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가-장학건설 별난 인연, 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1.23 09: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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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돌아설 수 없는‘끈끈한 속사정’

[일요시사=경제1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서울 성북동에 최고급 단독 주택을 짓는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때 아닌 화제가 된 것은 시공을 맡은 장학건설. 바로 몇 해 전, 임 회장의 장녀가 사들인 ‘청담동 빌딩’을 새로 지은 시공사와도 같다. 도급 순위 300위권 밖인 중소 건설사가 재벌가의 신축 공사를 잇따라 따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 묘한 인연에 눈길이 쏠린다. 




청정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을 이끄는 임창욱 명예회장이 서울 성북구에 100억 원을 넘게 들여 단독주택을 짓고 있다. 성북동 북악산 끝자락이자 주한 앙골라 대사관 맞은편에 신축 중인 임 회장의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건축면적 504.5㎡(152.8평)에 주택 연면적은 1241.9㎡(376.3평)에 이른다. 1993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단독주택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확장된 것이다.

성북동에
새 보금자리

지난 4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성북동 단독주택은 100억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임 회장은 해당 집을 짓기 위해 2011년 1월 성북동 부지를 87억원에 매입했다.

또한 저택을 지을 대지 옆의 임야 두 필지(2776㎡, 1019㎡)도 각각 23억1000만원과 8억4700만원에 사들였다. 이들 세 필지는 모두 동일인에게서 매입한 것으로 토지 매입에 들어간 금액만 118억5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은 장학건설, 설계는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ONE O ONE architects)가 맡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학건설과 대상그룹 오너가와의 잇따른 인연이다. 장학건설은 지난 2010년 임 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가 매입한 청담동 건물도 지은 바 있다.


당시 임 상무는 일명 ‘김지미 빌딩’으로 유명한 청담동 건물을 매입해 새 빌딩을 신축했다. 청담동 건물 시가가 3.3m²당 1억8000만∼2억원인 것을 감안했을 때 추정 매매가는 300억원 안팎. 장학건설이 시공을 맡았고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2년 이상 대대적 공사가 진행된 뒤 지하 2층, 지상 6층의 건물로 새롭게 탄생했다.

임세령 청담 빌딩 이어 임창욱 자택 시공까지
그룹내 건설 자회사 대신 외부 장학건설 선택

설계업체인 원오원건축사 사무소 역시 지난해 7월 말 임 상무 빌딩에 문을 연 브랜치 형식의 레스토랑 ‘메종 드 라카테고리’의 설계를 맡았다.

상황이 이렇자 시공사인 장학건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장학건설은 시공사 순위 376위(2012), 임직원수 55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건축공사 및 인테리어 분야에 전문 시공능력을 갖춘 일반 건설업체로 1994년 10월 설립돼 연수원, 교회, 학교, 병원, 공장, 상업시설 및 고급 주택 등의 건축공사를 수행해왔다.

소기업이지만 탄탄한 시공능력을 인증받기도 했다. 1997년 건교부 주관의 한국건축문화대상 및 문체부 주관의 환경문화상(실내 장식부문)의 수상했고, 1999년 ISO 9002인증을 통해 효율적인 업무처리시스템을 정착시켜 주목받았다.

선정 배경 놓고
뒷말 ‘무성’

장학건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복합문화공간 ‘쌈지길’이 있다. 이를 통해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반짝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통상 재벌가의 신축 공사를 도급 순위가 300위권 밖인 건설사가 맡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장학건설은 임 상무의 청담동 건물과 임 회장의 자택 공사비로 약 60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대상그룹 계열사에는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서건설(주)이 있다. 동서건설은 주택건설사업부문과 토목시설공사를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곳이다.

2006년 8월 대상(주) 건설사업부문으로 분할된 뒤 같은 해 11월 동서산업건설(주)과 합병됐으며, 2008년 2월 대상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주)의 100% 지분 취득으로 자회사에 편입됐다.


현재 건축업 관련 전자빔을 이용한 하 · 폐수 위생화 기술 (신기술검증), 롤러에 안착된 암거박스 선단 추진 방법 (특허) 등 5개의 특허를 보유 하고 있다. 도급순위도 252위로 장학건설보다 높은 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상그룹 내에 이미 건설 자회사(동서건설)가 있는데 장학건설에 시공을 연이어 맡긴 것은 의아한 점”이라며 “장학건설이 단독주택 신축과 강남권 빌딩 신축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대상 오너가와 또 다른 인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장학건설 2대 주주는 삼성 홍라희 셋째 동생
이혼후 옛시댁과 왕래?…묘한 인연으로 눈길

실제 장학건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장학건설의 2대 주주는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이다. 홍 회장은 임 상무의 전 시어머니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의 동생이다. 임 상무와 삼성그룹의 황태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8년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결혼생활 11년만인 2009년 합의 이혼한 바 있다.

홍 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장학건설의 공시에 이름을 등재했다. 그는 현재 장학건설 주식 9250주, 6.38%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세학 장학건설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경기고-서울대
절친한 선후배

두 사람은 같은 경기고등학교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 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다 1986년 제일모직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으며 삼성코닝 기획조정실 부장, 삼성코닝 기획담당이사를 지냈다.

1996년에는 삼성 SDI 기획홍보팀 상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2년부터 삼성 SDI 경영기획팀장(부사장)을 맡아왔다. 이후 2007년 보광그룹 2세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계열사인 보광창업투자로 적을 옮겼다. 홍 회장은 장학건설 외에도 보광창업투자 지분 30.5%를 보유한 최대주주며, 보광그룹에 소속돼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독자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홍 회장은 ‘로열 패밀리’ 임에도 불구하고 측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고 정평이 났다”며 “잘은 모르겠지만 장학건설 2대주주로 있다면, 자신의 인연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대상그룹이)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홍 회장의 영향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며 “정 대표는 또 현대건설 출신으로 재계 인맥이 두루두루 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시월드와
각별한 사이?

일각에서는 임 상무가 이 부회장과 이혼한 후에도 옛 시댁이었던 삼성가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흘러나왔다. 임 상무가 청담동 빌딩을 매입할 당시, 인근에는 시아버지였던 이 회장이 2009년과 2010년 매입한 청담동 건물 두 채가 인접해 있었다. 신세계 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부사장도 근처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어 ‘범삼성가 타운’이 형성될 것이라는 소문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임 상무가 해당 빌딩을 사들인 것은, 옛 시댁인 삼성가와 아무런 꺼리낌 없이 지낸다는 방증이라는 의견이다.

과거에도 임 상무는 삼성가와 사이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 며느리던 지난 1999년 이 회장이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을 때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간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삼성 비자금 사태로 시어머니인 홍 관장이 호암미술관장에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었다.

최근까지도 임 상무는 이 부회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통해 삼성가와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아들 이모군의 학습 발표회장에서는 전 남편인 이 부회장과 재회했고, 지난해 아들의 졸업식과 입학식에서는 홍 관장과의 다정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임 상무는 이혼 후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경영에 참여 중이며, 현재 여동생에 이어 그룹 2대 주주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오너일가에서 집을 짓겠다고 하고 이런 부분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공식적인 코멘트나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회사 차원의 일도 아니기 때문에 회장님께 여쭤볼 수 있는 사항도 못 된다”고 말했다.

장학건설 관계자는 대상 오너가 건물 시공에 관련 질문을 하자 “아무 것도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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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