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④박관용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박근혜-박정희' 닮은꼴 정치…시대 바뀐 만큼 변화 필요"

[일요시사=정치팀]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계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지낸 박관용(75)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이다.




박관용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은 30년 이상 현실정치에 관여하며 김영삼정부 초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성공한 정치인이다.

표면적 직함뿐 아니라 내실도 탄탄하다. 특히 1985년 시작된 남북국회회담 대표와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 대표, 국회 통일정책위원장을 지내며 수많은 남북회담에 참가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자 북한문제 전문가다.

지금은 현실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전직 장·차관들의 국정봉사단체인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서 북한문제, 국제문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박 이사장을 지난 20일 만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사장을 맡고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국제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는데 특히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7년째 고려대와 합동으로 매월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합니다.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마디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일부 개선점이 눈에 보이기는 합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존경하고, 그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지시형 리더십으로 완벽한 정부 장악을 통한 국정운영이 필요했던 그 시대(박정희 시대)에서 이제는 타협·토론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로 변했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에 맞춰 통치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닮았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흘렀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화, 분업화, 다양화된 요즘은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국무위원들이나 기타 책임자들에게 과감한 권한과 책임의 이행이 필요한 시대라 생각합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법원이 모두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사법부의 판결에 이러쿵저러쿵 이견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해야 나라가 안정이 되는 것이지요. 재판 결과를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죄 등을 재판부가 모두 인정했습니다. 앞으로는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국회의원, 정당은 단호하게 척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인정해야 합니다.


- 이석기 의원 사건과 맞물린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릴 일입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헌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헌법에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진 집회, 의사표현 등 모든 자유를 이용해서 오히려 자유를 파괴할 가능성이 보이는 정당을 사전적 조치로 없앨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독일에선 사회주의제국당, 독일공산당이 이렇게 해산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북한의 위협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정당이 있다면 방어적 민주주의에 따라 단호히 정리해야 합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과 관련해 주한 중국대사관이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조사팀을 꾸리고 조사 중인 상황인데, 결과가 나온 후에 여야가 논쟁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혼선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떠드는 것은 국민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정치권이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혼란만 더욱 부추기는 것이어서 옳지 않습니다.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최근 국정원 대선 댓글개입 사건 축소·은폐 의혹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두고도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재판부의 재판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법정신에 따라 권력은 분립됐고,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사법부 판단에 정치권이 왈가왈부해선 안 돼"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 우리도 적용해야"

 

-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위헌 소지가 있어 못 지키겠다"고 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위헌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 해야 합니다. 현재 여당이 내세우는 주장은 헌법을 명확하게 해석을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국민을 납득시킬 설명도 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야당도 최근 공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인데, 이러니 정치 불신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외에도 경제민주화, 기초노령 연금 지급 등 공약 후퇴 관련 논란이 더 있습니다만.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공약을 100% 이행하는 곳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경제사정 등에 따라 못 지킬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왜 못 지키게 됐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입니다.

-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증세를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딜레마인데,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선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서로 경쟁적으로 좋은 얘기만 꺼내다보니 결국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거로 좌우되는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표를 얻기 위해 과장된 공약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대신 못 지키게 됐을 경우 이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새정치연합이 건전한 정당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첫째,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분명치 않습니다. 둘째, 사람을 모으는 것을 보니 정치권에 이미 얼굴이 팔린 이들을 모아서 새정치를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명망가가 아니더라도 진정 새정치를 해야겠다는 비전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새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이 벌써부터 연합·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가고 있는데, 이럴 경우 또 한 번의 철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 정치권이 6·4지방선거 준비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역대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패배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이석기 사건의 여파로 종북·친북세력과 이들의 원내 진출을 도운 민주당이 상당히 민감한 상황입니다. 또 안철수 의원 측도 후보를 낸다, 안 낸다 등 얘기가 많아 어느 때보다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아직 4년의 임기가 남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자가 한 스타일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같이 원칙론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있고, 독일의 메르켈처럼 타협으로 이끄는 사람, 미국의 레이건처럼 소통을 잘하며 끌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치스타일보다 개인의 지도력에 성패가 달린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여야 정당과의 대화를 활성화하고 정부조직이 다 같이 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소통의 부재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5000만 국민 모두와 대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국민과 늘 대화하는 정당과 대화를 하면 됩니다. 또 책임 있는 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점만 보강하면 사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 봅니다. 권력은 혼자 가질 경우 작아지지만, 위임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특히 지금 장관이 보이지 않는데 장관이 앞에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 여야 정치권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민주주의 기본은 정당정치입니다. 정당끼리의 대화·토론·타협이 민주정치의 꽃이요,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당이 무엇인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중앙당의 지시만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 당과는 정책으로 경쟁하고, 정당들은 흩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흡수해 각기 다른 해결책이 있다면 만나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일반적의사화 시켜야 합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보완했으면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말…공약 100%지킬 순 없어"
"정당 간 대화·토론·배려가 민주정치의 꽃이자 핵심"

 

- 본인의 정치인생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지나고 보니 아쉽고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유일하게 야당 출신의 국회의장으로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2년의 기한이 짧아 개혁을 다 이루지 못했고, 대통령 비서실장(김영삼 전 대통령)을 할 때에는 대통령을 좀 더 설득해야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6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는 민주화운동을 핑계로 국정에는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시지요.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선 국민이 단합해야 합니다. 또 안보, 통일, 외교 등 국익 관련 사안에 대해선 여야 구분 없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를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타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가졌다고 어깨를 흔들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궁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박관용 이사장은 누구?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동아대 정치행정학부 석좌교수
▲16대 국회의장
▲한나라당 부총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11·12·13·14·15·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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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