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추적> 채동욱 찍어낸 숨겨진 키맨들

서초구청장·비서실장·감사과장 수상한 행적

[일요시사=사회팀] '채군 정보유출' 사건 수사가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의자와 참고인들의 거듭된 말 바꾸기로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사건의 실체는 점차 미궁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보유출 직전 국정원 직원과 서초구청장이 비밀회동을 가졌다는 증언이 들렸다. 서초구 비서실장과 감사과장 역시 이번 수사의 숨겨진 키맨으로 부각됐다. 발 묶인 사건의 실마리는 언제쯤 수면 위로 드러날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로 의심된 채모군의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된 사건과 관련해 사건 당일 숨겨진 '키맨'들의 수상한 행적이 관심을 모은다.

숨겨진 키맨
비밀회동 있었나

지난해 6월11일 오후 2시47분께 오케이(OK)민원센터에서는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가 무단 열람됐다.

채군의 개인정보를 조회한 김모(58) 서초구청 오케이민원센터 팀장은 같은 시각 자신의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은밀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발신번호는 서초구청 응접실, 통화는 오후 2시48분께 종료됐다.

그리고 10초 뒤 국정원 정보관(IO) 송모씨는 서초구청 응접실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즉 응접실에 있던 누군가가 김 팀장에게 열람을 지시한 후 확인된 정보를 송씨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런데 채군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당일 정보관 송씨가 한 교회에서 진익철 서초구청장을 사전에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S정보관(송씨)이 채군의 개인정보가 열람되기 2∼3시간 전에 서울 서초구 반포2동에 있는 남서울교회에서 진익철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유출이 발생한 6월11일 오전 11시30분께 남서울교회 교육관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국가보훈 유공자를 초청한 위로연이 열렸다. 반포2동 방위협의회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진 구청장 외에도 새누리당 K 의원이 자리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K 의원은 진 구청장과 함께 축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남서울교회가 자리한 위치가 눈길을 끌었다. 남서울교회와 지도상 거리가 100여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채군이 다닌 것으로 알려진 ㄱ초등학교가 있었다.

국정원 정보관
초등학교 갔었나

서초구청에서 채군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 하루 전날인 6월10일 정보관 송씨는 유영환 강남교육지원청 교육장에게 "채군의 아버지가 채동욱이 맞느냐"고 문의했다.


그러자 유 교육장은 송씨의 문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 조회를 ㄱ초등학교 교장인 ㄴ씨에게 부탁했다.

검찰 조사에서 ㄴ씨는 "지난해 6월 유 교육장이 채군 아버지의 이름을 문의했고 (유 교육장에게) 채군 아버지의 이름과 검찰총장의 이름이 같다고 답해줬다"며 의혹을 확인했다.

하지만 유 교육장은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관련한 사실을 송씨에게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1일 송씨가 ㄱ초등학교 인근에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온 셈이다.

기자는 먼저 남서울교회에서 담당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한 관계자와 만났다. 그는 "교회에서 올 6월 위로연을 연 게 맞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매년 열리는 행사고, 공익적인 목적으로 장소를 제공했을 뿐 당시 누가 오갔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남서울교회는 지난 2012년에도 방위협의회에 행사 장소를 제공했다.

한 방위협의회 관계자는 "작년(2012년)과 마찬가지로 K 의원과 진 구청장이 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K 의원은 다른 일이 있어도 국가보훈 행사만큼은 꼭 오겠다는 약속을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행사 당일 K 의원이나 진 구청장이 송씨와 만났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확답을 피했다.

ㄱ초등학교는 대화를 거부했다. ㄱ초등학교 관계자는 "그 사건으로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6월11일 송씨가 ㄱ초등학교에 왔었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ㄱ초등학교의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차량으로 왔다면 출입 기록이 남겨졌겠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실제로 ㄱ초등학교에 출입하는 외부 차량은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 K 의원 측은 'K 의원이 6월11일 ㄱ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교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정상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국정원 직원과 만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후 K 의원은 "우연히 그곳에 있었던 것 뿐이고 나와 이 사건은 아무런 관계없다"고 적극 항변했다.

정보유출된 6월11일 반포동 교회서 무슨 일이?
정보관·서초구청장 만남?…사인 주고 받았나

실제로 서초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당 IO의 직급과 담당 업무를 고려했을 때 현역 의원보다는 구청 고위 관계자와 사인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여기서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 만한 새로운 키맨이 등장했다. 바로 서초구 비서실장 이모(42)씨다.

이씨는 진 구청장의 '오른팔'로 불리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구청 한 고위 관계자는 "진 구청장이 서초구 선거를 준비했을 때부터 이씨를 측근으로 중용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진 구청장의 아내와 사촌지간인 것으로 전해진다. 구청 한 관계자는 "진 구청장의 처남인 김모씨와 그의 사촌인 이씨가 구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인 셈, 때문에 이번 수사에서도 사건의 키를 쥔 인물은 이씨라는 시각이 있다.

정보유출 과정
구청장은 몰랐나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당시 부장검사 장영수)는 채군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서초구청에 대한 2번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서초구청 5층에 있는 서초구청장 응접실, 서초구청 정문 등에 설치된 CCTV가 이번 압수수색 대상으로 특정됐다. 이는 채군의 개인정보가 열람됐을 당시 응접실에서 전화를 건 인물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서초구청장 응접실은 건물 구조상 반드시 비서실을 가로질러야 출입할 수 있다. 즉 비서실 수장인 이씨는 그 시각 응접실에 있던 인물을 알고 있을 확률이 크다.

기자는 이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서초구청을 방문했다. 하지만 서초구청장실과 비서실이 있는 5층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조작해 5층의 출입을 제한한 것이다.


5층으로 연결된 양측 계단 역시 각 출입구가 폐쇄됐다. 출입문을 막고 있던 보안직원은 '왜 출입을 막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한때 이씨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사실상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청 홍보실은 "사정이 있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지금(16일)은 업무에 복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사선상에 오른 진 구청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앞서 진 구청장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정보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자 "조 국장 개인의 불법 행위"라며 즉시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기자가 접촉한 복수 행정당국 관계자는 "윗선의 비호나 암묵적인 동의 없이 정보유출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무원 조직문화상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상급자 허락 없이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까닭이다.

비서실장 이모씨 부각…응접실서 누가 전화했나
원세훈라인 조이제-곽상도라인 임ㅇㅇ 진실게임

아울러 이들은 진 구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친분에 대해 "아니다"란 입장을 밝히자 "서울시 고위 공무원 중 진익철과 원세훈의 친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구청장은 원 전 원장과 같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청에서 인연을 맺었다.

먼저 원 전 원장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에 재직했다. 이듬해인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진 구청장은 원 전 원장과 같은 보직인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지냈다. 원 전 원장은 1993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진 구청장이 있는 기획관리실에서 기획담당관으로 활동했다.

또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환경국 국장으로 원 전 원장과 2년여간 함께 일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을 맡은 경력도 같다.

후일 진 구청장은 중앙당의 공천을 받아 서초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 배경에 원 전 원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안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한 제보자는 "진익철과 원세훈은 부부끼리 동반모임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때문에 원 전 원장과 진 구청장, 조 국장이 얽힌 속칭 'S(서울시) 라인'이 이번 사건의 한 축이 아니겠냐는 의혹은 수사 초기단계부터 제기됐다.

최근 <JTBC> 보도에 따르면 진 구청장은 한 회의 자리에서 "굳이 제3자가 밝혀져야 하냐"며 "뭘 우리가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구청 간부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해당 보도가 나간 이후 복수의 구청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수사의 방패가 된 조 국장이 굉장히 억울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후 사정을 전했다. 이에 기자는 조 국장과 접촉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조 국장의 가까운 지인과 통화를 했으나 "말할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앞서 검찰 조사를 받은 오케이(OK)민원센터 김 팀장은 조 국장의 부탁으로 메모를 받아 채군의 가족관계를 조회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올 초 응접실에서 걸려온 전화로 제3자와 통화한 정황이 드러나자 "메모가 아닌 전화로 요청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김 팀장은 자신에게 정보 유출을 지시한 인물로 조 국장을 일관되게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중간다리로 의심됐던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과 조 국장이 서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시간은 오후 4시50분께다. 실제 열람이 이뤄진 시간보다 2시간 이후에 접촉을 한 것이다. 따라서 조 국장이 조 행정관에게 부탁을 받기 전 제3자의 부탁(지시)을 받았거나 '두 조씨' 모두 '사전 유출'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곽상도 라인
비밀리 움직였나

김씨의 진술과는 다르게 조 국장은 "응접실에 간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정보유출이 이뤄진 시각 "은행 업무를 보고 있었다"며 관련한 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각 응접실에 있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 중 1명은 임모 서초구청 감사과장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지난 16일 "임 과장이 조 국장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수십만원 상당의 금품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가자 이들은 아침부터 다툼을 벌였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에서 임 과장은 서초구청 내 다른 직원의 명의를 빌려 정보열람 9일 뒤 조 국장에게 금품을 보냈다. 이에 대해 조 국장은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 돈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과장이 명의를 빌린 직원은 오케이민원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돈을 보낸 의혹을 받고 있는 임 과장은 곽상도 전 민정수석, 이중희 민정비서관과 친분이 있는 인물로 소개됐다. 정치권은 곽 전 수석을 이번 사건의 유력한 '몸통' 중 1명으로 거론한 바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군 정보유출' 정체불명 뭉칫돈 배달

'조이제' '임ㅇㅇ' 진실게임 파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로 의심된 채모군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등장해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조기룡)는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 이후 서초구청 임모 감사과장이 다른 직원을 통해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과장은 혼외아들 의혹 보도 다음날인 지난해 9월7일 청와대로부터 공문 형식으로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요청받아 정보 열람에 직접 관여한 인물이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채군의 가족관계 정보가 유출된 지난해 6월11일로부터 9일이 흐른 같은 달 20일 조 국장 앞으로 현금 70만원과 헬스용 러닝셔츠가 담긴 우편상자가 배달됐다.

우편물의 발신자는 서울시 간부 명의로 기재됐으나 당사자가 선물을 보낸 사실을 부인하자 조 국장은 우편물을 곧바로 구청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했다.

이에 서초구는 서초경찰서에 수사의뢰를 했지만 경찰은 액수가 적고 직무와 관련한 대가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5개월여 만에 내사종결했다.

다만 경찰은 우체국 CCTV를 통해 실제 발신자가 서초구청 직원 조모씨임을 확인했다. 이후 조 국장은 조씨로부터 '임모 감사과장이 제3자 명의로 조 국장에게 (소포를) 전달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자필확인서를 받아냈다.

조 국장은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의 부탁으로 구청 부하 직원을 통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지난달 17일 영장심사에서 자필확인서와 경찰진술서 등을 제출해 구속을 면했다.

임 과장도 한때 수사선상에 올랐으나 정식으로 공문을 접수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점을 인정, 구속영장은 청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초구 감사담당관실의 총책임자인 임 과장이 정보유출 직후 다른 직원을 통해 조 국장에게 금품이 담긴 우편물을 보낸 의혹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진실게임으로 비화하고 있다.

조 국장은 본인 앞으로 온 소포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민감한 시점에 굳이 제3자 명의로 정체불명의 돈과 선물을 보낼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특히 임 과장은 지난 2003년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직속 부하였던 이중희 검사(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파견 근무하면서 이들과 친분을 맺은 바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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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