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쉽게 돈버는 ‘꿀알바’ 열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1 11: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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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보다 낫다…상상초월 ‘베짱이 돈벌이’

[일요시사=사회팀] 월급 받는 거지, 일명 ‘민속촌 거지 알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편하게 누워 쉬면서 관광객들에게 팁까지 받는 거지 공채에 엄청난 지원자가 몰렸다. 덩달아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각양각색의 ‘꿀알바’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민속촌은 지난 10일 ‘개꿀알바 소개’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민속촌 페이스북 관리자는 “매년 날이 좋을 때마다 민속촌에서는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한번 하면 짜르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 마약 같은 알바가 있다. 바로 거지알바”라고 설명했다.

민속촌 ‘거지모집’
알바 지원자 폭주

민속촌 측이 밝힌 거지 알바생의 대우는 다른 알바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반면 근무 방식은 ‘거지 맘대로’다. 거지 알바의 최대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졸리면 땅바닥에 누워서 자고, 배고프면 관광객에게 접근해 구걸하고, 날이 더우면 그늘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말 그대로 ‘거지’다.

거지로 구걸해서 생긴 수익은 전액 알바생의 몫이다. 일종의 ‘팁’인 셈이다. 손님과 싸워도 ‘거지 콘셉트’로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민속촌 페이스북 관리자는 “심지어 한 거지 알바는 자기 앞에 바가지를 놓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보니 바가지에 세계 각국의 화폐와 먹다 남은 꼬치, 과자, 음료수가 가득했다”면서 “지금은 네 번째 거지가 채용된 상태다. 민속촌 거지를 보더라도 근무자일 뿐이니 놀라지 말라. 돈 안 줘도 사진 찍어주니 부담 갖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이와 함께 올라온 사진 속에는 각각 네 가지 유형의 거지들이 민속촌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창한 외국어와 적극성으로 2012년 구걸왕으로 등극한 ‘글로벌 거지’, 항상 허리가 아프다며 구걸은 안하고 하루 종일 비스듬히 누워 있는 ‘구걸 안하는 거지’, 돈이든 먹는 거든 쓰레기든 가리지 않고 다 구걸해내며 회식비까지 벌어오는 ‘상거지’, 그냥 앉아만 있어 아직 뭐하는 거지인 줄 모르는 거지 1주차 ‘뭐하는 거지’ 등 설명이 달려 있었다.

이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거지 알바’ 채용과 관련해 민속촌에 문의메일을 보냈다. 이에 지난 11일, 민속촌 페이스북에는 또 다른 글이 게시됐다.

이 글을 통해 민속촌 측은 “거지 알바 포스팅 이후 민속촌 유선전화, 메시지창, 쪽지함 등으로 ‘거지가 되고 싶다’는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면서 “일단 올해 거지 채용은 끝났으니 내년을 기약해달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거지 5기를 공채로 모집한다.

아울러 “거지만 뽑는 게 아니라 기생, 광대, 무사, 노비, 사또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으니 ‘2014년 웰컴투조선’이나 ‘제3회 사극드라마축제’ 행사 알바 공고가 나면 지원해달라”고 덧붙였다.

알바를 넘어…
하나의 일터로

거지알바 외에도 다양한 꿀알바가 존재한다. 알바를 넘어 하나의 ‘일터’로 자리 잡은 경우도 있다.

국내의 1인 미디어 시대를 선두하고 있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의 주 콘텐츠는 게임방송이다. 무료로 시청할 수 있지만 해당방송BJ(broadcasting jockey)가 마음에 들면 ‘별풍선’을 선물할 수 있다. 이 별풍선을 선물한 시청자는 해당 BJ의 팬클럽 회원이 되어 팬클럽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 BJ들은 이러한 애청자들의 별풍선을 받아 현금으로 환전한다. BJ들에게 1인 방송은 고수익 알바다.


아프리카TV의 인기BJ ‘대도서관’은 tvN <강용석의 고소한19>에 출연해 자신의 수입을 공개했다. 그는 아프리카TV 방송 중 실시간으로 받는 별풍선이 주 100만원과 유투브 동영상으로 월 1300만원을 받는다. 금액은 조회수에 따라 유동적이다.

민속촌 거지알바 화제 ‘쉬면서 팁까지’
별풍선 받아 현금 환전 BJ들 억대 연봉

대도서관은 총 20분 정도 분량의 동영상 600~700개가 유투브에 올려져있다고 밝혔다. 한국 유투브 전체 조회수로 따지면 39위 정도다. 대도서관은 주로 자신의 게임을 중계하며 별풍선을 받는다.

그는 방송에서 “게임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재밌게 하는 능력인데 이건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능력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영상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렸을 때 사람들이 즐겁게 봐준다”며 “애청자가 20만 명”이라고 밝혔다. 대도서관의 채널을 즐겨찾기 해놓은 사람의 숫자다. 동영상 조회수는 8000만에 이른다. 엄청난 수준이다.

보통 일일평균 접속자는 평균 6000∼4만명 정도. 웬만한 케이블 방송보다 나은 수준이다. 접속자 대부분은 집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이다. 대도서관은 1인 방송 전에 직장생활을 했지만 유투브 수입이 높아지면서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40대까지 할 수 있겠느냐”는 강용석의 질문에 그는 “60까지는 거뜬하다”며 “개인방송이나 유투브는 나이가 상관없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또 “가장 좋은 점은 잘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BJ들은 웹캠으로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한다.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게임 방송이다. 주로 게임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별풍선 하나당 100원이다. 스타BJ는 70원을 받고 일반 BJ는 65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아프리카TV 나우콤의 몫이다.

tvN <화성인 X파일>에서는 하루살이 얼짱 알바녀가 소개된 바 있다. 매일 알바로 생활하는 A씨의 사연은 매우 놀라웠다. 그녀는 “예전에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며 “내일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다양한 알바를 통해 살아가고 싶다”고 하루살이 인생을 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알바 인생이 불안하지 않느냐는 제작진의 물음에 “청춘일 때 즐기고 싶다”며 “남들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는데, 저한테 티끌은 그냥 티끌이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A씨의 일과는 오전 5시부터 시작됐다. 새벽에 일어나 모닝콜 알바를 하는 것이었다. 모닝콜 알바는 한 달에 3만∼5만원. 그녀는 “여러 명의 고객에게 동시다발로 하니 쏠쏠하다”고 밝혔다. A씨는 주 수입원인 피팅모델 외에도 그날그날 필요한 금액만큼의 알바를 찾아나섰다.

A씨는 수영장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크리머 알바를 시작으로, 타조 농장에서 사육사 보조로 일한 다음,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점심친구 대행 알바도 했다. 마지막으로 미술학원에서 누드모델 알바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통장 잔고에는 단 10원도 찍혀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루살이였던 것이다.

기막힌 알바들…
이렇게 많이줘?

대학생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꾸준히 인기를 타고 있는 알바가 있다. 그 유명한 생물학적동등성실험(이하 생동성 시험)이다. 생동성 시험은 멀쩡한 신체에 불필요한 약을 투여하는 것인 만큼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단기간에 고수익을 벌 수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식약처는 한번 시험에 참가한 대학생은 3개월 내에는 참가할 수 없는 규정을 만들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과거에는 무분별하게 생동성 시험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식약처에서도 생동성 시험이 취업난, 등록금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연계돼 인식되고 있는 만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 “최대한 안전한 환경에서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동성 실험 외에도 각종 워터파크의 시설, 음식, 숙박시설 등을 충분히 이용한 뒤 불편한 점이나 개선사항을 직접 적어서 제출하는 알바, 강아지 마담뚜, 동화 읽어주기 등 다양한 꿀알바가 존재한다.


또 한 인터넷 역할대행 사이트에는 ‘시급 아내’라는 황당한 제목의 글들이 속속 올라와 있었다. 주 내용은 떨어져 있는 아내를 대신해 모든 일을 해준다는 것들이었다. 시급아내를 부르는 비용은 시간당 2만∼3만원. 하지만 ‘애인 대행’ 감시 강화에 수법을 바꾼 변종 성매매를 유도하는 글이었다. 게시글에는 ‘아내 역할이면 잠자리도 가능한가요?’ ‘장기계약도 가능한가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게시자는 ‘시간당 비용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답글을 올렸다.

애인대행 사이트의 성매매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경찰 등의 감시·감독이 강화되면서 주춤하던 변종 성매매는 최근 남편, 아내 역할 대행 등의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약물 마루타 실험에 지원자 몰려
‘시급 아내’‘애인 대행’도 활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역할대행 사이트 등 인터넷 상에 성매매 정보를 게시해 심의위로부터 삭제 또는 이용해지,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 조치를 받는 건수가 올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 2008년 심의위가 애인대행 사이트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분류한 이후 시정요구 조치는 2009년 1881건에서 2010년 5020건, 2011년 6065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이들 사이트에 대한 관리 감독이 강화되면서 5655건으로 다소 주춤했지만 올들어 지난달까지 8631건이 적발되는 등 또다시 급격히 증가했다.

역할 대행이라는 이름만 내건 변종 성매매가 인터넷 상에서 판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된 40∼50여개 역할대행 사이트 중 일부는 애인대행에서부터 술친구, 이색대행, 성인데이트, 고민상담, 과외선생대행, 여행파트너, 개인대행, 친구대행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대행서비스를 알리고 있었다. 대부분 글에는 ‘돈이면 뭐든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성매매를 암시하는 내용도 있었다.

알바도 양극화?
일자리 소외현상


대표적인 알바 전문 포털사이트인 ‘알바몬’의 조사에 따르면 대졸 미취업자의 78.9%가 알바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들 가운데 71.5%는 “미취업 상태가 수개월 이상 계속될 경우 알바로 취업을 대신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프리터족처럼 한국형 프리터들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결코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알바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000원도 되지 않는 수수료를 받는 ‘가난한 알바’가 있는 반면 소비자 품평회 알바 등은 시간당 보수가 2만5000원이 넘어 ‘귀족알바’로 불린다.

앞서 설명했지만 최근 주목되는 현상은 부모, 친구, 애인 역할을 대신 하는 ‘인간관계형’ 도우미의 증가다.
한 전문가는 “역할 도우미와 같은 알바의 등장은 인간관계와 감정의 상품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가족과 이를 보완할 만한 공동체가 모두 기능을 급속하게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NASA 이색알바
누워만 있어도 500만원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NASA 누워있기 알바는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우주센터에서 근무하게 되며, 주 업무는 바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다. 하루에 8시간 잠을 자면 월 5000달러(약 540만원)를 준다는 것. 이에 ‘꿀알바’라는 명칭이 붙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일명 ‘누워있기’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존슨우주센터에서 2주간 생활하게 되며, 과학자들이 먼저 이들의 일상생활 등을 관찰한 뒤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하게 된다.

하루종일 TV 보고 게임
신체 변화 연구 목적

이후 아르바이트생들은 특수 침대에서 총 70일 동안 누워만 있으면 되는데, 누워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등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며 심지어 침대에서 샤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아르바이트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원자는 발이 머리보다 조금 높게 위치한 침대에 누워서 하루 중 16시간은 빛이 있는 환경에서, 8시간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한다. 특히 연구진들이 뼈, 근육, 혈액순환, 면역 체계 등의 변화를 측정할 때만 몸을 움직일 수 있어 꽤나 힘든 생활을 보내야만 한다. NASA가 이 같은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이유는 장기간의 우주여행이 우주인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것.

NASA 측은 “극미 중력(microgravity)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자를 모집하게 됐다”며 “70일간의 실험기간이 지나면 14일간의 재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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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