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계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지낸 박관용(75)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이다.
박관용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은 30년 이상 현실정치에 관여하며 김영삼정부 초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성공한 정치인이다.
표면적 직함뿐 아니라 내실도 탄탄하다. 특히 1985년 시작된 남북국회회담 대표와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 대표, 국회 통일정책위원장을 지내며 수많은 남북회담에 참가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자 북한문제 전문가다.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전직 장·차관들의 국정봉사단체인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서 북한문제, 국제문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박 이사장을 지난 20일 만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사장을 맡고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국제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는데 특히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7년째 고려대와 합동으로 매월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합니다.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마디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일부 개선점이 눈에 보이기는 합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존경하고, 그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지시형 리더십으로 완벽한 정부 장악을 통한 국정운영이 필요했던 그 시대(박정희 시대)에서 이제는 타협·토론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로 변했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에 맞춰 통치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닮았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흘렀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화, 분업화, 다양화된 요즘은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국무위원들이나 기타 책임자들에게 과감한 권한과 책임의 이행이 필요한 시대라 생각합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법원이 모두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사법부의 판결에 이러쿵저러쿵 이견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해야 나라가 안정이 되는 것이지요. 재판 결과를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죄 등을 재판부가 모두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국회의원, 정당은 단호하게 척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인정해야 합니다.
- 이석기 의원 사건과 맞물린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릴 일입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헌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헌법에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진 집회, 의사표현 등 모든 자유를 이용해서 오히려 자유를 파괴할 가능성이 보이는 정당을 사전적 조치로 없앨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독일에선 사회주의제국당, 독일공산당이 이렇게 해산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의 위협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정당이 있다면 방어적 민주주의에 따라 단호히 정리해야 합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과 관련해 주한 중국대사관이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조사팀을 꾸리고 조사 중인 상황인데, 결과가 나온 후에 여야가 논쟁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혼선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떠드는 것은 국민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정치권이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혼란만 더욱 부추기는 것이어서 옳지 않습니다.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최근 국정원 대선 댓글개입 사건 축소·은폐 의혹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도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재판부의 재판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법정신에 따라 권력은 분립됐고,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법부 판단에 정치권이 왈가왈부해선 안 돼"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 우리도 적용해야"
-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위헌 소지가 있어 못 지키겠다"고 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위헌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 해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내세우는 주장은 헌법을 명확하게 해석을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국민을 납득시킬 설명도 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야당도 최근 공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인데, 이러니 정치 불신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외에도 경제민주화, 기초노령 연금 지급 등 공약 후퇴 관련 논란이 더 있습니다만.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공약을 100% 이행하는 곳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경제사정 등에 따라 못 지킬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왜 못 지키게 됐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입니다.
-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증세를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딜레마인데,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선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서로 경쟁적으로 좋은 얘기만 꺼내다보니 결국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거로 좌우되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과장된 공약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대신 못 지키게 됐을 경우 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새정치연합이 건전한 정당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첫째,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분명치 않습니다. 둘째, 사람을 모으는 것을 보니 정치권에 이미 얼굴이 팔린 이들을 모아서 새정치를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명망가가 아니더라도 진정 새정치를 해야겠다는 비전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새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이 벌써부터 연합·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가고 있는데, 이럴 경우 또 한 번의 철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 정치권이 6·4지방선거 준비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역대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패배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이석기 사건의 여파로 종북·친북세력과 이들의 원내 진출을 도운 민주당이 상당히 민감한 상황입니다. 또 안철수 의원 측도 후보를 낸다, 안 낸다 등 얘기가 많아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아직 4년의 임기가 남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자가 한 스타일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같이 원칙론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있고, 독일의 메르켈처럼 타협으로 이끄는 사람, 미국의 레이건처럼 소통을 잘하며 끌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치스타일보다 개인의 지도력에 성패가 달린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여야 정당과의 대화를 활성화하고 정부조직이 다 같이 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소통의 부재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5000만 국민 모두와 대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국민과 늘 대화하는 정당과 대화를 하면 됩니다. 또 책임 있는 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점만 보강하면 사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 봅니다. 권력은 혼자 가질 경우 작아지지만, 위임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특히 지금 장관이 보이지 않는데 장관이 앞에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 여야 정치권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민주주의 기본은 정당정치입니다. 정당끼리의 대화·토론·타협이 민주정치의 꽃이요,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당이 무엇인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중앙당의 지시만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 당과는 정책으로 경쟁하고, 정당들은 흩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흡수해 각기 다른 해결책이 있다면 만나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일반적의사화 시켜야 합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보완했으면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공약 100%지킬 순 없어"
"정당 간 대화·토론·배려가 민주정치의 꽃이자 핵심"
- 본인의 정치인생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지나고 보니 아쉽고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유일하게 야당 출신의 국회의장으로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2년의 기한이 짧아 개혁을 다 이루지 못했고, 대통령 비서실장(김영삼 전 대통령)을 할 때에는 대통령을 좀 더 설득해야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6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는 민주화운동을 핑계로 국정에는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시지요.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선 국민이 단합해야 합니다. 또 안보, 통일, 외교 등 국익 관련 사안에 대해선 여야 구분 없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를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타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가졌다고 어깨를 흔들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궁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박관용 이사장은 누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
▲16대 국회의장
▲한나라당 부총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11·12·13·14·15·16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