대기업들은 대관업무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맥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기업은 모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주요 공직자 등과의 인맥을 적어내게 해 인맥이 파악되면 이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관팀이 전혀 안면이 없는 국회의원을 만나러 갈 때 해당의원과 안면이 있는 직원을 함께 데리고 나가는 식이다. 단순한 인사자리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인맥을 활용하면 해당의원과 더 빠르고 깊게 친분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대관팀에만 맡기는 것은 아니다. 회사나 기업 오너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는 상무급이나 사장급 임원들이 국회의원들과 직접 접촉을 시도하기도 한다.
로비가 성공하면 기업들은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이를 보상하기도 한다고 한다. 직원들 명의로 후원금을 쪼개서 내거나, 모금한도에 제한이 없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방식 등이다. 의원의 지역구에서 사업을 추진하거나 지역구 행사 후원하기, 지역민원 해결 약속 등도 입법로비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국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부 보좌관들은 국회 대관 담당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밤중에 대관 담당자를 불러내 술값을 계산하게 하거나 노골적으로 골프 접대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입김 세진 재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재계가 반대하는 각종 법안들 중 일부는 기업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해 이해가 되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재계가 입법로비를 통해 아주 사소한 손실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대체휴일제 도입이나 정년연장 등은 세계적인 추세인데도 마치 우리나라 경제가 거덜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입법로비를 벌이고 있다. 재계가 사회적 책임을 모두 떠넘기고 이익추구에만 몰두한다면 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회도 재계의 입법로비에 따라 입장을 쉽게 바꾸는 것이 문제"라며 "이를 제재할 방안도 없으니 재계의 영향력이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