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한국 프로골프 남녀대회 결산

‘범띠 동갑내기’배상문-서희경 ‘국내지존’ 확인

올해 한국프로골프에서는 86년생 ‘동갑내기’ 배상문(23·키움증권)과 서희경(23·하이트)이 남녀 4관왕에 오르며 국내대회 ‘최강자’로 우뚝 섰다.

남자대회에서 배상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고 상금액이 걸린 한국오픈(총상금 10억원, 우승상금 3억원)을 2연패하며 2년 연속 상금왕 굳히기에 성공했고 서희경은 시즌 막판까지 유소연(19·하이마트)과 피 말리는 대상, 상금왕, 다승왕 경쟁을 펼친 끝에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 CAPS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최저타수상까지 거머쥐며 4관왕 타이틀을 쓸어 담았다.

범띠생 동갑내기인 둘은 지난해 김형성(29)과 신지애(21·미래에셋)에게 각각 대상 포인트에서 밀려 최우수선수에는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완벽한 플레이를 시즌 내내 펼쳐 보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남녀대회 4관왕 등극하며 국내대회 최강자 우뚝
배상문 한발한발 내디뎌 마침내 정상탈환 성공


올 시즌 발렌타인 대상과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등 4관왕을 거머쥔 배상문은 결코 깜짝 스타가 아니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매년 급성장을 보이며 한국프로골프의 차세대 스타로 일찌감치 예견된 ‘젊은 피’였다. 2005년 16개 대회에 참가해 5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상금랭킹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인 2006년엔 데뷔 2년 만에 에머슨퍼시픽그룹 오픈에서 마침내 생애 첫 승을 기록하며 상금랭킹 11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2007년에는 시즌 네 번째 대회로 열린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반기부터 맹활약을 펼쳐 마침내 상금랭킹 4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2년 연속 우승으로 상세를 탄 배상문은 지난해엔 2승 포함 ‘톱10’에 5차례 이름을 올리고 6차례 ‘톱20’에 오르는 안정된 기량으로 마침내 데뷔 4년 만에 상금왕에 등극했다.

프로대회에서 확실한 우승해법을 찾은 배상문은 지난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 미국 PGA투어에 도전장을 냈지만 고배를 마신 후 올해 국내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올해 미국 PGA투어에 재도전한다는 뜻을 밝힌 배상문은 국내에서 세계무대로의 더 큰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차세대 스타로
예견된 ‘젊은 피’

올해 남자대회의 최강자로 배상문과 함께 김대섭(28·삼회저축은행)을 빼놓을 수 없다. 김대섭은 지난 2005년 우승 1회, 준우승 3회 등의 성적으로 상금랭킹 4위에 오르며 당시 최고의 유망주로 주가를 올렸다. 하지만 2006년 개막전인 롯데 스카이힐 오픈에서 3위에 오른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며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2007년엔 수차례 컷오프 당하며 좀처럼 슬럼프 탈출의 해법을 찾지 못했다. 잘나가던 유망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2차례 한국오픈을 제패했던 저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해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 2차 대회에서 국내 최장타자 김대현(20·하이트)과 연장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해 3년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샷 감을 되찾았고 이후 열린 7개 대회에서 5차례 ‘톱10’에 입상하며 데뷔 후 최고 성적인 상금랭킹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슬럼프를 말끔히 떨쳐낸 김대섭은 올해 최고의 퍼팅감을 앞세워 15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1회 포함 ‘톱10’에 11차례 이름을 올렸다. 이 중 7차례 ‘톱5’에 랭크돼 배상문에 이어 상금랭킹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올해 한국프로골프는 배상문, 김대섭 등 ‘최강자’들의 격돌의 장이 매 대회 이어졌지만 무명의 돌풍도 그 어느 해보다 거센 한 해였다.

시즌 개막전인 한-중 투어 KEB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는 무명의 이태규(36·슈페이어)가 마지막 날 6언더파를 몰아치며 기적 같은 7타차 대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이태규는 2002년 29세의 나이로 입회한 후 한 차례도 ‘톱10’에 이름을 올려본 적 없는 무명선수였다. 그런 그가 개막전 우승과 함께 올 시즌 ‘톱10’에 5차례 이름을 올리며 상금랭킹 10위에 오르는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특히 최근 20대 ‘젊은 피’들의 맹활약으로 해외파 및 30~40대 골퍼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룬 쾌거여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이태규와 함께 또 한 명의 무명의 반란을 일으킨 선수로는 박상현(26·앙드레김골프)을 꼽을 수 있다. 2005년 데뷔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군에 입대, 육군 병장 제대 후 지난해 투어에 복귀한 박상현은 상금랭킹 51위를 기록하며 1차 목표인 풀시드권을 따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올해 시즌 5번째 대회인 SK텔레콤 오픈에서 한국인으로 미국 PGA투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경주(39·나이키골프)를 맞아 흔들림 없는 샷을 펼쳐 보이며 우승을 차지해 생애 첫 승을 한국인 최고의 선수에게 축하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박상현은 2주 후에 열린 KPGA선수권에서 또다시 우승기회를 맞았다.

시즌 내내 이어진
무명의 반란

홍순상(29·SK텔레콤)과 동타를 이룬 후 연장승부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홍순상에게 우승컵을 헌납한 박상현은 시즌 종반에 열린 에머슨퍼시픽 힐튼 남해 오픈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해 배상문과 함께 2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류현우(28·테일러메이드)와 맹동섭(22·토마토저축은행), 이기상(23) 등이 데뷔 후 첫 승을 거둬 내년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여자대회에서는 ‘절대지존’ 신지애의 올 초 미국 진출로 인해 올해 ‘국내지존’의 자리를 놓고 국내파들 간의 경쟁이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그중 지난해 신지애에 이어 ‘차기지존’ 후보로 서희경이 유력한 가운데 신인왕을 차지한 신예 최혜용(19·LIG)과 유소연(19·하이마트), 김하늘(20·엘로드), 안선주(21·하이마트)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리고 올 시즌 뚜껑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앞서 나간 것은 최혜용이었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열린 오리엔트 차이나 레이디스 오픈에서 최혜용이 가장 먼저 우승 포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올해 국내에서 열린 실질적 개막전인 김영주골프 여자 오픈에선 또 다른 신예 이정은(21·김영주골프)이 우승을 차지해 이변을 예고하는 듯했다.

‘차기지존’ 후보서 ‘국내지존’으로 우뚝 선 서희경
‘더 이상 슬럼프는 없다’ 완벽하게 부활한 김대섭


하지만 시즌 3번째 대회부터 서희경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스카이힐 제주CC에서 열린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서희경은 2타차 3위에서 마지막 날 5타를 줄이며 역전우승에 성공했다. 지난해 3주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던 서희경은 올해도 첫승 이후 바로 다음 대회인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순식간에 상금, 다승 부분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서희경의 독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5월과 6월에 열린 5개 대회 중 3개 대회를 연이어 석권한 유소연이 서희경을 밀어내고 선두로 치고 올라온 것. 특히, 유소연은 8월에 열린 후반기 첫 번째 대회이자 올해 가장 큰 상금(8억원, 우승상금 2억원)이 걸린 하이원리조트컵 SBS 채리티 여자오픈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3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이 대회까지 절반을 마친 상황에서 무서운 상승세로 독주체제를 갖춘 유소연을 대적할 만한 선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후반 들어 유소연이 부진한 틈을 타 서희경이 다시금 힘을 내기 시작했다. 10월에 열린 시즌 두 번째로 상금이 많은 하이트컵 챔피언십(총상금 6억원)과 다음 대회인 KB 국민은행 스타투어 그랜드 파이널(총상금 5억원)을 연이어 제패한 것이다.

하지만 4승씩을 나눠 가진 둘은 이후 호각세를 보이며 대상 포인트와 상금액에서 근소한 차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상황에서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 CAPS 챔피언십을 맞았다. 이 대회에서 최소 대상과 상금왕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승패는 사실상 2라운드가 끝나며 결정됐다. 서희경은 유소연에 7타차 2위에 올라 최종일을 맞은 것이다.

시즌 뚜껑 열리면서
최혜용 치고 나가

지난해 유독 시즌 막판에 힘을 냈던 서희경은 올해도 마지막 대회 마지막 날 대부분의 선수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6타를 줄이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 시즌 5승과 함께 상금왕, 대상, 최저타수상까지 4관왕을 확정지었다.

한국여자프로 무대에서 새로운 ‘지존’의 등극을 알린 것이다. 서희경의 4관왕 등극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 유소연은 지난해 막판 최혜용에게 신인왕을 내주어야 했던 뼈아픈 경험을 했는데 올해도 대상과 상금왕을 놓고 서희경에게 역전 당해 2년 연속 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난해 신지애와 서희경이 분명한 1, 2인자 자리를 유지했다면 올해는 서희경과 유소연이 총상금 6000만여 원 차로 순위가 결정돼 사실상 ‘양강 구도’로 올 시즌을 이끌어 왔다. 총상금 6억6000만여 원과 6억여 원을 기록한 서희경과 유소연 뒤를 이어 상금랭킹 3위에 오른 안선주가 2억5000만여 원을 기록해 2위와 무려 3억5000만여 원의 차이를 보였다.
 
3위 안선주부터 15위 오안나(20·동아회원권)까지 1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여자대회는 지난해 역대 최다대회인 26개 대회를 치렀고 올해는 7개 대회가 줄어든 19개 대회를 치렀지만 ‘지존’의 자리를 놓고 ‘강자’들이 맞붙는 상황이어서 흥행 면에서는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승자와 관련해서는 서희경과 유소연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다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매년 꾸준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안선주가 2승, 올해 데뷔 후 첫 승과 함께 2승을 기록한 이정은, 그 외에 최혜용, 최나연(22·SK텔레콤) 등이 1승씩을 가져갔고 김현주(21·동아회원권), 임지나(22·엘로드), 이보미(21·하이마트), 김현지(21·LIG) 등이 각각 생애 첫 승의 주인공이 됐다.

신예들의 선전으로
우승자 예측불허

올해 여자대회는 서희경(5승), 유소연(4승)이 총 19개 대회 중 절반에 해당하는 9개 대회 우승컵을 가져간 가운데 안선주(2승)와 이정은(2승)이 4개를 가져갔다. 그러나 지난해 3승과 2승을 거두며 올 시즌 ‘강자’ 대열에서 우승을 다툴 것으로 보였던 김하늘(21·엘로드)과 홍란(23·먼싱웨어)은 무관에 그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지난해 상금랭킹 3위를 기록하며 올해 ‘지존’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였던 김하늘은 무관에 그치며 상금랭킹도 7위로 밀려났고 홍란은 13위, 김혜윤은 지난해 7위에서 올해 20위로 밀려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우승 없이 준우승 2회 포함 ‘톱10’에 7차례 이름을 올리며 상금랭킹 10위에 올랐던 윤채영(22·LIG) 역시 올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며 30위권 밖으로 순위가 밀려나 상위권 선수들 간의 실력 차가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