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박근혜 떠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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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이 떠났다…도대체 왜?

[일요시사=사회팀]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주도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연구를 위해 탈당을 했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18대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은 현 정권의 개국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가 지금 대선 1주년을 앞두고 탈당을 결심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탈당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파장 촉각
다양한 해석 나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가정교사로 잘 알려진 김 전 위원장 탈당을 두고 말이 많다. 그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야권에서는 그의 행보가 ‘경제민주화의 실종’을 의미한다며 입을 모았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6일 “지난해 선거가 끝났으니 할 일은 다 했다. 지난해부터 언제 나갈까 생각한 것”이라며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혔다. 19일 탈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탈당 자체도 큰 의미를 갖겠지만, 당선 1주년을 앞둔 시점이어서 시사점이 더욱 커 보인다.


공식적인 탈당 사유는 ‘연구활동’ 이다. 그는 내년 3월 초 독일로 출국해 연구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는 당원 신분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할 얘기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전 위원장은 탈당 의사를 밝힌 뒤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나 현 정국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진 않았다. 이와 달리 김 전 위원장의 측근들을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김전 위원장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서울경제>와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CBS라디오를 통해 “그런 부분(청와대에 실망)이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의 탈당 의사가 전해지면서 야권에서는 ‘경제민주화 실종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주당 허일영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이 탈당을 결심한 것은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풀이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 공약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김종인 전 위원장을 토사구팽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소수 재벌’들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국민통합도 사라졌고, ‘창조경제’는 ‘특권경제’가 되었다”면서 “경제민주화의 파기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가중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박 대통령이 당선된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공약들이다”라며 “이렇게 본다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양보하고 타협하면서도 경제민주화를 어떤 수준에서든지 실현하고자 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의 노력, 이제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그가 새누리당을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설도 제기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멘토였던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하늘이 깨져도 안철수 신당에 안 간다”며 신당행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한편 김 전 위원장이 독일에 장기체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포스코 차기 회장 취임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그동안 그는 포스코의 차기 회장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새누리당은 난색을 표했다. “김종인 전 의원이 새 정부에 대해 격려는 못할망정 의욕을 꺾는 일만큼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것.

새누리당 탈당 두고 설왕설래…“실망”관측
안철수 신당 합류설 부인 “독일서 연구활동”

김근식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의원이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 의사라고 생각하지만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경제정책 공약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서 보다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부대변인 또 “김 전 의원은 새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를 언급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조만간 탈당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며 “새 정부는 출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 안팎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같은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할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속빈 강정되나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김 전 위원장이) 입당한 것도 몰랐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어쨌든 그 분이 많은 기여를 했고, 그때 주장했던 경제민주화 입법이 요즘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반영됐기 때문에 그 분의 충분한 역할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이준석 전 위원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이 같은 개국 공신들의 ‘탈박’ 행렬이 여기서 그칠 것이냐는 점이다. 앞으로 하나둘씩 탈박 행렬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이지만 여권 내 비박 세력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당적과 별개로 이제 새누리당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당원이고 아니고가 의미도 없는데”라는 그의 발언이 보여주는 바도 그것이다.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주창자라고 알려진,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새누리당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후퇴는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총선 전 김 전 위원장이 이상돈·이준석 등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에 합류했을 때 야권 지지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박근혜에게 갔다는 사실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이러한 반응에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캠프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다가 수난을 당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새 정부 출범의 견인차 역할을 했는데, 결국 중용되지는 못했다. 즉 그가 사심으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는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말한 이유도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민주당 정권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는 수구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민주당은 급진적이지 않은 정당이기에 기업권력과 타협하는 것도 우려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돌이켜보면 재벌을 엄하게 통제했던 이들은 군부독재자인 박정희나 전두환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주저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기대했던 박 대통령의 ‘의지’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전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경제민주화 담론을 꺼내들었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선거에 활용했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들의 질적 수준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김 전 위원장은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협력을 구해야 하며 누구의 반대를 감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 없는 정치적 과제는 실행 불가능하다. 정책 구체화에 실패한 것이다.

외부인사들의
잇단 퇴장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고 경기회복이 우선이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과의 ‘전쟁’을 치를 각오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는 접어 놓고 ‘NLL대화록’ 등 이념몰이를 통해 야당과 결사항전했고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의 변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새누리당 역시 UCLA 경제학 박사인 이혜훈 최고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의중에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대통령 경제 가정교사
경제민주화 공약 주도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경험은 있지만 한 번도 정책적 과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모습인지 모른다. 이를 감지한 핵심브레인 김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은 있었지만 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보수주의자로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정책으로 해결하는 큰 정치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념논쟁이 아닌 정책논쟁에 힘을 썼다면 야권은 국정원 선거개인 논란과는 상관없이 해당 법안에 대해 적극 협조했을 것이고 지지율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버금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40∼50%를 상회하는 지지율에 미소지을 뿐이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청와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직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단임제가 흘러가면 그 대가는 나머지 임기 동안에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김 전 위원장 탈당은 분명 큰 시사점이 있다. 역사에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시끄러운 정국을 풀고 정책 실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정부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이다. 그는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당시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하면서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했고, 노태우 정부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가를 도입했다. 그 이전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3년 당시 안영도 동화은행장에게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거 민정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정계파에 서지 않으면서도 ‘김영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파격을 보여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 개인 비리가 아닌 정권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인데, 당시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 썼다는 의견도 있다.

불쏘시개 되어
논의 들어갈까

김 전 위원장은 1987년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란이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에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항목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 박찬종 전 의원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은 이전 헌법에도 존재해 왔던 조항이며, 다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만 더 추가된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의 변천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제헌헌법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1963년 헌법 제111조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1980년 헌법 제120조 제2조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19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인은?]

▲서울 출생
▲서울 중앙고 졸업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학사
▲독일 뮌스터 대 경제학과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제4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서독 쾰른대학교 객원교수
▲제5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제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국민은행 이사장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건국대 석좌교수
▲제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제18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가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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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