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웅열 '설상가상'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2.24 14: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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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어려운데…다 무너질라 ‘좌불안석’

[일요시사=경제1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울상이다. 적자누적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가 운영하는 리조트가 무너져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회장이 직접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막대한 피해 보상과 이미지 실추 등 후폭풍만 되레 거세다. 여기에 리조트 관련 자금 의혹까지 새나와 이 회장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수난의 봄’을 맞고 있는 이 회장의 꽃샘추위. 이를 잘 넘기지 못하면 2014년 내내 추울 수도 있다.




지난 17일 밤 9시께. 코오롱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그룹 자회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이 소유한 경북 경주 마우나리조트 내 체육관이 지붕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은 코오롱이 50%,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아들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각각 26%, 24%를 보유하고 있다.


‘악몽의 17일’
고개숙인 이웅렬


이 사고로 당시 신입생 환영 행사를 하던 부산외대 학생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코오롱 측은 사고 발생 직후 사고대책반을 꾸려 현장에 급파하고 수습에 나섰다. 이 회장도 익일 새벽 사고 현장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이날 “이번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와 가족에게도 엎드려 사죄한다”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책본부를 설립해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무엇보다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적극적인 수습 행보에 나섰지만, 코오롱은 어떤 경우든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고조사에 따른 법적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고가 난 해당 체육관 건물은 990㎡ 규모로, 전체 수용 인원이 500명에 달하지만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된 임시 건물에 가깝다.

특히 지어진지 4년도 채 안 된 건물 임에도 체육관 중앙 부분에 기둥이 없는 등 이미 붕괴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져 구조적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리조트 붕괴 사고…오너 책임론 확산
부친과 지분 절반 소유 “자금줄 의혹”


운영상의 문제도 지적된다. 최근 계속된 폭설에도 주변 도로 제설작업만 했을 뿐 무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붕과 본 건물 등에 대해서는 사전 안전점검을 따로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건설됐지만 사고 당시 이를 초과해 560명을 수용한 것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보험 가입 시 보상액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마우나리조트는 당초 사고에 대비해 삼성화재의 영업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했지만, 대물손해 최고 5억원, 배상책임은 사고 당 1억원이다.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기대할 수 있는 보험금은 총 1억 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코오롱 측과 피해 유가족들과의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마우나 리조트
부자 자금줄?



상황이 이런데도 사고 후 마우나리조트가 정상영업을 하고 있어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우나리조트가 이 회장 부자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리조트를 운영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은 회원제 골프장 영업, 143실 규모의 회원제 콘도미니엄 운영, 코오롱호텔 운영 및 빌딩 경영관리 등을 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2006년 11월1일자로 설립, 2012년 말 기준 자본금은 150억원이다.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코오롱그룹이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가치를 과도하게 높게 산정해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이 회장 부자를 부당 지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코오롱글로텍은 2005년 합병한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 가운데 25.57%(76만7045주)와 21.78%(65만3410주)를 각각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에게 넘겼다. 1주당 처분 단가는 5280원.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은 마우나오션개발 전체 지분의 절반에 가까운 47.35%(142만455주)를 약 75억원에 취득했다.

이후 코오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의 행위 제한 규정에 의해 지난 2012년 1월 코오롱글로텍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중 대부분을 지주회사인 ㈜코오롱에 팔았다.

코오롱글로텍은 남은 지분 52.65% 가운데 50.00%(150만주)를 ㈜코오롱에 1주당 8713원에 처분했다. 이를 적용하면 총 처분가격은 약 130억7000만원인 셈이다.

문제는 코오롱글로텍이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을 ㈜코오롱에 처분할 때 적용한 처분 단가가 앞서 5년 전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에게 적용한 단가보다 1.7배 높게 책정됐다는 점이다.

코오롱그룹 측은 “2007년에서 2012년 사이에 5년 동안 마우나오션개발 회사의 가치가 올랐기 때문에 처분 단가가 올라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코오롱이 비상장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의 주식 처분단가를 적정 수준보다 비싼 값에 취득함으로써 오너 부자와 계열사인 코오롱글로텍에 부당한 이득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마우나오션개발에 대한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공시 등에 따르면 마우나오션개발의 계열사 매출 비중은 지난 2008∼2011년까지 30%대를 유지하다가 2012년에는 43%까지 높아졌고, 계약 형태도 경쟁이나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수의 계약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마우나오션개발은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이 모두 높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이전 등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회사를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기업에 포함시킨 바 있다.

비록 마우나오션개발이 코오롱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도 그룹 계열사 및 총수 일가와의 연결고리를 고려하면 그룹이 이번 붕괴참사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향후 사고 수습 대책 등에 미진할 경우 코오롱그룹 계열사 관련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참사 여파로 코오롱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등에 따르면 코오롱인더, 코오롱글로벌, 코오롱머티리얼, 코오롱플라스틱 등 코오롱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는 사고 이후 2% 안팎으로 떨어졌다. 코오롱은 물론 계열사에 대한 투자심리도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다.


듀폰 악재에
실적 악화까지



이미 이 회장은 코오롱그룹의 적자 지속으로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발표한 2013년 코오롱 실적 공시에 따르면 순손실이 838억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 2012년 12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 줄어든 4조4277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7.6% 증가한 769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1조원대 듀폰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점도 적잖은 경영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2년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은 미국 화학회사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제기한 아라미드 섬유(헤라크론) 생산ㆍ판매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듀폰 손을 들어줬다. 듀폰의 케블라 섬유 기술을 빼내 헤라크론을 만들었다는 듀폰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실적 악화, 거액 소송 등
계속되는 악재에 ‘멘붕’
창립 이래 최대 경영고비


법원은 생산ㆍ판매금지 조치에 그치지 않고 1조원(9억1990만달러)에 육박하는 배상금을 부과했다. 이 금액은 코오롱의 실제 관련 제품 수출액의 300배를 넘는 수치다.

이후 코오롱은 버지니아 동부법원과 미국 제4순회 항소법원에 즉각 집행정지 긴급신청을 제기했고 항소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생산라인은 재가동 중이지만 1조원의 배상금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내 항소심이 통상 1년∼1년6개월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듀폰 항소심 판결은 올 2~3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듀폰의 손을 들어주면 코오롱은 1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 770억원의 13배에 달하는 것으로, 코오롱그룹의 존립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의 글로벌 기업들이 특허소송에 휘말릴 경우 수출차질은 물론 경제 전반에 적잖은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결과에 따라 치명적인 경영상의 손실을 유발할 수 있고, 나아가 기업 존폐의 기로에까지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가뜩이나 적자를 면치 못하는 마당에 큰 소송을 앞두고 대형 참사까지 발생했다”며 “사태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줄줄 악재에 이 회장이 경영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영 최대위기
‘이미지’ 치명타


코오롱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다. 이번 사태가 그룹 전체의 매출이나 이미지, 경쟁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그간 규모는 크지 않아도 내실 있는 경영을 해 왔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고, 오너인 이 회장 역시 큰 잡음 없이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실적부진, 듀폰 소송 등의 악재에 이어 이번 사고까지 터지면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됐다”며 “회사 전체가 비상사태에 돌입, 후폭풍을 최소화 하는데 돌입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감출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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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