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투입’ 영종도 카지노 빛과 그림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0 11: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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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 시작된 ‘인천베가스’ 잭팟 터트릴까

[일요시사=사회팀] 영종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도 내 ‘카지노 복합리조트’ 조성과 관련된 발표가 잇따르면서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카지노 조성으로 일대가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영종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천 영종도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겠다는 발표가 최근 잇따르며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레저 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외국계 자본이 주도하는 이 사업을 두고 기대와 의구심이 공존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이점을 살려 외화벌이를 하느냐. 아니면 국부 유출로 도박 공화국 폐해를 낳느냐.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국내 첫
카지노 복합리조트

영종도를 둘러싼 카지노 공습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이 일본의 파친코 게임업체인 세가사미와 합작해 국내 최대 규모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건립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다시 적합 판정을 받기 위해 외국계 합작법인 리포&시저스도 자본금을 추가 증자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해 재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파라다이스그룹 계열사인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10월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형 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오는 2017년까지 인천 영종도 국제업무단지에 1조9000억원대를 투자하게 된다.

파라다이스그룹과 손잡은 세가사미는 식품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다 파친고 사업으로 성장한 ‘사미’가 2004년 유명 게임업체 ‘세가’를 인수·합병해 세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지난 7월 파라다이스그룹의 지배 회사인 파라다이스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던 인천 카지노 사업 부문을 양수받았다.

파라다이스그룹은 이미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위치한 하얏트호텔에서 ‘골든게이트 카지노’를 운영해왔다. 때문에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신규로 카지노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카지노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파라다이스 세가사미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이외에도 쇼핑·오락·공연 공간 등 내국인들이 즐길 다양한 공간과 콘텐츠가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축구장 47개 크기인 대지 면적 10만평 규모의 파라다이스시티는 2단계에 걸쳐 개발된다. 내년 하반기 착공에 들어가 2017년 운영을 시작하는 1단계 사업에서는 카지노 시설을 물론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시설, 700실 규모의 특1급 호텔, 다목적 공연장과 쇼핑 시설 등이 들어선다. 또한 2020년까지 5성급 호텔을 추가로 설립하고 카지노 시설도 확충할 계획이다.

파라다이스세가시미 측은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운영될 예정이며 내국인을 염두에 둔 카지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카지노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보였다. 하지만 영종도에 설립될 복합리조트 고객으로 내국인이 몰릴 경우 결국 카지노도 내·외국인 모두 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냐하면 외국의 대형 카지노 업체들이 ‘오픈카지노’를 공공연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심사제를 통해 외국 자본들의 카지노 허가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의 셸턴 애덜슨 회장은 사전 심사제와 함께 내국인 출입 허용까지 요구한 바 있다. 이 그룹은 마카오와 싱가포르 등에서 대규모 카지노를 운영 중이다. 리포&시저스의 한 축인 시저스엔터테인먼트의 스티브 타이트 사장도 내국인 출입 허용 등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저스는 미국을 비롯한 7개국에서 54개의 카지노와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영종도 진출을 바라고 있다.

파라다이스 “내국인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물론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는 허가할 수 없다는 것. 사전 심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카지노 허가 심사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대상일 뿐 내국인에 대해 개방할 계획은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국계 자본이 우선 외국인 전용으로 허가를 받은 뒤 향후 대규모 투자 등을 이유로 내국인 출입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선례도 있다. 싱가포르 등 복합리조트 카지노 대부분이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종도에 복합리조트를 건립하겠다고 나선 업체들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겨냥해 카지노 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인천공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들이 주 타깃인 것. 시저스는 중국계 자본으로 아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로 알려진 리포그룹과 손을 잡았다. 영종도 진출을 추진해온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파친코 황제’로 불리는 오카다 가즈오가 운영하는 오카다홀딩스의 자회사 격이다.

대형 복합리조트 급물살…‘관광한류’주도
투자자들 움직임 활발 “정말로 실현 가능?”

이들은 연간 관광객 690만명을 유치해 4조5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전망이다. 또 개발기간 10년 동안 4만5000개의 건설 관련 일자리가 발생하고 운영 과정에서 89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천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 추진을 다시 공론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윤관석 민주당 의원(인천 남동을)은 “투자활성화와 관광 진흥을 위해서라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을 동반하는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인처 서구·강화갑)도 국정감사에서 복합리조트 추진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을 물었다.

유진룡 문화부장관은 “사업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향후 영종도 복합리조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또 “해외 자본을 많이 유치해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면서 고용을 많이 창출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당초 유 장관은 카지노 사전 심사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문화부가 투자사의 신용평가 등급 등을 사유로 부적합판정을 내린 것도 이러한 유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관계 부처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종도 카지노 리조트 사업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보 후퇴한 업체 측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보완사항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 특례 적용 기준을 ‘신용 상태’에서 ‘자금 능력과 수행 경험’으로 바꾸는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외 카지노 자본의 국내 진출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지노 허가권은 정부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전제한 후 “카지노 산업의 특성상 좀 더 장벽을 높이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의 경우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만큼 굳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국민연금 등을 활용해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합리조트 사업
땅 따먹기 전쟁

한국형 복합리조트는 ‘잭팟’을 터트릴까. ‘쪽박’에 그칠까.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는 흔히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수년전 라스베거스를 제치고 1위로 등극한 곳이 있다. 바로 마카오다. 라스베이거스의 4∼6배 규모의 매출을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카지노를 중심으로 쇼핑몰, 특급호텔, 테마파크, 국제회의장 등을 갖춘 복하비조트로 승부수를 띄운 게 유효했다. 2010년 개장한 ‘마리나베이 샌즈 리조트’와 ‘리조트 월드 센토사’는 지난해 연매출 71억 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아가 ‘카지노 격전지’로 떠로은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인 관광객 때문이다. 중국인은 지난해 전세계 관광지를 휩쓸며 모두 1000억 달러를 소비해 세계 최대 ‘큰 손’으로 부상했다. 도박을 좋아하는 편인 중국인을 겨냥해 ‘원정 도박’이 가능한 복합리조트가 앞다퉈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필리핀과 베트남, 대만에 이어 일본도 카지노 합법화 논의를 시작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은 파라다이스그룹이 영종도에 1조9000억원을 들여 2017년까지 중대형 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 시티’를 세울 계획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외국인 카지노를 중심으로 여러 편의시설을 갖추고 특히 차별화 전략으로 ‘한류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들어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이들이 영종도를 카지노 거점으로 노리는 이유는 중국과의 접근성 때문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공항과 불과 1.1k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치 외화벌이 창구?
제2강원랜드…도박공화국 전락?

이밖에도 이미 8개의 외국인 카지노가 자리 잡은 제주와 충북 등에서도 지자체별로 카지노 유치를 논의 중이다. 이렇듯 지자체들이 카지노 유치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다. 그들이 이러한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는 세계적인 인천공항과 연계한 공항복합도시로 국제적인 관광메카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위로 국내 기업의 투자의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증대함으로써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 자본축적 등 다목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형 복합리조트
과연 성공할까…

반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외국계 자본 카지노 사업으로 인해 국부 유출, 도박 공화국 폐해를 낳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아무리 포장한다한들 카지노는 ‘도박’이다. 그것도 중독성이 강해 폐해가 끊이지 않는다. 카지노는 달콤하지만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사회를 병들게 하면서 이익을 챙긴다.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사업을 확장하면 안 된다는 것.

세계적으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카지노는 거의 없다. 언젠가는 국제적인 압력에 밀려 영종도 역시 내국인에게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미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서울 3곳, 부산 2곳, 인천 1곳, 강원 평창 1곳, 대구 1곳, 제주 8곳 등 16곳이 산재해 있다. 특히 인천에는 (주)파라다이스글로벌에서 운영하는 인천카지노가 있기 때문에 영종도에 카지노를 더 세울 필요가 없다. 영종도 개발은 카지노 없이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종도 사업 한계와 과제 

카지노 열쇠 쥔 달러에 ‘질질’

영종도 복합리조트 사업의 키는 외국 자본이 쥐고 있다. 거대 자본의 융단폭격이 예상된다. 과거 1조5000억원을 들여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MDC(밀라노디자인시티)’를 조성하겠다고 했다가 2011년 무산돼 수년간 버려진 땅이 최근 카지노 설립 분위에 편승해 미·일 업체가 뛰어들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일본 파친코 제작업체인 오카가 홀딩스의 자회사인 (주)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영종하늘도시 41만평의 토지 매매 계약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영종하늘도시는 LH(70%)와 인천도시공사(30%)가 공동 개발하고 있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이곳에 5조6000억원을 들여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호텔, 테마파크 등 복합리조트 개발을 추진 중이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앞서 인천공항 북측 국제업무단지(IBC-II)에 3조50억원을 들여 외국인 카지노 설립 등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며 올초 정부에 사전 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문화부는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를 운영하는 일본 파친코 재벌인 오카다 가즈오 회장의 친인척이 일본 극우단체인 ‘유신회’에 후원금을 냈고, 필리핀 카지노와 관련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에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정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은 만큼 국제업무지역 복합리조트 개발 협약을 해지했다.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인천공항 복합리조트 사업이 무산되자 영종하늘도시에 다시 외국인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 건설을 위해 LH와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외국 자본에 휘둘려
내국인 유입 우려도

여기에 미국 6위권인 PNC 은행을 보유한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이 영종하늘도시에 7조원을 투자해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를 개발하겠다고 이달초 LH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PNC가 투자하겠다고 한 곳은 일본 업체인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복합리조트를 하겠다고 한 그 땅이다.

PNC는 영종하늘도시 75만평에 동양 최초 6성급 호텔과 테마파크, 국제병원, 대학 등을 짓고 70개 대사관도 유치한다는 것이다.

한편 LH는 영종하늘도시에 일본 오카다 홀디읏 이외에 캐나다 쇼핑몰 업체인 몰오브코리아와 10만평에 대해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몰오브코리아는 이곳에 1조5000억원을 들여 세계적 쇼핑몰을 조성할 예정이다. LH는 또 영국의 웨인그로우와도 토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웨인그로우는 이곳 20만평에 1조원을 투자해 람보르기니 레이싱센터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인천시와 맺은 MOU(양해각서) 기간이 이날로 종료돼 이 사업은 사실상 무산될 공산이 크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도 북단의 미단시티에 리포&시저스가 추진하는 외국인 카지노 등 복합리조트에 대한 사전 심사는 다음달 중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천경제청은 유니버셜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추진하는 복합리조트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단체에 대한 후원금과 필리핀 카지노 수사 등과의 연관성에 대해 오카다 가즈오 회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천경체청 관계자는 “문화부는 앞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인허가는 공모제를 통해 선정할 방침으로 알고 있고, 그 첫 번째 지역이 영종하늘도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마카오 카지노는 MGM과 샌즈, 윈 리조트 등 미국계 자본에서 친중국계 자본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PNC도 아마 이 과정에서 한국에 진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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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