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좌지우지’ 동양 막후 실세들 대해부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11:39:23
  • 댓글 0개

사공 많아 배가 산으로 갔다

[일요시사=경제1팀] 대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물들이 있다. 이른바 숨은 막후 실세들. SK그룹의 김원홍이 그랬듯 이번에 무너진 동양그룹 역시 그룹을 좌지우지했다는 핵심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동양사태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꼴’이라는 분석이다. 그 폐해는 그룹이 해체 위기에 몰리면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5만 여명의 금융소비자에 대해 2조원의 피해를 일으킨 동양 사태. 그룹이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이 숨은 실세들의 부상으로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사건의 초점은 한때 재계순위 5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이 왜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는지, 동양 사태를 야기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그룹 쥐고 흔든
이혜경 부회장

우선적으로 ‘동양 사태’는 사위 경영의 한계와 한때 재계에서 ‘내조의 여왕’으로 통했던 이혜경 부회장의 ‘오판’이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장녀이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그는 동생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달리 30여년간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자녀들의 교육과 가정살림에만 전념했다. 대신 검사 출신에 스마트했던 현 회장이 1983년 동양시멘트 대표로 부임한 후 줄곧 그룹 경영의 전반을 담당했다.

순탄하던 이들의 관계는 지분관계가 뒤바뀌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90년대까지는 현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지주회사인 ㈜동양의 지분율은 이 부회장과 창업주의 부인인 이남희 서남재단 이사장이 더 높았다.


사위 경영인 역할만 해오던 현 회장이 2000년대 들어 금융 계열사를 인수하기 시작했고, 이 부회장을 제치고 1대 주주에 올라서면서부터 내부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다.

현 회장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동양그룹 내부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더 이상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이 부회장은 2008년 경영일선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화여대에서 생활 미술학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 ‘디자인 경영’을 선언, 최고디자인경영자(CDO)로 나섰다. 그룹 내 디자인 업무를 시작으로 계열사의 디자인 관련 업무 역시 모두 이 부회장의 손을 거쳐나갔다.

이 부회장은 특히 2008년 건립된 강원 삼척시 파인밸리, 안성시 웨스트파인 골프장 등의 클럽하우스와 2009년 동양종합금융증권 골드센터 디자인을 직접 도안하는 등 디자인 경영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엔 ‘내가 아버지의 회사를 구해야 한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동양그룹 내에서는 이 부회장의 비선 조직까지 생겨났다. 동양그룹 내 숨은 실세로 지목된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도 이때 등장하게 된다.

동양 접수한
‘김철 라인’

1975년생으로 올해 39세에 불과한 김 대표는 2008년 이 부회장과 인연을 맺고, 동양그룹 기획실 산하 유통 부문 본부장(임원)급으로 영입되면서 영향력을 점차 확대했다.


그의 이력이나 경력에 대해선 그룹 내부에서도 거의 알려진 게 없다. 경상남도 출신으로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중퇴한 뒤 인테리어와 유통업 등에 종사하다 새롬기술의 후신인 솔본의 자회사 솔본미디어 대표를 지낸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동양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 부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골프장과 증권 지점 디자인 과정에서 조언자 역할을 하며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이 부회장의 후광과 비호를 통해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그룹 전반의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설립된 MRO(소모성자재공급업체) 회사 미러스 대표를 시작으로 2011년 동양시스템즈와 합병한 동양네트웍스 출범과 함께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실세로 급부상 했다.

그룹 내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한 김 대표는 곧바로 인사권을 장악해 나갔다. 지난해 부터 소위 ‘김철 라인’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핵심 계열사 대표로 앉히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상화 동양시멘트 대표와 김정득 전 ㈜동양 건재부문 대표이사가 꼽힌다.

부인 이혜경 절대적 영향력 행사…인사도 장악
김철·이상화·김정득·오세경 두고 세력 확장

이 대표는 김 대표가 MRO 계열사인 미러스 대표로 있을 때 사업총괄본부장으로 일했다. 이 인연으로 지난 해 3월 동양시멘트 상무보(영업본부장)에 오른 지 불과 7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동양시멘트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등 초고속 승진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또 다른 인물인 김 전 대표는 강릉고를 졸업하고 경남기업 이사와 금진생명과학 대표를 역임했다. 그는 김 대표가 세운 미러스에 2011년 2월 금진생명과학 주식 42만주(70%)와 경영권을 54억8500만원에 넘겼다.

이 거래를 계기로 김 대표와 가까워졌고 동양그룹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동양 건설부문 겸 동양시멘트이엔씨 대표까지 오르며 그룹 내 실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2월 동양생명과학 잔여 보유지분을 동양네트웍스에 매각한 뒤 돌연 회사를 떠났다. 동양그룹 내에선 소위 ‘김철 라인’ 내의 다툼에서 밀려 갑작스레 사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MB라인 출신
‘숨은 실세’

‘이 부회장-김 대표’가 주축인 비선 라인으로 분류되는 또 다른 핵심 인사는 감사권을 행사했던 오세경 전무다. 오 전무는 동양 네트웍스 법정관리 사태가 불거진 직후 김 대표가 있는 동양네트웍스로 소속을 옮겼다.

업계에 따르면 동양그룹은 오 전무가 지난해 입사한 시기를 기점으로 기존 법무조직을 법무와 감사를 통합해 담당하는 클린경영팀으로 재편했다. 클린경영팀은 오 전무가 담당했으며 여타 그룹사의 일반적인 법무조직과 달리 그룹 계열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감찰할 수 있는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무는 본래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연루됐던 BBK 사건 때 이 전 대통령을 돕는 등 측근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오 전무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왔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청계천 개발 비리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자 이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서울시 특명감사반’에 오 전무가 합류하면서 부터다.

오 전무는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 BBK, 다스 비리 의혹 등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법무행정분과위 전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MB 라인으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 동래구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낙선하면서 공직에서 멀어졌다.

오 전무는 동양 건재부문 대표였던 김 전 대표와 개인적인 연을 바탕으로 동양에 입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 전무가 ‘김철-이상화-김정득’ 등과 함께 김철 라인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 전무는 또 ㈜동양과 동양인터내셔널ㆍ동양레저 외에 동양시멘트ㆍ동양네트웍스 등 그룹 법정관리 현황을 마지막까지 알고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사외이사·감사
산은출신 포진


오 전무 외에도 동양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와 감사, 비상근 상무이사 등이 동양 사태의 숨은 실세로 꼽힌다. 그 자리에 정계와 재계, 법조계 유력 인사가 대거 포진해 그룹 부실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공시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주식회사 동양과 동양시멘트, 동양증권 등 동양그룹 계열사 9곳에서 41명의 정권 측근 인사와 금융당국 관계자, 법조계 출신 인사가 발견됐다.

최연희 전 한나라당 의원이 동양파워 대표이사를 지냈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역임한 조동성씨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동양증권의 사외이사였다. 홍두표 동양시멘트 고문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선대위 직능총괄본부 협력단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홍기택 현 KDB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동양증권의 사외이사를 지냈고,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은 동양시멘트의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차관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한부환 변호사가 (주)동양의 감사위원으로 등재됐다.

“비선라인이 주도하다 피해 키웠다”
로비용? 보험용? 외부 방패세력도

강 의원은 “2011년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이 동양증권을 검사했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동양증권의 투자자 소송 가능성 등을 보고서에 포함했으나 금감원 최종보고서에는 관심촉구 수준으로 완화됐다”며 “당시 동양증권 상근감사가 금감원 출신권정국 감사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듯 영입된 인사들이 동양그룹의 거수기로 전락하거나 로비의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들의 화려한 이력이 동양그룹 사태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56년 역사의 동양그룹 몰락 원인을 놓고 아직 설왕설래가 여전하지만 동양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가 숨은 실세들에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로 보인다. 특수 관계로 묶여 있는 이들이 대기업 오너의 경영판단에 대한 문제제기, 경영실패에 대한 감시·감독·견제 등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사외이사들은 동양그룹의 계열사 간 자금거래의 핵심고리였던 동양 파이낸셜 대부를 동양증권 100% 자회사로 두는 결정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동양사태’를 불러 온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 회장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 역시 그룹 붕괴의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라며 “(이 부회장의 추천으로 동양에 들어온) 김 대표를 시작으로 그 라인 인물들이 줄줄이 주목받는 이유도 사실상 이 부회장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내편들로 채워진 사외이사들 역시 지금의 동양 사태와 무관하다 볼 수 없다”며 “또 다른 동양을 막기 위한 여러 대비책 중 하나로 유명무실해진 사외이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세 의혹’김철이 지목한 실세는?
“보이지 않는 손 따로 있다”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동양그룹 숨은 실세설’에 대해 해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 15일 동양네트웍스 홈페이지를 안내문을 통해 “오해는 갈수록 증폭되고 의혹으로 번지고 있어 저는 어떠한 발언도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했다”며 “오늘은 사기꾼이 되고 있다. 미러스를 창업하고 부터 지금까지 함께 달려온 임직원들보기가 너무 부끄러워 의문에 관해 상세히 해명드리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우선 자신의 동양그룹 입사 과정과 그룹의 실세설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동양그룹에 오게 된 계기는 이혜경 부회장이 디자인경영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안을 원해 실무와 이론이 적절히 융합돼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전문가 추천을 받았다”며 “이는 일종의 컨설팅 의뢰로 당시에는 유학준비로 인해 입사를 거부했지만 수 개월 후 자연스럽게 회사에 조인했으며 대표를 맡은 건 2010년 스스로 미러스를 설립하면서부터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미 그룹은 재무구조가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었으며 그룹 전, 현직 기득 세력의 압력과 반대를 무릅쓰고 강남구청에 가서 자본금 1억원의 법인을 설립하며 스스로 대표이사가 됐고 초고속 승진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승진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 “내가 대표로 있는 동양네트웍스의 주식조차 한 주 갖지 못했다”며 “비자금에 관해서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 또 이번 동양그룹의 CP 문제를 주도한 것은 자신이 아닌 ‘제3의 실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CP발행의 당사자인 동양레저, 동양인터네셔날, 동양의 대표들은 그 분들이 취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회사가 수천억의 CP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실제로 CP를 발행하는 업무는 해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P를 판매한 직원들 역시 회사의 고수익상품을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판매했을 것”이라며 “이모든 정책을 만들고 운영한 분들이 아마 보이지 않는 손이거나 구조조정의 실세들일 것”이라며 지적했다.

김 대표는 끝으로 “동양네트웍스 임직원들은 현재까지 단한명의 이탈도 없이 숨 죽인채 협력업체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가며 버티고 있다”며 “참 직원들보기 부끄럽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법정관리인 선임여부와 상관없이 당분간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며 “나로 인해 불편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과 투자자, 협력사 그리고 동양네트웍스 임직원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