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박근혜 떠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3:42:51
  • 댓글 0개

‘개국공신’이 떠났다…도대체 왜?

[일요시사=사회팀]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주도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연구를 위해 탈당을 했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18대 대선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은 현 정권의 개국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가 지금 대선 1주년을 앞두고 탈당을 결심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탈당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파장 촉각
다양한 해석 나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가정교사로 잘 알려진 김 전 위원장 탈당을 두고 말이 많다. 그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야권에서는 그의 행보가 ‘경제민주화의 실종’을 의미한다며 입을 모았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6일 “지난해 선거가 끝났으니 할 일은 다 했다. 지난해부터 언제 나갈까 생각한 것”이라며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혔다. 19일 탈당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탈당 자체도 큰 의미를 갖겠지만, 당선 1주년을 앞둔 시점이어서 시사점이 더욱 커 보인다.


공식적인 탈당 사유는 ‘연구활동’ 이다. 그는 내년 3월 초 독일로 출국해 연구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는 당원 신분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할 얘기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전 위원장은 탈당 의사를 밝힌 뒤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나 현 정국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진 않았다. 이와 달리 김 전 위원장의 측근들을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김전 위원장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서울경제>와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CBS라디오를 통해 “그런 부분(청와대에 실망)이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의 탈당 의사가 전해지면서 야권에서는 ‘경제민주화 실종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주당 허일영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이 탈당을 결심한 것은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풀이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 공약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김종인 전 위원장을 토사구팽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소수 재벌’들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국민통합도 사라졌고, ‘창조경제’는 ‘특권경제’가 되었다”면서 “경제민주화의 파기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가중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박 대통령이 당선된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공약들이다”라며 “이렇게 본다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양보하고 타협하면서도 경제민주화를 어떤 수준에서든지 실현하고자 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의 노력, 이제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그가 새누리당을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설도 제기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멘토였던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하늘이 깨져도 안철수 신당에 안 간다”며 신당행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한편 김 전 위원장이 독일에 장기체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포스코 차기 회장 취임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그동안 그는 포스코의 차기 회장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새누리당은 난색을 표했다. “김종인 전 의원이 새 정부에 대해 격려는 못할망정 의욕을 꺾는 일만큼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것.

새누리당 탈당 두고 설왕설래…“실망”관측
안철수 신당 합류설 부인 “독일서 연구활동”

김근식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전 의원이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 의사라고 생각하지만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경제정책 공약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서 보다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부대변인 또 “김 전 의원은 새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를 언급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조만간 탈당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며 “새 정부는 출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 안팎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같은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할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속빈 강정되나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김 전 위원장이) 입당한 것도 몰랐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어쨌든 그 분이 많은 기여를 했고, 그때 주장했던 경제민주화 입법이 요즘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반영됐기 때문에 그 분의 충분한 역할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에 이준석 전 위원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이 같은 개국 공신들의 ‘탈박’ 행렬이 여기서 그칠 것이냐는 점이다. 앞으로 하나둘씩 탈박 행렬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이지만 여권 내 비박 세력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당적과 별개로 이제 새누리당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당원이고 아니고가 의미도 없는데”라는 그의 발언이 보여주는 바도 그것이다.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주창자라고 알려진,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새누리당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후퇴는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총선 전 김 전 위원장이 이상돈·이준석 등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에 합류했을 때 야권 지지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박근혜에게 갔다는 사실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이러한 반응에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캠프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다가 수난을 당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새 정부 출범의 견인차 역할을 했는데, 결국 중용되지는 못했다. 즉 그가 사심으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는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박근혜 대통령만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라고 말한 이유도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민주당 정권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는 수구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민주당은 급진적이지 않은 정당이기에 기업권력과 타협하는 것도 우려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돌이켜보면 재벌을 엄하게 통제했던 이들은 군부독재자인 박정희나 전두환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주저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기대했던 박 대통령의 ‘의지’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전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경제민주화 담론을 꺼내들었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선거에 활용했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들의 질적 수준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김 전 위원장은 진정성 있게 경제민주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협력을 구해야 하며 누구의 반대를 감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민이 없는 정치적 과제는 실행 불가능하다. 정책 구체화에 실패한 것이다.

외부인사들의
잇단 퇴장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고 경기회복이 우선이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과의 ‘전쟁’을 치를 각오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는 접어 놓고 ‘NLL대화록’ 등 이념몰이를 통해 야당과 결사항전했고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경제관료와 재벌그룹들의 변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새누리당 역시 UCLA 경제학 박사인 이혜훈 최고위원 정도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의중에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대통령 경제 가정교사
경제민주화 공약 주도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경험은 있지만 한 번도 정책적 과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모습인지 모른다. 이를 감지한 핵심브레인 김 전 위원장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은 있었지만 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보수주의자로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정책으로 해결하는 큰 정치인이 될 기회를 스스로 놓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념논쟁이 아닌 정책논쟁에 힘을 썼다면 야권은 국정원 선거개인 논란과는 상관없이 해당 법안에 대해 적극 협조했을 것이고 지지율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버금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40∼50%를 상회하는 지지율에 미소지을 뿐이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청와대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직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단임제가 흘러가면 그 대가는 나머지 임기 동안에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김 전 위원장 탈당은 분명 큰 시사점이 있다. 역사에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시끄러운 정국을 풀고 정책 실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정부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이다. 그는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당시에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입안에 참여하면서 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도입했고, 노태우 정부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가를 도입했다. 그 이전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3년 당시 안영도 동화은행장에게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거 민정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정계파에 서지 않으면서도 ‘김영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파격을 보여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 개인 비리가 아닌 정권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인데, 당시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 썼다는 의견도 있다.

불쏘시개 되어
논의 들어갈까

김 전 위원장은 1987년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란이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에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항목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 박찬종 전 의원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은 이전 헌법에도 존재해 왔던 조항이며, 다만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만 더 추가된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의 변천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제헌헌법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내에서 보장된다.

1963년 헌법 제111조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1980년 헌법 제120조 제2조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1987년 헌법 제119조 제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인은?]

▲서울 출생
▲서울 중앙고 졸업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학사
▲독일 뮌스터 대 경제학과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제4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서독 쾰른대학교 객원교수
▲제5차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제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국민은행 이사장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건국대 석좌교수
▲제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제18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가천대 석좌교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