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사건' 45번 공판 총정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4: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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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진보당?…둘 중 하나는 끝!

[일요시사=사회팀] 33년 만에 터진 '내란음모 사건'이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총책으로 하는 지하혁명조직 'RO'가 국가전복 기도 및 내란음모를 획책했다는 믿기 힘든 주장은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전개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에 대한 논박보다 이념 갈등이 부각되면서 정국에는 한바탕 '레드 콤플렉스'가 휘몰아쳤다. 심리가 시작된 지난해 11월부터 무려 45차례의 공판을 거쳤던 세기의 재판은 이제 법원의 엄중한 심판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오는 17일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이 예정된 가운데 정국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제보자와 증인 등 모두 111명이 법정에 선 이른바 '내란음모 재판'은 우리나라 사법재판사에 한 획을 긋는 재판임은 물론 국정원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정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 의원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지난 3일 수원지검 공안부(부장검사 최태원)는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이 의원 등에 대한 45차 공판에서 이 같이 구형하고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며 전 국민을 상대로 폭력혁명을 시도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세기의 재판


이 의원과 함께 구속기소된 이상호·홍순석·조양원·김홍열·김근래씨 등 5명에게는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0년, 한동근씨에게는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이 각각 구형됐다.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해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이적표현물을 다량 소지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노선을 추종했고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익을 우선시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채 '대한민국을 없애보자'는 식으로 내란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은 '민혁당 사건'으로 실형을 복역하고도 출소 직후 지하혁명조직인 RO를 결성, 조직원들에게 폭력혁명을 결의하도록 선동하는 등 반성이 없어 재범을 차단하기 위해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 의원 등은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RO 조직원들과 비밀회합을 갖고,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 폭동을 모의한 혐의(내란음모·내란선동)로 구속기소됐다. 또 이들은 북한소설인 '우등불'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추가 기소됐다.

내부 제보자인 이모씨의 신고로 시작된 'RO 수사'는 최초 국정원 직원 1명이 전담하는 관심 외 수사였다. 그러나 지난 2012년 RO의 총책으로 의심되는 이 의원이 여의도로 입성하면서 사건의 무게가 달라졌고, 국정원이 따로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규모가 커졌다는 게 정론이다. 3년간 몰래 감청을 할 정도로 은밀히 진행됐던 수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여야가 부침을 겪던 지난해 8월 외부로 공표됐다.

같은 달 28일 아침 국정원은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이석기 의원실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이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다음날(29일) 청구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수사는 이상호·홍순석·한동근씨를 구속하면서 예열을 지피더니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상정하며 급물살을 탔다.


33년 만에 터진 내란음모 혐의…결과는?
111명 법정서 증언…정국 팽팽한 긴장감


정기 국회가 열린 9월4일 '이석기 체포동의안'은 총 투표수 289표 중 가(찬성) 258표라는 압도적인 표결로 통과됐다. 국정원은 곧바로 이 의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구인에 나섰고, 이로부터 1시간 뒤 이 의원은 "이 도둑놈들아!"란 일갈과 함께 체포됐다. 

정식재판에 앞서 공판준비기일은 모두 4차례 열렸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한 대목이다. 특히 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변호사 신분으로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공판은 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4차례씩 열렸다. 첫 심리가 있었던 지난해 11월12일 이 의원은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이 의원은 "북한이 남침하는 상황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고 검찰 주장을 처음으로 반박했다. 이 의원은 수사과정에서 내내 묵비권을 행사해 왔다.

 재판 과정의 쟁점은 지하혁명조직으로 특정된 RO의 실체와 녹취록의 진위 여부였다. 검찰은 녹취록 등을 근거로 ▲이 의원이 RO의 총책이며 ▲나머지 6명이 핵심 조직원이고 ▲이들이 북한 대남혁명 전략에 따라 국가전복을 모의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제보자 이씨 역시 "RO 조직원으로 가입한 지 10년 만에 이 의원이 총책인 것을 알았다"며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RO의 위험성을 국민에 알리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RO는 국정원과 검찰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조직이며 ▲비밀회합으로 규정된 '합정동 모임'은 반전·평화모임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 역시 "이 의원이 RO의 총책이고 북한과 연계됐다는 증거가 있느냐"며 검찰을 쏘아붙였다.

공판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한국일보> 등 언론을 통해 사전 공개된 녹취록은 일부 오기된 것으로 드러나며 이 의원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의원 자택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김일성 회고록 등 이적표현물은 그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증거능력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녹취록은 음성 파일을 공개하면서 양측의 해석이 엇갈렸다.

1차 회합인 '곤지암 모임'은 녹음 중간에 아이들 목소리가 나오는 등 장내가 소란스러웠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도 크게 틀어 회합장 밖에서 청취가 가능한 수준으로 추정됐다. 즉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은 이를 근거로 "아이들 우는 소리 들리는 내란음모 현장은 없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의원이 했던 "날을 다시 잡자" "전쟁터에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은 없다"는 등의 말로 그가 곤지암 모임을 주도했으며 나아가 RO의 총책임을 확신했다.

2차 회합인 합정동 모임은 녹취록의 '맥락'과 '어휘'란 차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이 팽팽히 맞섰다. 먼저 변호인단은 전체 녹취록의 450군데 이상이 음원과 다르게 기록됐으므로 증거로써 가치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검찰은 "변호인단이 제출한 녹취록을 봐도 핵심 부분은 바뀐 것이 없다"며 "검찰이 의도적인 오기·누락·추가를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검찰은 이밖에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 의원만을 '대표님'으로 호칭한 점, ▲김근래 당시 경기도당 부위원장에게 '지휘원'(북한 군사용어)이라고 부른 점 ▲이 의원이 "즉각 전투태세로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까"라고 이 의원이 묻자 동시에 "네"라고 답한 점 등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1심 판결은?


남은 건 법원의 결정이다. 민주화 이후 내란음모 혐의로 유·무죄가 선고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누구도 섣불리 그 결과를 재단할 수 없다.


이 의원은 선고공판 전 최후진술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민주주의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알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 이 의원이 꿈꿨던 '아슬아슬한 민주주의'는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석기 사건 일지]

◇2013년
▲08월28일 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10명 압수수색
▲08월29일 이 의원 및 홍순석·이상호·한동근 사전구속영장 신청
▲09월04일 '이석기 체포동의안' 국회서 가결
▲09월05일 이 의원 구속수감
▲09월15일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 등 5명 압수수색
▲09월25일 홍씨 등 3명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
▲09월26일 이 의원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
▲10월01일 조양원·김홍열·김근래 등 3명 추가 구속
▲10월14일 이 의원 등 4명 첫 공판준비기일
▲10월24일 조씨 등 3명 추가 기소
▲11월12일 이 의원 등 7명 첫 공판 심리/ 이 의원 혐의 부인
▲11월21일 ‘RO 제보자’ 이모씨 증인신문 시작

◇2014년
▲01월24일 이 의원 등 7명 피고인신문 시작
▲02월03일 檢, 이 의원에게 징역 20년·자격정지 10년 구형 등
▲02월17일 수원지법 1심 선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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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