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시청역 예술공간 가 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1:40:55
  • 댓글 0개

만들면 부수고, 그리면 찢고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청역 지하 출입구 벽면에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큼직한 낙서가 나타났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타 글을 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행히 진짜이 아닌, 사실적인 조각품이었다. 제작자는 이 모습을 통해 인권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조각품이 훼손됐다. 설치 하루만에 발생한 일이다.




지난 9일 오전, 1호선 서울시청역 지하 출입구에 낯선 ‘낙서’가 등장했다. 출근길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시민들의 눈길은 순간 한 곳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단순히 낙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5번 출입구 통로 앞에는 바닥에 엎드린 사람이 있었고, 그의 등에 올라타 낙서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연출됐다. 녹색 붓을 들고 위에 서 있는 남자가 쓴 글은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구호였다.

‘인권 보호합시다’

이를 본 시민들의 반응은 물음표 그 자체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며 진짜 사람인지 확인해보거나,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큰 글씨 밑에 “인권보호는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나부터 행동으로 실천합시다”라는 문구를 보고서는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조각품 설치 다음 날인 10일 오후 서울시청역 5번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뜻밖에 광경을 목격했다. 한 노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조각품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육두문자를 날리고 있던 것. A씨는 조각품의 옷깃을 붙잡고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당장 이걸 치워야 한다”고 고함을 쳤다.

시청역을 오가던 시민들은 그 소리에 놀라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금세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A씨 주변을 애워쌌다.


A씨는 흥분상태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인권이야?” “이거 다 필요없는 짓이야!” “박원순 시장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어!”

이러한 소란을 확인한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이 현장에 급히 달려와 A씨를 말렸지만 그는 역 관계자들에게까지 고함을 치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서울시청 역장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A씨는 역 관계자들의 몸을 밀치며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조각품을 발로 수차례 걷어차고 손으로 당겨 작품을 쓰러뜨렸다. 이로 인해 조각품 상의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역 관계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인과 육체적인 마찰이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A씨의 행위에 힘을 실어줬다. “저런 흉측한 걸 왜 여기다 설치해놔!” “아주 잘 됐다”

반면 청년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몇 몇 사람들은 노인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지만 A씨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흥분상태는 계속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서울시 인권담당 공무원들까지 현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조각품에 대해 설명했다. 조각품의 표면적인 부분만 보지 말고 그 의미를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씨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던 노인들 간 몸싸움이 벌어지며 상황은 악화됐다. 대다수의 노인들은 조각품을 보고 ‘흉물’이라며 제작자와 서울시장을 비난했다.

‘인권의 날’기념 조각품 설치 두고…
노인-청년 신구 세대 간 갈등 표출


이렇게 수십여 분이 흐른 뒤에야 상황은 종료됐다.

처음부터 이 상황을 지켜본 대학생 정씨는 “어르신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조각품에 내재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치된 공공기물을 파손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최씨는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저런 모습(조각품)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며 “과격하긴 했지만 저 분(A씨)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인권보호팀 관계자는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하고자 설치된 조각품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돼 안타깝다”며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지만 이 캠페인의 취지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훼손된 조각품의 보수는 이제석 광고연구소 관계자들이 맡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앰네스티(인권단체) 관계자들이 현장에 나와 가판대를 설치해 놓고 작품을 안내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해 서울시와 앰네스티(인권단체)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실제 사람이 아닌 조각품으로, 인권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서울시가 인권의 날을 기리며 ‘이제석 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에게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작품을 요청했고, 조각품 기획과 제작에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참여했다. 세계적인 광고천재로 알려진 이제석 대표가 의미 있는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조각품 제작 당시 이제석 대표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 “일상 속에서 서로 인권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권 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자 한 것.

그러나 제작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특히 기성세대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들의 격한 반응은 시공 때부터 시작됐다. 시공 중 서울시청 역장이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이번 사건 자체가 우리 인권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권위주의가 나타난 상징적인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잘 정돈된 서울시청역에 날것의 느낌인 조각물을 설치한 건 나름 ‘파괴적 설치’였다. 이 대표는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일례로, 시공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 대표가 작업복에 목장갑을 꼈을 때와 정장을 입었을 때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겉모습에 따라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 그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인권침해’라 하면 외국의 경우 인종 문제가 대두된다. 반면 한국은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해와 권위주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말하면 종북 혹은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편협한 사고다”라며 “극단적인 정쟁, 반대 사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만약 인권 조각품이 아니라 동성애자 1인 시위였다면 어땠을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인권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서 배경으로는 우경화도 한몫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 이번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권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각품 훼손이 오늘날 우리 인권의 실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계인권선언이란?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인권 무시, 인권의 존중과 평화 확보 사이의 깊은 관계를 고려하여 기본적 인권 존중을 중요한 원칙으로 하는 국제연합헌장의 취지에 따라 보호해야할 인권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목적으로 1948년 6월 국제연합인권위원회에 의해 선언문이 완성됐고, 그해 12월10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국제 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매년 12월10일은 ‘인권의 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상세히 명시하면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에서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인정한 선언이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