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웅열 '설상가상'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2.24 14: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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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어려운데…다 무너질라 ‘좌불안석’

[일요시사=경제1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울상이다. 적자누적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가 운영하는 리조트가 무너져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회장이 직접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막대한 피해 보상과 이미지 실추 등 후폭풍만 되레 거세다. 여기에 리조트 관련 자금 의혹까지 새나와 이 회장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수난의 봄’을 맞고 있는 이 회장의 꽃샘추위. 이를 잘 넘기지 못하면 2014년 내내 추울 수도 있다.




지난 17일 밤 9시께. 코오롱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그룹 자회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이 소유한 경북 경주 마우나리조트 내 체육관이 지붕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은 코오롱이 50%,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아들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각각 26%, 24%를 보유하고 있다.


‘악몽의 17일’
고개숙인 이웅렬


이 사고로 당시 신입생 환영 행사를 하던 부산외대 학생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코오롱 측은 사고 발생 직후 사고대책반을 꾸려 현장에 급파하고 수습에 나섰다. 이 회장도 익일 새벽 사고 현장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이날 “이번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와 가족에게도 엎드려 사죄한다”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책본부를 설립해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무엇보다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적극적인 수습 행보에 나섰지만, 코오롱은 어떤 경우든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고조사에 따른 법적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고가 난 해당 체육관 건물은 990㎡ 규모로, 전체 수용 인원이 500명에 달하지만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된 임시 건물에 가깝다.

특히 지어진지 4년도 채 안 된 건물 임에도 체육관 중앙 부분에 기둥이 없는 등 이미 붕괴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져 구조적 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리조트 붕괴 사고…오너 책임론 확산
부친과 지분 절반 소유 “자금줄 의혹”


운영상의 문제도 지적된다. 최근 계속된 폭설에도 주변 도로 제설작업만 했을 뿐 무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붕과 본 건물 등에 대해서는 사전 안전점검을 따로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건설됐지만 사고 당시 이를 초과해 560명을 수용한 것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보험 가입 시 보상액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마우나리조트는 당초 사고에 대비해 삼성화재의 영업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했지만, 대물손해 최고 5억원, 배상책임은 사고 당 1억원이다.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기대할 수 있는 보험금은 총 1억 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코오롱 측과 피해 유가족들과의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마우나 리조트
부자 자금줄?



상황이 이런데도 사고 후 마우나리조트가 정상영업을 하고 있어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우나리조트가 이 회장 부자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리조트를 운영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은 회원제 골프장 영업, 143실 규모의 회원제 콘도미니엄 운영, 코오롱호텔 운영 및 빌딩 경영관리 등을 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2006년 11월1일자로 설립, 2012년 말 기준 자본금은 150억원이다.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코오롱그룹이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가치를 과도하게 높게 산정해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이 회장 부자를 부당 지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코오롱글로텍은 2005년 합병한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 가운데 25.57%(76만7045주)와 21.78%(65만3410주)를 각각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에게 넘겼다. 1주당 처분 단가는 5280원.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은 마우나오션개발 전체 지분의 절반에 가까운 47.35%(142만455주)를 약 75억원에 취득했다.

이후 코오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의 행위 제한 규정에 의해 지난 2012년 1월 코오롱글로텍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중 대부분을 지주회사인 ㈜코오롱에 팔았다.

코오롱글로텍은 남은 지분 52.65% 가운데 50.00%(150만주)를 ㈜코오롱에 1주당 8713원에 처분했다. 이를 적용하면 총 처분가격은 약 130억7000만원인 셈이다.

문제는 코오롱글로텍이 마우나오션개발의 지분을 ㈜코오롱에 처분할 때 적용한 처분 단가가 앞서 5년 전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에게 적용한 단가보다 1.7배 높게 책정됐다는 점이다.

코오롱그룹 측은 “2007년에서 2012년 사이에 5년 동안 마우나오션개발 회사의 가치가 올랐기 때문에 처분 단가가 올라간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코오롱이 비상장사인 마우나오션개발의 주식 처분단가를 적정 수준보다 비싼 값에 취득함으로써 오너 부자와 계열사인 코오롱글로텍에 부당한 이득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마우나오션개발에 대한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공시 등에 따르면 마우나오션개발의 계열사 매출 비중은 지난 2008∼2011년까지 30%대를 유지하다가 2012년에는 43%까지 높아졌고, 계약 형태도 경쟁이나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수의 계약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마우나오션개발은 총수 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이 모두 높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이전 등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회사를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 기업에 포함시킨 바 있다.

비록 마우나오션개발이 코오롱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도 그룹 계열사 및 총수 일가와의 연결고리를 고려하면 그룹이 이번 붕괴참사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향후 사고 수습 대책 등에 미진할 경우 코오롱그룹 계열사 관련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참사 여파로 코오롱그룹 계열사의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등에 따르면 코오롱인더, 코오롱글로벌, 코오롱머티리얼, 코오롱플라스틱 등 코오롱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는 사고 이후 2% 안팎으로 떨어졌다. 코오롱은 물론 계열사에 대한 투자심리도 위축되고 있는 분위기다.


듀폰 악재에
실적 악화까지



이미 이 회장은 코오롱그룹의 적자 지속으로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발표한 2013년 코오롱 실적 공시에 따르면 순손실이 838억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 2012년 12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 줄어든 4조4277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7.6% 증가한 769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1조원대 듀폰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점도 적잖은 경영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2년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은 미국 화학회사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제기한 아라미드 섬유(헤라크론) 생산ㆍ판매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듀폰 손을 들어줬다. 듀폰의 케블라 섬유 기술을 빼내 헤라크론을 만들었다는 듀폰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실적 악화, 거액 소송 등
계속되는 악재에 ‘멘붕’
창립 이래 최대 경영고비


법원은 생산ㆍ판매금지 조치에 그치지 않고 1조원(9억1990만달러)에 육박하는 배상금을 부과했다. 이 금액은 코오롱의 실제 관련 제품 수출액의 300배를 넘는 수치다.

이후 코오롱은 버지니아 동부법원과 미국 제4순회 항소법원에 즉각 집행정지 긴급신청을 제기했고 항소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생산라인은 재가동 중이지만 1조원의 배상금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내 항소심이 통상 1년∼1년6개월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듀폰 항소심 판결은 올 2~3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듀폰의 손을 들어주면 코오롱은 1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 770억원의 13배에 달하는 것으로, 코오롱그룹의 존립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의 글로벌 기업들이 특허소송에 휘말릴 경우 수출차질은 물론 경제 전반에 적잖은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결과에 따라 치명적인 경영상의 손실을 유발할 수 있고, 나아가 기업 존폐의 기로에까지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가뜩이나 적자를 면치 못하는 마당에 큰 소송을 앞두고 대형 참사까지 발생했다”며 “사태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줄줄 악재에 이 회장이 경영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영 최대위기
‘이미지’ 치명타


코오롱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다. 이번 사태가 그룹 전체의 매출이나 이미지, 경쟁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그간 규모는 크지 않아도 내실 있는 경영을 해 왔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고, 오너인 이 회장 역시 큰 잡음 없이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실적부진, 듀폰 소송 등의 악재에 이어 이번 사고까지 터지면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됐다”며 “회사 전체가 비상사태에 돌입, 후폭풍을 최소화 하는데 돌입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감출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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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