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투입’ 영종도 카지노 빛과 그림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0 11: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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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 시작된 ‘인천베가스’ 잭팟 터트릴까

[일요시사=사회팀] 영종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도 내 ‘카지노 복합리조트’ 조성과 관련된 발표가 잇따르면서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카지노 조성으로 일대가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영종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천 영종도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발표가 최근 잇따르며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레저 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외국계 자본이 주도하는 이 사업을 두고 기대와 의구심이 공존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이점을 살려 외화벌이를 하느냐. 아니면 국부 유출로 도박 공화국 폐해를 낳느냐.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국내 첫
카지노 복합리조트

영종도를 둘러싼 카지노 공습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이 일본의 파친코 게임업체인 세가사미와 합작해 국내 최대 규모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건립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다시 적합 판정을 받기 위해 외국계 합작법인 리포&시저스도 자본금을 추가 증자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해 재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파라다이스그룹 계열사인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10월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형 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오는 2017년까지 인천 영종도 국제업무단지에 1조9000억원대를 투자하게 된다.

파라다이스그룹과 손잡은 세가사미는 식품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다 파친고 사업으로 성장한 ‘사미’가 2004년 유명 게임업체 ‘세가’를 인수·합병해 세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지난 7월 파라다이스그룹의 지배 회사인 파라다이스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던 인천 카지노 사업 부문을 양수받았다.

파라다이스그룹은 이미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위치한 하얏트호텔에서 ‘골든게이트 카지노’를 운영해왔다. 때문에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신규로 카지노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카지노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파라다이스 세가사미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이외에도 쇼핑·오락·공연 공간 등 내국인들이 즐길 다양한 공간과 콘텐츠가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축구장 47개 크기인 대지 면적 10만평 규모의 파라다이스시티는 2단계에 걸쳐 개발된다. 내년 하반기 착공에 들어가 2017년 운영을 시작하는 1단계 사업에서는 카지노 시설을 물론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시설, 700실 규모의 특1급 호텔, 다목적 공연장과 쇼핑 시설 등이 들어선다. 또한 2020년까지 5성급 호텔을 추가로 설립하고 카지노 시설도 확충할 계획이다.

파라다이스세가시미 측은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운영될 예정이며 내국인을 염두에 둔 카지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카지노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보였다. 하지만 영종도에 설립될 복합리조트 고객으로 내국인이 몰릴 경우 결국 카지노도 내·외국인 모두 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냐하면 외국의 대형 카지노 업체들이 ‘오픈카지노’를 공공연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심사제를 통해 외국 자본들의 카지노 허가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의 셸턴 애덜슨 회장은 사전 심사제와 함께 내국인 출입 허용까지 요구한 바 있다. 이 그룹은 마카오와 싱가포르 등에서 대규모 카지노를 운영 중이다. 리포&시저스의 한 축인 시저스엔터테인먼트의 스티브 타이트 사장도 내국인 출입 허용 등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저스는 미국을 비롯한 7개국에서 54개의 카지노와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영종도 진출을 바라고 있다.

파라다이스 “내국인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물론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는 허가할 수 없다는 것. 사전 심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카지노 허가 심사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대상일 뿐 내국인에 대해 개방할 계획은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국계 자본이 우선 외국인 전용으로 허가를 받은 뒤 향후 대규모 투자 등을 이유로 내국인 출입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선례도 있다. 싱가포르 등 복합리조트 카지노 대부분이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종도에 복합리조트를 건립하겠다고 나선 업체들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겨냥해 카지노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인천공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들이 주 타깃인 것. 시저스는 중국계 자본으로 아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로 알려진 리포그룹과 손을 잡았다. 영종도 진출을 추진해온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파친코 황제’로 불리는 오카다 가즈오가 운영하는 오카다홀딩스의 자회사 격이다.

대형 복합리조트 급물살…‘관광한류’주도
투자자들 움직임 활발 “정말로 실현 가능?”

이들은 연간 관광객 690만명을 유치해 4조5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전망이다. 또 개발기간 10년 동안 4만5000개의 건설 관련 일자리가 발생하고 운영 과정에서 89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천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 추진을 다시 공론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윤관석 민주당 의원(인천 남동을)은 “투자활성화와 관광 진흥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을 동반하는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인처 서구·강화갑)도 국정감사에서 복합리조트 추진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을 물었다.

유진룡 문화부장관은 “사업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향후 영종도 복합리조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또 “해외 자본을 많이 유치해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면서 고용을 많이 창출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당초 유 장관은 카지노 사전 심사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문화부가 투자사의 신용평가 등급 등을 사유로 부적합판정을 내린 것도 이러한 유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관계 부처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종도 카지노 리조트 사업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보 후퇴한 업체 측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보완사항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 특례 적용 기준을 ‘신용 상태’에서 ‘자금 능력과 수행 경험’으로 바꾸는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외 카지노 자본의 국내 진출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지노 허가권은 정부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전제한 후 “카지노 산업의 특성상 좀 더 장벽을 높이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의 경우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만큼 굳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국민연금 등을 활용해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합리조트 사업
땅 따먹기 전쟁

한국형 복합리조트는 ‘잭팟’을 터트릴까. ‘쪽박’에 그칠까.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는 흔히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수년전 라스베거스를 제치고 1위로 등극한 곳이 있다. 바로 마카오다. 라스베이거스의 4∼6배 규모의 매출을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카지노를 중심으로 쇼핑몰, 특급호텔, 테마파크, 국제회의장 등을 갖춘 복하비조트로 승부수를 띄운 게 유효했다. 2010년 개장한 ‘마리나베이 샌즈 리조트’와 ‘리조트 월드 센토사’는 지난해 연매출 71억 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아가 ‘카지노 격전지’로 떠로은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인 관광객 때문이다. 중국인은 지난해 전세계 관광지를 휩쓸며 모두 1000억 달러를 소비해 세계 최대 ‘큰 손’으로 부상했다. 도박을 좋아하는 편인 중국인을 겨냥해 ‘원정 도박’이 가능한 복합리조트가 앞다퉈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필리핀과 베트남, 대만에 이어 일본도 카지노 합법화 논의를 시작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은 파라다이스그룹이 영종도에 1조9000억원을 들여 2017년까지 중대형 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 시티’를 세울 계획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외국인 카지노를 중심으로 여러 편의시설을 갖추고 특히 차별화 전략으로 ‘한류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들어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이들이 영종도를 카지노 거점으로 노리는 이유는 중국과의 접근성 때문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공항과 불과 1.1k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치 외화벌이 창구?
제2강원랜드…도박공화국 전락?

이밖에도 이미 8개의 외국인 카지노가 자리 잡은 제주와 충북 등에서도 지자체별로 카지노 유치를 논의 중이다. 이렇듯 지자체들이 카지노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다. 그들이 이러한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는 세계적인 인천공항과 연계한 공항복합도시로 국제적인 관광메카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위로 국내 기업의 투자의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증대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 자본축적 등 다목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형 복합리조트
과연 성공할까…

반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외국계 자본 카지노 사업으로 인해 국부 유출, 도박 공화국 폐해를 낳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아무리 포장한다한들 카지노는 ‘도박’이다. 그것도 중독성이 강해 폐해가 끊이지 않는다. 카지노는 달콤하지만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사회를 병들게 하면서 이익을 챙긴다.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사업을 확장하면 안 된다는 것.

세계적으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카지노는 거의 없다. 언젠가는 국제적인 압력에 밀려 영종도 역시 내국인에게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미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서울 3곳, 부산 2곳, 인천 1곳, 강원 평창 1곳, 대구 1곳, 제주 8곳 등 16곳이 산재해 있다. 특히 인천에는 (주)파라다이스글로벌에서 운영하는 인천카지노가 있기 때문에 영종도에 카지노를 더 세울 필요가 없다. 영종도 개발은 카지노 없이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종도 사업 한계와 과제 

카지노 열쇠 쥔 달러에 ‘질질’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의 키는 외국 자본이 쥐고 있다. 거대 자본의 융단폭격이 예상된다. 과거 1조5000억원을 들여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MDC(밀라노디자인시티)’를 조성하겠다고 했다가 2011년 무산돼 수년간 버려진 땅이 최근 카지노 설립 분위에 편승해 미·일 업체가 뛰어들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일본 파친코 제작업체인 오카가 홀딩스의 자회사인 (주)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영종하늘도시 41만평의 토지 매매 계약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영종하늘도시는 LH(70%)와 인천도시공사(30%)가 공동 개발하고 있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이곳에 5조6000억원을 들여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호텔, 테마파크 등 복합리조트 개발을 추진 중이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앞서 인천공항 북측 국제업무단지(IBC-II)에 3조50억원을 들여 외국인 카지노 설립 등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며 올초 정부에 사전 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문화부는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를 운영하는 일본 파친코 재벌인 오카다 가즈오 회장의 친인척이 일본 극우단체인 ‘유신회’에 후원금을 냈고, 필리핀 카지노와 관련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에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정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은 만큼 국제업무지역 복합리조트 개발 협약을 해지했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인천공항 복합리조트 사업이 무산되자 영종하늘도시에 다시 외국인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 건설을 위해 LH와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외국 자본에 휘둘려
내국인 유입 우려도

여기에 미국 6위권인 PNC 은행을 보유한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이 영종하늘도시에 7조원을 투자해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를 개발하겠다고 이달초 LH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PNC가 투자하겠다고 한 곳은 일본 업체인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복합리조트를 하겠다고 한 그 땅이다.

PNC는 영종하늘도시 75만평에 동양 최초 6성급 호텔과 테마파크, 국제병원, 대학 등을 짓고 70개 대사관도 유치한다는 것이다.

한편 LH는 영종하늘도시에 일본 오카다 홀디읏 이외에 캐나다 쇼핑몰 업체인 몰오브코리아와 10만평에 대해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몰오브코리아는 이곳에 1조5000억원을 들여 세계적 쇼핑몰을 조성할 예정이다. LH는 또 영국의 웨인그로우와도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웨인그로우는 이곳 20만평에 1조원을 투자해 람보르기니 레이싱센터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인천시와 맺은 MOU(양해각서) 기간이 이날로 종료돼 이 사업은 사실상 무산될 공산이 크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도 북단의 미단시티에 리포&시저스가 추진하는 외국인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에 대한 사전 심사는 다음달 중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천경제청은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추진하는 복합리조트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단체에 대한 후원금과 필리핀 카지노 수사 등과의 연관성에 대해 오카다 가즈오 회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천경체청 관계자는 “문화부는 앞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인허가는 공모제를 통해 선정할 방침으로 알고 있고, 그 첫 번째 지역이 영종하늘도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마카오 카지노는 MGM과 샌즈, 윈 리조트 등 미국계 자본에서 친중국계 자본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PNC도 아마 이 과정에서 한국에 진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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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