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발등 찍은' 악재들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1.19 10: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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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풍랑 만난 여선장…그대로 침몰?

[일요시사=경제1팀] 해운업계의 여선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유동성 압박에 못 이겨 껄끄러운 시아주버니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데 이어, 자신이 임명했던 가신마저 경질하게 됐다.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 타계 이후 한진해운 경영을 시작한 이래 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다. 완벽한 독립의 꿈은 접어야할 위기에 놓였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겹겹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 회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인 고 조수호 회장의 부인으로, 지난 2006년 남편이 암으로 작고한 이후 전업주부에서 회장으로 변신했다. 한진해운은 공정거래법상 한진그룹에 속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최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며 사실상 독립경영을 해왔다.

빚만 어마어마
흔들리는 해운

그동안 최 회장이 이끄는 한진해운은 해운업 불황 탓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간 최악의 상황을 지냈다. 재무 상황도 급격히 악화돼 지난 6월말 기준 부채비율은 775.34%에 달했다.

자본금 규모는 1조2911억원 수준이지만 부채 규모는 10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말엔 자본 1조3139억원에 부채 9조1602억원으로 697.18%을 보인 바 있다. 6개월 만에 부채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한진해운과 한진홀딩스 분할 첫해인 지난 2009년 말엔 자본 1조9011억원, 부채 6조71억원으로 부채비율 315.98%에 불과했다.


최 회장이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실적 부진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637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1년엔 823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올 들어 2분기까지 115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도 영업적자 상태다.

영업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갚아야 할 돈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연내 갚아야 하는 기업어음(CP) 상환 액수만 약 2200억원. 지난 6월에 한진해운 신항만 지분 매각 등으로 1233억원을 확보했지만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해소할 순 없었다.

연말까지 CP 2000억·내년엔 3900억 갚아야
한진해운 지분 담보잡고…1500억원 긴급수혈

최 회장이 영구채 발행을 위해 우리은행장과 하나은행장 등을 직접 만나 지급보증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은행들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황이 부진한데다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내년 3월 1800억원, 4월과 9월에 각각 600억원, 1500억원씩 총 39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와 CP 만기가 돌아온다.

결국 돌파구를 찾지 못한 최 회장은 한진그룹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한진해운의 한 간부는 “최 회장이 조양호 회장에게 직접 SOS를 쳤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당초 조 회장에게 2500억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임시이사회에서 1500억원만 지원하기로 결의했다는 후문이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 1920만주를 담보로 했다.

조 회장이 어떤 이유로 지원을 결정했는지는 의문이다. 재계 일각에선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이 불편한 관계에 놓인 한진해운을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반신반의해왔다. 최 회장이 그간 한진그룹으로부터의 독립의지를 수차례 내비쳤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사실상 독립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 회장측이 한진해운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보유해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로 분류된다. 현재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중 최 회장 우호 지분은 50.67%, 조 회장 측 지분은 27.45%다.



완벽한 독립을 꿈꾸던 최 회장은 2008년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한진해운의 계열분리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남편인 고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 최 회장에게 한진해운의 독립적인 경영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한진가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수년째 계열분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대한항공 주식 4만3355주를 매각하고 최 회장의 두 딸 조유경·유홍씨도 각각 대한항공 주식 1만8320주, 1만9160주를 처분했다. 지난해에는 정석기업 주식 4만4180주를 정리하는 등 계열분리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특히 최 회장은 2009년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가 설립될 당시 조 회장에게 사업회사인 한진해운의 지분을 택하라고 요구하면서 직접적인 갈등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 조 회장은 최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숙에게 ‘SOS’
자금 긴급수혈

재계는 이번 자금 지원으로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 회장 입장에서 대한항공의 자금 지원은 피하고 싶은 카드였을 것이다. 계열분리를 준비해온 최 회장으로선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만약 한진해운이 빌려간 15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하면 대한항공은 한진해운홀딩스보다 지분 5%가 부족한 한진해운의 ‘2대주주’로 올라선다. 한진해운이 대한항공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급한 불은 껐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 1500억원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알린 셈이 됐다”며 “사실상 최 회장의 계열분리 꿈은 물거품이 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독립경영은 인정했지만 계열분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연매출 10조원 규모의 한진해운이 그룹에서 떨어져나가면 한진그룹의 재계 서열은 떨어질 뿐 아니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한진택배(땅)-한진해운(바다)-대한항공(하늘)’으로 이어지는 물류 체계도 무너진다.

고 조중훈 회장이 일군 한진해운을 롯데가 출신인 최 회장(최 회장 어머니는 신격호 롯데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 씨)에게 넘길 수 없지 않느냐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측근의 퇴진…독립 경영 ‘항로 이탈’ 예고
조양호 회장, 자금대여로 해운 지배력 커질듯

이번에 지분 담보를 갖게 된 만큼 한진해운홀딩스에 대한 대한항공의 영향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계열분리를 기대했던 최 회장의 꿈도 멀어졌다. 


여기에 최근에는 최 회장 최측근인 김영민 사장이 사임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형식은 경영실적 악화 및 채권 발행 지연 등에 대한 책임을 진 자진사의이지만, 내용적으론 경질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김 사장은 미국 노스이스턴대 MBA를 졸업한 후 20여년간 씨티은행에서 근무한 ‘금융통’이다. 2001년 한진해운에 영입돼 관리본부장과 총괄부사장으로 거쳤으며, 2009년 최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해운시황 악화 속에서 부채비율이 800%를 넘어서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4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도 진척이 없자, 결국 퇴진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김 사장의 사의를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사장은 최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김 사장과 같은 씨티은행 출신인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 등과 함께 최 회장의 핵심 인맥으로 통했다. 최 회장 입장에선 자신을 믿고 따르는 가신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이들은 최 회장이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마지막 남은 김 사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은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이번 유동성 위기로 최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해운업황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한진해운의 흑자 전환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향후 지배력은 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업황회복이 2015년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땅-바다-하늘
무너진 독립경영


재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내년에 당장 적자폭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단기간에 업황이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번에 지원 받기로 한 1500억원도 1분기 정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주회사의 설립목적이 ‘자회사 지배’인 점을 감안하면 한진칼이 한진해운홀딩스에 대한 ‘경영 간섭’에 나설 수 있다”며 “이번에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완전한 분가’를 꿈꿨던 최 회장으로선, 독립은커녕 오히려 독립과 멀어져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진해운을 쥐는 열쇠는 점점 더 한진그룹 쪽이 쥐는 형국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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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