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이석채 사면초가 ‘속사정’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0.28 13: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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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가면 욕먹고 마냥 버티면 털린다

[일요시사=경제1팀] KT ‘이석채호’가 흔들리고 있다. 사정 당국의 칼날이 이석채 KT 회장을 정조준하면서 3만5000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거대기업 KT가 ‘멘붕’에 빠진 것. 상황은 5년 전 10월과 완벽할 정도로 판박이다. 이대로라면 이 회장은 불명예 퇴진한 남중수 전 KT 사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모양새다.





새 정권 들어 꾸준히 제기된 ‘퇴진론’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온 이석채 KT 회장이 진퇴양난 위기에 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2일 오전 KT 본사와 관련자 주거지 등 16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지난 2월과 이달 10일 두 차례에 걸쳐 참여연대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 회장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올 것이 왔다”
사정칼날 정조준

검찰 측은 “조사부에 배당된 이석채 회장 고발사건 2건과 관련해 자료제출이 잘 이뤄지지 않아 압수수색을 결정했다”며 “KT 본사와 관련자 주거지 등 16곳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이 회장의 배임혐의가 배경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수장이 교체됐던 전례에 비춰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에도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대표적인 ‘MB맨’으로 분류되는 이 회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줄곧 퇴진론에 시달렸던 인물. 그때마다 정면 돌파 전략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지난 3월 퇴진론이 처음 제기됐을 때,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각종 의혹 제기와 외압설을 반박했는가 하면, 8월 말 청와대 퇴진 종용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적극 해명했다.

이후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던 청와대와 이 회장의 퇴진론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등 주요 정치현안이 등장하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 회장은 다시 코너에 몰렸다. 특히 검찰이 추가 고발 뒤 2주일도 안 돼 이 회장의 자택 압수수색까지 한 점을 감안할 때 사정당국은 이미 이 회장 개인비리 등 소환수사에 대한 구체적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미 청와대 측이 이 회장의 자진퇴진에 대한 시그널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임기를 채우겠다며 버틴 데 대한 ‘이석채 밀어내기’ 절차”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검찰에서 혐의점이 밝혀질 경우 이 회장의 중도 퇴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CEO 리스크
불똥 어디로?

검찰 수사 방향은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경영상 배임 혐의 쪽이다. 참여연대 측이 제기한 배임 혐의는 KT 사옥을 시세보다 싸게 매각해 손해를 입혔다는 것과 스마트애드몰, OIC 랭귀지 등의 사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측의 주장대로라면 이 회장의 배임금액은 최대 1000억원대 규모에 이른다.

검찰은 우선 KT가 서울 지하철 5∼8호선 역사에 광고영상을 내보내는 스마트애드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예상됨에도 투자를 감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참여연대의 고발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배임 혐의로 압수수색…본격 수사
사옥 헐값매각 등 회사에 1000억대 손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고발장에서 “KT가 수백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도 이 회장 지시에 따라 사업을 강행하고, 당초 5억원만 투자한 특수목적법인에 60억원을 재투자하면서까지 계열사로 편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은 KT가 콘텐츠 사업 회사 ㈜오아이씨랭귀지비주얼(현 ㈜KT OIC)을 설립해 참여하고 이 회사를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친인척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에게 수 억원의 이득을 줬다는 의혹도 주시하고 있다.

당시 이 내용을 보도한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유 전 장관은 설립 초 가격보다 2배 높은 가격으로 회사 지분을 넘기면서 8억원 가량 차익을 얻었고, KT는 57억원을 해당 회사 증자에 투자한데 이어 이듬에 1월 계열사로 편입하기에 이른다.

참여연대는 “결과적으로 이 회장의 친척 유 전 장관의 주식 매매 이익과 계열사 사장 자리가 맞교환 된 셈”이라며 “이 회장이 57억 원을 해당회사 증자에 투자하게 한 것은 명백한 배임행위”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KT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총 39곳의 소유 부동산을 감정가의 75%의 금액만 받고 팔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참여연대의 추가 고발도 함께 수사할 방침이다.

두 번째는 이석채 회장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 여부다. 이번 수사가 사실상 이 회장 ‘뽑아내기’ 수준의 압박카드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개인비리 쪽으로도 상당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은 특히 구매 파트의 경우 이석채 회장 라인이 대거 포진해 있는 점, 크고 작은 신규 투자 시 이석채 회장 친인척이 연루돼 있는 점 등에 상당한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필귀정
5년 전 데자뷰?

통신업계는 이번 검찰 조사가 KT 경영구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주인 없는 회사’로 분류되는 KT는 지난 2002년 공기업에서 민간 기업으로 전환했지만,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CEO 자리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KT의 5년 전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08년 10월 16일 검찰은 KT본사와 당시 남중수 KT 사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검찰은 ‘KT-KTF 납품비리’ 수사를 목적으로 한 조사였다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결국 남 전 사장을 소환조사한 뒤 구속했다.

이 수사를 두고 ‘찍어내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이던 당시에는 이른바 ‘좌파 인사 적출’이라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전임 정부의 인사들을 밀어내는 겁박이 횡행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 전 사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20일 만인 11월5일 KT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밀어내기’청와대 압박카드?
사퇴 시그널…퇴진론 재부상


남 전 사장이 밀려나고 들어선 이가 이 회장이다. 애초, 유력했던 것은 윤창번 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었지만, 윤 수석이 당시 김신배 SK텔레콤 사장과 처남-매부 사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임명이 보류되는 진통 끝에 이 회장은 2009년 1월 KT 사장으로 취임했고, 이후 두 달 뒤 회장으로 영전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8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 전임 사장의 전철을 밟는 기로에 섰다.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이 회장의 공식 임기는 2015년 3월까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이 회장의 배임 증거가 나오거나 비리에 대한 정황이 포착된다면 대표이사 교체가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회장의 취임 자체가 정치적 발탁이었기 때문에 지금 벌어진 상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어,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CEO 리스크가 재발하면서 KT도 위기로 내몰렸다. 국내에서는 이동통신 3사 경쟁 속에서 대규모 이동통신 가입자 이탈을 헤쳐 나갈 동력을 잃었고, 당장 해외 시장 진출에 타격을 입게 됐다.

직격탄 맞은 KT
후임자 소문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T 실적도 비상에 걸렸다. 가입자 이탈, 자회사의 실적 둔화 등으로 KT의 3분기 영업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41% 줄어든 3534억 원에 그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후임 CEO에 대한 소문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오보로 일단락됐지만, “이 회장을 대상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청와대가 미국에 거주하는 김종훈 전 미래부 장관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KT CEO를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외에도 이기태, 윤종용, 황창규, 홍원표 등 삼성 출신 경영인들의 이름부터 전직 정보통신부 장·차관, 전직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까지 말만 무성한 상황이다.

정권교체만 하면…남중수와 닮은꼴

KT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CEO를 이렇게 좌지우지할 거면 처음부터 민영화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수장이 교체되고 이것이 CEO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KT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장 추천위원회가 똑바로 운영되지 않고 또 외부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불행한 일은 반복될 것”이라며 “KT의 독립 경영을 위한 사장 추천위원회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어찌됐건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요란한 압수수색까지 한 터라 이 회장의 혐의를 가리기 위한 검찰의 각오는 대단한 듯 보인다. 이미 흔들린 KT의 위상과 ‘CEO리스크’로 인한 KT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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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