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채동욱 정보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국정원 정보관의 개입 정황을 포착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아직 주범을 찾지 못한 검찰은 '진짜 배후'를 찾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는 모습. 윗선으로 의심되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성명불상의 국정원 관계자, 수사선상에 오른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연루됐는지도 초미의 관심이다. 과연 검찰은 청와대와 국정원, 댓글 수사가 조합된 이 고차방정식을 어떻게 풀어낼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한 개인정보가 여러 루트를 통해 유출된 가운데 국정원 직원의 모의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의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되는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가담한 정황을 붙잡고 이를 확인했다.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박근혜정부의 찍어내기로 중도 낙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때마다 정부는 정권 차원의 '뒷조사'는 없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의 '일탈'로 '채 전 총장을 찍어냈다'는 주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전환점 맞은
채동욱 수사
'채동욱 정보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장영수)는 국정원 정보관(IO) 송모씨가 채군의 학생생활기록부 유출에 개입한 사실을 밝히고, 배후를 추적 중이다. 검찰 관계자 및 복수 언론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해 6월11일께 유영환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교육장을 통해 채군의 아버지 이름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검찰은 채군이 다니고 있던 ㄱ초등학교의 남모 교장으로부터 "유 교육장의 요청으로 채군의 개인정보를 알아봤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유 교육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 조사에서 유 교육장은 "송씨로부터 채군의 개인정보를 알아봐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송씨는 모르는 사이며 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채군의) 정보를 유출한 적은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교육장은 송씨의 부탁을 받고 남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채군의 아버지가 채동욱이 맞는지'를 문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 교육장은 '채동욱이 누군지 몰랐으며 송씨에게 확인해 준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도 혐의를 공식 부인했다. 지난 5일 국정원 측은 "송 정보관이 혼외아들 소문을 듣고 유 교육장에게 사실인지 여부를 개인적으로 문의했지만 유 교육장으로부터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 외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정원 정보관 개입 정황 포착 '일파만파'
판 커지는 수사…윗선 '제3의 인물' 부상
이를 종합하면 유 교육장을 거쳐 송씨와 국정원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중간에 끊어진 셈이다. 뒤이어 소환된 송씨 역시 "(유 교육장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이나 정보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송씨는 조직 차원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국정원과 같은 입장을 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송씨가 채군의 개인정보를 문의한 시점은 조오영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을 요청한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검찰은 두 건의 개인정보 유출이 동시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정보 유출 경위와 윗선의 지시 여부는 여전한 쟁점이다.
현재 검찰은 송씨와 유 교육장의 통화기록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당사자들이 육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들과 접촉한 '제3의 인물'이 있는지를 쫓고 있다.
한 법조인은 "최근 검찰이 '제3의 인물'로 추정되는 복수의 인물을 조사했다"고 전했다. 해당 조사는 조이제·조오영의 윗선을 추궁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 밖의 커넥션이 고개를 들었다. 정보관 송씨와 서초구청 조 국장이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로 소개된 것이다.
국정원 정보관
채군 아빠 물었다
지난 7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송씨와 조 국장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보도됐다. 또 이들과 연결된 고리로는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언급됐다. 진 청장 역시 송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로 보도됐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가기관을 출입하는 정보관들이 각 지방자치단체장과 가까이 지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전직 공무원의 증언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각 지역을 관할하는 IO가 있는데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IO가 정보를 들고 찾아오면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만나는 게 관례처럼 돼있다"며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자신(단체장)의 '정적'과 관련한 정보를 들고 오기 때문에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공무원의 진술에 따르면 IO가 관할하는 지역은 1∼2년을 주기로 바뀐다. 때문에 일반 공무원의 입장에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IO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를 증명한 사례도 있다. 성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는 지난해 9월 성남시청 일자리창출과에서 한 공무원에게 시정자료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김씨에게 공문을 요구했으나 김씨가 이를 무시하자 간단한 통계만 갈무리해 넘겼다.
기자가 접촉한 복수 공무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이들은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가 파면당하면 퇴직금과 연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당신(기자)이라면 개인적인 친분으로 위법 행위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윗선의 비호나 암묵적인 재가 없이는 정보 유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행정관과 조 국장은 모두 일반 공무원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20일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을 압수수색하면서 '두 조씨'를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러나 이들은 검찰의 신체 압수수색을 앞두고 주고받은 메시지를 나란히 삭제했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청와대 역시 사건을 서둘러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보유출 파문이 확산되고 있던 지난달 4일 공식 브리핑을 열고 "조 행정관이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 국장에게 채군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사건의 실체를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다. 더불어 이 수석은 이번 정보 유출의 배후로 안전행정부 고위공무원인 김모 국장을 특정했다.
당시 청와대의 조사 결과는 이랬다. 조 행정관을 사이에 두고 김 국장이 채군의 개인정보를 요청했으며 조 행정관은 다시 조 국장에게 정보 유출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고, 청와대는 정보 유출에 개입한 사실이 일절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자신이 배후로 지목된 것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 행정관에게) 개인정보 조회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청와대의 발표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최초 조 행정관은 자신의 먼 친척인 김 국장을 윗선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자 이를 번복하며 신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배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MB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현 정부에선 배후가 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검찰 안팎에선 조 행정관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고의로 거짓 진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성토가 나왔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17일 구속영장 청구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검찰은 조 행정관이 거듭 진술을 바꾸고 '제3의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점 등을 증거인멸 시도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된 정도 등에 비춰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수사팀 입장에선 억울한 대목이지만 법원의 판단으로 조 행정관과 조 국장은 모두 구속을 피했다.
제3의 인물
모르쇠 일관
핵심 피의자에 대한 강제수사 전환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검찰은 또 다른 인물을 수사선상에 올렸다. 조 국장의 직속상관인 진 청장이다. 하지만 진 청장 역시 관련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사실 규명에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6일 <한겨레>는 "검찰이 진 청장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검찰은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조회된 당일(2013년 6월11일) 성명불상의 인물이 채군의 개인정보를 서초구청에서 제3자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 여기서 성명불상의 인물로 알려진 후보군에는 진 청장이 포함돼 있다.
이미 검찰은 진 청장의 관용차 입·출입 기록과 사건 당일 오후 3시부터 나흘간 서초구청 1층(로비)에서 열린 시화전 행사 동영상을 구청에 요구했다. 현재 검찰은 시화전 기간 동안 구청 로비에서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가 누군가에게 전달됐을 확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당시 시화전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소 진 청장은 시화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행사(시화전) 시작 때마다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축사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6월11일의 행적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고 확답을 피했다. <한겨레>는 "이날 오후 2시47분 직후 시화전 행사가 시작됐다"고 전하며, "검찰은 행사 참석자들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검찰은 서초구청에서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가 이뤄진 시각을 오후 2시10분께로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조 행정관과 조 국장이 채군의 주민등록번호를 문자메시지로 주고받기 2시간 전의 일이다. 즉 '조오영·조이제 라인'과는 별도로 가동된 '또 다른 라인'의 정보 유출 개연성이 상당한 것이다. 검찰은 이 유출 과정에 개입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을 추려 윗선을 추궁할 계획이다.
하지만 진 청장은 "조 국장 개인의 불법 행위"라며 자신과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또 진 청장은 다수 행정당국 관계자가 증언하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아니다"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원 전 원장이 속한 '서울시 공무원 모임'을 통칭하는 속칭 'S(서울시) 라인'은 이번 사건의 한 축으로 의심받고 있다.
'원세훈 측근' 진익철 서초구청장
수사선상 올라…당일 행적 조사
한편에서는 '채동욱 뒷조사'의 유력한 몸통으로 거론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개입 의혹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7일 <경향신문>은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비서관의 통화내역을 추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보관 송씨와 조 행정관 등을 통해 수집된 채군의 개인정보는 청와대 고위당직자들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검찰은 관련한 통화내역을 추적하고 있으며 그 대상에는 이 비서관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을 15년 넘게 지근에서 보좌한 심복 중의 심복, 박 대통령 취임 후 '문고리 권력'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는 이번 사건의 핵심 키맨인 조 행정관의 직속상관인 이유로 수사 초기단계부터 '뒷조사'의 배후로 의심받았다.
실제 정가 안팎에선 이 비서관을 '채군 정보의 종착지'로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이 비서관과 함께 배후로 지목된 곽상도 전 민정수석의 경우는 통상 업무가 '감찰'이라 이 같은 위험 부담을 떠안아야 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즉 적법한 절차를 거칠 수 없는 직능이나 지위에 있던 '실세'가 '비선'을 움직였을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이재만 진익철
수사선상 올랐나
그러나 청와대는 같은 날 <경향신문>의 보도를 전면 부인하며 "이 비서관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 여러 통로로 확인을 했는데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다시 말하면 이 비서관이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지난 브리핑에서 나타나듯 사건의 진실은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봐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눠 가족관계등록부를 유출한 조이제·조오영의 윗선을 추적하는 한편 학생생활기록부를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영환·송모씨의 윗선을 동시에 쫓고 있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이들 모두를 컨트롤한 '권력의 판도라'가 공개될지 공은 검찰에 달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