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은밀한 성 이야기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04 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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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꽃할매 “늙어도 하고 싶다”

[일요시사=사회팀] 전체 인구 중 노인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소수집단이었던 노인들이 다수집단으로 옮겨가며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이를 잊은 ‘젊은 노인’들의 아름다운 성을 들여다봤다.




지금 노인은 예전의 노인과 다르다. 요즘 노인들은 노년의 삶을 단순한 수명 연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사랑과 성생활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비아그라 등 약물에 의지하는 경우는 이제 흔한 모습이다.

노인의 성
‘봉인해제’

노인들의 세상이 업그레이드 됐다. 세파에 주름을 속일 수는 없을지언정 마음만은 청춘인 꽃할배, 꽃할매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된 뒤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처럼 청춘 못지않은 할배, 할매들의 <섹스앤더시티>가 현실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규칙적 성생활은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노인 남성은 고환과 음경의 위축이 방지돼 전립선 질환이 예방된다고 한다. 노인 여성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노화도 방지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며 심폐기능까지 좋아지고 면역기능도 상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65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6%. 노인 3명 중 2명 이상이 지속적인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꽃할배, 할매들의 섹스라이프는 대략 10여 년전 까지만 해도 당사자나 주변에서 숨기고 싶었던 부분이다. 당시 노인의 성문제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탑골공원이나 호수공원(일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한 일명 ‘박카스 아줌마’였다. 이는 노인의 성을 비로소 사회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노인의 성 관련 범죄와 성병 증가와 같은 문제, 그리고 건강한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게 됐다.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유혹하는 박카스 아줌마 부대는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들의 로맨스는 훨씬 더 다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사랑이 꽃피는 장소는 ‘사회복지관’이다. 갈 곳이 없어 노인정, 복덕방 혹은 기원 그도 아니면 공원 같은 장소를 배회해야 했던 노인들은 이제는 갈 곳이 너무 많아 고민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노인 아닌 노인들이 증가했다. 할배·할매라고 불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 꽃노년들의 문화 활동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연애사업도 진행된다. 그 시작은 지역 사회복지관이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여유롭고 팔팔한 노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복지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복지관으로 모이면서 노인 집단도 자연스럽게 서열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해진다. 노인들도 서로 외모와 능력을 따지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늘 실세가 있어 실세 눈 밖에 나면 복지관에서 팽 당하기 일쑤다.

사회복지관 클래스의 선택권은 거의 꽃할매들의 전권이다. 잘 생기고 유머러스한 할배들은 환영을 받지만 조건이 부실한 할배들은 집단 중심에서 소외된다. 즉 꽃할매들의 눈 밖에 나도 복지관에서 제대로 기를 펼 수 없다. 진정한 실세는 이 꽃할매들인 것이다.

노인들이 사회복지관에 모이는 이유는 우리 사회 어느 곳보다 동년배가 많고, 노년층 맞춤형 프로그램과 의료시설과 문화시설, 건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지역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거동할 힘만 있으면 무리해서라도 사회복지관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복지 혜택인 대중교통 무임승차는 노인들에게 또 다른 축복이다. 아침시간 지하철 1호선은 노인들 천지다. 천안, 춘천 등 노인들은 어디든 가고 본다. 이제는 미리 지역정보를 알아내 축제마당 나들이를 즐기는 게 요즘 노인들의 추세다.


이러한 장거리 축제 나들이는 대부분 짝을 지어 간다.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회복지관 의무실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따르면 복지관 내 의무실에 유별난 처방전을 받으러 오는 노인들이 있다고 한다. 바로 발기부전촉진제다. 본래 심장질환 혈관 치료제로 개발된 약의 용도에 맞게 병명을 그럴듯하게 대고는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

65세 이상 3명 중 2명 성생활
10명 중 3명 이성친구와 성관계
파트너 없으면 성매매로 욕구 해소

할배들은 처방받은 비아그라를 얻은 뒤, 전철을 타고 멀리 떠나 현지에 조달한다고 한다. 일명 ‘비아그라 셔틀’이다. 이렇게 비아그라를 얻은 할배들은 사회복지관에 출석해 비아그라를 자랑삼아 과시한다. 놀라운 건 90대 노인도 비아그라를 애타게 찾는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90대 노인들도 은밀하게 성생활을 즐긴다. 마음에 드는 노인끼리 여관에 들어가 원나잇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한 노인주거복지시설(실버타운) 관계자를 통해 들은 말이다. 봄볕이 따뜻한 어느 날, 50대 여성인 원장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외출하는 81세 남자 어르신께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몇 마디를 덧붙였다. “좋은 데서 맛있는 것 잡수시고 오세요. 여자분이 싫다는데 억지로 여관 같은 데 가진 마시고요.”

노인은 말없이 웃는 얼굴로 외출했다. 그런데 한 달쯤 후 그 노인은 원장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를 남자로 인정해 준 것만으로도 한동안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행복했다”고.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여든 살 A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A씨는 교회에서 알게 된 78세의 할머니와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 하루는 둘째 아들이 정색을 하곤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비아그라가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요즘 가짜 비아그라가 많아서 잘못 쓰면 큰일 난대요. 그리고 할머니와 관계를 할 때는 꼭 할머니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셔야 해요.”

A씨는 둘째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눈물이 핑 돈다고 했다. 큰아들 부부가 매사에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건 너무 가소로웠는데 둘째 아들이 해주는 성교육은 고맙기도 하고 비아그라처럼 힘이 나게 한다고도 말했다.

90대 노인도
비아그라 찾는다

노인의 성생활 실태에 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62.8%의 남성노인과 24.8%의 여성노인이 현재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성욕구 대처행동은 통제적 유형이 표현적 유형보다 우세했으며, 성행동 예측 요인으로 연령과 배우자 유무, 성지식과 성태도, 교육수준, 스트레스 수준 등이 확인됐다. 30.8%의 노인은 성생활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강문제와 배우자의 부재가 노인의 성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6∼71세 노인 가운데 성욕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60세 이상 여성의 과반수가 성생활을 계속한다고 대답했다.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서는 노인 10명 가운데 3명이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파트너가 없는 남성 노인 가운데 상당수는 매춘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그런데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가 노인들의 성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어난 것이다. 종로3가역 근처 한 비뇨기과 원장은 “성병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종묘광장공원 일대 좌판에서나 박카스 아줌마들이 파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잘못 먹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신체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원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경찰과 종로구는 2000년대 초 대대적인 박카스 아줌마 단속에 나섰지만,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 행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종묘광장관리사무소의 불법 성매매 적발 건수도 2009년 34건, 2010년 54건, 2011년 132건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나이도 많은 박카스 아줌마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 힘들어 단속에 쫓기면서도 끊임없이 공원에 나온다”며 “단속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도시 뿐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가짜 비아그라가 농촌 재래시장에까지 밀고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약물에 의지해서라도…제2의 인생 즐겨
복지관 돌며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 받아

비아그라는 제품 자체가 진품이라 해도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도 먹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제품의 진의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들고 다니며 농촌 재래시장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자들이 있다. 농촌은 할배·할매들이 가장 많이 사는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할배들은 호기심에 이런 약을 사서 무작정 먹었다가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한다.

비아그라는 진품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물건의 진품 여부도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 속에 어떤 나쁜 화학적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속아서 구입해 먹었다가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비아그라가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니다. 20세기 말에 태어난 비아그라는 성기능 질환 치료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약으로 평가된다. 부끄러운 일로만 여겨지던 성기능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심장 질환 예방에도 기여했다.

짝퉁 제품에
숨넘어갈 수도

노년이 외로운 까닭은 삶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죽음을 친구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자가 떠나고 친구가 떠날 때마다 느끼는 외로움. 몸은 아직도 건강해 일도 하고 이성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노망이라 여겨질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건다.

그러나 언젠가 서울의 번화가는 노인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지금 그곳을 메우는 젊은이들이 노년기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진한 애정 표현을 나누던 한창 때처럼 길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노인 커플을 어렵지 않게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성적 욕구와 탈선의 주체에서 노인은 빠져 있다. 어쩌면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공원이나 산 주변에는 성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공원 등을 찾는 노인들에게 한 달에 1번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한 결과 주 치료 질병은 만성 퇴행성 질환과 소모성 질환 그리고 배뇨통 등 요도염 증상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것.

그 결과 주로 성적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임균성 및 비임균성 요도염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검사자의 10% 이상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매독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보였다.

일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80대 후반의 남성 노인의 34%가 불규칙하지만 아직도 성생활을 시도하고 있으며 70대 후반 중 55%, 60대 전반 65%, 60대 후반 남성 노인의 79%가 지속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성은 70대 이상의 36%가, 60대 후반은 44%, 60대 전반은 61%가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여러 연구가 있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성생활 빈도는 감소하지만 성생활은 여전히 삶의 한 부분이며 30∼70% 정도의 노인이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노년기 성생활의 필요성을 “노인도 성적 욕구가 있고 신체적으로도 성생활이 가능하므로 사회가 그에 대한 지원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노인의 ‘성적 기능’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화’라는 생체변화에 의해 억압되고 무시당하는 ‘권리’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이 크다. 쉽게 말해 생물학적인 성과 성 능력만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성적 권리와 인격으로서의 성은 관심을 벗어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성생활 통해
존재감 확인

이런 의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경제력이다. 노인의 성 역시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건강하고 경제력 있는 노인은 그래도 배우자나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가난한 노인들은 성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런 현상은 성별에 관계없이 나타나지만 남성 노인의 경제력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금욕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성을 가까이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성을 권리와 인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인들은 성생활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성은 신체를 통한 자기 표현방법이며 사람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은 단순한 성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교류, 교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노년기의 성생활은 삶의 질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아그라 순기능
잘만 쓰면 축복의 약

비아그라는 산악인이나 나이든 골퍼나 등산가에게는 필수약품이다. 히말라야 같은 고산 등반 시에 생기는 고산병(산소결핍 폐울혈)을 예방하고 완화시켜 주는 명약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보통 사람도 5000m 급의 히말라야에 부부동반으로 많이들 별 탈 없이 다녀온다. 한국처럼 겨울이 있고 높은 산이 많으며 나이든 등산가나 골퍼가 많은 나라에는 겨울나들이, 등산, 골프 시에 소량의 비아그라는 심장이나 뇌혈관 사고방지에 도움이 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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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