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훈포장’ 대기업 리스트 대공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1:48:30
  • 댓글 0개

양심 팔아 훈장…가문의 영광? 망신?

[일요시사=경제1팀] 이명박 정부가 22조원의 국세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 ‘대국민 사기극’이란 낙인이 찍힌 4대강 사업으로 포상 잔치까지 벌인 기업인들의 이력이 드러났다. 사실상 정부가 각종 비리로 얼룩진 기업 관계자들에게 국민혈세로 훈포상을 준 셈이어서 파문이 커지는 모양새다.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검은 양심은 팔아버린 이들은 누구일까. 그 실체를 파헤쳐봤다.




‘MB 야심작’ 4대강 사업에 참여해 훈장을 단 기업인들의 공적사항이 공개됐다. <일요시사>가 민주당 이미경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4대강 사업 포상자 주요 공적사항 현황’에는 종교계·학계를 비롯해 건설계·공무원 등 총 1152명의 공적내용이 들어있었다. 특히 입찰비리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대형 건설사 임직원 대부분이 뚜렷한 공적 사항 없이 훈포장 명단에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국민 사기극
뻔뻔한 포상!

해당 훈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말인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진행과정에서 공로가 인정된다며 500여명이 넘는 산업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훈포장과 표창을 수여했다.

먼저 비자금 조성과 입찰비리, 낙동강 칠곡보 부실공사 논란 등에 휩싸였던 대우건설은 임직원 10여명이 금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산업훈장은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며 금탑, 은탑, 동탑, 철탑, 석탑 등 5등급으로 나뉜다.

공적사항에 기재된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서훈 사유는 다소 모호한 것이 대부분 이었다. 직원 이모씨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홍보에 주력하여 4대강 이미지 향상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안모씨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원활한 수행에 크게 공헌했다”는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또 다른 직원 강모씨는 “평소 투철한 관리자의 자세와 합리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관리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했다”는 공적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대우건설은 올해 초 수십억원의 법인자금을 횡령해 국책사업 수주 로비를 벌인 혐의로 토목사업본부장 옥모씨가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옥씨는 4대강 사업 중 하나인 칠곡보 구간을 포함한 대우건설의 각종 공사 현장에서 하도급업체들로부터 수십억원대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4대강 턴키입찰을 따내기 위해 심사위원 3명에게 모두 2억1000만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옥씨에게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과다지급한 뒤 되돌려 받도록 공모한 서종욱 전 대우건설 대표도 추가 입찰담합 혐의가 인정돼 소환조사를 받아왔으나, 지난달 불구속기소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능동적 민원대처’
모호한 공적들

담합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GS건설도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12명이나 훈장이나 표창을 받았다.

김영선 GS건설 상무는 헌신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함안창녕보 성공적인 준공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동탑산업훈장을, 길용훈 GS건설 상무 역시 민원발생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랜드마크적인 명품보 건설에 기여한 공으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GS건설 직원 김모씨는 “금강하류 지역의 가뭄 및 홍수피해에 대한 종합적인 방어대책 마련”이라는 공이 인정돼 국무총리 표창을, 또 다른 직원 김씨는 “낙동강하류 지역의 가뭄 및 홍수피해에 대한 종합적인 방어대책 마련”이라는 같은 이유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직원 유모씨도 “능동적인 민원대처로 고객만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검찰 수사에서 역시 입찰담합 혐의가 인정돼 김중겸 전 대표가 불구속기소된 현대건설도 10명의 임직원이 동탑산업훈장과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했다.

김정위, 김진원 상무는 “탁월한 사업관리능력을 바탕으로 원활한 공사 진행이 가능하도록 기여”, “철저한 현장관리로 사업추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공으로 각각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나머지 8명 임직원들도 대통령표창이나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특혜 의혹에 휘말렸던 포스코건설 역시 5명의 임직원이 훈장과 표창을 수상했다.

낙동강 30공구 컨소시엄 공사를 진행했던 포스코건설은 정동화 대표이사 겸 부회장이 지난해 3차 훈포상 과정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정 대표의 공적은 “구미보 시공업체 대표로서 본사차원의 홍보 및 지원과 사업관리로 랜드마크적인 보 건설을 완료했다”는 것이었다.

MB정부 무더기 포상 내역…공적 내용 공개
이미지 향상 기여·고객 만족 등 황당 사유
대우·GS·현대·삼성…훈장 받고 뒤로는 비리

댐건설 타당성과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였던 영주댐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역시 5명의 임직원들이 동탑산업훈장, 산업포장,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들은 모두 “한강 살리기 4공구사업에 참여해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원활한 공정 추진 및 최상의 품질 확보 등에 기여함” 이라는 동일한 이유로 훈·포장 대상이 됐다.

이밖에도 지난 9월 입찰 담합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삼성중공업, 금호산업, 대림산업 임직원들도 정부 훈포장을 받았다. 삼성중공업 임직원 김모씨는 “지역주민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여 효율적인 현장관리” 공으로, 금호산업 직원 이모씨는 “면밀한 현장관리를 통해 문제업체에 대한 지분율 조정 및 정산을 조기 완료”라는 공이 인정돼 각각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4대강 전도사들
줄줄이 검찰행

건설사들뿐만 아니라 부실한 4대강 공사 기초설계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맡았던 대형 엔지니어링 설계감리업체들도 훈포장 대상이었다. 동부엔지니어링과 도화엔지니어링, 유신코퍼레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4대강 사업 효과를 홍보하는 ‘4대강 전도 으뜸 업체’로 평가받았던 동부엔지니어링은 무려 24명이 산업훈장과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현 이문규 대표이사가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녹색성장의 기반 구축에 기여” 공을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을, 채선엽 전무와 정순찬 상무가 “하천 이용 활성화 기반 구축” 유공으로 산업포장을 받는 등 설계 감리 업체 중 가장 많은 수상자를 냈다.




동부엔지니어링은 지난 2008년 4대강 비밀 추진팀인 ‘국가하천종합정비TF’에도 참여했다. 이후 2009년 턴키공사 1차 설계용역 발주에서 낙동강 15개 공구 중 가장 규모 큰 22공구와 한강 3공구 설계 용역을 따내 정치권으로부터 ‘정부TF 참여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자회사 입찰담합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도화엔지니어링 임직원 8명도 산업포장과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도화엔지니어링은 지난 2009년 4대강 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토목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1위 업체로 떠오르는 등 4대강 최대 수혜 업체로 꼽히기도 했다.

MB정권 출범직후부터 4대강사업 추진 핵심세력으로 주목받은 설계업체 유신 코퍼레이션 역시 지난해 3차 훈포장 대상에 포함돼 3명의 임직원이 철탑산업훈장과 산업포장, 국무총리표창 등을 받았다. 이들의 사유는 각각 “안전관리와 홍보활동으로 원활한 사업추진에 기여”, “4대강 마스터 플랜 및 주요 공구 설계에 참여” 등이다.


유신은 대대적 압수수색을 받으며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장석효 도로공사 사장에게 6000만원을 건넨 정황이 포착돼 장 사장은 구속기소됐다.

유신은 앞서 경남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 날림공사 의혹으로, 경남도로부터 지난 2011년 3월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삼성물산 등 6개 업체와 함께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된 전력도 있다.

국민 혈세를
담합으로 ‘꿀꺽’

4대강 공사에 참여한 많은 산업계 임직원들이 훈장과 표창을 받았지만, 비자금 조성과 각종 입찰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추문으로 얼룩진 4대강 사업 관계자들에게 국민 혈세로 훈포상을 준 셈이어서 서훈 박탈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졸속으로 무더기 훈포장을 남발했다”며 “훈포장 내역을 보면 국가기관과 관련 단체를 전방위적으로 이용해 4대강 찬성 여론을 조작하려 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적 조서 원본을 공개하고, 공적 내용이 잘못됐을 경우 서훈을 취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 역시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비자금을 조성한 건설업체 임직원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훈포장을 남발했다”며 “이명박 정권은 훈장마저 뇌물 삼아 부패카르텔을 만들었다. 이 부패카르텔은 환경을 망치고 혈세를 담합하는 대가로 나눠가졌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