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불황에 치졸해진 조폭들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7 09: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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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묻은 돈까지 손대는 하이에나 형님들

[일요시사=사회팀] 건장한 조폭도 불황은 피할 수 없다. 서민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약자만 골라 등쳐먹는 조폭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푼돈에 손 벌리는 그들의 이야기. 치졸함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9일 광주 동부경찰서는 도심 하천 다리 밑에서 윷놀이 도박장을 열고 판돈을 받은 혐의로 신모(45)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도박에 가담한 최모(76)씨 등 9명을 불법도박 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조직폭력배인 신씨 등 일당 4명은 지난 9월15일부터 11월23일까지 매일 오후 광주천변다리 밑에서 윷판을 벌여 판돈 수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인 윷판까지…
푼돈에 손뻗은 조폭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인 이들은 이미 다른 조직원이 같은 혐의로 수차례 붙잡혔음에도 수법을 따라 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조직적으로 역할을 확실히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도박 주최자, 망을 보는 ‘문방’, 도박자금을 빌려 주는 ‘꽁지’ 등으로 호흡을 맞췄다. 주로 노인이나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도박장을 열었고 이번에 붙잡힌 이들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도 끼어 있었다.

경찰은 지난 10월께 윷 도박장이 개설된다는 첩보를 입수해 인근 건물 옥상에서 동영상 촬영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 뒤 이들을 검거했다.


최근 들어 조폭들이 이러한 푼돈에 개입하는 일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에 조폭들도 울상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달라붙는다. 불황에는 장사 없다. 조폭도 예외는 아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조폭들의 행태도 달라졌다. 흔히 조폭이라고 하면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요즘 조폭은 생계형 조폭이다. 난투극을 벌이는 폭력 조폭은 옛말. 일단 먹고 사는 게 먼저다.

조폭도 불황은 피할 수 없다. 갈수록 깊어지는 불황에 폭력조직이 불법대부업에 손을 뻗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조직들이 실제 불법대부업에 나선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조직폭력배 검거 실적은 2003년 3309건, 2004년 3203건에서 2007년 3968건, 2008년 5411건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 실적이 급증한 것은 불법대부업과 연루된 폭력조직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2개월씩 진행하던 기획수사가 하반기 5개월로 연장됐다”고 덧붙였다.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하는 시점에 조직폭력배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타깃으로 돈을 빌려주고 살인적인 고금리를 강요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지적이다.

과거 조폭들이 보여 왔던 단순 폭행·협박·상해 등의 범죄유형이 점차 지능화 되면서 불법대부업 등에 손을 대 서민 등 약자의 푼돈을 건드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역다툼보다는 생계로, 조폭들의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화려한 조폭?
현실은 생계형


청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주 P파 폭력조직 단체 간부급 조직원인 A(40)씨는 도내 군 단위 지역에서 정통으로 주먹계를 장악하고 청주 폭력조직에 입성했다. 그는 조직 내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넓혔다. 청주는 물론이고 서울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심지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거물급 조폭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인맥을 과시했다.

그러나 30대 중반 주먹을 크게 휘둘러 결국 수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됐다. 교도소 생활을 마친 A씨는 후배 조직원들의 기세에 눌려 폭력조직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는 시골지역에서 작은 음식점을 개업해 먹고 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가 폭력조직에 몸 담아오면서 얻은 것이라곤 경찰의 ‘조폭 관리대상’이 된 것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겪는 사람은 A씨 뿐만이 아니다.

돈줄 마른 조직들 노인·서민 주머니 털어 
‘돈되는 일이라면…’점조직 지능범죄 기승

청주 P파 폭력조직원인 B(39)씨 역시 조폭 생활을 접고 현재 PC방과 당구장 등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생계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20대 시절 여러 차례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마찬가지로 폭력 혐의였다.

교도소에서 나온 B씨는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다 폭력조직에 다시 발을 들였지만 후배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각종 수모를 당한 후에야 폭력조직에서 탈퇴했다. 그 후 동네 PC방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B씨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이처럼 충북지역에서 현직 조직폭력배나 조직폭력 단체에서 탈퇴한 조직원들은 현재 화려한 조폭에서 생계형 조폭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반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경찰에 따르면 조직을 탈퇴한 조폭들은 대부분 무직이다. 일을 하고 있는 조폭들도 있지만 대부분 공사장을 전전하거나 지인들의 사업장에 겨우 눌러앉아 있는 형편이다. 부동산과 보험회사에 취직해 가족을 꾸려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조폭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 주먹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

일부 조폭들은 그동안 꾸준히 모아놨던 자금으로 자동차 정비업체 등 작은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가족으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부유한 조폭들은 비교적 큰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조직을 탈퇴한 대부분 조폭들은 ‘세력다툼’에 개입하지 않고 먹고 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도내 조폭들의 동향을 살펴본 결과”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던 고교생들의 ‘조폭 양성’도 예전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각목 대신 컴퓨터
적과의 동침도

이처럼 조폭 세계는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업 등을 통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생계에 허덕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보험사기, 심부름업체, 불법 게임장 등으로 서민을 쥐어짜고 있다.


특히 이들의 범죄가 지능형 혹은 서민 밀착형 범죄로 변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다수의 일선 경찰 관계자들은 경제 불황을 원인으로 꼽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유흥업소나 집장촌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수입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호남지역 일파 간부였다는 A씨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조폭이 관리하는 구역의 사업장(유흥업소, 집장촌)만 잘 운영해도 조직의 자금을 그럭저럭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조폭들의 생태계를 흔든 굵직한 요인은 2008년 금융위기다. 과거 IMF때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했지만 건설경기는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저축은행과 건설사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건설경기가 크게 위축됐다. 즉 과거에는 아파트 분양 브로커 및 돈세탁, 혹은 장애요소를 제거해주며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건설경기가 파리를 날리면서 지금은 거대 관급 공사나 몇몇 재개발 지역을 제외하면 돈 되는 일거리 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자영업자들로 이루어진 대형상권이 무너진 것도 한몫했다. 줄이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인해 조폭들이 남을 만한 여건이 보장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아직까지 살아있는 상권으로는 서울 동대문, 남대문 등으로서 이곳에 조폭들이 몰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2004년 성매매 특별법, 2006년 사행성 게임장 집중 단속 등 경찰 수사력의 집중도 불법 유흥업소들이 대거 자취를 감추는 데 일조했다.

점조직 형태로
뭉치고 해산


이러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조폭들의 행동방식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변화는 나와바리(구역)의 실종이다. 과거에는 조폭들이 정해진 구역을 차지하고 지역의 이권을 빨아들이면서 동시에 지역을 지키기 위해 많은 조직원들을 동원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구역이 무의미해져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폭의 영향력이 주먹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조폭들은 사실상 와해되거나 세가 많이 약해졌다.

부자조폭 vs 거지조폭
주먹계도 양극화 심화

이에 따라 자연스레 조직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돈만 벌 수 있다면 파벌은 무시됐다. 그저 친분이 있는 조폭들끼리 연락해 프로젝트 활동을 벌이다 일이 끝나면 해산하는 식으로 움직이게 됐다. 조폭도 프리랜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 전직 조직원은 “파벌이 달라도 학연, 지연, 혈연, 교도소 등으로 서로 형, 아우지간으로 관계를 맺고 지낸다”며 “그러다 일거리가 생기면 서로 연락해 같이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조폭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합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돈맥을 수색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먹고 살 길을 찾은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행동대원은 사원, 간부들은 임원, 두목은 회장으로 명함을 바꾸고 회계사를 두고 회계장부를 최대한 깨끗이 운영하려 한다”며 “주로 부동산, 사채, 유통, 철거 및 경비용역 같은 부문에 진출하고, 혹은 상장기업을 인수하거나 주가조작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들은 조폭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러한 돈줄을 뽑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자금추적 및 회계조사를 할 수 있는 인력, 그리고 최소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장기수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나마 지능화된 범죄를 하는 조폭들은 규모가 있는 편. 경찰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반면 여전히 유흥점주, 자영업자 갈취, 보험사기 등 서민 밀착형 범죄를 통해 명맥을 이어가는 조폭들은 경찰에 꾸준히 적발된다. 사회양극화가 조폭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빈부격차도 극심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민 밀착형 범죄를 저지르는 조폭들 가운데 부유층은 거의 없다. 대부분 무직이며,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어깨와 조직만 있으면 마냥 탄탄대로인 줄로만 알았던 조폭세계. 지금 조폭들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조폭들도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 조폭 현황

216개파 5000여명 활동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국내 조직폭력배(조폭)가 전국에 216개파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에도 1개파가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 강기윤·민주당 김현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전국 관리대상 조직폭력배 현황’을 보면 올해 경찰이 파악·관리하고 있는 국내 조폭은 전국 216개파 5425명이다.

경찰관계자는 “경찰이 동향 등을 파악하는 조폭의 간부급을 위주로 집계한 것이라 실제 조직원은 이보다 서너 배 이상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경기에 조폭이 밀집해 있었다. 경기 지역에는 31개파 893명이 운집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서울이 22개파 479명으로 뒤를 이었다. 부산은 22개파 384명, 경남 18개파 411명, 충남 17개파 288명, 전북 16개파 408명, 인천 13개파 312명, 경북은 12개파 349명 등이다. 광주·전남 지역은 각각 8개파씩으로 나타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경기 수도권 밀집
부산 경남 충남 전북 순
광주·전남 갈수록 쇠약

단일 조폭의 조직원 수로는 충북 파라다이스파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 향촌동파(75명), 부산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광주 국제PJ파(65명), 충북 화성파(64명) 순이다.

1980년대 전국 3대 조폭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와 고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현재 관리대상 조직원이 각각 26명과 11명에 불과하다. 광주의 OB파는 49명이 관리대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대부분 유흥가가 밀집한 곳이 조폭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한 도시에 4~6개의 조폭이 있는 곳도 많다. 그중 전북 전주시와 익산시는 6개파씩 난립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찰에 검거된 조폭은 감소 추세다. 2008년 5411명에서 2009년 4645명, 2010년 3881명, 2011년 3990명, 지난해 3688명이다. 올해는 8월까지 1732명이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조폭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 데다 폭행 등으로 검거돼도 조직원임을 밝히지 않아 조폭 검거 실적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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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